<이슈&인물> 운 좋은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9.11 10:26:46
  • 호수 1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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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좋다고 웃을 때가 아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국 축구가 우여곡절 끝에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며 9회 연속 본선 진출의 꿈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번 최종예선서 보여준 전력이라면 내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서도 지난 2014년 브라질대회 때처럼 예선탈락이 자명하다. 신태용 감독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FIFA랭킹 49위)은 지난 6일 0시(이하 한국시각)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위치한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서 열린 우즈베키스탄(FIFA 랭킹 64위)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10차전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K리그 슈퍼스타
대표팀은 글쎄

이날 무승부로 한국은 4승3무3패(승점 15점)를 기록, 이미 본선 진출에 성공한 이란(승점 21점)에 이어 조 2위로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우즈베키스탄은 4승1무5패(승점 13점)를 기록, 이란과 2-2로 비긴 시리아(3위)에 밀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2014년 9월 브라질월드컵 예선서 한국축구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은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서 1무2패로 조 최하위에 그치며 탈락했다. 이후 전열을 갖추기 위해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는 2015 호주 아시안컵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갓틸리케’라는 찬사를 받았다. 상승세를 살려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뿐만 아니라 본선 무대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지난해 9월1일 최종예선으로 돌입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중국과의 1차전부터 삐걱거렸다. 3-0으로 앞서고 있다가 후반 집중력 부족을 노출하며 2골을 내리 내줬다. 자칫 비길 수도 있는 경기였다. 

이후 A조 최약체로 분류된 시리아와의 제3국 원정 경기서 득점 없이 0-0으로 비겼다. 이어 지옥의 이란 테헤란 원정에선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한 끝에 0-1로 패했다. 슈틸리케를 향한 시선이 급싸늘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후 지난해 11월 안방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서 2-1 승리를 거두며 급한 불을 끄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후 대표팀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2017년 3월 치른 첫 최종예선 경기서 창샤로 원정을 떠나 0-1 참패를 당하고 왔다. 곧바로 시리아를 안방서 1-0으로 물리치긴 했으나 6월에는 카타르 원정서 2-3으로 패했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은 사실상 경질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팀을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한국 축구가 떠안아야 했다. 한국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 무산될 수도 있는 위기서 소방수 신태용 감독이 나섰다.

우여곡절 끝 러시아 본선티켓 획득
최악의 최종예선…이대론 3패 탈락

대승적인 차원서 K리그 각 구단들이 조기 소집에 응하는 등 적극 협조했다. 손발을 맞출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이란과의 홈경기에선 0-0으로 비겼다. 수적 우위. 그리고 6만 관중이 넘는 홈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고도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이번 우즈벡전은 자칫 월드컵서 떨어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 축구는 배수진의 각오로 이번 우즈벡 원정에 임했다. 그리고 0-0 무승부로 승점 1점을 따내며 천신만고 끝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파란만장했던 지난 1년 간의 최종예선이었다. 

하지만 대표팀의 불안전한 경기력 때문에 벌써부터 신 감독의 경질설까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거스 히딩크 부임설’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못 박은 상태다. 

신 감독이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임기를 보장 받은 상황에서 때 아닌 루머로 대표팀은 곤욕을 치르게 됐다. 

신 감독이 해결해야 할 숙제도 산적하다. 그중에서도 무딘 공격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우즈베키스탄전서 무득점 무승부를 거뒀다. 20세 이하(U-20) 월드컵서 화끈한 공격축구로 16강에 올랐던 신 감독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다. 하지만 한국은 이란과 우즈베키스탄 2연전서 한 번도 득점하지 못했다.

이란전서도, 우즈벡전서도 손흥민과 황희찬 조합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번 우즈벡전서 신 감독은 손흥민과 황희찬 그리고 이근호를 공격 전방에 배치했다. 활동량이 좋은 세 선수를 전반에 배치해 상대를 흔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구원투수 등판 
두게임 낙제점

결과는 실패였다. 크로스는 잦았지만 부정확했고 몇 차례 얻어낸 기회 역시 결정력이 부족했다. 오히려 염기훈의 후반 교체 투입 후 공격 전개가 살아난 모습을 보여줬다. 이동국 역시 중요한 기회를 만들어내며 베테랑다운 활약상을 펼쳤지만 2% 부족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신 감독은 지난 7월4일 울리 슈틸리케 감독 후임으로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대표팀은 클럽과 다르다. 소집이 제한적이며 훈련 시간도 짧다. 신나게 공격하는 신 감독 스타일을 마음껏 활용하기에는 2경기가 주는 무게감이 컸다. 
 

어쩌면 신 감독 스스로 작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수비를 강조했고 무실점을 입에 올렸다. 열흘의 절반을 수비 조직력을 다듬기 위해 혈안이었던 이유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2경기서 원하던 무실점을 통해 월드컵 진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수비 역시 불안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수치로 보면 나쁘지 않다. 슈틸리케 감독 체제서 8경기서 10골을 내줬던 수비력과 비교하면 분명 좋아졌다.

