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8.07 17:26:59
  • 호수 1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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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오가던 광주 한복판에 서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영화 <택시운전사>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주연 배우 송강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총성이 오가던 광주의 한 복판서도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하나 같이 송강호의 인생영화라고 호평했다. 전 정부 영화 <변호인>서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연기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한 동안 스크린서 자취를 감췄다. 그런 그가 <택시운전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 첫 날 69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 2일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개봉 첫 날 무려 69만7858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총 누적관객수는 78만4571명이다. 

개봉 전부터 대규모 전국 시사회를 통해 가슴 아픈 현대사를 소시민적인 밝은 웃음과 가슴을 울리는 감동으로 진정성 있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은 <택시운전사>는 개봉 당일 7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본격적인 1000만행에 시동을 건 모양새다. 

신뢰받는 
최고의 배우

<택시운전사>의 오프닝 스코어는 1761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박스오피스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명량>의 68만2701명을 뛰어넘었다. 또한 지난 2015년 여름에 개봉해 나란히 천만 관객을 모은 <암살>(47만7541명)과 <베테랑>(41만4219명)의 기록도 압도적으로 능가해 앞으로의 흥행 행보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택시운전사>는 송강호를 비롯,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과 장훈 감독 특유의 담백한 연출, 그리고 1980년 5월을 따뜻한 웃음과 감동, 희망으로 그려낸 가슴 울리는 스토리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춘 영화로 관객과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송강호는 자타공인 현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다. 어떻게 꼽아도 현 대한민국 영화계 최고로 통한다. 수년째 관객이 꼽은 ‘최고의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 ‘가장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 등 설문조사에서 최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영화계 최고 네임밸류라는 충무로 대표 트로이카의 1인이자, 이병헌, 황정민 등과 함께 최고 대우를 받는 배우기도 하다. 

송강호를 원탑으로 내세운 영화들 실제 흥행 성적도 압도적이다. 실제 흥행 관객수 1000만을 넘은 작품 두 개를 포함해 500만 관객이 넘은 작품도 11개나 된다. 최근 드디어 총 관객이 1억명을 돌파했다.

<택시운전사> 흥행 돌풍
또 한 번 1000만 신화 전망

송강호는 중학교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 당시에는 전국에 연극영화과가 5개밖에 없었다. 그는 입시에 한 번 실패하고 방송연예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이내 영장이 나와 한 학기 만에 군인 신분이 된다.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친 스물셋 청년은 복학생의 길을 접어두고 연극 무대로 향했다.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사회적 격변기 속에서 부산지역의 극단을 찾아 ‘민족극’에 참여한다.
 

민족극서 연극을 시작한 그는 민족극의 경직된 방식 속에서 염증을 느꼈고 1990년 12월 극단 연우무대의 작품인 <최선생>을 만났다. 전교조 문제를 다뤄 기존의 민족극 소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연극의 ‘방식’에 끌렸다. 


그 방식은 구호와 주장에 호소하는 게 아닌 현실적인 감동으로 다가가는 연극이었다. <연우30년>이라는 책에서 송강호는 “연우무대는 내가 지향하던 점을 정확히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연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집어준 기회이자 새로운 용기와 목표를 가지게 한 계기였다”고 고백했다.

1991년, 송강호는 무작정 상경해 연우소극장으로 향했다. 무려 네 번 상경하며 연락처를 남겼다. 이후 연우무대가 주최하던 행사에 부족한 일손을 도우며 연출가 이상우를 만났다. 

이상우는 “연우무대가 네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우무대는 너의 목적을 위해 몸을 담그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송강호를 단원으로 받아줬다. 그리고 이상우의 첫 영화인 <작은 연못>에 송강호도 참여하게 된다.

당시 송강호는 <동승>의 노인 역을 맡았고 <박첨지>에도 참여했다. 이후 <국물 있사옵니다> <지젤> <비언소> 등 10여편의 연극 무대에 섰다. 그리고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출연 중이던 연극계 선배 김의성의 추천으로 극 중 김의성의 동창 역을 맡았다.

본격적인 영화계 입문은 <초록 물고기>으며, 이창동 감독은 <비언소>를 통해 송강호를 발견했다.

민주화운동 실상
전세계에 알리다

<넘버3>는 대중들에게 송강호를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그리고 <조용한 가족>이 이어지며 그의 이미지는 코미디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 했지만 틀에서 벗어났다. <살인의 추억>에선 형사 역할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다.

송강호는 시나리오를 정독한 후엔 다시 읽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시나리오를 보면 볼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연기자가 발휘할 창의성을 제한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민식은 <조용한 가족> DVD 서플먼트서 송강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감각이 있어도 배우는 일단 몸으로 표현해야 하잖아요. 설득력 있게. 그런데 송강호는 그게 완벽하게 표현이 되죠.”

그래서 그는 극중 특정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그들과 함께 지낸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는 <나쁜 영화>서 행려 역할을 맡았다. 정선우 감독은 행려 역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 행려 생활을 경험하기를 원했지만 송강호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연기든 자기가 편안하고, 자기 안에서 나오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죠. 연극영화과 나오고 공부 많이 하면 모두 훌륭한 감독, 훌륭한 배우가 되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렇진 않죠. 그 논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결국 다 자기가 해결해야 할 몫인 거죠.”

