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7성급 호텔 특혜 의혹 추적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정치권 특혜 의혹 제기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정치권이 대한항공에 특혜를 주고 있다.” 대한항공이 경복궁 인근에 호텔을 건립하는 것과 관련,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이같이 주장하고 나섰다. 대한항공이 우리 문화유산을 간접 훼손하는 데 정치권이 힘을 더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12일 대한항공의 호텔 건축이 계획된 옛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숙소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황 소장을 직접 만나 그 사연을 들어봤다.

경복궁 인근, 여중고에서 50m 거리…“문제 없다?”
종로구 공공부지 개발 계획에 불편한 심기 드러내

시간은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생명은 국방부로부터 송현동 49-1번지 일대에 위치한 옛 주한미국대사관 숙소부지 3만6000㎡를 매입했다. 미술관을 건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 2008년 ‘행복한 눈물 사건’으로 삼성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촉발되면서 미술관 건립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그러던 2009년 대한항공이 이 부지를 인수했다. 인수대금은 2900억원. 호텔을 짓는다는 명목이었다.

대항항공은 이곳에 7000억원을 투입, 지상4층 지하4층 연면적 13만 7천여㎡의 규모로 7성급 고급 한옥호텔을 지을 계획이다. 객실 수는 150~200실. 서울 시내 특급호텔인 신라호텔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지만 한옥으로 지어 전통미를 살리고 상징성과 차별화, 고급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곳은 경복궁 인근이고 북촌 한옥마을과도 가까운 지역이다. 문화재 보호는 물론 국민정서상으로도 민감한 지역이다. 결국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줄을 이었다. 황 소장도 그중 한명이다.

황 소장은 “바로 건너편에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고, 인근에 광화문 국가상징거리가 있으며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 북촌한옥마을과 인사동 전통문화거리가 있어 일반 상업시설을 짓기에 부적절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황 소장은 “아무리 영리목적을 가진 기업 소유의 땅이라고 하더라도 한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중요 지역에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호텔 건립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교육청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풍문여고, 덕성여·중고와 너무 가까워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우려가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대다수 관광호텔에 유흥주점이나 나이트클럽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는 설명이다.

KAL 2009년 부지 인수
호텔 건립 계획

학교보건법은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에서 호텔이나 여관, 여인숙 등의 숙박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학교출입문으로부터 직선거리로 50m까지인 ‘절대정화구역’이 아닌 상대정화구역(학교경계선으로부터 200m)은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건립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 부지는 풍문여고와 덕성여중 정문으로부터 50미터 안에 있다. 빼도 박도 못 할 처지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의 태도는 완강했다. 어떻게든 호텔을 올리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교육청과 대한항공은 이 문제를 들고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지난해 말 법원은 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숙박업소 안에서 윤락, 음란, 사행행위 등이 이뤄지는 사례가 빈번하고, 어린 학생들이 이같은 불건전한 행위를 접하면 비행행위에 빠질 개연성 높기 때문에 학교보건법은 호텔, 여관 등을 정화구역 내에서의 금지시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대한항공의 7성급 특급호텔은 불건전행위 발생 빈도가 일반 숙박업소에 비해 낮을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역시 숙박업소인 이상 불건전행위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학생들 학습과 학교보건위생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황 소장에 따르면 판결이후 구청은 이 부지를 매입, 공원과 열린문화공간, 공영주차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지상에는 시민공원과 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지하에는 관광버스 100대와 승용차 4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영주차장을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이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요충지임에도 불구, 공원이나 주차장 등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 북촌과 인사동, 각종 고궁이 몰려 있는 종로를 방문하는 관광버스는 하루 평균 1490여대에 달하지만, 대형차량 주차장은 80개면에 불과하다.

공공장소 조성 계획
대한항공 심기 불편

인근에 국립현대미술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건립을 앞두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연평균 관람인원이 300만명으로 예상되는 만큼 극심한 혼잡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종로구는 대한항공을 설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 같은 종로구의 행보에 구민들의 뜨거운 성원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나섰다. 당시 대한항공 측 관계자는 구청 측 방침에 “기업 사유지에 대해 인허가 주무관청이 기업과 사전협의도 없이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처사”라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내 돈 주고 산 내 땅인데 왜 ‘배 놔라 감 놔라’ 하냐는 것이었다.

