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사이버사령부 실체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6.07 09:54:56
  • 호수 1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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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나라는 안 지키고…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19대 대선이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우며 연일 미해결 과제들에 대해 재조사를 지시하고 있다. 18대 대선과정서 불거진 국정원·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민낯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2심 이태하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장 판결문을 입수해 18대 대선과정서 국군사이버사령부가 벌인 행위를 면밀히 짚어봤다. 
 

지난 18대 대선서 국정원, 국군사이버사령부대의 대선 개입은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2심서 국정원법 위반과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7월 증거능력을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며 파기환송했다.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은 오는 7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25만원 받고…

당시 국군사이버사령부도 법망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태하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장은 소속 군인들을 동원해 인터넷에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거나 야당 후보·의원들을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작성했다.

군형법상 정치 관여,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심리단장은 징역 2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2심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 2월7일 서울고법 형사2부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부당하게 개입해 이를 왜곡했다”며 “부대원들을 동원해 헌법적 가치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의 댓글부대 운용 방식과 범죄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전 단장은 정치 관여와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받았다. 군형법 제94조에 따르면 정치에 관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이 전 단장은 군형법 제94조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을 주장했다. 서울고법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적시했다. 또 ‘군 조직의 구성원인 군인이나 군무원 등의 경우 일반 국민에 비해 그 자유가 더 제한될 수 있다’는 2014년 헌재의 결정도 인용했다. 

심리전단의 정치 관련 댓글은 주로 이 전 단장에 의해 이뤄졌다. 이 전 단장이 대응대상을 선별해 대응논리와 함께 심리전단 2대에 지시하면 2대의 일부 부대원들은 구체적인 작전문구를 만들어 이 전 단장에게 승인했다.

이후 네이버 비밀카페에 그 작전 내용을 부대원들이 공유하고 심리전단 부대원들에게 위장문자를 발송해 작전 지시를 전파했다. 부대원들은 작전 지시에 따라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SNS에 글을 작성해 타인의 글을 리트윗했다. 부대원들은 비밀카페 댓글을 통해 자신들이 대응한 횟수를 이 전 단장에게 보고했다.

주목할 점은 부대원들이 댓글을 달면서 활동의 대가로 월 25만원 상당의 수당까지 지급받았다는 점이다. 주요사항에 대한 대응은 최소 1∼2주 동안 지속됐고, 심리전단 부대원들은 SNS 등에 월 할당량의 글을 게시하는 과정서 대응작전의 지시내용을 참고했다.

이들은 대응작전의 결과를 캡처해 제출하기도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활동사항 보고 자료는 25만원 상당의 시간외수당 지급을 위한 자료로도 사용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심리전단은 군부대로서 어느 조직보다 상명하복 원칙이 중시됐다고 알려진다.

이 전 단장은 댓글 대응작전 활동에 대한 부대 장악력이 매우 컸다. 이 전 단장이 군수사기관서 “조직 내서 안 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한 점을 비춰볼 때 그의 말이 곧 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전 단장은 국방이나 안보에 관한 사안에 대해서만 대응한 것이 아니라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직접 대상으로 해 대응토록 지시하기도 했다. ‘무상급식’ ‘투표시간 연장에 관한 사안’ ‘김선동 전 의원의 최루탄 투척’ 등에 관해 대응을 지시하거나 직접 대응했다.
 


한미 FTA 반대자들에 대한 비난이 담긴 대응을 수차례 지시하기도 했다. 이 전 단장은 군검찰서 “한미 FTA 반대세력이 종북세력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다”고 진술키도 했다. 이 전 단장은 총선 또는 대선 직후 상황실서 “선거에 승리했다”며 심리전단 부대원들에게 박수를 치게 하기도 했다.

지난 2월 2심 판결…징역 1년6개월 선고
비밀카페로 정치관여·증거인멸교사 의혹

그는 지시를 따르지 않는 부대원을 전출시키기도 했고, 기사나 SNS에 대응할 때 정치적 표현을 주저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사이버사령부 외부로 보고되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이름, 정치적 표현을 모두 삭제하거나 익명화해 정치적 중립성을 해한다는 지적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부대원 중 일부는 정치적 중립성 측면서 문제가 될 여지가 있음을 인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작전지시 내용상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관한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내부서 소극적 반발 혹은 적극적 반발이 있기도 했다.

한 부대원은 “정치 관여 글은 쓰면 안 되기 때문에 일부러 글을 직접 쓰지 않고 문제 되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한 리트윗만 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부대원은 “우리가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느냐”는 말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단장의 또 다른 혐의는 증거인멸 교사다. 이 전 단장은 주로 노트북을 초기화하는 방식으로 증거인멸을 교사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 전 단장이 부대원을 통해 초기화한 노트북 내에는 그의 정치 관여와 관련된 자료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적시했다.

이 전 단장은 국방부장관이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관여 의혹 조사를 지시한 직후에 부대원들의 장비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부대원들 중 사이버활동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보관돼있는 팀장급 부대원들과 노트북 9대에 대해 우선적으로 초기화를 지시했다.

이 전 단장은 지난 2013년 10월20일에는 부대원 13명에게 ‘압수수색 대비 만전 신속히’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메시지를 수신한 부대원들은 다른 부대원들에게 전달키도 했다. 

이 전 단장의 증거인멸은 조사를 받고 돌아온 부대원이 “조사본부서 노트북을 초기화하지 말라고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노트북 초기화를 지시했다.

또 이 전 단장은 수사망이 좁혀오면서 초조한 모습도 보였는데 한 부대원에게 영상 등의 삭제를 지시하면서 “이거 밖으로 나가면 우리 다 죽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형 이유는?

재판부는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정황을 설명하면서 “대통령 선거에 관련한 의견까지 적극적으로 공표하면서도 이를 일반 국민의 의견인 것처럼 가장했다”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부당하게 개입해 이를 왜곡했다”고 밝혔다. 이어 “군의 정치적 중립은 우리의 뼈아픈 역사적 배경의 산물로서 우리 헌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된 가치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군사이버사령부는?

국군사이버사령부는 디도스 공격을 계기로 군 차원의 사이버 안전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2010년 1월1일 국방정보본부 예하 사령부로 설립됐다. 이듬해 2011년 9월 국방개혁 307계획에 따라 대한민국 국방부 직속 사령부로 배속전환 및 증편됐다. 병력은 약 1000명에 달한다. 지난 2015년 10월에는 북한에 해킹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 연구원의 이메일 조사과정서 국군사이버사령부 또한 악성코드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서 ‘시스체크’라고 불리는 보안점검 프로그램과 매뉴얼도 함께 유출돼 논란을 키웠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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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