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8.07 17:26:59
  • 호수 1126호
  • 댓글 0개

총성 오가던 광주 한복판에 서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영화 <택시운전사>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주연 배우 송강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총성이 오가던 광주의 한 복판서도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하나 같이 송강호의 인생영화라고 호평했다. 전 정부 영화 <변호인>서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연기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한 동안 스크린서 자취를 감췄다. 그런 그가 <택시운전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 첫 날 69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 2일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개봉 첫 날 무려 69만7858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총 누적관객수는 78만4571명이다. 

개봉 전부터 대규모 전국 시사회를 통해 가슴 아픈 현대사를 소시민적인 밝은 웃음과 가슴을 울리는 감동으로 진정성 있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은 <택시운전사>는 개봉 당일 7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본격적인 1000만행에 시동을 건 모양새다. 

신뢰받는 
최고의 배우

<택시운전사>의 오프닝 스코어는 1761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박스오피스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명량>의 68만2701명을 뛰어넘었다. 또한 지난 2015년 여름에 개봉해 나란히 천만 관객을 모은 <암살>(47만7541명)과 <베테랑>(41만4219명)의 기록도 압도적으로 능가해 앞으로의 흥행 행보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택시운전사>는 송강호를 비롯,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과 장훈 감독 특유의 담백한 연출, 그리고 1980년 5월을 따뜻한 웃음과 감동, 희망으로 그려낸 가슴 울리는 스토리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춘 영화로 관객과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송강호는 자타공인 현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다. 어떻게 꼽아도 현 대한민국 영화계 최고로 통한다. 수년째 관객이 꼽은 ‘최고의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 ‘가장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 등 설문조사에서 최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영화계 최고 네임밸류라는 충무로 대표 트로이카의 1인이자, 이병헌, 황정민 등과 함께 최고 대우를 받는 배우기도 하다. 

송강호를 원탑으로 내세운 영화들 실제 흥행 성적도 압도적이다. 실제 흥행 관객수 1000만을 넘은 작품 두 개를 포함해 500만 관객이 넘은 작품도 11개나 된다. 최근 드디어 총 관객이 1억명을 돌파했다.

<택시운전사> 흥행 돌풍
또 한 번 1000만 신화 전망

송강호는 중학교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 당시에는 전국에 연극영화과가 5개밖에 없었다. 그는 입시에 한 번 실패하고 방송연예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이내 영장이 나와 한 학기 만에 군인 신분이 된다.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친 스물셋 청년은 복학생의 길을 접어두고 연극 무대로 향했다.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사회적 격변기 속에서 부산지역의 극단을 찾아 ‘민족극’에 참여한다.
 

민족극서 연극을 시작한 그는 민족극의 경직된 방식 속에서 염증을 느꼈고 1990년 12월 극단 연우무대의 작품인 <최선생>을 만났다. 전교조 문제를 다뤄 기존의 민족극 소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연극의 ‘방식’에 끌렸다. 


그 방식은 구호와 주장에 호소하는 게 아닌 현실적인 감동으로 다가가는 연극이었다. <연우30년>이라는 책에서 송강호는 “연우무대는 내가 지향하던 점을 정확히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연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집어준 기회이자 새로운 용기와 목표를 가지게 한 계기였다”고 고백했다.

1991년, 송강호는 무작정 상경해 연우소극장으로 향했다. 무려 네 번 상경하며 연락처를 남겼다. 이후 연우무대가 주최하던 행사에 부족한 일손을 도우며 연출가 이상우를 만났다. 

이상우는 “연우무대가 네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우무대는 너의 목적을 위해 몸을 담그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송강호를 단원으로 받아줬다. 그리고 이상우의 첫 영화인 <작은 연못>에 송강호도 참여하게 된다.

당시 송강호는 <동승>의 노인 역을 맡았고 <박첨지>에도 참여했다. 이후 <국물 있사옵니다> <지젤> <비언소> 등 10여편의 연극 무대에 섰다. 그리고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출연 중이던 연극계 선배 김의성의 추천으로 극 중 김의성의 동창 역을 맡았다.

본격적인 영화계 입문은 <초록 물고기>으며, 이창동 감독은 <비언소>를 통해 송강호를 발견했다.

민주화운동 실상
전세계에 알리다

<넘버3>는 대중들에게 송강호를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그리고 <조용한 가족>이 이어지며 그의 이미지는 코미디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 했지만 틀에서 벗어났다. <살인의 추억>에선 형사 역할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다.

송강호는 시나리오를 정독한 후엔 다시 읽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시나리오를 보면 볼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연기자가 발휘할 창의성을 제한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민식은 <조용한 가족> DVD 서플먼트서 송강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감각이 있어도 배우는 일단 몸으로 표현해야 하잖아요. 설득력 있게. 그런데 송강호는 그게 완벽하게 표현이 되죠.”

그래서 그는 극중 특정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그들과 함께 지낸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는 <나쁜 영화>서 행려 역할을 맡았다. 정선우 감독은 행려 역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 행려 생활을 경험하기를 원했지만 송강호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연기든 자기가 편안하고, 자기 안에서 나오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죠. 연극영화과 나오고 공부 많이 하면 모두 훌륭한 감독, 훌륭한 배우가 되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렇진 않죠. 그 논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결국 다 자기가 해결해야 할 몫인 거죠.”

