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권력기관 딜레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6.05 10:44:49
  • 호수 1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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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잘 버텼는데…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권력기관들에 대한 개혁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광폭행보에 검찰, 경찰, 국정원은 정부 눈치만 살피는 모양새다. <일요시사>는 수술대에 오른 권력기관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개혁을 천명한 곳은 검찰이다.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조국 서울대 교수를 앉히면서 검찰 개혁의 신호탄을 쐈다. 조 수석은 교수 시절부터 역대 정권 대대로 정치 권력에 예속돼 편향적으로 수사 및 기소권을 행사하는 검찰의 행태를 지적해왔다. 개혁의 핵심 내용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다. 

칼끝 어디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공수처 설치를 위한 법안도 마련된 만큼 입법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민주당 소속 국정기획위 박범계 정치행정분과 위원장은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6%가 공수처 신설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며 “이번 정부 들어 가장 시급히 다뤄야 할 일이 경제·정치·언론 개혁보다도 검찰·경찰 개혁이라는 의견이 더 높았다”고 지적해 공수처 설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검찰 내부서도 공수처 설치는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검찰의 고유 권한 중 하나인 영장청구권을 경찰에 내주는 것에 대한 반발은 높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고 이를 검토해 검찰이 최종적으로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는 현행 시스템은 유지돼야 한다”며 “이는 이중점검장치이자 국민의 자유와 인권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도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꼽힌다. 앞서 김대중정부 시절부터 검찰 수사권 조정은 대선 단골 공약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때까지 검찰 수장이 직을 걸고 싸우면서 번번이 수사권 조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검찰은 현재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으로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대행하고 있다. 새 정부가 검찰 개혁과 관련해 검찰의 신뢰 회복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봉 대행이 어떻게 위기를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검찰 개혁과 함께 거론되는 것이 바로 경찰 개혁이다. 경찰 개혁의 핵심은 ‘인권경찰’이다. 문재인정부는 수사권 조정의 필수전제 조건으로 인권경찰을 내걸었다. 지난달 25일 조 수석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공식화하면서 경찰 스스로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주문했다.

문재인정부의 경찰 개혁은 국민 인권 보호와 수사 공정성 확보라는 투트랙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그동안 경찰은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 폐해를 비판하며 수사권 조정을 요구해왔다. 정작 스스로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선 개선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서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경찰 조직 내부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찰청은 전국 지방경찰청·경찰서 관리자급 화상회의를 열고 “앞으로 수사 절차의 모든 과정서 인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신희웅 청주청원경찰서장도 최근 “새 정부의 주문에 맞춰 앞으로 민주경찰, 인권경찰로 거듭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정부 기조에 발맞춰 경찰청은 인권 경찰로 변모하기 위해 여러 개선방안을 내놨다.


지난 1일 경찰청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직무 집행 과정서의 인권 보호 등에 중점을 둔 개선안을 공개했다. 살수차 동원 시 최소한의 범위서 사용, 직사살수 제한, 국가 중요 시설 부근 집회 허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경찰이 한 번에 많은 대책을 쏟아내자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이 내놓는 개정안은 전형적인 재탕, 삼탕, 사탕”이라며 “경찰의 본질이 바뀐 게 아니라 정권의 코드를 맞추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진정성이나 실효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개혁인사 단행…검·경·국 초긴장 모드
검 “수사권은 NO”…국, 정보파트 폐지 

문재인정부서 가장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권력기관은 국가정보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서훈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임명장을 수여해 국정원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후보 시절 ▲국정원 명칭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변경 ▲국내 정보수집 업무 전면폐지 ▲불법 민간인 사찰, 선거개입, 간첩조작 근절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국정원의 국내 수사기능을 폐지하고 국가경찰 산하 안보수사국을 신설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 공약의 골자였다. 
 

문 대통령은 서 원장에게 “국정원의 궁극적인 완전한 개혁 방안은 앞으로 좀 더 논의해 좋은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그때까지 우선적으로라도 국내정치 정도만큼은 철저하게 금지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서 원장은 지난 1일 취임 첫 활동으로 국내정보 담당관 폐지를 지시했다. 국정원 3차장 출신으로 조직 내부 속성을 가장 잘 아는 서 원장이 문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국내정보 수집업무 전면 폐지를 통해 ‘셀프 개혁’의 신호탄을 쏜 셈이다. 

이날 국정원 1∼3차장에 모두 국정원 출신을 발탁한 것도 국정원을 정치와 완전히 분리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인사 면면을 살펴보면, 북한·해외파트를 관장하는 1차장에 서동구 주파키스탄 대사관 대사가 선임됐다.

대공·국내 파트 업무를 맡는 2차장에는 김준환 전 국정원 지부장이 선임됐다. 사이버·통신 등 안보 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3차장에는 김상균 전 국정원 대북전략부서 처장이 선임됐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국정원 출신자 발탁 배경에 대해 “문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국정원과 정치권의 관계를 단절하고 국정원이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이날 취임식서 서 원장은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며 “이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될 것이고, 규정과 질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응분의 조치를 받게 될 것이다. 무관용의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과거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에 대해 국정원이 자체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서 원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서 ‘국정원 댓글 사건’ ‘박원순 제압 문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관련해 사실관계를 살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국정원이 대대적인 개혁에 돌입한 만큼 극심한 내홍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극심한 내홍

문재인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혁명은 무력으로 상대방을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지만 개혁은 법과 절차에 따라 때로는 상대방을 설득하고 저항을 눌러가면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개혁을 추진하는 주체가 도덕적으로 우월해야 한다”며 “상대방, 즉 개혁을 당하는 쪽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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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