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1주년 특집2> ‘일요시사’가 함께한 격동의 21년 정치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5.22 11:01:37
  • 호수 1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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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대선과 6번 총선 역사적 순간을 담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종합시사주간신문 <일요시사>가 21번째 생일을 맞았다. 1996년 5월15일 창간한 <일요시사>는 세기를 넘나들며 우리 사회의 외진 곳은 물론 높은 장벽까지 성역 없이 보도해왔다. 단 한 번의 결호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일요시사>는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간 21주년을 맞아 그간 <일요시사>에서 다뤘던 대한민국 주요 현대사를 되짚어봤다.
 

21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사는 격동의 풍랑 한가운데에 위치해왔다. <일요시사>는 김대중정부의 탄생을 지켜봤고,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사태와 함께했다. 5번의 대선을 치렀으며, 6번의 총선을 다뤘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도 <일요시사>는 ‘감춰진 진실’을 보도하고자 무던히도 노력했다.

3김시대 절정
그리고 마감

1996년 4월 제15대 총선이 치러졌다. 총 299명의 일꾼이 선출됐다. 이 선거는 15대 대선을 1년8개월여 앞둔 전초전의 성격이 짙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일요시사>도 유권자들의 관심에 맞춰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후보 검증에 총력을 기울였다.

비단 대선을 앞두고 있기에 주목도가 높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신한국당의 김영삼 대통령, 새정치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 김종필 총재로 대표되는 3김 시대의 승자는 누가 될지 관심이 모아졌다. <일요시사>는 상교동·동교동 인사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정치지형의 변화를 발빠르게 취재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총선 결과 79석이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자 대권 가도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깨달았다. 의중을 꿰뚫고 있던 이강래 아태재단 상임고문은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정책연대를 제안했다. 이에 공감한 김대중 총재는 1996년 7월부터 실행에 옮겼다. DJP 연합의 시작이었다.


1996년 창간 후 지금까지 정계 산증인
김대중∼문재인 역대 정부와의 시간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은 DJP 연합을 업고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에 <일요시사>도 함께했다. 동교동 인사들과 접촉면이 넓은 <일요시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일요시사>는 기성 언론과는 달리 사안의 저변까지 파고들었다. 대표적인 게 ‘JP 대망론’ 문건 최초 보도였다. 2001년 05월 <일요시사>는 자민련 내부에서 김종필 명예총재의 차기 집권 가능성을 담은 문건을 입수해 세상에 알렸다. 

이는 ‘충청대망론’의 시초가 된 사건이다. <일요시사>의 최초 보도 후 수많은 언론서 해당 기사를 인용했고, 자민련은 문건 작성 경위에 대해 자체 조사에 착수하는 등 엄청난 파급을 불러왔다.

JP 대망론
최초 보도

<일요시사>는 기성 언론서 포착하지 못한 것까지 찾아냈다. 2001년 7월 김종필 명예총재의 후원자가 김 총재에게 산삼을 기증한 사실을 최초 보도했다. 이 역시 수많은 언론서 인용 보도될 정도로 큰 파장을 낳았다. 당시 당 대변인은 냉장고에 보관해온 현물을 기자들에게 직접 보여주며 해명했다.
 

이 같은 기사가 세간의 주목을 받자 <일요시사>를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덩달아 심해졌다. 2002년 6월, 16대 대선에 나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병풍 사건을 보도한 <일요시사>는 당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받았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일요시사>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들은 “정치권이 대(對)언론 공세를 강화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일요시사>는 소송에 굴하지 않고 후속 기사를 통해 외압에 굴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명확히 했다. 

2002년 8월 <종로구청장 직인 의혹, ‘진실’ 따로 있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회창 후보의 장남 병적기록표에 찍혀 있는 종로구청장 직인이 당시 사용하던 구청장 직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가로 보도, 병적기록표의 위·변조 의혹을 제기했다.

