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사진전 <현장스케치>

“2년 전 슬픔 안고 ‘노짱’ 만나러 왔습니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5월 화창한 날씨 속 인사동 거리. 수많은 노란풍선이 바람에 일렁인다. 평일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노란 물결 속으로 파고든다. 그곳은 다름 아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사진전. 사진 속에서나마 그를 다시보고 추억하기 위해,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봄바람을 타고 다시 불어오는 ‘노풍’의 현장을 지난 17일 스케치했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의 흔적 묻어나
사진 속 그는 웃지만, 국민들은 울었다

2009년 5월 23일,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라고 외치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가 갑자기 우리들 사는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에 5월이면 전국 곳곳에서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가 열리고 국민들은 그를 추모하며 그리움을 전한다.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는 5월 12일부터 23일까지 ‘바보 노무현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추모전시회가 열렸다. ‘길’ ‘꽃’ ‘꿈’ ‘쉼’이라는 4가지 섹션으로 노 전 대통령의 치열했던 생애를 사진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남긴 발자취 따라서

“너무나 아깝지” “이 양반 참~” 사진전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한숨을 쉬었다. 흐느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의 눈은 붉게 충혈 되었다. 그리고 전시장 안쪽에서는 간헐적인 흐느낌과 아예 목 놓아 ‘엉엉’ 우는 소리도 들렸다.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끊임없이 발길이 이어졌다.

전시장 주변에 둘러싸인 노란풍선을 따라 입구로 향하면, “5월은 노무현입니다”라는 외침이 들려온다. 이어 안내장을 나눠주는 손길들이 바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자전거 타는 대통령’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윽고 그가 87년도에 사용했다는 명함을 받을 수 있다. 그곳에서 청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그리고 다시 시민으로 돌아온 봉하마을 노무현의 모습을 차례로 만날 수 있었다.

먼저 ‘노무현의 인생을 따라 걷는 길’이라는 섹션에서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5개의 영상으로 엮어 보여주었다. 익살스런 청년 노무현의 모습, 유쾌해 보이는 군생활 모습, 권양숙 여사와의 결혼식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 전 대통령의 익살맞은 표정과 장난스런 모습에 유일하게 웃음소리가 들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시민들 앞에 열변을 토하는 젊은 정치인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이어진 ‘꽃처럼 아름다웠던 당신, 노무현’이라는 섹션에는 그의 소박하고, 서민적인 모습과 활짝 웃는 순간이 펼쳐졌다. 그의 함박미소 사진들 앞에서면 이내 훌쩍거리는 소리와 아예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정작 그가 활짝 웃을 때, 관람객들은 눈물을 흘린 것이다.

신발 끈을 매는 사진, 쭈그려 앉아 은박지에 쌓인 김밥을 먹는 장면, 시커먼 얼굴에 땀 뻘뻘 흘리며 쓰레기 줍는 모습 등 노 전 대통령 생전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이어졌다.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엿보이는 사진들이다. 이어 손녀딸과 자전거 타는 모습, 아이스크림 차가울까 휴지에 말아주고, 녹여주는 모습 등 할아버지 노무현의 자상한 모습에 관람객들은 눈길을 떼지 못했다.

‘끝없이 도전했던 당신의 꿈’에서는 치열했던, 그러나 포기를 몰랐던 정치인으로서의 뚝심있는 그의 삶이 조명되고 있었다. 여기선 13대 국회의원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 후보에 오르기까지 그가 사용했던 선거포스터들을 함께 감상할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발길을 한참이나 멈추게 만든 곳이 있다. 그는 92년 14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사람은 자기 설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남자는 죽을지라도 가야할 때는 가야 합니다”라고 말한 부분이 묘한 여운으로 남는다.

이어 95년 부산시장 낙선 연설에서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도 살아남는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당시는 후보시절이었지만,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그의 멘트들이 아직도 관람객의 마음과 발길을 사로잡는 듯하다.

소신있고 뚝심있던 ‘노간지’

이어진 ‘잠시 쉬며 당신을 추억하는 시간’ 섹션에서는 트릭아트를 선보였다. 여기서 노 전 대통령이 이끄는 자전거에 얹혀 탈 수 도 있고, 술을 한 잔 올릴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됐다.

마지막으로 영상룸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차를 마시며 그의 생전 모습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 나가는 길목에는 칠판을 준비해 노 전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했다.

“아직도 그리운 노짱님 당신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게요” “바보 대통령 보고 계시나요?” “보고 싶어요 참 사람다운” “영원한 마음속의 대통령 보고 싶습니다” 등 빼곡한 글씨로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그의 내면과 외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아련한 모습들에 그리움이 커졌는지 관람객들 모두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학원에서 공부하다 잠시 들렀다는 20대 학생은 “그 분이 누군지 사실 잘 모른다. 하지만 죽어서도 사람들이 슬퍼하는 걸 보니 노 대통령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그만큼 분위기는 그에 대한 애틋함으로 가득했다.

추모사진전을 찾는 관람객들의 나이와 연령대는 다양했다. 노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 점심시간을 이용한 회사원들, 심지어 호기심이 생긴 외국인들까지 모두 가던 발걸음을 잠시 돌려 그곳에 들렀다. 살아생전에 ‘노간지’로 불리며 그가 보여줬던 인간적이고 순수했던 모습들이, 노란 물결을 타고 국민들 마음으로 녹아들어 ‘바보 노무현’을 만나러 왔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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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