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영수회담 제의 노림수 대해부

야당대표 위상 다지고, 대권행보 날개 달까?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청와대에 ‘영수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지지율 정체를 보이는 가운데 히든카드를 꺼내든 손 대표에게서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레임덕 논란 속의 이명박 대통령도 야당 대표의 손길이 반가운 눈치인데…. 두 사람 모두 절절한 심정으로 회담에 임할 것이라는 관측 속에 그들은 과연 무슨 얘기를 나눌까?

손 대표 ‘민생’ 의제로 경색정국 돌파 시도
회동 성사 돼도 위험부담은 천근만근

지난 13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 천둥소리와 같은 국민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면서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 대화를 통해 국민을 위한 결단이 내려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히며 이명박 대통령에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여기에 청와대도 “문이 열려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영수회담 성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면 2008년 9월 이후 무려 2년 9개월 만의 회동이 된다.

손학규의 정면 돌파 시도
레임덕 MB정권은 “땡큐”

이 대통령과 손 대표의 영수회담 논의는 지난 2∼3월쯤 이루어질 듯 보였다. 지난 2월 1일에는 이 대통령이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한 번 만나야 겠다”고 언급했고, 손 대표도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대화를 하려고 하면, 거부할리 없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2월 국회 등원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자 무산됐다.

또 3·1절 기념식장에서 마주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언제 한 번 보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측이 신경전만 벌인 채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손 대표 측에서 회담을 전격 제안하고 나섰으며 청와대도 곧바로 “늘 청와대는 정치권에 대해 열려있다”는 김두우 홍보수석의 화답으로 사실상 수용입장을 밝힌 상태다. 또 시기에 관해서는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전인 이달 안으로 성사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내보여 두 사람의 대좌는 이 달 말쯤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이번 회담을 놓고 정계에서는 손 대표가 자신의 최우선 가치인 ‘민생’을 내세우며 경색 정국을 해소하기 위한 정면돌파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손 대표가 정치현안을 배제하고, ‘민생경제’를 의제로 삼은만큼 회담 주요내용은 반값 등록금과 고물가, 일자리, 전월세, 저축은행 사태 등 민생현안 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는 대학생들의 ‘촛불시위’로 번진 뜨거운 감자 ‘반값 등록금’ 문제를 비롯해,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자 영수회담 제안 결심을 굳히며, 당 안팎의 주요 인사들과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에서는 다가올 영수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회담이 성공적일 경우 그 파급력으로 향후 정국이 급변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여당이 현안문제에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시끌시끌한 상황이라 대통령과 야당대표의 회동에서 민생문제들에 대해 민주당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면 쌓여있는 현안 중 단 한 가지만이라도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면서 “그것을 희망의 불씨로 삼고, 하나씩 차례차례 국정의 난제를 풀어나가며 민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의 영수회담
속내는 따로 있다?

정가에서는 손 대표가 이번 회담 제안에 싣는 의미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 대표로서 산적한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하며, 대통령과 직접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치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향후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일단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유력한 대선주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겠다는 의중도 읽힌다.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으며,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절박한 심정에서 승부수를 띄웠다는 것이다. 읽히고 설킨 현안들을 이번 회담으로 풀어낸다면 손 대표는 차기 야권 대선후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대통령이 지난 3일 대권주자 1순위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단독회동을 가진 것이 손 대표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해 이번 영수회담 제안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단독회동에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대권행보에 힘을 실어줬을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며 야권 대선주자인 손 대표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을 터. 따라서 손 대표는 회담 시 이 대통령에 대선관련 ‘중립’을 요구하거나, 야권 후보로서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손 대표와의 영수회담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한 이 대통령은 한 달 사이에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들을 연달아 만나게 된다. 이는 이 대통령이 임기말 레임덕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를 떠나 차기 대선주자 간 경쟁을 유도하고, 자신은 관리자 역할을 하며 마지막까지 국정장악력을 높이겠다는 포석이 깔려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와의 회동 후 박 전 대표의 보폭이 커진 것과 관련해, 이번 손 대표와의 회담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이 대통령의 차기 대선관리의 시발점이란 분석이다.


성사되더라도 손 대표 부담
의제조율에 난항 겪을 것

그러나 회담이 성사돼도 손 대표의 부담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생’이라는 화두를 놓고 실천방안에 있어서는 정부와 민주당이 확실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어 의견조율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영수회담 한 번으로 큰 현안들이 한 번에 매듭지을 수 있을지 여부도 역시 미지수이다.

가장 큰 난제는 ‘반값 등록금’ 이다. 민주당은 내년부터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대통령은 손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한 지난 13일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대안을 마련하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이미 민주당의 반값 등록금 내년 시행 주장에 미리 선을 그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최대 이슈인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한 합의부터 어긋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다른 현안에 관해서도 두 사람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어두운 전망을 쏟아내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반값 등록금의 재원 마련을 위해 감세정책을 재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정부의 정책기조와 반대라 조율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민주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반값 등록금과 관련해 추가경정예산 5000억원을 편성하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미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MB 차기 대선주자 관리로 국정 장악력 높여
손 대표, 담판 짓고 비상할까? 밥만 먹고 돌아올까?

이밖에 저축은행 사태 역시 이미 전ㆍ현 정권 책임론으로 번지면서 정치쟁점으로 비화됐고, 가계부채 문제도 정부의 경제 정책과 맞물려 있어 쉽사리 해결책을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회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여야 안팎에서 “청와대에서 밥만 먹고 왔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또 성과 없이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할 경우 갈등만 증폭할 수 있다는 위험부담이 도사리고 있다.

이럴 경우 손 대표의 차기 대권주자자리는커녕 당 대표로서의 입지도 위태위태해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견해다.

또한 정세균 대표 시절인 2008년 9월 영수회담 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청와대 논평에 ‘정세균 체제의 정체성 논란’으로 당내 후폭풍이 몰아닥쳤던 지난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회담 결과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어 민주당 측에서는 의제 조율을 위한 사전 물밑작업이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수회담에 민주당은 정장선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TF팀을 꾸려 청와대와 의제 조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서로 절박한 두 사람
손잡을까? 밀쳐낼까?

지난 2007년 3월 손 대표의 한나라당 탈당으로 그들의 인연은 악연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현재 레임덕 맞고 있는 대통령과, 지지율 정체를 보이는 야당 대표로  동병상련의 처지임에 틀림없다. 손 대표의 회담 제의에 대한 청와대 반응이 연초와는 다르게 기다렸다는 듯 적극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저축은행사태 관련 측근인사들의 문제로 대권행보에 초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여기에 손 대표가 현안들을 담판지어,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칠 시 향후 대권구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절박한 상황에서 두 사람의 만남. 잘못된 만남이 되든지 화끈한 만남이 되든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그들의 ‘만남’이 주목받는 이유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