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 후폭풍, 정관계 로비 막전막후

캘수록 ‘고구마 줄기’ 권력형 게이트 터진다

저축은행 사태로 정치권과 금융계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민주당은 이번 저축은행 사태를 ‘권력형 측근비리 게이트’로 규정하며 각종 의혹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며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도 전 정권의 책임론을 집중 부각시키며 반격을 가하고 있다. 국정조사로는 약하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양파 껍질 벗기듯 드러나는 각종 의혹들로 청와대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거물급 로비스트 움직임 속속 드러나
대부분 혐의 부인…검찰 정황 포착 주력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수사하며 금융위원회를 뒤집어 놓은 검찰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에 정관계는 물론 금융계 전반이 긴장하고 있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청탁을 받고 지난해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에게 금감원 검사 강도를 낮춰 달라고 청탁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저축은행발 파장은 정·관계 인사가 연루된 ‘게이트급’으로 도약했다.

특히 부산저축은행의 로비스트들이 학연 등을 매개로 저축은행의 퇴출 저지를 위해 금감원, 청와대 등에 줄을 댄 의혹이 짙은 데다 정치권 유력 인사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제 2·3의 인물도 거론되고 있어 검찰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파 껍질 벗기듯
드러나는 각종 의혹

지난달 31일 은 전 감사위원은 지난해 2~10월 부산저축은행의 ‘금융브로커’ 윤여성(56·구속)씨에게 세 차례에 걸쳐 1억7000만원을 받아 검찰에 구속됐다. 당시 감사원의 지휘 아래 금감원이 강도 높게 진행하던 저축은행에 대한 검사 수준이 완화되도록 금융감독원에 청탁을 해주는 대가였다.

은진수 전 감사위원뿐 아니아 배국환·하복동 감사위원도 피감기관 관계자와 ‘부적절한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감사원의 부산저축은행 감사의 주심위원이었던 하 위원이 지난해 9월 윤씨를 만나 “저축은행을 잘 봐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으로 지난 2일 드러났다.

김양(58·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윤씨는 저축은행 의사결정 과정 전면에 나서지 않고, 주로 막후에서 움직였다. 윤씨는 부산저축은행이 지난해 부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퇴출 저지를 위해 청와대 고위인사와 친분이 있는 박모 변호사를 찾아가 해결방안 등을 논의했다.

검찰은 박모 변호사가 지난해 연말쯤 청와대 핵심인사인 A수석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부산저축은행과 관련된 민원을 제기하려 한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A수석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지난해 7월부터 6개월간 부산저축은행을 자문했다. 검찰 간부 출신인 박 변호사는 고문으로 활동하며 관련기관에 탄원서를 내고, 대전저축은행 매각 관련 자문 등의 업무를 봤다. 박 변호사는 감사원, 금융감독원에 탄원서를 보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청와대 관련 부분은 부인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박 변호사와 A수석은 연수원 동기라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하는 사이고 박 변호사가 저축은행 이야기를 꺼내기에 30초도 안 돼 일언지하에 끊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퇴출 위기에 몰린 부산저축은행이 구명 로비를 위해 전방위로 뛰었을 가능성이 높아 로비 대상이 A수석에 그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9년 골프장 인허가 비리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도 저축은행 사태 파문에 휩쓸렸다. 지난 3일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이 공 의원과 옛 통합민주당 전직 의원 L씨 등 두 전현직 의원에게 각각 억대 거액의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공 의원은 “전혀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신 회장은 공 의원에게 2005년부터 최근까지 매달 500만원씩, 억대의 금품을 건넸다고 밝혔다.

공 의원은 “신 회장이 그런 말을 검찰에서 했는지부터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 보도 등) 중재 신청도 고려하고 있다”고 자신의 무관함을 강조했다.

