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내대표 궁합 보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5.29 10:26:59
  • 호수 1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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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지만…“두고 보자”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대선 이후 각 정당의 지도부가 교체 수순을 밟고 있다. 야당은 전열을 가다듬어 여권과 청와대를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여당은 야당의 공세에 방어하는 모양새다. 각 당은 국정 초기 ‘협치’를 내세우며 국민들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이면에는 이해관계와 정치공학적 셈법이 숨어 있다. <일요시사>는 각 당 원내대표의 궁합을 통해 향후 정국을 내다봤다.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에 우원식 의원이 선출됐다. 우 원내대표는 115표 가운데 61표를 얻어 54표를 득표한 홍영표 의원을 누르고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다. 우 원내대표는 여소야대 국면서 협치로 당을 이끌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해 친문(친 문재인)계로 통하는 홍 의원을 제쳤다. 

대통령 바뀌고
일시적 밀월관계

당선 직후 우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민생, 적폐 해소, 탕평인사로 통합과 개혁의 길을 열어가는 데 여러분의 힘을 모아서 원내대표로서 온몸을 바쳐 함께 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같은 날 국민의당도 원내대표를 새로 선출했다. 국민의당 신임 원내대표에는 비대위원장 출신의 4선 김동철 의원이 당선됐다. 

호남 민심 회복을 주장한 김 원내대표는 결선투표 끝에 과반을 득표해 신임 원내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김 원내대표는 당선 소감을 통해 “문재인정부가 상당히 들떠서 국민에게 보여주기식 행보만 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협조하겠지만, 해서는 안 될 일을 할 땐 앞장서서 막겠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정의당 3개 당은 현행 원내대표가 당분간 직을 유지키로 했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오는 7월3일 전당대회를 열고 새 지도부 선출에 나선다. 바른정당은 다음 달 26일이면 새 지도부가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각 당 원내대표들 간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우선 민주당 우 원내대표는 협치를 강조하며 여야 당청 간 조율자 역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대선을 통해 틀어진 국민의당 및 자유한국당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역할도 맡을 전망이다.

같은 날 원내대표에 오른 민주당 우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김 원내대표는 협치를 강조했다. 지난 17일 김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을 찾은 우 원내대표에게 “우리 양당이 당리당략을 떠나서 오직 국가와 민족만을 생각하면서 일을 한다면 못 할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민주당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우리 국민의당은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는 말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린다”고 했다. 이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만큼 국정 초기에 발목을 잡지는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우 원내대표는 “무엇보다 국민의당은 우리 당과 뿌리를 같이하는 형제당”이라며 “그동안 대선서 경쟁하고 갈등하면서 쓴소리했던 사이지만 기본적으로 사회를 어떻게 잘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거의 같다”고 답했다.

민주당-국민의당 새 원내대표 선출
서로 인연 강조…협치 화두 꺼낸다

두 사람은 30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 아래서 정치를 시작했고, 노원구서 서울시의원에 출마한 경험도 같다. 이후 김 원내대표는 광주로 내려갔고, 우 원내대표는 노원구서 터를 닦았다. 


다만 두 당이 대선을 통해 발톱을 드러낸 바 있지만, 김 원내대표가 국정에 발목을 잡지 않기로 한 만큼 밀월관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 원내대표와 야당의 거대 축인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우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선출 다음 날인 지난 17일 자유한국당 정 원내대표를 예방했다. 그는 “여당이 을이고 야당이 갑”이라며 화해와 소통을 통한 대화를 강조했다.

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활동 인연을 들면서 존경심을 표했다. 이에 정 원내대표는 “우원식 하면 을지로위원회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는 사람이 많다”며 “우 대표님은 소위 카운터파트너로서 대화가 통하는 분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는 국정 농단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고, 정권교체가 돼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만큼 당리당략을 떠나 협치할 것이라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이 거대 양당의 축인 만큼 각종 사안에 이견은 불가피하다.

다만 정 원내대표 취임 당시와는 다르게 이번에 우 원내대표 선출 이후에 두 당의 원내대표가 덕담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는 점에서 당분간 정쟁은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통 대결을 펼치고 있는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와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관계도 주목받는다. 바른정당은 국정 농단의 책임을 지고 자유한국당을 박차고 나온 의원들이 만든 정당이다. 
 

지난 대선서 유승민 의원을 대선주자로 내세우며 자유한국당과 보수적자 대결을 펼쳤다.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2위를 기록하면서 4위에 그친 유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바른정당 의원 13명이 대거 탈당함과 동시에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면서 바른정당은 위기에 직면했다. 대선을 통해 바른정당은 보수적자 경쟁에서 승기를 잃은 셈이다.

보수적통 대결
문 행보 제동

정 원내대표와 주 원내대표는 선거과정서 날을 세우며 서로를 비판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한목소리를 내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24일 주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을 향해 “개혁독선에 빠지지 말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는 “곳곳서 개혁,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법에 맞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감사원법에 의하면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돼있으나 독립돼있어 대통령이 감사 지시를 할 수 없다. 감사는 발동 요건이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도 문 대통령의 광폭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문 대통령이 4대강 사업 정책감사를 지시한 것을 두고 이명박정권을 겨냥한 “전형적 정치 감사”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을 앞두고 한풀이식 감사를 지시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전 정부 일이라도 잘못된 건 반성하고, 교훈을 얻는 차원서 조사할 수 있고, 법적인 책임이 있으면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하지만 부관참시하듯, 보복하듯 뒤집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두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 행보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과거청산에 나선 만큼 두 원내대표는 논평 수준의 비판을 넘지 않았다. 

