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르포> 서울시선관위 개표상황실 가보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5.15 09:56:17
  • 호수 1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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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는 삼엄한데…개표 참관인 어디에?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지난 대선 이후 국민들의 개표 불신은 극도로 높아진 상황이다. 선관위의 명예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각종 의혹에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국론을 분열 시킨다”는 논리로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고 있는 현실이다. <일요시사>는 대선을 맞아 개표의 사각지대로 불리는 상급선관위(서울시선관위)의 개표 현장을 기습 방문했다.

지난 18대 대선은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18대 대선 무효소송인단은 “18대 대선은 무효”라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4년이 동안 ‘심리’조차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19대 대선을 불과 2주 앞둔 지난달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으로 파면돼 원고들이 더 이상 18대 대선의 무효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18대 대선 부정 의혹은 끝내 묻혀버리고 말았다.

차질 없이 진행

지난 9일 제 19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전국 투표구 1만3964곳과 개표소 251곳서 투·개표가 이뤄졌다. 개표소서 개표가 이뤄지면 투표구별 개표상황표는 상급선관위로 가게 된다. 상급선관위서 전산자료와 개표상황표를 비교해 차이 발생하면 다시 하급선관위로 내려보내 수정하고 이상이 없으면 상급선관위인 중앙선관위로 올라간다.

예를 들어 이번 대선서 영등포선관위 개표소인 여의도고등학교서 이뤄진 개표결과는 서울시선관위로 보내지고 최종적으로 중앙선관위 전산에 입력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표소(전국 251곳)는 투표용지를 분류하고 최초로 결과가 나오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인식됐다. 선관위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개표참관인 신청을 받아 개표소서 이뤄지는 개표과정을 지켜보도록 하고 때로는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는 것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지역선관위(개표소)에는 있지만 상급선관위에는 개표참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적 관심도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선관위가 지역선관위(개표소)의 투명성만 강조했을 뿐 상급선관위 역할 및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상급선관위는 국제기준에 따르면 대조센터(Collation Center) 역할을 한다. 한 선거전문가는 “국제기준에 따르면 대조센터는 일반인에게 충분히 공개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개표과정서 역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국민들의 감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감시에 구멍이 나 있는 상급선관위 개표(대조)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9일, 19대 대선이 있던 당일 서울시선관위를 기습 방문했다.

19대 대선 투표가 끝나기 2시간30분 전인 오후 5시30분 창경궁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시선관위에 도착했다. 로비를 지키고 있던 선관위 직원은 기자를 향해 ‘알바생’이냐고 물었다. 이어 “알바생은 5층으로 올라가세요”라고 말했다.

알바생은 이날 서울시선관위 직원을 도와 대조작업을 실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지난 대선 ‘개표상황표 대조 확인자 명단’ 정보공개자료에 의하면 이들은 ‘일반인’으로 분류된다. 취재차 방문한 기자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문증을 받았다.

서울시선관위 4층에는 홍보과, 관리과 등 사무처가 위치했고 선관위 직원들이 삼엄한 경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5층에는 개표집계상황실이 꾸려졌다. 개표집계상황실에는 서울시 25개 구 개표소서 올라온 자료를 대조 확인한다.

오후 6시에 이르자 20∼3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거 5층으로 몰려들었다. 개표사무를 돕기 위해 온 알바생들(?)이었다. 이들은 5층 개표집계상황실 앞에서 신분확인을 하고 개표집계상황실로 들어갔다. 신분확인을 마친 한 남성에게 개표사무를 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물었다.


그는 “여기 선관위 직원 중에 친구가 있어서 하게 됐다”며 “따로 공고는 못 봤다”고 말했다. 서면으로 신청서를 냈냐고 묻자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당에 대해선 “6만원 정도로 알고 있다”며 “돈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고 얼굴을 붉혔다.

서울시선관위 대조센터
공고도 안하고 뽑았다?

앞서 전날 기자는 서울시선관위 홍보과 관계자에게 직원 보조원들을 뽑는 기준을 물은 바 있다. 이에 홍보과 관계자는 “공직선거지원단 분들과 선관위서 일을 해보신 분들 위주로 뽑는다”고 했다. 문제는 서울시선관위서 업무 보조 일반인을 공식적인 루트를 통하지 않고 알음알음 뽑아왔다는 사실이다.

즉, 하급 선관위의 결과를 대조 확인하고 중앙선관위에 통보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서울시선관위가 업무의 불투명성을 강화시킨 것이다. 이 같은 관행에 대해 한 선거전문가는 “공식적인 국가 업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보조원들의 신분이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공고를 통하지 않고 지원자를 뽑아 국민들이 개표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조과정서 개표참관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서울시선관위를 비롯한 상급선관위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에 서울시선관위 홍보과 관계자는 “참관인은 법적인 부분을 감시하는 것”이라며 “우리 쪽은 법적인 절차는 없고, 단순히 숫자를 집계할 뿐이기 때문에 참관인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선거전문가는 “국제선거기준에 따르면 대조센터의 경우 개표과정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개표참관인을 두고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또, 상급선관위는 개표소서 이뤄진 결과를 대조 확인하고 내부 보고번호 오류나 숫자 오 입력 시 개표소에 수정을 요청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서울시선관위가 해당업무를 ‘단순 숫자 확인’으로 표현한 것은 개표참관인을 두지 않는 것에 대한 해명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표를 마친 오후 8시부터 개표작업이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이에 기자는 개표집계상황실서 개표상황표와 전산자료를 대조 확인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개표집계상황실은 심사1조부터 심사6조까지 구성됐다.

이는 구별로 나눈 것이다. 보통 한 구당 선관위 직원 1명, 보조원 2명이 배치됐다. 선관위 직원과 보조원은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바로 옆에는 팩스가 있었다. 팩스는 개표소서 이뤄진 개표상황표를 출력하는 용도로 쓰인다.

그 자료를 보고 선관위 직원과 보조원은 대조를 실시한다. 개표가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난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개표상황표가 서울시선관위로 넘어왔고 선관위 직원들과 보조원들은 본격적으로 대조작업을 실시했다.

개표상황표가 도착하기 전까진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후 선관위 직원들이 보조원들에게 절차와 방법을 수시로 설명하면서 대조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업무는 차질 없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사각지대?

한 선거전문가는 “시도 개표상황표 대조확인센터(상급선관위)는 개표참관 사각지대”라며 “선관위는 국제기준에 맞게 개표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은 상급선관위서 전산처리가 이뤄지는 과정 모두 개표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개표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국민이 주권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새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르면 오는 16일 새 원내사령탑을 선출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국회서 의원총회를 열고 새 원내대표 선출과 새 정부의 내각 인선에 따른 인사청문회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현재 우상호 원내대표는 임기 종료는 물론해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원내대표 선출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원내대표 후보군으로는 3선 의원이 꼽힌다. 이들의 출마 여부에 따라 경선 판도가 변화될 전망이다. 현재 후보군으로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민병두, 우원식, 안규백, 이춘석 의원 등이 오르리내고 있다. 민병두 의원은 비문재인계로 당내 전략통으로 불린다.


우원식 의원은 민평련계로 분류되는 3선 중진의원이다. 안규백 의원은 정세균 국회의장과 가까운 인사로 분류된다. 차기 원내사령탑은 새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를 뒷받침 하는 동시에 다른 당과의 협치도 이뤄내야 하는 만큼 조율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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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