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의 ‘청와대 대포폰’ 실체

70명 명의로…조폭이 대줬나

[일요시사 취재1] 김태일 기자 =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대포폰 제조창이었다. 자신의 군대 후임이 운영하는 대리점을 통해 대포폰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교체했다. 이에 특검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번 사건으로 범죄자들의 전유물로만 취급되던 대포폰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국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차명으로 된 휴대전화기, 일명 대포폰을 사용했다고 증언해 파장이 크게 일었다. 그간 박 대통령이 대포폰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해명을 정면으로 뒤집는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영선 지인은
어디서 났나?

정 전 비서관은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7차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언급했다. 정 전 비서관은 도청 위험성이 있어 만에 하나를 대비해 우리 이름으로 (등록된 전화를 사용)하지는 않았다대통령과 차명폰(대포폰)으로 통화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회 탄핵소추위원 대리인이 대통령도 차명폰을 가지고 있었느냐고 재차 확인하자 정 전 비서관은 그렇다고 명확히 답했다. 대포폰을 누가 구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의혹은 지난해 1111일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최초로 제기했다. 당시 안 의원은 국회 긴급현안질문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대포폰을 개설,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의원은 장시호씨가 6개를 개설했고 그중 하나를 박 전 대통령에게 줬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안 의원의 주장에 대해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청와대서 공식적으로 지급받은 전화기 외에 다른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는다허위 사실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 전 비서관의 증언은 청와대의 반박을 뒤집는 증언이었던 만큼 파장도 컸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에 해당하는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은 다른 누구의 주장보다 더 높았다.

진실은 특검 조사 결과로 밝혀졌다.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그리고 정 전 비서관 등의 차명 휴대전화 70여대를 개통 및 관리한 사실이 확인된 것.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27영장이 청구된 범죄사실과 그에 관해 이미 확보된 증거, 피의자의 주거, 직업 및 연락처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영선 행정관 군대 후임에 개통 의뢰
통화내역 증거가 구속 막은 요인으로

한 매체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해외에 나갈 때도 이 전 행정관이 개통해준 대포폰을 항상 챙기며 청와대와 연락선을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가 일본, 독일에 갔을 때도 대포폰에 각각 일본 통신사와 독일서 통신사업을 하는 영국 통신사의 통신망 접속 기록이 남아 있었다.


또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이 함께 개설해 사용했던 대포폰의 최종 해지 날짜는 지난해 1030일이었다. 해외 도피 중이던 최씨가 직전 박 전 대통령과 집중 통화를 한 뒤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귀국한 날이다.

이 전 행정관은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서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은 옷 문제로 의상실서 처음 만났다고 했으나 거짓 증언으로 확인됐다. 특검 조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은 당선 이전에도 최순실씨가 운영하는 의상실서 옷을 맞춰 입었으며 당시에도 이 행정관은 옷 심부름을 했다고 한 매체는 보도했다.

이같이 상당한 의혹이 제기됐으나 법원은 이미 확보된 증거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특검이 수사과정서 확보한 차명 휴대전화와 개통내역, 통화내역 등의 증거가 되레 구속을 막은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 전 행정관은 그간 특검의 수차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다가 특검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에 나서자 224일 출석했다. 그러나 특검 조사에서도 일관되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저도 청와대서 대통령을 거의 5년 모셔봤지만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나라가 나라인지, 청와대가 청와대인지, 조폭 공화국이고, 범죄 집단의 소굴이라고 맹비판했다. 그는 청와대와 국무위원 등을 상대로 대포폰 사용자들을 색출해 박근혜정부 불법 대포폰 비상 연락망을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기꾼들 필수
선거 때 수요

이번 사건으로 수면위로 떠오른 대포폰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조직폭력배 등과 같은 범죄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수요층이 두터워졌다. 개인용 컴퓨터와 다름없는 스마트폰서 개인정보가 새어나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다.

주식 투자자와 기업 임원, 각종 선거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이 혹시 모를 수 있는 사기관의 조사에 대비하거나 사생활, 비밀을 숨기기 위해 대포폰을 찾기 시작했다.

