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 몰린 국민의당 딜레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6.12 11:19:22
  • 호수 1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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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했는데 ‘민주당 2중대’ 취급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국민의당이 협치 딜레마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사이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자처했지만 결국 민주당 2중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문회를 비롯한 각종 현안에 정부·여당과 각 세우기를 최소화해 ‘강한야당’ ‘선명야당’서 멀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요시사>는 거대 양당 사이서 수세에 몰린 국민의당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국민의당의 시련은 국무총리 임명부터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호남 출신의 이낙연 전 전남도지사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정치권에선 국민의당과 호남민심을 고려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당초 수월하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 총리는 청문회서 ‘아들병역’ ‘위장 전입’ 등 의혹이 나오면서 자질 논란으로 번졌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한국당은 강수를 두며 이 총리 인준표결에 불참했다. 이 총리는 한국당이 빠진 상황서 188표 중 찬성 164표를 받아 국회 인준을 통과했다. 이 총리 임명을 두고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이 후보자가 위장 전입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도 “국민의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총리 인준안 처리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의 이 총리 지명은 국민의당이 받을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는 분석이다.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국민의당이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이 총리를 반대할 경우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집권 초기에 정부·여당과 ‘협치’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대선 패배로 뒤숭숭한 당내 분위기와 호남민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필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총리의 경우 대승적 차원에서 임명에 동의했지만 후속 인사를 두고는 국민의당 내부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특히 국민의당은 각종 의혹에 휩싸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입장을 보였지만, 박지원 전 대표 등이 찬성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밝히면서 스텝이 꼬이고 있다.    

국민의당의 갈팡질팡 행보에 한국당은 더 이상 참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 7일 이 국무총리 인준안 처리 등을 거론하면서 “국민의당의 오락가락 입장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다른 공직 후보자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야당의 입장 같더니 이후 입장을 바꾸는 걸로 봤을 때 잘못하면 여당의 2중대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국민의당의 김상조 후보자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연장 관련해서는 “결국 채택 찬성으로 가기 위한 절차”라며 비판했다. 

정 권한대행의 작심 비판을 두고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거대 양당체제 시절 여당으로서의 꿈을 아직도 깨지 못하고 그 시절 저지른 행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당은 당당하고 떳떳한 야당, 정부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준 여당으로서 역할을 하는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을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는 국민의당은 지난 8일에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날 국민의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는 “강 후보자의 위장 전입, 세금탈루, 거짓해명 등 도덕적 흠결이 해소되지 않았고, 동시에 그 도덕적 흠결을 만회할만한 업무능력이 발견되지 못했다”며 부적격 보고서 채택 이유를 밝혔다.


이에 민주당 제윤경 대변인은 “무리한 몽리”라며 “협치의 정신을 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민의당의 강 후보자 임명 부동의에 대해 전략적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대선 이후부터 청문회 과정까지 계속해서 민주당에 끌려다니는 모양새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지율 곤두박질
일단 홀로서기

국민의당의 오락가락 행보의 원인으로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지지율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5일 공개한 정당지지도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8%에 머물렀다. 2위인 자유한국당(13%)보다 5%가량 낮은 수치다. 1위인 민주당(55.6%)과 비교해선 40% 넘게 차이가 난다.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텃밭인 호남서 더욱 심각하다. 국민의당은 10%대 지지율에 그친 반면, 민주당은 60%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호남지지율은 국민의당 존립과 직결되는 문제다. 

현재와 같은 지지율이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차기 총선서 국민의당은 민주당에 호남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정운영의 동력이 되는 지지율이 낮은 상황서 국민의당이 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정부 및 여당과 협조를 하면서 반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현 상황에 대해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국가 이익과 정치발전 그리고 호남을 위해 국민의당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며 “문재인정부가 호남 인사들을 중용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당을 의식한 측면이 다분하다”고 해석했다. 

이어 문재인정부에 대해서는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정책과 조처들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며 “대선 과정서 공약했던 것을 지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장서서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 국민의당의 존재 의의는 충분히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 인준은 OK
외교부 장관은 NO

정 의원은 현재 국민의당의 행보가 자칫 거대 여야의 틈바구니 속에서 양쪽 모두에게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양당을 견제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잘 해낸다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국민의당 내부서도 호남 지지율 회복을 위해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호남 중진의원과 초선 및 비호남 출신 의원들 간 입장 차가 존재한다.