그러나 무례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수비수 김영권. 우즈벡전서 스리백의 중앙 수비수로 나선 장현수 모두 불안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무리한 볼 돌리기와 백패스로 상대에 기회를 내줄 뻔했다. 

수비진용서의 압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상대에 공간을 허용했다. 우즈벡 선수들이 조금만 더 결정력을 높였다면 충분히 실점할 수 있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결과적으로 대표팀은 이란이 시리아와의 경기서 비긴 덕분에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다. 자력 진출이지만, 이란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칫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에도 적신호가 켜질 뻔한 상황이었다. 

여러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남은 기간 동안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 이대로라면 월드컵 본선서도 힘든 경쟁을 이어갈 것이 뻔하다. 

신 감독의 어깨가 무겁다. 남은 9개월 간 대표팀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 큰 숙제를 떠안게 됐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여전히 신 감독에게 기대를 걸어볼만한 구석은 있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비춰볼 때 충분히 이번 숙제도 풀어갈 수 있을 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 감독은 1969년 10월 경북 영덕군서 태어났다. 대구공고, 영남대를 거쳐 1992년 일화 천마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프로 생활은 화려했다. 

데뷔 첫해 영리한 플레이로 일화의 공수를 조율하며 신인상을 받았다. 신 감독이 합류한 일화 천마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한다. 


1995년 신 감독은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 리그 MVP를 차지했다. 또한 연말에 열린 1995-1996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마저 제패하며 일화 천마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그해 포항 아톰즈와 벌인 챔피언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꼽힌다.

1996년 일화 천마는 암흑기에 들어간다. 천안시로 연고지를 옮기며 상부와 불화를 겪은 박종환 감독이 해임됐다. 이장수 당시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았는데 이 때부터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게 된다. 

하지만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K리그 MVP를 수상하는 등 신 감독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특히 MVP 2회 수상은 신 감독만 갖고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1998년 개인 통산 30득점 30도움을 기록. 이 때 독일 분데스리가의 한자 로스토크의 영입 제의를 받아 유럽에 진출할 듯했으나 무산됐다. 이듬해인 1999년 차경복 감독이 천안 일화를 맡는다. 이때 첫 FA컵 우승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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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개인 40득점 40도움을 기록한다. 그해 일화 천마는 천안서 성남으로 다시 옮기며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신 감독은 2001년 50득점 50도움을 달성했다. 그리고 성남 일화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K리그 3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남긴다. 

이때도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는데 우승 청부사 샤샤를 비롯해 김대의, 김상식, 김영철, 김도훈, 윤정환, 이싸빅, 이성남 등이다. 실제로 K리그의 골수팬들 사이에선 2003년의 성남 일화 천마를 K리그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로 거론하기도 한다.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성남과 재계약하지 못하며 K리그를 떠났다. 2005년 호주로 떠나 퀸즐랜드 로어 FC에 입단해 1경기에 출장한 후, 발목 부상을 입고 그 해 9월에 완전히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을 기록했다. 또 최초 4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현역 시절 신 감독의 국가대표로서의 경력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거친 엘리트 선수였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선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1993년과 1997년까지 A매치서 23경기 3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K리그서 신 감독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아쉬운 기록이다. 1996년 AFC 아시안컵 8강 이란전서 2:6 참패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는 일이 없었다. 이 대회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후 월드컵 명단에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휘청거리는 태극호…숙제 산적 
급기야 히딩크 부임설까지 부상

차범근 감독 체제에선 1997년 상반기까지는 뽑혔으나 최종예선 때부터는 제외됐다. 이후 허정무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 때에도 소속팀과 함께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도 발탁되지 않았다. 사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가대표 축구의 조직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 감독들은 신 감독 대신 다른 젊은 선수들을 발탁해 세대교체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거나 대표팀의 리더를 맡을 고참 선수들로는 황선홍과 홍명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월드컵 출전 경력만 있었으면 K리그서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될 수 있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신 감독은 은퇴 직후인 2005년 호주로 넘어가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그가 첫 지휘봉을 잡은 건 2008년이었다.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성남 일화 감독 대행을 맡아 첫 감독직을 수행했다. 그는 특유의 ‘형님 리더십’을 발휘해 K리그와 FA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지도력은 대표팀서 더욱 빛났다. 신 감독은 각급 대표팀이 벼랑 끝에 몰릴 때마다 지휘봉을 잡아 ‘구원투수’로서 맹활약했다. 

그는 축구대표팀 코치 재직 시절이던 2015년, 리우올림픽 대표팀을 이끌던 고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자 중책을 이어받았다. 초반에는 우려를 표했지만 그는 와일드카드 손흥민(토트넘) 등 23세 이하 대표팀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11월 두 번째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다. 20세 이하(U-20) 대표팀이 아시아 예선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고 팀을 변화시켰다. 이승우, 백승호(이상 FC바르셀로나) 등 개성 넘치는 선수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신태용식 패스 축구로 강호들을 잇따라 격파했다.

남은 9개월
처음부터 시작

U-20 월드컵 본선 무대에선 조별리그서 아르헨티나를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젊은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권위적인 모습보다 편안한 분위기를 도모한 신 감독 특유의 리더십이 빛났다는 평가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신 감독의 용병술과 형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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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