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림 숲길 체험 ②양양 미천골자연휴양림

첩첩 산골 은둔의 유토피아를 찾아서

6월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숲으로 들자. 청정한 계곡이 펼쳐진 강원도 첩첩 산골은 어떨까. 백두대간 구룡령 아래 자리한 미천골자연휴양림은 은둔하기 좋은 곳이다. 울창한 숲길을 지나 신비로운 불바라기약수터서 목을 축이고,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에 발 담그고 세상을 잠시 잊어보자. 
 

미천골자연휴양림은 가는 길 자체가 여행이다. 수도권서 멀고 먼 첩첩 산골에 자리한 까닭이다.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서 조침령터널을 통과하기보다 홍천군 내면서 구룡령을 넘는 방법을 추천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구룡령 꼭대기에 오르면 차를 세우고 둘러보자. 양양 이정표가 반기는 곳에 서면, 양양 쪽으로 거대한 산맥이 물결친다. 백두대간이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며 흘러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첩첩 산줄기 중에 가장 높은 곳이 설악산 대청봉이다. 
 

신비의 계곡

구룡령서 내려와 미천골자연휴양림 안내판을 보고 우회전하면 비로소 미천골이 시작된다. 반질반질한 암반이 펼쳐진 수려한 계곡 덕분에 왠지 신비의 땅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미천골은 백두대간 약수산(1306m)과 응복산(1360m) 사이서 발원해 남대천으로 흘러가는 후천의 최상류다. 계곡물은 가물어도 마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그냥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하다.
 


미천골자연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1km쯤 오르면 양양 선림원지가 반긴다. 절터로 가는 돌계단을 오르면 예상외로 너른 터가 펼쳐진다. 절터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승탑, 홍각선사탑비 등이 덩그러니 남아 빛난다. 1000년도 훨씬 전에 새겨진 탑과 승탑의 조각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통일신라 시대인 804년 순응법사가 창건한 선림원은 홍각선사가 중창하면서 선종의 대표적인 절집으로 자리 잡았다. 10세기를 전후한 어느 해 산사태에 휩쓸리면서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추측한다. 전성기에는 공양을 짓기 위해 씻은 쌀뜨물이 계곡에 하얗게 흐를 정도로 수도승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계곡 이름이 ‘미천(米川)골’이다. 
 

숲속의집 제2지구, 야영장 등 미천골자연휴양림 시설물을 지나 계곡을 5km쯤 거슬러 오르면 숲속의집 제3지구에 닿는다. 여기가 불바라기약수터로 오르는 출발점이다. 입구에는 차량 차단기가 내려졌고, ‘불바라기약수 5.7km’ 이정표가 보인다. 경사가 완만한 임도라 3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뜨거운 탄산 약수 한 모금에 가슴이 뻥
수륙양용자동차 체험 천혜의 대자연 만끽

산양 지킴이 구조대 초소를 지나면 미천골 정자가 보인다. 정자 앞으로 높이 약 70m 상직폭포가 콸콸 쏟아진다. 폭포를 지나면 그야말로 무주공산이다. 길은 응복산의 품을 부드럽게 파고든다. 계곡물 소리, 새소리, 바람이 울창한 나무를 할퀴는 소리를 친구 삼아 걷고 또 걷는다. 
 

어느덧 불바라기약수 삼거리. 여기서 임도를 벗어나 계곡 옆 오솔길로 접어든다. 징검다리를 서너 번 건너면 좁은 계곡에 갑자기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면이 청룡폭포이고, 오른쪽에 황룡폭포가 있다. 

불바라기약수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청룡폭포 상단 바위서 흘러나온다. 거기에 긴 호수가 연결되어 폭포 중간쯤 암반으로 약수가 떨어진다. 약수를 만나는 암반은 철분 때문에 온통 붉은색을 띤다. 
 


불바라기라는 이름은 ‘불 바닥’서 나왔다. 철이 많은 미천골 곳곳에 대장간이 들어서 온통 불 바닥이었다고 한다. 물맛이 강해 목젖이 불을 삼킨 듯 뜨겁게 느껴질 정도여서 불바라기라고 불렸다는 말도 있다. 