정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간 궁합도 들여다볼 만하다. 두 당은 같은 야당이라는 범주에는 묶이지만 이념 및 지역적 색깔에서 차이를 보인다. 대선 과정에선 홍 후보와 안 후보가 보수층의 표를 갉아먹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날을 세웠다.

현재 두 당은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의 연대 및 합당설은 나오고 있지만 자유한국당과의 연대설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쪽에서도 바른정당과의 연대는 염두에 두고 있지만 국민의당과의 연대는 고려치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두 원내대표는 개헌을 고리로 뭉칠 가능성이 있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오찬 회동에 참석한 직후 국회로 돌아와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6월 반드시 약속대로 개헌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정책은 ‘OK’
통합은 ‘NO’


이어 “(문 대통령) 본인 스스로 절대로 (개헌에) 발목을 잡거나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정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 3월28일 “개헌은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선택지거나 단지 권력의 한 끄트머리를 나눠 갖기 위한 정략적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말해 개헌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정 원내대표는 개헌에 대해 정치적 합의 및 국민적 동의가 필요함을 전제하면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미 자유한국당은 대선 전에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당론으로 채택키도 했다. 정 원내대표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 개헌 국민투표를 관철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도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국회서 열린 중진의원 간담회서 “문 대통령이 약속했듯 내년 지방선거 때 헌법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헌은 국가 백년대계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라며 “개헌을 통해 다수당과 소수당이 대화와 소통을 통해 분권과 협치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개헌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면서 정치권에 개헌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힘쓰는 모양새다. 

그는 앞으로 민주당을 제외하고 개헌 단일안을 도출하는 데 일조해 향후 개헌 정국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의당은 개헌의 핵심 쟁점인 대통령 권한과 관련해 ‘6년 단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자유한국당과 결을 달리한다. 하지만 개헌이 국회의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개헌 추진을 위해 정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공조는 이어질 전망이다. 

보수적통 대결…과연 승자는 누구?
연대·통합론 속 엇갈리는 이해관계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관계도 향후 정국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두 사람은 모두 당내 대표가 공석인 상태서 대표직과 원내대표직을 겸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울러 소수정당이란 점도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당은 민주당에 뿌리를 두고 있고,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창당의 배경도 비슷하다. 대선에서 패한 두 당의 의원들 중 일부는 각각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으로 합류를 점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두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의 이탈을 막고 당을 정상궤도에 올려놔야 하는 책무도 지고 있다. 다만 이념 측면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맥락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두 정당은 대선 과정서 각종 연대 시나리오를 양산하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전임인 국민의당 주승용 전 원내대표와 바른정당에 대한 견해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주 전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양당의 연대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간접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회동 이후 주호영 원내대표는 “그 제안이 어떤 뜻인지 궁금했고, (주승용 대행에게) 확인해본 결과 개인적 의견이라고 했으나 완전한 사견만은 아닌 듯하다”며 “(국민의당) 구성원들의 뜻을 상당히 짐작하고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새) 지도부가 들어서고 나서 그런 논의를 활발히 해야 할 것 같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가 취임한 이후 양당의 연대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김 원내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론에 난색을 표했다. 지난 22일 그는 양당의 통합론에 대해 “국민 선택을 어긋나게 하기 때문에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여당이 횡포를 부릴 경우 이를 견제하기 위해 통합 카드를 내밀 것이란 말을 하면서 통합론에는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이는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 가능성은 열어뒀다. 지난 16일 취임 첫날 김 원내대표는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 추진에 대해 “주호영 원내대표와 만나 공동보조를 취하고 이야기하면 정책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안이 하나씩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적으로 유사점을 보이는 두 정당이 힘을 합친다면 거대 양당을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원수의 한계로 정책 및 법안 관련해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정당의 정책연대는 당의 존립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주 원내대표도 정책이 같다면 국민의당과 정책연대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물리적 통합은 “양당 모두 새로운 지도부로 교체 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즉답을 피했다. 주 원내대표는 대표적 개헌론자로 불리는 김 원내대표, 정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힘겨운 통합카드
개헌으로 뭉친다

최근 문 대통령을 만난 이후 “문 대통령의 개헌의 진정성을 확인했다”며 호평하기도 했다. 향후 문 대통령의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이 마무리되면 3개 정당 원내대표는 개헌을 고리로 뭉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각 당의 연정 가능성에 대해 “시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지금 같은 허니문 시기에는 연정 없이도 민주당 단독으로 개혁입법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추후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질 경우 연정 형태도 검토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4당 원내대표 매주 모이는 이유

지난 22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국회교섭단체 4당 원내대표들은 ‘의장-원내대표단’ 모임을 주 1회 정례화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실무협의의 틀은 원내 수석부대표 간에 협의키로 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위한 실무 작업의 일환이다. 

해당 모임에 대해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야당과 협력할 것”이라며 “방향이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이익을 잘 정리해내는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여당의 덕목은 아량”이라며 “협치 과정에서 야당이 까칠하고 부드럽지 못한 입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야당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협치를 잘해 달라”고 주문했다. 

여야정 협의체는 문 대통령의 협치 첫 관문으로 불린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입법과 각종 정책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야 간 협치가 필수적이라는 평가다. 협의체가 구성되면 회의는 대통령이 주재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협의체에 대해 “과거 고위당정협의나, 일회성으로 진행된 여야정협의체보다 한 차원 높은 단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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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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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