요즘 대포폰 상당수는 알뜰폰 사업자를 통해 개통된 외국인 명의 선불폰으로 파악된다. 외국인 여권 사본만으로 다수의 대포폰이 복제되고 있다. 불법 대포폰 업자들은 알뜰폰 사업자가 선불폰 개통을 신청한 외국인의 입국정보만 조회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한국알뜰폰사업자협회 관계자는 가입자가 다른 통신사에서 선불폰을 몇 개나 개통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알뜰폰 사업자 간 가입자에 대한 정보 공유가 없어 명의 1개만 도용해도 39개 대포폰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이드는 호텔 숙박 신청 시 필요하다고 여권을 회수한 뒤 사진을 찍어 돈을 받고 명의를 판다알뜰폰 사업자 대리점이 다단계 형태로 운영되거나 잠깐 개통만 하고 폐업하는 식으로 불투명하게 운영된다는 점도 대포폰 시장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전체 선불폰 시장의 최소 10%는 대포폰으로 추정된다대포폰으로 둔갑한 선불폰 가격을 35만원 정도로 잡아도 시장 규모가 최소 1000억원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포폰은 사회 곳곳에 광범위하게 스며들고 있다. 불법 유흥업소 운영자와 불법 대부업자, 주가조작 세력 등에겐 필수품으로 통한다. 일부 기업서도 대포폰을 암암리에 쓰고 있다.

뿌리 뽑겠다
호언장담 무색

선거 기간에도 대포폰 수요가 급증한다. 사전 선거운동 등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 생산자단체 회장도 지난해 말 대포폰을 이용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그는 외국인 명의의 대포폰으로 측근과 사전 선거 대책을 논의하거나 대의원들에게 지지 호소 문자를 보냈다.

한 휴대폰 판매업자는 각종 선거기간에는 대량으로 대포폰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일반인도 개인적인 이유로 대포폰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대포폰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미래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당국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미래부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대부분 국가는 명의 없이 선불폰을 이용하도록 한 뒤 범죄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고 있다개통이나 이용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지만 모든 대포폰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대포폰 구매가 스마트폰 개통보다 간단하고 편리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누구나 대포폰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지만 관련 당국서 취한 조치는 전혀 없다스마트폰을 개통하려면 판매 대리점을 방문해 각종 계약서를 써야 하지만 대포폰은 이런 절차도 필요 없다고 꼬집었다.


대포폰을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되진 않는다. 대포폰 이용자를 처벌하는 뚜렷한 법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포폰 이용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대포폰 수요가 줄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포폰을 개설·판매하거나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대포폰을 개설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이용하면 형법상 사문서 위조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스마트폰 확산으로 수요층 급증
외국인 명의 30만원 30분이면 뚝딱

대포폰을 개통하는 데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반면 대포폰 이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차명 휴대폰 사용을 어디까지 불법으로 인정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해 관련 법이 마련되기 어렵다는 게 미래창조과학부의 설명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부모가 자식 명의의 휴대폰을 쓰는 것처럼 차명 휴대폰을 사용했다고 해서 처벌하기는 모호한 사례가 너무 많다금융실명제를 근거로 대포통장 이용자가 처벌받는 것과 상반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포폰 판매업자들은 개인정보를 돈을 주고 사기도 하지만 유출된 개인정보를 몰래 이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당사자도 모르게 본인 명의로 개통된 휴대폰은 없는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볼필요가 있다 당부했다.

지난 20144월 청와대는 대포통장, 대포차, 대포폰 등 이른바 ‘3대 대포악근절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 두 달 전에는 대포폰 단속을 위해 서민생활침해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기도 했다.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통장과 대포차, 대포폰 척결을 위해 정부가 직접 강력 대처에 나선 것. 하지만 대포폰을 뿌리 뽑겠다던 청와대의 호언장담은 박 전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의혹으로 무색해졌다.

솜방망이 처벌
허술한 관련법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가 지난달 31일 뇌물죄 등으로 청구된 구속 영장을 발부함으로써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세 번째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주요 혐의는 뇌물이었지만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이 대포폰을 이용해 최순실씨와 말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점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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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