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5.29 09:55:20
  • 호수 1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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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부탁해요”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는 고졸 출신으로 공무원 사회에 발을 들여 놓아 부총리 자리에 오르는 ‘고졸신화’의 주인공이 될 전망이다. 소신과 업무 수행 능력으로 정권이 세 번 바뀌었음에도 늘 중용된 인물이다. 김 후보자는 또 첫 ‘예산통’ 출신의 경제 수장이라는 점에서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문재인정부 초대 경제사령탑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로 지난 21일 내정됐다. 국회 인사청문 절차가 마무리되면 김 후보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과 함께 우리 경제의 근본적 체질을 바꾸는 개혁에 앞장서게 된다. 

판자촌 출신 
고졸 신화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서 김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김 총장은 저와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며 “경제 사령탑인 경제부총리의 인선에서 종합적인 위기관리 능력과 과감한 추진력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는) 기획예산처와 기재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경제에 대한 거시적 통찰력과 조정능력이 검증된 유능한 경제관료란 점에서 지금 이 시기에 경제부총리 적임자로 판단했다”며 “재계·학계·정계서 두루 인정받는 유능한 경제전문가인 만큼 위기의 한국경제를 도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사령탑인 경제부총리 인선에는 종합적인 위기관리 능력과 과감한 추진력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저성장과 양극화, 민생경제 위기 속에 출범했다. 빠른 시일 내 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와 경제 활력을 만들어내는 게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라고 밝혔다. 


특히 문 대통령이 다른 부처 장관들보다 김 후보자의 인선에 속도를 낸 것은 미진한 민간소비 회복세, 사상 최악의 청년 고용 절벽 등 산적한 경제 난제를 해결하고, 사드(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시도 등 외부 리스크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선배가 버린 고시책으로 공부 
작년 연봉 절반 9000만원 기부 

특히 지난해부터 6개월 이상 이어져온 국정공백으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그야말로 흙수저 출신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다. 1957년 충북 음성 출신인 김 후보자는 전쟁 후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향한 부모를 따라 상경해 청계천 판자촌서 생활했다. 

196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11세에 졸지에 가장이 된 김 후보자는 신문팔이와 구두닦이 등을 하며 가족 생계를 도왔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들 생계를 위해 당시 공부를 잘하지만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이 가던 덕수상고에 진학했다. 

김 후보자는 덕수상고 3학년 재학 중에 한국신탁은행(현 하나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은행에 다니면서도 국제대(현 서경대) 야간대학서 공부를 이어가다가 은행 기숙사 옆방에 서울대 법대를 나온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책을 발견하고, 고시를 보면 이 어려운 생활을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시 공부에 몰두했다. 

총장 2년간 
급여 40% 쾌척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동시 합격한 그는 경제기획원(현 기재부)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에도 공부에 손을 놓지 않아 서울대 행정대학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시간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정책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졸 출신이라는 핸디캡에도 기재부 차관과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장관)에 올랐고, 퇴임 후에는 아주대 총장으로 재직했다.

아주대 총장으로 근무하면서 어려운 학생들을 배려하자는 뜻을 담은 ‘애프터 유(After You·당신 먼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학교가 저소득 학생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관련 비용은 사회 성공 인사들의 기부금으로 마련했다. 

또 지난해 김 후보자가 아주대 총장 재직 당시 받은 연봉의 절반가량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지난해 아주대 총장으로 근무하면서 1억86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에 소득세 1650만원, 지방소득세 165만원을 냈으나, 연말정산 결과 소득세 2440만원, 지방소득세 244만원 등 모두 2700만원 가량을 돌려받았다.

김 후보자의 지난해 별정기부금 공제대상금액은 6086만원, 지정기부금 대상 금액은 2725만원이다. 세액공제액은 각각 1619만원과 730만원 등 2369만원에 달했다. 이는 김 후보가 지난해 연봉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대학과 복지재단, 종교단체 등에 기부했기 때문. 

기부금은 아주대학교(6085만원), 무지개빛청개구리지역아동센터(110만원), 서울영동교회(680만원) 등에 전달됐다. 

앞서 2015년에도 김 후보자는 4500만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한 바 있다. 공직을 떠나 아주대 총장 재직 과정서 공직에 있던 시절 받던 연봉 외에 추가 금액을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후보자가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정부서 중용됐던 인사임에도 경제부총리 후보자에 오른 것은 이러한 이력과 활동을 감안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제 정책 주도?
정책 진행 조율?