신 회장이 매달 300만원을 건넸다고 말한 옛 통합민주당 소속 L 전 의원도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만난 적도, 돈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한편 여당으로부터 보해저축은행 BIS 조작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불법 후원금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박 전 대표는 “보해는 지역구에 있는 기업이고, 경상도에 있는 기업들도 정식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후원하고 있다”며 “후원금을 받는 것은 법적으로도 장려되고 있는 것으로 불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거물 로비스트

한편 검찰은 윤씨 이외에도 여러 명이 정·관계 인사들을 접촉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은 윤씨와 함께 정관계 로비의 핵심 축으로 거론되는 로비스트 박태규(72)씨다. 명문대 교수 출신인 박씨는 정관계 인사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부산저축은행의 퇴출 저지 로비에 관여했지만 수사가 시작되자 캐나다로 도피했다.
박씨는 소망교회 인맥을 통해 이 대통령과 교회 소그룹 활동을 함께 하기도 했으며 정치권 안팎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거물 로비스트로 꼽혀 왔다.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은 검찰조사에서 박씨의 존재를 털어놨고, 은행이 진행한 각종 부동산 사업에서 인·허가 취득 등에 도움을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특히 지난해 6월 경영난 타개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던 김양 부회장을 위해 정·관계 로비를 거쳐 1500억원의 유상증자를 성공시켰다.

또한 검찰은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이 KTB자산운용을 통해 각각 500억원을 투자하는 과정에 박씨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도피 중인 박씨를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수배 요청했다.

하지만 박씨는 자신에 대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인 박형선(59·구속) 해동건설 회장은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개입했다. 부산저축은행의 특수목적법인(SPC) 사업과 관련, 토지소유권 분쟁이 생겨 지난 2008년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김양 부회장의 부탁으로 서광주세무서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시도했다. 하지만 박 회장 역시 로비 개입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검찰은 지난 1일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54)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후 지난 2일 김 원장을 소환조사하고 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로비스트에 힘 얻어
청탁과 비리 일삼아

김 원장은 지난해 한나라당 수석 전문위원으로 있을 당시 부산저축은행이 퇴출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대주주, 경영진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여당에도 몸을 담았던 만큼 집중적인 로비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 보인다. 또 다른 혐의는 지난 2008년 부산저축은행이 대전저축은행과 전주저축은행을 잇따라 인수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다.

한편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의혹도 일파만파 커지며 계속 제기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의 불법 대출을 묵인해줬다가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금감원 직원들의 징계를 무마하기 위해 지난해 감사원을 직접 찾아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감사원의 요청에 따라 예금보험공사와 공동으로 착수했던 부산저축은행 검사를 이틀 만에 중단시킨 배경에 부산저축은행의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이 커지자 금융감독원 측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수행되지 않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에 다시 착수되면서 부산저축은행 검사에 대비할 시간을 줬다는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김 전 원장이 금감원장 취임 직전까지 임원으로 재직했던 아시아신탁이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금감원으로부터 사전에 귀띔을 받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지난 2일 복수의 사정당국 관계자는 김 전 원장이 2008년 3월 금융감독원장에 취임하기 직전 서울대 동문인 사업가 박모씨에게 부인 명의의 주식을 매각이 아닌 명의신탁 형태로 넘긴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은 2007년 아시아신탁 설립 과정에 참여해 등기이사로 등재돼 이사회의장을 맡는 등 경영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특히 금감원장 임기 중 부산저축은행 그룹 계열사에 대한 금감원과 예금보험공사 공동검사 때 검사 중단을 지시했다는 의혹도 아시아신탁 주식의 위장 보유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선태 법제처장도 부산저축은행그룹 로비스트 윤여성씨에게서 금품을 받았다는 진술도 확보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윤씨가 지난 2007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로 재직하던 정 법제처장에게 사건 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일단 이번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윤씨가 건넸다는 돈의 대가성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광주일고 출신들의
릴레이 비리게이트

우연의 일치인지 부산저축은행 로비에 연루된 사람들 상당수가 광주일고 출신이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출발점이 된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이 광주일고 출신이며 김양 부회장과 김민영 대표, 문평기 감사, 오지열 은행장 등 은행 경영진 대부분이 광주일고 선후배로 엮여 있다.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 원장과 부산저축은행 퇴출저지 등 구명 로비를 한 의혹을 받아 이미 구속된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 부산저축은행의 유상증자에서 1000억 원에 이르는 금액으로 참여한 과정에 의혹을 받고 있는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 역시 광주일고 출신이다.

이 밖에 이번 사건과 관련돼 거론되는 사람들 상당수가 광주일고 인맥과 닿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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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