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문의 한수’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8.29 08:33:42
  • 호수 1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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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건너 뛰었나? 법원 사람들 멘붕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다. 법원 내부는 충격에 빠졌다. 김 후보자는 법원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의 판사로 알려졌다. 또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현직 법원장이 바로 대법원에 지명되는 것도 이례적이며, 임명되면 현재 12∼14기가 주축인 대법관들과 ‘기수 역전’도 벌어진다. 김 후보자 임명은 사실상 사법개혁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차기 대법원장에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지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인은 “김명수 후보자는 법관 재임 기간 재판업무만 담당한 민사법 전문 정통 법관”이라며 “소탈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청빈한 생활 유지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배려하고 포용해 주변의 깊은 신망 받고 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청빈한 생활
부드러운 성품

김 후보자는 부산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사법시험 25회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하고 1986년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로 임관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3년을 제외하고 줄곧 일선 법원서 재판업무만을 맡아 재판 실무에 정통하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주요 법원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 민사재판을 맡는 법관과 법원 직원들의 실무지침서인 법원실무제요 민사편 발간위원으로 참여해 원고를 집필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에는 민사조장을 역임하는 등 민사재판 전문가로도 정평이 나 있다. 


평소 소탈한 성격으로, 대화를 즐기고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하는 리더십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술도 즐기는 편이서 술자리도 2차(맥주집)까지는 피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김 후보자는 전국 진보 법관의 좌장격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사법개혁을 이끌 적임자로도 평가받는다. 

김 후보자는 과거 참여정부 시절 사법개혁 주축이었던 개혁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5공화국서 임명된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430여명이 서명운동을 진행한 ‘제2차 사법파동’ 이후 설립된 법관 모임이다. 초대 회장은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됐던 박시환 전 대법관이 맡았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대표적 진보 성향
대통령 사법 개혁 의지 반영된 결과

노무현 정부 때는 연구회 소속 인사 중에서 박시환 대법관, 강금실 법무장관,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 박범계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이 배출되면서 당시 야당으로부터 ‘판사들의 정치 사조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우리법연구회가 2010년 해산한 뒤 이듬해인 2011년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서도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인권법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과거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함께 성 소수자 인권에 관한 첫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인권법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평소에도 인권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지난해 2월 춘천지법원장으로 취임할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서 “법은 약자를 위한 것이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당사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인권과 소수자를 중시하지 않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법관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외국인, 다문화 가족 이주민 여성, 북한이탈주민, 소송비용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어려운 당사자들의 재판 접근권과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서울고법 민사재판장을 역임할 당시 일명 5공 시절 전 현직 교사들이 시국토론을 하자 이적단체라고 조작한 사건에 오명 피해자와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2심서 국가가 위자료로 150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김 후보자는 기존의 보수적 논리를 되풀이 하지 않는 전향적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서울고법 행정10부 재판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15년 11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이 정부의 통보처분 효력을 사실상 인정하고 파기 환송한 사건서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은 판단이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해직 교직원이 포함돼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했고, 전교조는 정부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대법관 무경험
다수가 ‘선배’

당시 재판부는 “헌재 결정에 따라 해직교사의 교원노조 가입을 금지한 교원노조법 제2조가 위헌이 아니라 하더라도 여전히 다툴 쟁점이 상당수 남아있다”며 “항소심 판결 선고 때까지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또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 노조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노조에 부여된 노조법상 권리를 현실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된다”며 “전교조의 조합원이 6만 명에 이르고 효력정지 처분이 유지되는 경우 본안 소송 판결이 선고되기 전에 여러 학교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확산되면 학생들의 교육환경에도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2015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가 노동조합(노조) 활동을 이유로 노조 부지회장을 ‘표적 해고’한 사건에서는 노조 측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당시 삼성에버랜드가 직원들의 개인정보 등을 외부 이메일로 전송했다는 이유로 부지회장을 해고하자 부지회장은 중앙노동위원회 등에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이 신청은 기각됐고 부지회장은 다시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부지회장에 대한 해고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잃은 가혹한 제재로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며 “삼성에버랜드는 부지회장이 삼성노조를 조직하려 했고 실제 이를 조직한 뒤 부지회장으로 활동한 것을 실질적인 이유로 해고를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수원지법 판사였던 지난 2002년에는 신호를 위반하고 교통사고를 낸 주한미군에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 등을 적용해 징역 8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당시 관례상 비교적 관대한 처벌을 받던 주한미군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은 이례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대변인은 김 후보자의 지명과 관련해 “인권 수호를 사명으로 삼아온 법관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를 배려하는 한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기틀을 다진 초대 회장”이라며 “국제연합이 펴낸 인권편람의 번역서를 출간하고 인권에 관한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법관으로서 인권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설명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올해 대법원 개혁 논란의 한복판에 선 단체다. 이곳이 올 초 주최한 학술대회를 두고 법원행정처가 “축소하라”는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판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있었고 대법원 개혁 논란으로 커졌다. 이때 양승태 대법원장이 진상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평소 개혁적인 행보를 보여왔던 김 후보자의 내정이 사법개혁 요구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보수적인 법원 조직에 김 후보자 내정은 충격 그 자체다. 