황 소장에 따르면 이곳에 호텔을 올리기 어려울 것이란 사실은 대한항공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2900억원이란 거액을 들여 이 땅을 매입, 불도저식으로 호텔 건립을 추진하는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 12월부터 정부와 국회의 특혜에 가까운 ‘아낌없는’ 지원이 이어졌다. 황 소장이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선 건 국토해양부였다. 국토부는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의견을 반영, 관광호텔을 학습환경 저해시설에서 제외하는 건축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관광진흥법에 따른 관광호텔은 3~4성급 이상 호텔로서 여관이나 여인숙과는 달리 교육환경을 저해하지 않을 뿐더러 건축법과 관련해서는 이중규제의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국토부, 문체부, 국회 호텔 건립 가능하게 법 개정
최대 수혜자 호텔사업 주도 한진가 맏딸 조현아 전무


특히, 문체부는 중부교육청에 가서 관광숙박시설 확충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덕성여중 관계자를 만나는 등 대한항공 호텔 건립에 발 벗고 뛰었다. 그 끝에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에서도 관광호텔의 건립이 가능하도록 관광진흥법이 일부 개정됐다.

국회도 한진을 돕는데 양팔을 걷어 붙였다. 지난 2월에는 조윤선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43명은 ‘관광숙박시설 확충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호텔특별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호텔 등 관광숙박시설을 건설할 때 각종 개발계획에서 결정된 건축물의 높이·층수·용적률에 완화가 필요한 경우 특별시와 광역시와 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호텔업 건축허가를 받은 경우 국민주택채권매입을 면제받도록 하고, 호텔 건설시 국·공유지를 수의계약으로 매각할 수 있는 우선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이와 관련, 황 소장은 “모든 상황의 전개가 자칫 자본과 권력에 굴복해 특혜를 베푸는 꼴이 됐다”며 “중부교육청 심의결과는 물론 행정소송에서도 호텔 건립이 불가하다는 판결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국토해양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건축법과 관광 진흥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면서까지 학교 인근에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준 것은 대한항공을 위한 특별조치”라고 주장했다.

“문화재·학습권 보장
위해 끝까지 싸울 것”

이번 정부와 국회의 조치의 최대 수혜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무다.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모양새다. 지난 2007년 1월부터 대한항공의 칼호텔네트워크 대표로 경영에 참여해 온 조 전무는 호텔 사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무는 최근 한 언론을 통해 자신의 차기 목표는 종로구 송현동 옛 대사관저 터에 호텔을 건립하는 것이라는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흐름은 대한항공에 넘어갔다. 이변이 없는 이상 호텔 건립은 순조롭게 진행될 전망이다. 그러나 황 소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황 소장은 “높은 담벼락 때문에 그동안 국민들과 단절되었던 이 지역이 이제부터라도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어져야 한다”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경복궁의 역사문화경관과 사랑스러운 우리 자녀들의 안정적인 학습권 보장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평우 소장은>


- 학력
고려대학교 환경보건학과 /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 석사과정 중

- 경력
1988 - 1990 서울 민통련 북부지구 사무국장
1989 - 1990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 운영위원
1997 - 1999 해라시아문화연구소 총무부장
1997 - 2000 참여연대 집행위원, 운영위원, 청년회 회장, 답사모임 회장
2002 - 2006 덕수궁터 미국대사관아파트 신축 반대 시민모임 공동대표
2004 - 2010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 역임
2010 - 현재 종로역사(육의전)박물관 부관장
2010 - 현재 문화연대 외규장각 약탈문화재환수 특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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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 쟁탈전