<쉬리>는 한국영화의 새 시대를 열었던 작품이었지만 그에게는 조금 힘들었던 영화였다고 한다. 이때 만난 <반칙왕>은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영화를 시작한 지 3년 남짓된 배우에게 ‘원톱 주연’이라는 타이틀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제작사에선 다른 배우들을 얘기했지만 저에게 <반칙왕>은 오로지 송강호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송강호는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그 어려운 레슬링 테크닉들을 모두 소화해냈고요. 멋진 일이죠. 서른 살이 넘은 배우가, 그런 고도의 기술을 마스터한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었고요.” 

그런 믿음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이어졌고 그들은 또 한 번의 멋진 만남을 이뤘다.
 

<반칙왕> 이후 송강호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공동경비구역 JSA>서 박찬욱 감독과 만난다. ‘코미디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서 관객에게 다가선 것.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작품 이후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더 넓어졌다. 

영화 속 모든 ‘얼굴’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한 것이다. <살인의 추억>은 결정적 계기로 평가된다. 호주의 커뮤니케이션&문화인류학 교수인 브라이언 예시즈는 2004년 쓴 글에서 이렇게 평가한다. 

“적어도 최근 3편의 영화 <반칙왕> <YMCA야구단> <살인의 추억>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송강호를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송강호는 관객인 우리들을 들여다보고 또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송강호는 문자 그대로 현대 한국영화서 특히 두드러지는 페이스 중 하나인 셈이다.”


영화 평론가 김영진도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클로즈업을 “한 시대를 요약하는 표정”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송강호를 “어떤 역을 맡아도 자기화해서 송강호적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그 직업, 계층, 성격의 인물에 맞는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창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미세한 일상적인 결에서 감성을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보편의 존재를 흡수하고 밖으로 튕겨내는 단단한 탄력이 있다는 것.

이러한 송강호의 매력은 이창동,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등의 감독들을 매료시켰다.

한 인터뷰서 송강호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것이 미리 규정된 장르 영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연기뿐 아니라 세상살이 역시 쉽게 규정 지을 수 없는 거잖아요. 배우로서 저는 한 번 연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쪽인 것 같아요. <넘버3> 이후에 조폭 배역이 쏟아져 들어왔고 <살인의 추억> 이후엔 형사 배역이 계속 들어왔지만 그런 이유로 거절했어요.”

<초록물고기> 데뷔
어떤 역할도 소화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일까. 관객들은 언제나 새로운 송강호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괴물> <우아한 세계> <밀양>은 국내외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연이어 선사했다. 그는 시상식서 “책임감을 느낀다” “갚아야 하는 빚을 지는 느낌이다” 등의 수상 소감을 이야기했다.

2009년 4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에선 흡혈귀가 된 신부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러나 영화 평은 갈리는 편. 또한 장률 감독의 <이리>(2008년 작) 이후 최초로 남자배우 성기 노출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과 하루 꼬박 의견을 나눈 결과 꼭 필요한 장면이기에 응했다고 한다.

2011년 <푸른 소금>이 흥행서 실패하며 2012년 <하울링>도 주춤했다. 언론에선 한석규를 거론하며 송강호 몰락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두 작품의 흥행 실패는 더 큰 성공을 위한 추진력을 얻고자 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2013년 <설국열차>가 934만 관객, <관상>이 913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흥행, 2편으로 한 해에 약 1847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한 대기록을 세운다. 
 

이어 12월18일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다. <변호인>은 ‘부림 사건’의 변호를 통해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배경은 1980년대 초 부산. 

빽 없고, 돈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그는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든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서 제일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대한민국 슬픈 현대사 단골 출연
매번 열연해 국민들 가슴 뜨겁게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앞에 둔 송우석.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우석은 모두가 회피하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다. “제가 할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진우의 변호를 맡고 다섯 번의 공판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이야기를 담았다. 

2013년 12월22일 <변호인>이 관객 175만을 돌파하면서 한 해에 2000만 관객을 돌파한 최초의 배우가  됐다. 송강호는 노 전 대통령을 열연하며, 국민적 호감도가 상승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노 전 대통령의 말투, 화법, 몸동작 등을 놀랍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터뷰에 따르면 감독의 주문도 아니고 본인도 따로 계산한 것이 아닌 ‘송강호표 노무현’을 추구한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다소 정치적인 내용으로 인해 송강호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배우로 이름이 올랐다. JTBC <뉴스룸> 인터뷰서 송강호는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주변서 불이익을 받지 않았나 걱정해주는 분들도 많다”며 “제작자나 투자자분들이 곤란을 겪고 불이익을 어느 정도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송강호는 “가장 무서운 건 그런 소문만으로도 어느 정도 블랙리스트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이라며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작품을 선택할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정부서 싫어할 것 같다’는 거다. 자기 검열하게 되면 위축감이 들 수밖에 없다. 저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이런 우려를 하게 되는 것이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극서 영화로
그동안 고충도

송강호는 정부 입맛에 맞지 않은 영화에 출연한 이유로 한 동안 스크린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한국사의 가장 중요한 배경을 한 영화에 출연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택시운전사>는 그에게 있어 인생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cmp@ilyosisa.co.kr>

 

[송강호 출연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초록 물고기>(이창동) 
▲<넘버3>(송능한)
▲<조용한 가족>(김지운)
▲<쉬리>(강제규)
▲<반칙왕>(김지운)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YMCA야구단>(김현석)
▲<살인의 추억>(봉준호)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남극일기>(임필성)
▲<괴물>(봉준호) 
▲<우아한 세계>(한재림) 
▲<밀양>(이창동)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박쥐>(박찬욱) 
▲<설국열차>(봉준호) 
▲<관상>(한재림)
▲<변호인>(양우석) 
▲<사도>(이준익)
▲<밀정>(김지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