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개각’ 대상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지난 26일로 마무리된 가운데 청와대는 혹시 나올지 모를 낙마자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며 노심초사 하고 있다. 당초 ‘일 중심’의 실무형 인물을 발탁한 만큼 큰 문제없이 밋밋할 것으로 예상됐던 인사청문회가 야당의 거센 공세로 ‘낙마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 때문이다. 4·27 재보선 참패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낙마자가 나올 경우 ‘레임덕’이 가속화 되어 국정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인사청문회는 야당에게 호재로 작용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가 많은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 과정에서 정부를 압박할 수도, 여론을 주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부터 26일 나흘간에 걸쳐 진행된 청문회에서 민주당은 이번에도 어김없는 ‘고·소·영’ 인사와 청문회의 ‘4대 필수항목’에 예외 없이 해당됐다며 비판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자질과 도덕성, 업무수행능력에서 국민들이 이정도면 됐다고 할 후보가 한명도 없었다”며 “후보자들 모두가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이 임명했던 지난 장관들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주었을 뿐이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고소영 남매 탄생?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서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과 쌀소득보전직불금 수령 의혹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민주당 김영록 의원은 “실거주지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영농 자체를 할 수 없다. 직접 경작하지 않으면서도 정부로부터 직불금(총 59만8,360원)을 수령했다”고 부당 수령 의혹을 제기하며 “가짜 농민이다”라고 꼬집었다. 농림부 차관 재임 시 직불금제 도입을 주도했던 서 후보자는 “휴무 때나 주말에 내려가 형을 도우면서 직접 경작했다”며 스스로를 ‘겸업 농업인’이라며 방어에 나섰다.
서 후보자의 해명에도 의원들의 질타는 계속됐고, 여당 의원들의 비판도 이어지자 “(쌀 직불금을) 받은 것은 정당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했다”며 “개과천선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한편 서 후보자는 지난 25일 정부기관이 주최한 행사에 자신의 직함을 ‘장관’으로 적은 화환을 보내 ‘벌써부터 장관 행세를 하고 있다’고 빈축을 샀다.
청문회 전부터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며 ‘비리 백화점’으로 불렸던 유영숙 환경부 장관 후보자도 소망교회에 대한 헌금 논란으로 인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원들은 청문회가 시작 되자마자 소망교회에서 인맥을 구축하기 위해 로비 목적으로 거액의 헌금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소망교회에 다니기 직전인 2006년에는 기부금이 적었던 것을 상기시키며 “2007년 이후 기부금이 부쩍 늘어난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결정적 흠결 없어”
민주당 “5명 모두 부적격자들”
이 같은 추궁에 유 후보자는 “평생 교회 기부금을 득을 바라거나 특혜를 바래서 낸 적은 결코 없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이명박 대통령도 한 번도 뵌 적이 없다”고 적극 해명했다.
한편 유 후보자의 배우자 남모씨가 SK텔레콤으로 이직하면서 두 달간 3억원이 넘는 급여를 받은 것에 대해 “일종의 입사지원금으로 업무가 어려워서 입사하길 망설이는 사람에게 주는 영입자금”이라면서 “일반 국민들이 생각할 때 큰 금액인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도 아들의 고급스포츠카 소유 문제로 논란이 이어졌다. 박 후보자는 청와대 수석 당시 경차인 ‘모닝’을 타고 다녀 화제를 모았는데 아들은 고급 스포츠카를 몰았던 것이다. 이에 박 후보자는 “경솔한 행동으로 논란을 빚어 송구스럽다”며 “아들 자동차 신고를 한 번도 누락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는 이 후보자가 노동부 총무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인사 청탁성’ 현금 10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받았다 그 다음 날에 돌려줬다는 의혹을 추궁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별정직 6급 직원이었던 김 모 씨가 집에 찾아와 업무 관련 서류라고 하고 놓고 갔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음날 직원들 앞에서 호통을 치면서 돌려줬다”고 설명하며 “정말 억울하다.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는 퇴임 후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의 고문으로 근무한 경력과 2005년 부동산 매매 시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에 공세가 집중됐다.
김앤장 근무시절 5개월 간 1억2천700만원의 고액 급여를 받은 사실에 대해 권 후보자는 “당시 퇴직한 이후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야 했지만 지나고 보니 제가 여러 가지를 더 신중하게 고려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유감을 표했다.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에 대해서 권 후보자는 “당시 사인 간 거래에 있어서는 기준 시가로 하는 것이 관례였다”며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김앤장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 후보자에 대해 무소속 이인제 의원은 “김앤장은 합법적인 로비창구인데 로펌을 들어갔다가 바로 장관을 하겠다고 나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질타했다.
레임덕 가속화 전망
민주당 홍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혹시나’ 했던 청문회가 ‘역시나’로 귀결됐다”며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인재풀이 이것밖에 안되는지 실망스러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청와대 안팎에선 ‘5명 장관 후보자 모두 청문회를 통과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청문회를 두고 여·야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은 5명 전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린 가운데 특히 서 내정자와 유 내정자를 ‘절대 불가’ 대상으로 지목한 반면 한나라당은 “결정적 흠결은 없었다”며 맞서고 있다.
한편 어수선한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개각 카드를 내보인 이 대통령은 이번 청문회에서 탈락자가 나온다면 ‘레임덕’ 가속화가 불 보듯 뻔해 향후 국정운영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