‘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 쟁탈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대한민국 의전 서열 1위는 대통령이다. 그다음은 통상 국회의장으로 분류된다. 의전 서열 2위를 차지하기 위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거물급 잠룡들의 몸풀기가 시작됐다. ‘친명(친 이재명계 일색’ 민주당에 국회의장까지 ‘찐명’ 몫으로 돌아갈 상황이다. 차기 국회의장(이하 의장)에 누가 오를지 관심이 쏠린다. 당초 4파전으로 예고됐던 선거가 지난 주말 사이 우원식·추미애 당선인의 양자구도로 정리되는 등 물밑 경쟁도 치열한 양상이다. 그동안 의장직은 다수당의 5선 이상인 중진급 의원이 맡는 게 관례였다. 원내 정당의 의견을 교섭하고 조율하는 역할인 만큼 계파색이 옅은 인사가 적임자로 여겨졌다. 이는 국회의장에게 주어지는 ‘직권상정’이라는 특권 때문이다. 의장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시킬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가운데서… 외로운 싸움 현재 국회를 이끄는 수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출신인 김진표 국회의장이다. 김 의장의 임기는 오는 29일 종료되며 차기 의장은 오는 16일 선출된다. 김 의장은 국민의정부서 중용돼 부총리를 비롯한 장·차관 등을 역임했다. 2002년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에는 수원서 내리 5선에 성공하면서 당내 우직한 인사로 평가받아왔다. 선수가 높았던 탓에 21대 전반기 국회의 의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당시 6선이었던 박병석 의원과 단일화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불출마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김 의장은 이로부터 2년 뒤인 2022년 21대 후반기에 의사봉을 쥔 후로 지금까지 국회를 이끌고 있다. 당선 당시 김 의장은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며 “당적을 졸업할 때까지 선당후사의 자세로 민주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의장이 당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우려와 달리 김 의장이 무조건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오히려 임기 막바지엔 친정인 민주당으로부터 쓴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법안 상정 시 여야 합의를 지나치게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본회의에 (법안을)올릴 때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민심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봐야 할 것 아닌가”라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21대 후반기 국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온갖 특검법이 쏟아지면서 강대강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평소 온화하기로 소문난 김 의장조차 본회의 진행 중 의원들의 고성이 이어지자 처음으로 “국민이 보고 있습니다!”라며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다. 4·10 총선 이후 본격적인 수난 시대가 열렸다. 이번 총선을 통해 ‘윤석열정부 심판론’이 힘을 받자 정부·여당을 향한 민주당의 압박 수위가 단숨에 높아진 탓이다. 지난 2일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는 과정서 김 의장의 고초가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김 의장은 멕시코·인도네시아·대한민국·튀르키예·호주 의회로 구성된 협의체인 ‘믹타(MIKTA)’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야당 내에서 “해당 법안을 상정하지 않을 경우 출장길을 막겠다”며 의장을 압박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는 여야 21대 국회 끝도 진흙탕 싸움 본회의 직전까지도 야당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의장실서 나온 김 의장 옆으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며 끈질기게 쫓아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강 의원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붙자 김 의장은 “알아들었다” “본회의장서 한다니까”라며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채 상병 특검은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통과하면서 김 의장을 향한 공세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전세 사기 특별법 등 예민한 현안이 산적한 만큼 21대 국회 폐원 전까지 김 의장의 책임은 여전히 막중하다.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만족하는 결과를 도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김 의장은 언제나 여야 협치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 21대 국회가 이견 조율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불만이 나오자 차기 의장을 노리는 후보들은 저마다 ‘탈중립’을 강조하면서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먼저 신호탄을 쏴 올린 인사는 경기 하남갑에 당선돼 6선 고지에 오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추 당선인은 지난달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국회의장이 될 가능성과 관련해 “국민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혁신 의장에 대한 기대라면 얼마든지 자신감 있게 그 과제를 떠안을 수 있다”고 말해 출마를 암시했다. 추 당선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의장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립도 아니다”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강성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그를 차기 의장으로 밀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다른 후보 역시 앞다퉈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5선인 민주당 우원식 당선인은 후보 등록 첫날인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개혁 의장이 되겠다”며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우 당선인은 자신을 이 대표의 ‘사회개혁 가치의 동반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윤정부에 맞서기를 주저한 적이 없다. 국회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마음으로 임하겠다”며 “말로만이 아닌 온몸을 던져 싸워왔다. 윤정부의 민주주의 후퇴, 삼권분립 훼손에 단호히 맞서 제대로 싸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6선 민주당 조정식 당선인도 같은 날 출마를 선언했다. 조 당선인은 입장문을 통해 “국회 국토교통위원장과 예결위 간사, 당 정책위의장 및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실력을 검증 받았다”며 “특히 지난 1년 8개월 간 당 사무총장으로서 이 대표와 함께 민주당을 지키고 총선 승리를 이끄는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확 바뀐 패러다임 조 당선인은 이번 총선의 민의를 ‘민생회복과 윤정부에 대한 심판과 견제를 제대로 하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22대 국회는 국민의 명령을 제대로 실현해야 한다”며 “당원과 국민의 뜻을 받들고 개혁국회의 성과를 낼 국회의장이 선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 당선인은 후보 마감일인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민의를 따르는 ‘개혁국회’를 만들어 민생을 되살리고 평화를 수호하며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며 “첫 번째 민생 입법으로 이 대표가 제안한 신용사면 등 처분적 법률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5선의 민주당 정성호 당선인도 같은 날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빛나게 하는 ‘뒷바라지 국회의장’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정 당선인은 “이번 총선의 민의는 소극적 국회를 넘어서는 적극적이고 강한 국회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이를 받들어 국회의 권위를 회복하고 민생과 민주주의의 효능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던 5선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지금은 제가 나설 때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22대 국회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우리 당의 좋은 국회의장 후보가 선출되기를 기대한다”며 “이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나라를 살리고 민주당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듯 4파전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던 의장 선거는 주말 사이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지난 12일, 조 당선인과 정 당선인이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추 당선인과 우 당선인으로 후보군이 압축됐다. 