한 모금 들이켜니, 불처럼 뜨거우면서도 탄산이 든 약수가 시원하다. 잠시 후 내 안에 막힌 뭔가가 뚫린 느낌이 든다. 내려오는 길에는 탁족을 즐기자. 차가운 계곡물에 발 담그고 하늘을 쳐다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미천골자연휴양림서 하룻밤 은둔을 즐겼으면 다음 날은 양양 바다를 향해 길을 나서자. 가는 길은 물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후천은 미천골과 몸을 섞은 뒤 남대천으로 변하고, 결국 바다를 만난다. 미천골서 후천을 따르면 해담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으로 깨끗한 후천이 흐르고, 사방을 수려한 봉우리들이 감싼다. 
 

해담마을은 전국에서 잘나가는 체험 마을 중 하나다. 주민들은 알려지지 않은 오지를 색다른 자연 체험 공간으로 만들었다. 계곡은 수륙양용자동차를 타는 기막힌 코스가 됐고, 나무가 빽빽한 숲은 삼림욕장, 널찍한 계곡 옆 공간에는 통나무집과 야영장이 들어섰다. 

해담마을서 가장 인기 있는 레포츠는 단연 수륙양용자동차 타기다. 천혜의 숲과 계곡, 대자연을 배경으로 즐기는 수륙양용자동차 타기는 놀이기구와 다른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해담마을서 다시 후천을 따라 내려가면 송천떡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 간이 상점서 그날 만든 떡을 판다. 일단 여기서 떡을 맛보는 게 순서다. 인절미, 수리취떡 등 어느 걸 먹어도 맛나다. 

장작불에 삶은 떡쌀을 떡메로 치고 손으로 주무르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매일 오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떡을 만든다. 마을 안쪽에는 떡 만들기 체험과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있다.
 

양양 시내에 들어서면 후천은 남대천과 몸을 섞는다. 남대천은 영동 지역서 가장 맑고 긴 강으로, 연어가 돌아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남대천연어생태공원에는 우거진 갈대 사이에 생태관찰로가 조성됐다. 느긋하게 걷다 보면 갈대 사이로 남대천이 불쑥 나타나고, 멀리 낙산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주민들이 남대천 주변을 산책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연어가 돌아오는 곳

남대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조금 올라가면 양양의 자랑, 낙산사를 만난다. 낙산사는 설악산 줄기가 동쪽 바다로 잦아들면서 너른 동해를 향해 선 오봉산(낙산)의 품 안에 자리한다. 거대한 해수관음상 앞에서는 바다와 설악산이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일출이 유명한 의상대를 지나면 바닷가 석굴에 자리한 홍련암이 나온다.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낙산사를 세웠다는 창건 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홍련암의 관음보살은 간절하게 절을 올리는 아낙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본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구룡령→미천골자연휴양림 입구→양양 선림원지→불바라기약수→미천골자연휴양림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구룡령→미천골자연휴양림 입구→양양 선림원지→불바라기약수→미천골자연휴양림  
[둘째 날] 미천골자연휴양림→해담마을→송천떡마을→남대천연어생태공원→낙산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양양관광 http://tour.yangyang.go.kr
- 미천골자연휴양림 http://www.huyang.go.kr
- 해담마을 http://hd.invil.org
- 송천떡마을 http://songcheon.invil.org
- 낙산사 http://www.naksansa.or.kr

문의 전화
- 양양군청 문화관광과 033)670-2229
- 미천골자연휴양림 033)673-1806
- 해담마을 033)673-2233
- 송천떡마을 033)673-8977
- 낙산사 033)672-2447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양양, 서울고속버스터미널서 하루 17회(06:30~23:3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서 직행 하루 9회(07:00~19:5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 문의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코버스 http://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http://www.ti21.co.kr


자가운전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 IC→구룡령로→구룡령→미천골자연휴양림

숙박 정보
- 힐하우스 : 강현면 동해대로, 070-8817-2883, http://www.hillhouse.co.kr (굿스테이)
- 미천골자연휴양림 : 서면 미천골길, 033)673-1806, http://www.huyang.go.kr
- 흐르는강물처럼 : 현북면 법수치길, 033)673-0941, http://riverruns.net 

식당 정보
- 천선식당(뚜거리탕(꺽저기탕)·은어구이): 양양읍 남대천로, 033)672-5566
- 실로암메밀국수(막국수·보쌈): 강현면 장산4길, 033)671-5547, http://www.siloammemil.com
- 달래촌(약산채밥상): 현남면 화상천로, 033)673-2201, http://dalraechon.net
- 해녀횟집(섭국·물회): 손양면 수산1길, 033)671-9977 

주변 볼거리 양양 진전사지, 하조대, 남애항,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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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