먼저 김 후보자는 비 대법관 출신이다.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과 3∼4대 조진만 대법원장에 이어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세번째 대법원장이 된다. 다시 말해 49년 만의 파격 인사다.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판사가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관행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법관사회에서 리더십을 갖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1986년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로 임관된 후 31년째 법관생활을 하고 있어, 대법관을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더 많다.

대법원 측은 문 대통령의 김 후보자 지명 가능성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어제까지 대법원의 누구도 이런 전격적인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충격은 기수 파괴다. 일각에선 다섯 기수를 뛰어넘고 임명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사례와 비교하기도 한다. 

김 후보자는 양 대법원장에 비해 기수로는 13기, 나이로는 열한 살 아래다. 13기인 최완주 서울고법원장과 강형주 서울중앙지법원장 등 상당수 법원장보다도 기수가 낮다. 이 외에도 박보영(56·16기)·김재형(52·18기)·김소영(52·19기)·박정화(52·20기)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9명 대법관보다도 기수가 낮다.

법관 서열 1위
기수 서열 9위

김 후보자가 될 경우 법관 서열은 1위이지만 대법원 내 기수 서열은 전체 14명의 대법관 중 9위에 해당하게 된다. 이처럼 김 대법관의 인사는 향후 법원 내에서도 '파격 인사'를 통한 세대 교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낳게 한다.  

정치권에선 김 후보자 인선에 대한 평가가 갈리고 있다. 특히 야당은 대법원장 지명자 발표가 나자마자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진보 대 보수’ 이념 대결로 몰아가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22일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서 “대법원의 코드 사법화가 심히 우려된다”며 “이유정 후보자에 대법원장 지명자까지 헌재와 대법원을 정치재판소로 만들고 정치대법원화될지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서 “개혁을 앞세워 사법부를 장악하려 한다는 우려가 있다”며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 사법부 독립을 해칠 가능성은 없는지 큰 우려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문재인 정부 인사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특정 연구단체가 여러 영역서 약진하며 코드 단결을 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반면 여당은 김 후보자에 대한 엄호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서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일선 법관의 동요가 심각한 상황서 이번 지명은 국민의 법원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개혁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 해결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사법부 수장 인사인 만큼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반면 정부 출범 이후 100일 동안 무기력했던 야당은 이번 대법원장 인준 과정서 ‘보수 본색’을 뚜렷이 함으로써 세력 부활에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인권법연구회장 맡아 인권 관심
경력 탄탄한 민사재판 전문가 

문제는 김 후보자의 경우 국회 본회의서 임명동의안 표결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김 지명자 인준 전망과 관련해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야당 추천 몫이었던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놓고 여야가 1년2개월간 공방을 벌이다 결국 낙마한 사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에도 국민의당이 열쇠를 쥐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5월 말 국민의당이 대거 찬성표를 던지며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이낙연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의 사례가 김 후보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될지가 관심을 모은다. 

대법원에선 김 후보자가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 대법원장에 임명될 경우 법원 안팎으로 사법 정책과 행정, 법관 인사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임명 제청권과 3000여 명의 법관, 1만여 명의 법원 직원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다. 또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 경향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많은 법조인들의 전망이다. 민감하고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서 대법원장은 재판장을 맡는다. 

먼저 법원 안으로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요구가, 밖으로는 대법원장 권한 축소 등 주문의 목소리가 커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 농단 사건의 상고심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등 전 정부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 역시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경우 김 후보자의 마침표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외압 문제가 불거진 뒤 열린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서 김 후보자는 “법관 독립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선 법관 개인의 의지를 고양하고, 법관이 내외적으로 간섭을 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정치권 입장 
극명하게 갈려 

법원 밖에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 중인 사법부 개혁 과제도 김 후보자를 기다리고 있다. 정치권은 국회와 법원, 대통령이 선택한 인원들이 함께하는 사법평의회가 사법행정 전반에 관여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차기 대법원장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당장 진행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뿐만 아니라 국정원 댓글 파문에 연루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도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경우 심리할 가능성이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명수 후보자 재산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고위 법관 평균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 법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8억2165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는 전년보다 1억3151만원 줄어든 것으로 공개대상 고위 법관 169명의 평균 재산(22억9466만원)의 35%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김 후보자는 한때 본인 명의로 강동구 명일동 아파트를 소유하고,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도 빌렸으나 지금은 모두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은 배기량 1955㏄의 2001년식 SM5 승용차(시가 300만원 상당)를 타며, 교보생명보험과 신한은행에 총 3억3000여만원의 예금을 보유한 것으로 신고했다. 부인 이혜주씨는 KEB하나은행과 신한은행, 한국스탠다드차티드은행, 한국투자증권에 총 2억9200여만원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은 없고 예금이 재산의 대부분이다.  

법관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자식 농사는 누구보다 성공했다. 딸(34)과 아들(31) 모두 명문대를 나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현직 법관이 됐다.

딸은 2009년 사법연수원(38기)을 수료해 수원지법 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를 거쳐 2013년부터 대구가정법원 판사로 일하고 있다. 아들은 2013년 사법연수원(42기)을 수료한 뒤 해군 법무관 복무를 마치고 지난해부터 전주지법 판사로 재직하고 있다. 2대에 걸쳐 법관 3명을 배출한 판사 가족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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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