조 의원은 이날 추 당선인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민주당이 대동단결해서 총선 민심을 실현하는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해 제가 마중물이 되고자 의장 후보직을 사퇴한다”며 “추 후보가 연장자라는 점을 존중했다”고 설명했다. 정 당선인도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의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당선인과 달리 추 당선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진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친명계 핵심부가 의장 선거를 앞두고 추 당선인으로 교통정리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추 당선인은 후보 중 가장 선수가 높고 연장자인 만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관례에 따랐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추 당선인의 선명성을 높이 샀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선명성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데에는 김 의장의 과도한 중립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풀어지는 중립 기어 추 당선인은 “옳은 방향으로 갈 듯 폼은 다 재다가 갑자기 기어를 중립으로 넣어버리고 멈춰버려 죽도 밥도 아닌,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우를 범한 전례가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선명성 경쟁에 대해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김진표 학습 효과’라고 해석했다. 최 평론가는 “김 의장은 ‘일단 여야가 합의를 해오지 않으면 상정하지 않겠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데 대다수의 민주당 당원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때문에 22대 국회의장 선거에서는 기계적 중립이 필요 없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의장 선거를 약 일주일 앞두고 “기계적으로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기류가 점차 굳어지는 분위기다. “의장이 아닌 정부·여당과 맞서 싸우기 위한 당 대표를 뽑는 것 같다”는 여권의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 3일 친명계 박찬대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임된 가운데 의장까지 친명 체제로 꾸려진다면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22대 국회처럼 여소야대 국면서 야당이 강경 입법 드라이브를 예고한 상황이라면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9개의 법안을 21대 국회서 마무리하겠단 방침이다. 폐원 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그동안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간호법 ▲노란봉투법(노조법) ▲방송 3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이다. 민주당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발의할 수 있다”면서도 “필요 시에는 이들 법안을 묶어 ‘패키지’ 형태로 재발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등 중요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여당은 협상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면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킬 수 있게 된다. 대통령 재의요구권인 거부권 외에는 막을 방법이 없는 만큼 여당의 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다. “한쪽으로 기운 의장은 꼭두각시” 우려에도 ‘찐명’ 내세운 이유? 그동안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밀어붙일 때마다 ‘입법 폭주’라며 “타협과 절충으로 이뤄낸 협치의 싹이 또다시 거대 야당의 폭주로 꺾였다”고 비판해 왔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회의원 개인의 목소리를 억제하고 이 대표의 엄명을 따르라 강요하는 것은 국민 기만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이자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 후보로 나선 민주당 후보들조차 이 대표의 눈에 들어보겠다며 위헌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며 “이 대표 연임 추대론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민주당은 전체주의 집단으로 전락한 것인가”라고 견제에 나섰다. 민주당 단일 체제에 우려를 표하는 건 여권뿐만이 아니다. 김 의장도 “한쪽 당적을 계속 가지고 편파된 의장 역할을 하면 그 의장은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MBN과의 인터뷰서 중립의무를 비판한 후보를 겨냥한 듯 “조금 더 공부하고 우리 의회의 역사를 보면 그런 소리한 사람 스스로 부끄러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장 선거를 앞두고 의장의 중립적인 태도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자 이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의장은 “국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가적 현안을 여야 간에 협의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기관 아니냐”며 “끝까지 협의해야 제대로 된 선진 민주정치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력이나 국민의 의식은 다 높은 수준에 가 있는데 정치인들만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전부 아니면 전무)’의 정치를 한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싹쓸이 한다면… 정치권에서는 의장 후보들이 선명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김 의장의 국회 운영 방식에 갈증을 느꼈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거대 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실행력 있는 의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점차 무게가 쏠린다. 민주당 내에서는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과 ‘민심’은 다르다며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여당과 협치보다는 총선서 승리를 이끈 이 대표와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 의장직에 어울리지 않겠냐”는 설이 나오면서 민주당이 22대 국회 고삐를 꽉 죄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민주당은 민심을 빠르게 좇지 못한 김 의장이 비판받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며 “(민주당이)국회를 쥐더라도 민심을 잘 파악한다면 지금과 같은 비판은 잦아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부의장도 친명전 차기 국회부의장(이하 부의장)을 거머쥐기 위한 경쟁도 막을 올렸다. 야당 몫의 부의장 후보로 4선의 남인순·민홍철·이학영 의원이 물망에 오르면서 해당 선거 역시 최소 3파전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후보들은 이번 총선 승리의 의미를 강조하며 국회의장(이하 의장)과 합을 맞춰 22대 국회를 ‘개혁 국회’로 이끄는 데 방점을 찍었다. 부의장은 의장과 달리 당적 보유가 가능하다. 이들 중 대다수가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만큼 22대 국회가 개원하는 동시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