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 포진한 ‘낙하산인사’ <완벽공개>

겉으로는 ‘공정사회’ 벗길수록 ‘비리천국’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출범 초부터 마이크만 잡으면 ‘공정사회’를 외쳐댔다. 그러나 눈만 뜨면 벌어지는 권력형 비리로 청와대와 정치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3일 민주당 정책위는 저축은행사태와 관련, MB정부 금융권 낙하산 인사가 53명이라고 발표했다. 끊이지 않는 권력형 비리는 바로 MB정권의 ‘보은인사’ 때문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믿는 도끼로부터 시작되는 비리의 실체를 따라가 봤다.

보은 인사들의 말썽으로 MB는 몸살
비리는 믿는 도끼와 등잔 밑에서 시작

때만 되면 공직기강을 바로잡겠다고 외쳤던 이명박 대통령. 그러나 비리는 오히려 등잔 밑에서 벌어졌다. 청와대 경호처 간부는 경호장비 업체에서, 군 장성은 방위산업체에서,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식당(속칭 함바집) 운영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 여기에 ‘부산저축은행사태’라는 초대형 폭탄이 터지자 성난 민심은 처음부터 전문가 발탁보다 선거 지지하고 한 자리 꿰차겠다는 일념으로 사리사욕에 급급했던 측근 ‘낙하산인사’에 화살을 돌렸다.

낙하산이 부른 재앙
예고된 권력형 비리세트

부산저축은행의 로비스트들이 퇴출 저지를 위해 감사원, 금융감독원에 로비를 벌인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청와대까지 연루되었다는 설에 청와대와 정치권, 금융계는 아비규환상태다. 캐도 캐도 고구마 줄기처럼 연줄연줄 의혹 관련자들이 계속 나와 수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관련 감사 무마 청탁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다.

은 전 감사위원은 2007년 대선 당시 MB대선캠프에서 ‘BBK 사건’ 대책팀을 맡아 검찰 수사를 적극 방어한 전력이 있다. 집권 후 이 대통령은 그를 감사원 요직에 앉혔다.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이 감사위원으로 가는 것에 대한 극심한 반대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막강한 실세로 통하던 그는 지난해 시민단체가 낸 ‘4대강 시민감사 청구사건’의 주심을 맡았다. 하지만 4대강 감사를 무력화시키며  MB정권의 ‘충복’ 역할을 성실하게 이행했다.

이에 현 정부의 낙하산인사에 대한 문제점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굵직한 권력형 비리들이 터지는 원인을 MB정부가 전문성과 거리가 먼 보은차원으로 심은 인사들 때문으로 보고 있다.

비외교 전문가 발탁
‘상하이 스캔들’ 비극

올해 초에는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을 둘러싼 상하이 영사들의 치정관계 및 비자비리, 국가기밀 유출 정황 등이 드러나면서 국가적으로 망신을 자초했다. 희대의 스캔들로 국제적 망신살이 뻗치자 국무총리실 산하 합동조사단이 나서 조사에 착수하면서 전원징계를 다짐했다. 합동조사단은 지난 3월 이른바 ‘상하이 스캔들’ 사건에 대해 현지조사 결과, 스파이사건이 아닌 단순 치정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상하이 스캔들 파문으로 비외교관 출신의 공관장 보은인사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중국 상하이 총영사는 김정기씨였다. 김 전 총영사 역시 2007년 MB대선캠프에 참여해 집권 후 상하이 총영사에 임명됐던 것.

상하이 스캔들로 김 전 총영사는 지난 4월 19일 중징계인 해임 처분을 받았다. 공무원에 대한 징계 중 해임은 파면 다음으로 수위가 높은 중징계로, 3년간 재임용이 불가능하며 연금 및 퇴직금에 불이익을 받는다.

