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의 ‘청와대 대포폰’ 실체

70명 명의로…조폭이 대줬나

[일요시사 취재1] 김태일 기자 =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대포폰 제조창이었다. 자신의 군대 후임이 운영하는 대리점을 통해 대포폰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교체했다. 이에 특검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번 사건으로 범죄자들의 전유물로만 취급되던 대포폰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국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차명으로 된 휴대전화기, 일명 대포폰을 사용했다고 증언해 파장이 크게 일었다. 그간 박 대통령이 대포폰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해명을 정면으로 뒤집는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영선 지인은
어디서 났나?

정 전 비서관은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7차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언급했다. 정 전 비서관은 도청 위험성이 있어 만에 하나를 대비해 우리 이름으로 (등록된 전화를 사용)하지는 않았다대통령과 차명폰(대포폰)으로 통화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회 탄핵소추위원 대리인이 대통령도 차명폰을 가지고 있었느냐고 재차 확인하자 정 전 비서관은 그렇다고 명확히 답했다. 대포폰을 누가 구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의혹은 지난해 1111일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최초로 제기했다. 당시 안 의원은 국회 긴급현안질문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대포폰을 개설,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의원은 장시호씨가 6개를 개설했고 그중 하나를 박 전 대통령에게 줬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안 의원의 주장에 대해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청와대서 공식적으로 지급받은 전화기 외에 다른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는다허위 사실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 전 비서관의 증언은 청와대의 반박을 뒤집는 증언이었던 만큼 파장도 컸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에 해당하는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은 다른 누구의 주장보다 더 높았다.

진실은 특검 조사 결과로 밝혀졌다.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그리고 정 전 비서관 등의 차명 휴대전화 70여대를 개통 및 관리한 사실이 확인된 것.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27영장이 청구된 범죄사실과 그에 관해 이미 확보된 증거, 피의자의 주거, 직업 및 연락처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영선 행정관 군대 후임에 개통 의뢰
통화내역 증거가 구속 막은 요인으로

한 매체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해외에 나갈 때도 이 전 행정관이 개통해준 대포폰을 항상 챙기며 청와대와 연락선을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가 일본, 독일에 갔을 때도 대포폰에 각각 일본 통신사와 독일서 통신사업을 하는 영국 통신사의 통신망 접속 기록이 남아 있었다.


또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이 함께 개설해 사용했던 대포폰의 최종 해지 날짜는 지난해 1030일이었다. 해외 도피 중이던 최씨가 직전 박 전 대통령과 집중 통화를 한 뒤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귀국한 날이다.

이 전 행정관은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서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은 옷 문제로 의상실서 처음 만났다고 했으나 거짓 증언으로 확인됐다. 특검 조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은 당선 이전에도 최순실씨가 운영하는 의상실서 옷을 맞춰 입었으며 당시에도 이 행정관은 옷 심부름을 했다고 한 매체는 보도했다.

이같이 상당한 의혹이 제기됐으나 법원은 이미 확보된 증거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특검이 수사과정서 확보한 차명 휴대전화와 개통내역, 통화내역 등의 증거가 되레 구속을 막은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 전 행정관은 그간 특검의 수차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다가 특검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에 나서자 224일 출석했다. 그러나 특검 조사에서도 일관되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저도 청와대서 대통령을 거의 5년 모셔봤지만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나라가 나라인지, 청와대가 청와대인지, 조폭 공화국이고, 범죄 집단의 소굴이라고 맹비판했다. 그는 청와대와 국무위원 등을 상대로 대포폰 사용자들을 색출해 박근혜정부 불법 대포폰 비상 연락망을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기꾼들 필수
선거 때 수요

이번 사건으로 수면위로 떠오른 대포폰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조직폭력배 등과 같은 범죄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수요층이 두터워졌다. 개인용 컴퓨터와 다름없는 스마트폰서 개인정보가 새어나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다.

주식 투자자와 기업 임원, 각종 선거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이 혹시 모를 수 있는 사기관의 조사에 대비하거나 사생활, 비밀을 숨기기 위해 대포폰을 찾기 시작했다.