<쉬리>는 한국영화의 새 시대를 열었던 작품이었지만 그에게는 조금 힘들었던 영화였다고 한다. 이때 만난 <반칙왕>은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영화를 시작한 지 3년 남짓된 배우에게 ‘원톱 주연’이라는 타이틀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제작사에선 다른 배우들을 얘기했지만 저에게 <반칙왕>은 오로지 송강호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송강호는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그 어려운 레슬링 테크닉들을 모두 소화해냈고요. 멋진 일이죠. 서른 살이 넘은 배우가, 그런 고도의 기술을 마스터한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었고요.” 

그런 믿음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이어졌고 그들은 또 한 번의 멋진 만남을 이뤘다.
 

<반칙왕> 이후 송강호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공동경비구역 JSA>서 박찬욱 감독과 만난다. ‘코미디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서 관객에게 다가선 것.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작품 이후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더 넓어졌다. 

영화 속 모든 ‘얼굴’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한 것이다. <살인의 추억>은 결정적 계기로 평가된다. 호주의 커뮤니케이션&문화인류학 교수인 브라이언 예시즈는 2004년 쓴 글에서 이렇게 평가한다. 

“적어도 최근 3편의 영화 <반칙왕> <YMCA야구단> <살인의 추억>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송강호를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송강호는 관객인 우리들을 들여다보고 또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송강호는 문자 그대로 현대 한국영화서 특히 두드러지는 페이스 중 하나인 셈이다.”


영화 평론가 김영진도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클로즈업을 “한 시대를 요약하는 표정”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송강호를 “어떤 역을 맡아도 자기화해서 송강호적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그 직업, 계층, 성격의 인물에 맞는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창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미세한 일상적인 결에서 감성을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보편의 존재를 흡수하고 밖으로 튕겨내는 단단한 탄력이 있다는 것.

이러한 송강호의 매력은 이창동,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등의 감독들을 매료시켰다.

한 인터뷰서 송강호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것이 미리 규정된 장르 영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연기뿐 아니라 세상살이 역시 쉽게 규정 지을 수 없는 거잖아요. 배우로서 저는 한 번 연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쪽인 것 같아요. <넘버3> 이후에 조폭 배역이 쏟아져 들어왔고 <살인의 추억> 이후엔 형사 배역이 계속 들어왔지만 그런 이유로 거절했어요.”

<초록물고기> 데뷔
어떤 역할도 소화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일까. 관객들은 언제나 새로운 송강호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괴물> <우아한 세계> <밀양>은 국내외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연이어 선사했다. 그는 시상식서 “책임감을 느낀다” “갚아야 하는 빚을 지는 느낌이다” 등의 수상 소감을 이야기했다.

2009년 4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에선 흡혈귀가 된 신부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러나 영화 평은 갈리는 편. 또한 장률 감독의 <이리>(2008년 작) 이후 최초로 남자배우 성기 노출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과 하루 꼬박 의견을 나눈 결과 꼭 필요한 장면이기에 응했다고 한다.

2011년 <푸른 소금>이 흥행서 실패하며 2012년 <하울링>도 주춤했다. 언론에선 한석규를 거론하며 송강호 몰락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두 작품의 흥행 실패는 더 큰 성공을 위한 추진력을 얻고자 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2013년 <설국열차>가 934만 관객, <관상>이 913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흥행, 2편으로 한 해에 약 1847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한 대기록을 세운다. 
 

이어 12월18일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다. <변호인>은 ‘부림 사건’의 변호를 통해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배경은 1980년대 초 부산. 

빽 없고, 돈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그는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든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서 제일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대한민국 슬픈 현대사 단골 출연
매번 열연해 국민들 가슴 뜨겁게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앞에 둔 송우석.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우석은 모두가 회피하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다. “제가 할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진우의 변호를 맡고 다섯 번의 공판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이야기를 담았다. 

2013년 12월22일 <변호인>이 관객 175만을 돌파하면서 한 해에 2000만 관객을 돌파한 최초의 배우가  됐다. 송강호는 노 전 대통령을 열연하며, 국민적 호감도가 상승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노 전 대통령의 말투, 화법, 몸동작 등을 놀랍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터뷰에 따르면 감독의 주문도 아니고 본인도 따로 계산한 것이 아닌 ‘송강호표 노무현’을 추구한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다소 정치적인 내용으로 인해 송강호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배우로 이름이 올랐다. JTBC <뉴스룸> 인터뷰서 송강호는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주변서 불이익을 받지 않았나 걱정해주는 분들도 많다”며 “제작자나 투자자분들이 곤란을 겪고 불이익을 어느 정도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송강호는 “가장 무서운 건 그런 소문만으로도 어느 정도 블랙리스트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이라며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작품을 선택할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정부서 싫어할 것 같다’는 거다. 자기 검열하게 되면 위축감이 들 수밖에 없다. 저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이런 우려를 하게 되는 것이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극서 영화로
그동안 고충도

송강호는 정부 입맛에 맞지 않은 영화에 출연한 이유로 한 동안 스크린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한국사의 가장 중요한 배경을 한 영화에 출연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택시운전사>는 그에게 있어 인생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cmp@ilyosisa.co.kr>

 

[송강호 출연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초록 물고기>(이창동) 
▲<넘버3>(송능한)
▲<조용한 가족>(김지운)
▲<쉬리>(강제규)
▲<반칙왕>(김지운)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YMCA야구단>(김현석)
▲<살인의 추억>(봉준호)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남극일기>(임필성)
▲<괴물>(봉준호) 
▲<우아한 세계>(한재림) 
▲<밀양>(이창동)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박쥐>(박찬욱) 
▲<설국열차>(봉준호) 
▲<관상>(한재림)
▲<변호인>(양우석) 
▲<사도>(이준익)
▲<밀정>(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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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