호남 중진의원을 대표하는 박지원 전 대표는 “국민의당은 여도 야도 아닌 중성당”이라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 말고 더 감내해야 한다”고 말해 국민의당이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초선 및 비호남출신 의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민주당과 각을 세워 ‘강한야당’ ‘선명야당’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국민의당이 민주당과 호흡을 맞춘다고 하더라도 호남 민심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광주 지역의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 총선을 거쳐 대선까지 오는 과정서 호남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양당 구도에 ‘표를 주는 재미’를 느낀 것 같다”며 “여기에 문재인정부가 초반부터 호남을 배려하는 정책을 가동하면서 당분간은 국민의당에 여론이 호의를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부 사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되 호남 배려 정책에 대해서는 협조하는 것이 그나마 민심 이반 방지책이 될 것”이라며 “당분간은 정부·여당과의 ‘절묘한 줄타기’가 국민의당의 최선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당설 ‘솔솔’
용비어천가 그만

여권에선 호남서 맥을 못 추는 국민의당이 민주당과 합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지난 8일 사견을 전제로 “국민의당과 합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의당은 야당이기 때문에, 야당의 역할을 하려고 하겠지만 지지기반인 호남 분들 다수가 이런 상황서 '민주당과 협조하라' 이것이 지지자들의 명령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지원 전 대표 등 국민의당의 많은 분들이 이 상황에선 민주당에 협조를 해야 한다는 게 주류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계신다면 당장 합당하라고 하셨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당 내부에선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박지원 전 대표는 연일 정부에 협조를 강조하는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민주당과의 연대 혹은 합당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의 행보에 이언주 수석부대표는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나를 좀 봐달라’고 하는데 (민주당서) 오라고 하지 않으니 당을 팔아서라도 가려는 것이냐”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한 자릿수 지지율…합당이냐 홀로서기냐
‘선명야당’ 고민 중…호남 vs 비호남 갈등↑ 

일단 외견상 국민의당은 홀로서기에 나선 모습이다. 

지난달 26일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은 “합당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각서 제기된 합당설에 선을 그었다. 그는 “합당 운운은 정치공작으로 권력의 남용이고 협치라는 시대정신에 대한 배반이므로 단호히 맞설 것”이라며 “구태정치 표상인 거대 양당제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합당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합당을 하게 되면 총선 혹은 지방선거서 기존 국민의당 의원과 민주당 원외 인사 간 당내 경쟁이 불가피하다. 또 당 하부조직간 마찰도 배제키 어렵다.
 

국민의당 창당 배경을 보면 민주당 친문계에 대한 반발이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에 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이 융화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두 당이 합쳐질 경우 지도부 구성에 난맥상은 불보듯 뻔하다.

합당의 장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의 지지율과 여당의 지위를 얻게 된다. 민주당은 과반수 의식을 차지한 여당이 되고 문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동력을 얻을 전망이다. 

일각에선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 합당을 통해 세를 불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위해서라도 두 당의 합당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두 당이 합쳐진다면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을 합쳐 제3정당이 탄생한다.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호남에서 격돌하고,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과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호남 기반의 국민의당과 영남·수도권 중심의 바른정당이 합친다면 지역주의를 극복한다는 명분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5당 구도서 
3당 구도로?

두 당의 합당에 대해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역 간 통합 및 협치의 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국회에서의 5당 구도는 복잡한 형태의 다당 구조이기 때문에 3∼4개 정당의 다당 구조가 국회의 비효율적 운영 가능성도 제거해준다”고 말했다.

현재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자강론에 방점을 찍은 모양새다. 다만, 내년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나서야 두 당의 연대 및 합당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야인’ 안철수는 지금…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달 31일 제주도 방문을 끝으로 보름간 이어온 낙선 이후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는 5·9대선에서 패배한 뒤 전국을 돌면서 국민들을 만나거나 시도당을 방문했다. 5·18민주화 운동 기념식 참석 직후 광주에서 시작된 민생 투어는 경남·충청·강원으로 이어졌고 제주에서 종료됐다. 

대선에서 패한 직후 정계에서는 정계은퇴나 해외체류 등 당분간 휴식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민심투어를 선택했다. 앞서 안 전 대표는 대선 직후 차기 대선 재도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달 14일 그는 본인 지지자 그룹에 “5년 뒤 제대로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결선투표제하에서도 승리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향후 안 전 대표의 행보로는 크게 당권도전 혹은 내년 지방선거 출마설이 지배적이다. 안철수계에서는 안 전 대표가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위기의 당을 바로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동교동계는 안 전 대표가 백의종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장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당에 안 전 대표를 제외하고 마땅한 후보군이 없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안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대해 “전대 출마설이나 서울시장 출마설들이 나오지만 안 전 대표가 그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은 언론에 부각되지 않으면서도 최근 민심투어처럼 시도당을 격려하고 챙기는 일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사 속 기사> 누가 국민의당 이끄나?

국민의당은 대선 이후 박지원 전 대표가 물러나고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오는 8월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민의당에는 마땅한 당권 후보들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이는 국민의당에서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던 안철수 전 대표의 부재와 동시에 중량감 있는 차기 리더가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1월 전당대회서도 국민의당은 인력난을 겪은 바 있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등 5명을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5명의 후보만 도전해 가까스로 정원 미달 사태를 막았다. 당 일각에선 안철수계로 불리는 문병호 전 의원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 있는 천정배 의원, 정동영 의원 등이 당의 구원투수로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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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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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