그러나 지난 2월 24일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김 전 총영사는 특임공관장 면직 60일 후인 4월 24일 자동으로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 해임 조치의 실효성은 거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3일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덩신밍 사건’에 연루된 외교관 11명 가운데 고작 2명에게만 징계를 내렸고, 9명은 법률상 징계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 ‘불문’조치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미미한 경고 수준의 솜방망이 처벌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심지어 한 누리꾼은 “한 중국여자에 놀아나는 국가적 망신에도 ‘가카의 보은’으로 제대로 처벌 되겠냐”며 낙하산 인사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 밖에도 보은 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김재수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 이하룡 시애틀 총영사 등 MB대선캠프 인사들이 손꼽힌다. 김 총영사는 BBK사건 대책단의 해외팀장을, 이 총영사는 대통령 예비후보 정책특별보좌관과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바 있다.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과 인연을 앞세운 낙하산 인사들을 외교부에서 어떻게 제대로 관리감독 하겠느냐”며 “이번 상하이 스캔들 역시 이런저런 소문이 지난해 초부터 나왔지만, 외교부는 별다른 감사조차 하지 못한 채 결국 뒤늦게 일부 직원 소환으로 마무리하려 했다”고 보은인사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다시 불붙는 함바집 비리
낙하산인사의 불명예 퇴진

이 대통령 측근 실세로 알려진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은 이른바 함바집 운영과 관련, 브로커로부터 수천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혐의로 불명예 퇴진을 당했다. 장 전 청장은 이 대통령의 선거운동 시절부터 ‘MB노믹스’를 제창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2008년 조달청장을 맡은 지 1년 만인 이듬해 1월 국방부 차관에 취임했고, 지난해 8월 방사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6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을 당한 것. 이 대통령 측근으로 실세 중의 실세였던 장 전 청장은 국방차관 시절 장관을 거치치 않고 청와대에 직접 예산 개혁을 보고·추진하며 하극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함바집 운영권과 관련해 금품 로비를 벌인 브로커 유상봉(65)씨의 입을 통해 이번 비리에 연루된 걸로 지목된 인사만도 30여명이 넘었다. 또 현 정권의 실세까지 거론되면서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 조짐마저 보였지만, 최영 강원랜드 사장과 경찰 수뇌부들의 구속으로 일단락됐다. 최 사장 역시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시울시청 산업국 국장, 경영기획실 실장 등을 지낸 측근인사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유씨가 다시 입을 열면서 검찰의 함바집 비리 수사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여환섭)는 임상규(62) 순천대 총장(전 농림부 장관)을 출국금지했으나,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임 총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유씨가 서울은 물론 지방 곳곳에서 함바집 사업권에 손을 댄 점을 감안할 때 그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보여 또 어떤 거물급 인사들이 걸려들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전문·도덕적 흠결에도 심고 또 심기
언제 또 특대형 비리폭탄 터질지 몰라

이 대통령은 첫 내각 인선에서부터 도덕적 결함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권 창출에 도움 준 사람들을 발탁해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이번 5·6 개각에도 장관 내정자 5명이 비전문가인 데다 도덕적 흠결이 속속 제기됐지만 모두 장관으로 채택됐다. 이번에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인맥이었다는 점에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KT나 포스코 등의 대기업에도 창업공신들을 줄줄이 앉혀 놨다. 2009년에는 경제자문위원이던 이석채씨가 KT 회장자리에 올랐고, 2010년에는 청와대 대변인을 거친 김은혜씨가 KT 전무자리를 꿰찼다. MB선거대책위원을 역임한 허준영씨도 2009년 철도공사 사장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대통령의 당선에 큰 기여를 한 ‘선진국민연대’에서는 3명의 장관을 배출한 전력이 있고, 20명의 인사가 공공기관의 이사나 감사로 발령났다.

한 방송사에서는 참여정부 5년 동안 측근인사가 총 185명 등용되었던 것에 비해 MB정부 3년 동안 측근인사가 306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곳곳에 심겨진 보은인사들의 비리시한폭탄이 또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도덕적 흠결쯤은 눈감아?
공정사회는 공허한 외침

야권의 한 관계자는 “물가와 전세 대란, 비싼 등록금 등으로 서민들은 허리가 휘다 못해 구부러진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몇몇 고위층은 권력을 이용해 한푼 두푼 아껴온 서민들의 돈으로 비리를 저지르며 사리사욕을 채워가고 있다”고 꼬집으며 “MB의 최측근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부도덕성이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측근들의 잇따른 비리에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입장을 내비치며, 이를 계기로 친인척·측근 관리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실효성은 여전히 공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딴판으로 흘러가며 비판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성난 민심이 등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도로 비리공화국’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떤 특단의 조치를 내릴 지에 관심이 쏠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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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