소송에도 후속
거센외압 맞서

<일요시사>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일요시사>가 창간하고 4개월 뒤 터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 IMF 탓에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온 나라가 시름 섞인 한숨에 허덕였던 상황에서 국민들은 더욱 경악했다. 이에 <일요시사>는 직접 기자를 현지로 급파해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1999·2000년 각각 연평해전과 6·15공동선언도 <일요시사>가 주목했던 사안이었다. 2004년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소추 때도 <일요시사>는 사안의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여야 의원들을 두루 취재했다. 국회 본회의장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는 모습도 르포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최대한 생생히 전하고자 노력했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일요시사>도 덩달아 바빠졌다. ‘4대강·대운하’ ‘의료 민영화’ ‘자원외교’ 등 논란이 됐던 정부의 사업이 혹시 국익에 반하지 않을지 예의 주시했고, 조그만 의혹이라도 취재에 매달렸다.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든 사건이자 ‘사람의 향기가 나는 신문’을 지향하는 <일요시사>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이에 <일요시사>는 ‘광우병 파동’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집회 현장에 스며들어 민심을 담아내고자 애썼다.

상교동·동교동 소식, 수많은 최초 보도
탄핵·세월호·촛불집회…현장서 답 찾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벌어진 촛불집회는 <일요시사> 입장서 특히 의미가 깊다. 세상에 최순실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 <일요시사>는 국정농단 세력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저녁을 반납했다. <최순실 측근 고영태는 강남 호빠 출신> <차은택 강남빌딩 수상한 거래 추적>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정치권을 뒤흔든 ‘용산참사’ ‘세월호 침몰’ 때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세월호 침몰 1주기를 앞둔 지난 2015년 4월에는 단원고 희생자 민우의 부친 이종철씨를 광화문서 만나 그의 솔직한 심정을 담아냈다.

정치적 이벤트인 총선이 있을 때면 <일요시사>는 후보를 직접 만나 지역 현안과 비전을 물었다. 지금까지 <일요시사>가 만난 총선 후보만도 70여명이 넘는다. 이는 옥석을 가리고자 하는 유권자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


“정치는 현장”
지역 곳곳 누벼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같이 당장 독자에게 알려야 할 소식이 있을 때면 주간지라는 시간적 제약에 연연하지 않고 기사를 빠르게 전했다. 

<일요시사> 창간 이래 서거한 대통령은 최규하·김대중·노무현·김영삼 등 총 4명. 주말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비보에도 <일요시사>는 빈소를 직접 찾아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언제, 어떤 소식이 전해질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에 긴장의 연속이지만 <일요시사>는 ‘독자 우선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30·40·5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자 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요시사>와 함께한 정치 거물들 열전
피고 곧 지고 지고 또 피고

1997년 12월 대한민국은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김영삼정부는 IMF를 상대로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IMF 사태’였다. 국민들은 김영삼정부의 미숙한 외환관리정책을 비난했다.


김영삼정부의 친인척 비리도 국민의 지적 대상이었다. ‘소통령’ 김현철씨는 관련 비리로 청문회장에 섰다. 생중계된 청문회는 많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일요시사>도 김씨의 권력형 비리를 집중 보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는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6·15 선언의 또 다른 주역은 김정일이다. <일요시사>는 6·15 선언 소식을 전하며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했다. 김 대통령은 2009년, 김정일은 2011년 숨을 거뒀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은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했다. 이후 언론은 김정은식 숙청작업에 관심을 집중했다. <일요시사>도 마찬가지였다. 장성택, 리영호, 김정남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충청권의 맹주 김종필·이회창도 <일요시사> 레이더망에 있었다. 두 사람은 충청대망론의 현재이자 미래였다. <일요시사>는 두 사람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집중 보도하는 기사를 내놨다. 그러나 아직 충청대망론은 현실화되지 못하며 난제로 남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국회를 통과한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 대한 기성언론의 공격은 계속됐다. 검찰도 이에 발맞춰 노 대통령을 압박했다. 수사를 받던 노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업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동시에 서민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국밥을 먹는 홍보영상은 크게 히트하며 여러 패러디를 양산했다. 그러나 임기 중 벌였던 ‘촛불집회 수사’ ‘4대강 사업’이란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대통령으로부터 서울시장 자리를 물려받은 오세훈 전 시장은 한때 대선 후보군으로 묶였지만, 무상급식 파동에 발목 잡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선 18대 대선서 51.6%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시작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끝마치는 과오를 범했다.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으로 기록되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자구도 속에서 41.1%라는 높은 득표율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득표율로 표현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조국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박원순의 남자’ 임종석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는 등 파격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요시사>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문재인정부를 감시·견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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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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