요즘 대포폰 상당수는 알뜰폰 사업자를 통해 개통된 외국인 명의 선불폰으로 파악된다. 외국인 여권 사본만으로 다수의 대포폰이 복제되고 있다. 불법 대포폰 업자들은 알뜰폰 사업자가 선불폰 개통을 신청한 외국인의 입국정보만 조회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한국알뜰폰사업자협회 관계자는 가입자가 다른 통신사에서 선불폰을 몇 개나 개통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알뜰폰 사업자 간 가입자에 대한 정보 공유가 없어 명의 1개만 도용해도 39개 대포폰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이드는 호텔 숙박 신청 시 필요하다고 여권을 회수한 뒤 사진을 찍어 돈을 받고 명의를 판다알뜰폰 사업자 대리점이 다단계 형태로 운영되거나 잠깐 개통만 하고 폐업하는 식으로 불투명하게 운영된다는 점도 대포폰 시장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전체 선불폰 시장의 최소 10%는 대포폰으로 추정된다대포폰으로 둔갑한 선불폰 가격을 35만원 정도로 잡아도 시장 규모가 최소 1000억원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포폰은 사회 곳곳에 광범위하게 스며들고 있다. 불법 유흥업소 운영자와 불법 대부업자, 주가조작 세력 등에겐 필수품으로 통한다. 일부 기업서도 대포폰을 암암리에 쓰고 있다.

뿌리 뽑겠다
호언장담 무색

선거 기간에도 대포폰 수요가 급증한다. 사전 선거운동 등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 생산자단체 회장도 지난해 말 대포폰을 이용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그는 외국인 명의의 대포폰으로 측근과 사전 선거 대책을 논의하거나 대의원들에게 지지 호소 문자를 보냈다.

한 휴대폰 판매업자는 각종 선거기간에는 대량으로 대포폰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일반인도 개인적인 이유로 대포폰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대포폰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미래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당국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미래부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대부분 국가는 명의 없이 선불폰을 이용하도록 한 뒤 범죄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고 있다개통이나 이용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지만 모든 대포폰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대포폰 구매가 스마트폰 개통보다 간단하고 편리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누구나 대포폰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지만 관련 당국서 취한 조치는 전혀 없다스마트폰을 개통하려면 판매 대리점을 방문해 각종 계약서를 써야 하지만 대포폰은 이런 절차도 필요 없다고 꼬집었다.


대포폰을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되진 않는다. 대포폰 이용자를 처벌하는 뚜렷한 법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포폰 이용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대포폰 수요가 줄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포폰을 개설·판매하거나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대포폰을 개설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이용하면 형법상 사문서 위조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스마트폰 확산으로 수요층 급증
외국인 명의 30만원 30분이면 뚝딱

대포폰을 개통하는 데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반면 대포폰 이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차명 휴대폰 사용을 어디까지 불법으로 인정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해 관련 법이 마련되기 어렵다는 게 미래창조과학부의 설명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부모가 자식 명의의 휴대폰을 쓰는 것처럼 차명 휴대폰을 사용했다고 해서 처벌하기는 모호한 사례가 너무 많다금융실명제를 근거로 대포통장 이용자가 처벌받는 것과 상반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포폰 판매업자들은 개인정보를 돈을 주고 사기도 하지만 유출된 개인정보를 몰래 이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당사자도 모르게 본인 명의로 개통된 휴대폰은 없는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볼필요가 있다 당부했다.

지난 20144월 청와대는 대포통장, 대포차, 대포폰 등 이른바 ‘3대 대포악근절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 두 달 전에는 대포폰 단속을 위해 서민생활침해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기도 했다.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통장과 대포차, 대포폰 척결을 위해 정부가 직접 강력 대처에 나선 것. 하지만 대포폰을 뿌리 뽑겠다던 청와대의 호언장담은 박 전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의혹으로 무색해졌다.

솜방망이 처벌
허술한 관련법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가 지난달 31일 뇌물죄 등으로 청구된 구속 영장을 발부함으로써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세 번째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주요 혐의는 뇌물이었지만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이 대포폰을 이용해 최순실씨와 말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점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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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