특히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사람중심 성장경제’에 걸맞은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도 김 후보자 지명 사실을 알리면서 “저와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청계천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기재부 차관과 국무조정실장까지 역임한 분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분”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경제부총리 후보로 지명되면서 향후 기재부는 문재인정부서 경제 정책을 주도하기보다 정책 진행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경제 정책 방향도 이명박·박근혜정부 당시 성장률, 대기업 위주 정책서 일자리와 복지, 중소기업 위주 정책으로 빠르게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박근혜정부서 경제부총리는 강만수·박재완·최경환·유일호 등 대통령의 측근들이 맡아서 힘을 가지고 성장률 중심의 경제 정책을 밀어붙였다. 반면 김 후보자는 문 대통령이 밝혔듯이 대통령과 연이 옅어 힘을 받기 어렵다. 김 후보자가 정책 기획보다는 예산과 정책 조정을 주로 맡아왔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김 후보자는 경제기획원 예산실 사무관과 기획예산처 재정협력과장, 재정정책기획관, 기재부 예산실장, 2차관(예산담당)을 거쳐 국무조정실장을 거쳤다. 이에 따라 김 후보자는 문 대통령의 일자리와 복지 공약 등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내고, 부처 간 예산 분배와 정책 조정을 하는 데 적합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는 지난 24일 문 대통령이 제출한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을 접수했다. 김 후보자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본인과 배우자, 차남 명의로 보유한 재산은 모두 21억5212만원이다.

소신과 업무 수행 능력 탁월  
예산과 정책 조정분야 전문가 

김 후보자는 기준시가 기준 5억8000만원 상당의 서울 강남구 도곡렉슬아파트 등 총 21억5212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 중 본인 명의 재산은 13억3495만원이었다. 

부동산으로는 경기도 의왕시 아파트 전세금 5억5000만원, 서울 송파구 힐스테이트아파트 분양권 8000만원 등을 신고했다. 은행예금은 총 7억4467만원이었고 사인 간 채무 금액이 4000만원이었다.


부인 명의로는 도곡렉슬아파트와 962만원 상당의 2010년식 소나타 등 7억1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부인 명의 예금은 2억8924만원이었고 900만원 상당의 삼성SDI[006400] 주식도 있었다. 부인은 월세보증금 5000만원, 사인 간 채무 1억3000만원 등 총 1억8000만원의 채무를 함께 신고했다.

김 후보자의 어머니 재산은 김 후보자의 동생이 부양하고 있다는 이유로 신고하지 않았다. 병역의 경우 김 후보자는 1978년 3월 육군에 입대해 1979년 5월 일병 복무만료로 전역했다. 차남은 2015년 9월 육군으로 입대해 다음 달 전역을 앞두고 있다.

장남은 2007년 12월 현역 판정 후 2011년 11월 백혈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지만 2013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경찰청이 확인한 범죄경력 조회에는 '해당사항 없음'으로 기재됐다

고향 음성은 
축제 분위기 

그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금왕읍은 축제 분위기다. 최근 그의 인생 역정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개천서 난 마지막 용’으로 불리며 덩달아 그의 고향인 금왕읍이 주목받기도 했다. 

이런 김 후보자의 인생역정을 잘 아는 고향 사람들은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것에 대해 축하 현수막을 내걸고 기뻐하는 분위기다. 고향 마을인 금왕읍 무극리를 비롯해 경주김씨 금왕종친회, 각급 기관사회단체 등 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거는 등 김 후보자를 축하하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70년 유리천장 깬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는 누구?
문이 선택한 반 측근

10년 넘게 유엔서 일해온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25일 뉴욕발 대한항공 여객기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강 후보자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인근에 사무실을 마련해 청문회를 준비에 들어간다.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보로 활동해 온 강 후보자를 외교부장관으로 지명했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70년 외교부 역사에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장관으로 지명된데다 강 후보자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강 후보자는 이화여고,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대 대학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졸업 이후 KBS 영어방송 PD 겸 아나운서로 일을 하다 국회의장 국제비서관, 세종대 조교수를 거쳐 지난 1999년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보좌관으로 특채됐다.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 활동
비외무고시 출신…DJ 때 부상

1997년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역하면서 외교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강 후보자는 비외무고시 출신으로 2005년 외교부 국제기구국장에 올라 외교부서 두 번째 여성국장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06년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 시절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이 됐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시절에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로 활동하는 등 반 전 총장과의 인연도 깊다. 2013년 4월에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 사무차장보로 활동했다.

지난해 10월 반 전 총장의 후임인 안토니우 구테흐스 당시 당선인의 유엔 사무 인수팀장으로 활동했고 12월에는 정책특보로 임명되는 등 한국 여성으로서는 유엔 최고위직을 거친 입지전적의 인물로 알려진 바 있다. 아난 전 총장, 반 전 총장, 구테흐스 총장까지 3대 총장에 걸쳐 중용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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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