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무는’ 무서운 개 이야기

숨이 끊길 때까지 물고 놓지 않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집에서 기르는 맹견이 사람을 무는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맹견에 의한 사고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일부 맹견은 맹수와 싸워서 이길 정도로 공격성이 강해 일부 국가에선 아예 사육을 금지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관련 규정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창동의 한 주택가서 이모(31)씨가 기르는 ‘도고아르젠티노’와 ‘프레사카나리오’ 품종 맹견 2마리가 집 밖으로 뛰쳐나와 주민 3명을 쫓다 이 중 2명을 물어 상처를 입혔다. 경찰은 관리를 소홀히 해 본인 소유 개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혐의(과실치상)로 견주 이씨를 입건했다.

목줄 없이…
해마다 사고↑

맹견에 의한 사고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지만 해마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피해 연령대도 다양하고, 행인뿐만 아니라 주인까지 공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5년에는 유난히 맹견 사고가 많았다. 그 해 7월21일 경북 경주시 건천읍 서면 한 농장서 농장직원 백모(35)씨의 3세 아들이 농장을 지키던 도사견에 물려 숨졌고 11월11일에는 경기 의왕시 내선동 비닐하우스서 초등학생 권모군이 자신이 키우던 도사견에 물려 사망했다. 

12월4일에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 박모(45)씨 집에서 박씨의 아들이 기르던 시베리안 허스키에게 목이 물려 숨졌다. 


2007년 2월8일 충남 천안에선 자전거를 타러 나간 백모(7)군이 집 앞 논두렁서 이웃집 알라스카 말라뮤트에게 물려 숨진 채 발견됐고 같은 달 25일 경기 하남시 덕풍리에선 송모(75)씨가 이웃집을 방문했다가 로트와일러에게 물려 사망했다.  

한밤 중 맹견이 주민 습격…3명 중경상
돌연 공격에 의한 사고 해마다 수백건

2009년 10월2일 경기 여주군 능서면에선 맹견을 산책시키던 50대 남성이 개에게 물려 쓰러져 있는 것을 마을주민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2015년 2월28일에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 한 단독주택 마당서 80대 할머니가 핏불테리어에게 밥을 주러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고, 같은 해 6월22일 충북 청주시 문동리 한 주택 마당에선 15개월 된 아이가 집에서 키우던 핏불테리어에 가슴과 옆구리를 물려 사망했다.

맹견들의 공격은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에게도 이어졌다. 2010년 1월2일 경북 안동시 정하동 한 주택 축사에 맹견 3마리가 침입해 염소 10여마리와 닭, 오리 등 가축 20여마리를 물어 죽였다.  
 

2014년 3월11일에는 충북 영동군 매곡면에 있는 민간 고양이 보호시설에 핏불테리어 2마리가 침입, 고양이들을 공격해 9마리가 죽기도 했다. 

‘더 큰 일이…’
불안감 토로


이처럼 맹견의 공격에 의한 사고는 해마다 수백건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반려견 물림 사고’는 2011년 245건서 2012년 560건, 2013년 616건, 2014년 676건으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5년엔 1488건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이 같은 맹견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자 누리꾼들은 불안감을 토로하며 맹견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견주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누리꾼들은 “이건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주인 잘못임 더군다나 맹견을 저렇게 제대로 관리 못한 죄는 살인미수죄나 다름없다고 본다”(beck****), “피해자가 어른인데도 저 정도인데 유아나 어린이, 노인을 물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예방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마련이 필요합니다”(fflo****), “소형견이라도 길에서 개는 꼭 목줄을 해야함. 모두가 개를 좋아하는 건 아님”(wogu****)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에 대해 “언제든 일어날 법했다”고 입을 모은다. 소위 맹견으로 분류되는 견종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개 성향에 맞는 사육 및 관리를 하지 않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애완동물학부 교수에 따르면 맹견이나 대형견 등 사람에게 큰 부상을 입힐 수 있는 반려견은 필수적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교수는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려면 모든 반려견이 교육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특히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맹견이나 대형견은 교육과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화와 본능조절 교육이 필요한 건 물론이고 견종에 따라 사육환경을 갖추고 산책 및 운동 시간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상당수 맹견·대형견 견주들이 호기심과 과시욕으로 특이견종을 키우다 사고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위험천만’
이대로 괜찮나

동물권단체 케어는 실제로 맹견·대형견을 키우던 견주가 개에게 공격을 받은 뒤 동물보호단체에 개를 양도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밝혔다. 한 번 사람을 공격하는 사고를 일으킨 개는 재발 위험이 있기에 대부분 안락사된다. 개가 자기 힘으로 사람을 제압했다는 인식을 가지면 교육을 통해서도 사고를 방지하기 힘들다.
 

케어 관계자는 “키울 여력도, 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맹견·대형견을 분양받은 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다 공격을 당하는 바람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몸이나 얼굴을 물리는 일은 다반사고 최근엔 귀가 뜯겨 나갈 정도로 심하게 공격을 당해 우리에게 개를 보낸 견주도 있었다”고 말했다. 

맹견 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자 맹견 관리 기준과 사육 제한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국, 캐나다 등 해외에 있는 맹견사고 방지를 위한 법적 기준이 한국엔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크고 작은 맹견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일부 나라처럼 맹견에 대한 관리 및 사육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영국은 26년 전에 이미 맹견 사육 제한과 관리 지침 등의 법률을 제정해 공격적이고 통제가 불가능한 맹견 사육을 관리해왔다”면서 “이와 달리 한국은 맹견으로 분류한 일부 견종과 외출 시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정도만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우 1991년 ‘위험한 개 법(Dangerous Dogs Act)’을 제정해 핏불테리어, 필라브라질러, 도사, 도고아르젠티노 등의 맹견을 ‘특별 통제견’으로 분류했다. 

해외선 못 키우는데
한국선 반려견 취급

영국서 '특별 통제견’을 키우려면 법원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후에도 사육자는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다. 또한 보험 가입, 중성화 수술, 마이크로칩 삽입, 입마개 등을 해야 하고 번식 및 판매, 교환도 할 수 없다. 

뉴질랜드는 지난 2월부터 ‘맹견 관리 자격증’ 제도를 도입했다. 위험한 개를 다룰 수 있는지, 적절한 사육 환경을 갖췄는지 등을 검토해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만 맹견을 키울 수 있는 자격증을 발급한다. 법적 책임이 부여된다는 내용의 교육도 받아야 한다. 또한 키우려는 맹견의 기질도 검사해야 한다. 

해외에선 이처럼 맹견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한국엔 맹견 관리 지침이나 사육제한 조치가 없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12조2항서 맹견으로 분류한 ▲도사견과 그 잡종의 개 ▲아메리칸 핏불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아메리칸스태퍼드셔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스태퍼드셔불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로트와일러와 그 잡종의 개 ▲그밖에 사람을 공격해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은 개와 외출 시엔 반드시 입마개를 씌워야 한다고 규정한 게 맹견과 관련한 규정의 전부다. 

이 같은 규정을 어기면 개 주인에게 5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관리 부실이 원인
제도적 장치 필요

한 동물보호시민단체 관계자는 “맹견도 적절한 사육환경서 올바른 사육방식으로 관리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체계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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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