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주자 검증> ②정치입문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3.27 09:57:53
  • 호수 1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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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vs 흙수저…과연 용수저는?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대선 정국의 막이 올랐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궐위 후 60일 이내 대선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오는 5월9일을 19대 대선일로 공표했다. 대선일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 <일요시사>는 숨 가쁘게 흘러갈 대선 정국서 후보 검증을 갖는 시간을 준비했다. 그 두 번째 항목은 유력 대선주자들의 정치입문이다.

연일 강공 발언을 쏟아내며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한창인 대선주자들의 정치 초년병 시절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선주자 중 누군가는 금수저로, 누군가는 흙수저로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한 링에서 오직 대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 그림자

문 의원은 대학시절 유신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구류에 처했다. 이듬해에는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사법고시 합격통지서를 유치장에서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학생운동 전력으로 인해 판사 임용에 실패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서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의 길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당시 청와대에 들어갈 때 노 전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 ‘정치하라고 하지 말아 달라’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돌연 사퇴하고 아내와 함께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났다. 히말라야 체류 중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들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탄핵 대리인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청와대에 재입성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재단법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이후 19대 총선,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2012년 당시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대선주자로 발돋움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자대결구도를 만들었다.

당시 대선에서는 100만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후 5년이 흐른 현재 30% 이상의 고공 지지율 행진을 이어가며 ‘문재인 대세론’을 이어나가고 있다.

[안희정]
김덕룡 비서부터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위해 자퇴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검정고시 합격 후 1983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4학년때 고려대 내의 운동권 서클 14개를 통합해 애국학생회를 조직했다.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돼 10개월 동안 수감됐다. 전과 기록은 취업을 하려던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안 지사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학교 2년 선배 김영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1989년 1월, 안 지사에게 국회의원 비서 자리를 소개해줬다. 안 지사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실장직을 수행했던 김덕룡 의원의 의원실로 출근했다. 하지만 이듬해 3당 합당이 이뤄지면서 안 지사는 김영삼 총재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꼬마민주당(통일민주당)’서 당직자 생활을 이어나갔다. 1991년에는 사직서를 내고 창원 노동복지회관을 짓는 공사장서 2달간 건설 일용직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1992년 정계를 떠난 뒤 그는 출판사 영업부장으로 일하면서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복학해 학업을 마쳤다.

이후 14대 총선서 낙선한 노 전 대통령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캠프의 행정팀장, 정무팀장을 맡으면서 참여정부 출범에 공신역할을 했다.


문, 참여정부 황태자…초선부터 잠룡으로
보좌진 출신 안희정, 한때 부침 겪다 성장

하지만 불법대선자금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하면서 그는 부침을 겪었다. 참여정부의 출범에는 일조했지만 공직은 사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안 지사에 대해 “나 대신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 했다”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2010년 지방선거서 충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충남 역사상 최초의 민주당 출신 도지사였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서 당시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정치권은 굴곡의 시간을 보낸 안 지사가 ‘대망’의 꿈을 이룰지 주목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님 파워

경북 안동 출신의 이재명 성남시장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1976년 성남으로 이사 온 그는 불과 14세의 나이에 상대원 공장의 목걸이 공장에 취업했다. 그는 저서에서 “납과 염산에 얼굴을 묻고 살았다. 납 같은 게 몸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 시장은 산업재해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공장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한 뒤 사법고시까지 패스했다. 그는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 시장은 저서에서 “주변 동료들에게 인권변호사를 하겠다고 너무 설레발을 쳐놓았던 터라 성적을 떠나 판사도 검사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성남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경기도 이천시와 광주시에서 노동상담소장으로 활동했다. 1994년에는 성남참여연대를 결성했고, 2000년에는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청원운동을 벌이다 시의회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은 지 14년 만의 일이다. 성남서 2번의 낙선을 경험한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51%의 지지율을 얻고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시장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 3년 만에 4500억여원의 빚을 갚았다. 청사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무상급식과 ‘기본소득’의 일종인 청년배당을 시행했다.

그의 활동에 성남시의 마음도 움직였다. 지난 2014년 재선에 도전한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해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탄핵정국서 다른 대선 후보와 다르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주목받았다. 또한 선명성을 드러내면서 한때 대선주자 지지율 2위를 꿰차기도 했다. 현재는 지지율 정체 국면인 가운데 당내 경선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안철수]
지난 대선 때 데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부산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박사과정을 밟던 중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7년여간 이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를 세워 개인에는 백신을 무료로 보급하고, 기업에는 사용료를 받는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이후 안철수연구소에서 물러난 안 전 대표는 MB(이명박)정권 시절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정치권에 ‘안풍’이 분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때였다. 당시 안 전 대표는 지지율 50%가 넘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출마를 망설이던 그는 결국 박원순 변호사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박 변호사는 서울시장에 올랐다.

이듬해 제18대 대선부터 안 전 대표는 대선주자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2년 9월19일 안 전 대표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안 전 대표는 박 전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대결서 박 전 대통령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대선주자였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과정서 여러 가지 마찰을 빚으면서 2012년 11월23일에 돌연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듬해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서 60.5%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안 전 대표는 본격적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했다.

안철수, 사업가서 정치인으로
유승민, 좋은 집안서 잘 자라


이후 친문(친 문재인)패권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온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창당 직후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서 의석 38을 가져오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대선 풍향계’로 통하는 호남을 석권했다. 현재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때만큼의 지지율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안 전 대표가 주장하는 대로 결국 ‘문재인-안철수’ 양자대결 구도로 흐른다면 이번 대선은 예측불허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YS의 권유로

경남 창녕서 태어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대구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울산에 내려가 일당 800원짜리 현대조선소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보고 세상을 바꿀 결심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훗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청주지검을 시작으로 부산지검, 광주지검, 서울지검서 검사로 재직한 홍 지사는 1988년 전두환 측근 비리를 척결했다. 1991년 광주지검 강력부 강력계 검사로 부임하고 나서부터는 조폭들의 저승사자가 됐다.

홍 지사는 지난 2013년 2월 그가 술을 끊게 된 계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1991년 3월부터 여자가 있는 술집은 안 간다”며 “그 당시 광주엔 룸살롱을 거의 건달들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검사가 그런 곳 가서 술 마시고 무절제한 행동을 하면 건달들에게 약점을 잡힌다”고 말했다.

그가 검사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 사건은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이다. 그는 ‘6공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등 권력 실세들을 구속 기소해 명성을 얻었다. 이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됐고, 그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1995년 10월 정계 진출을 시사하면서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가 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도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해 제15대 총선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선거법 위반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잃었지만 재보궐 선거를 통해 1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승승장구한 그는 17·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2012년 11월27일 대선 후보로 출마한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후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권영길 후보를 누르고 경남도지사에 당선됐고, 2014년 지방 선거에도 이겨 연임에 성공했다.

도지사로 활동하던 중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지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재판이 열린 지난달 16일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곧바로 홍 지사는 자유한국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로 인한 반사이익도 얻었다. 현재 홍 지사는 보수진영 단일화에 나서면서 대권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승민]
이회창과 인연

1958년 대구서 출생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초·중·고등학교를 대구서 마쳤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한 유 의원은 위스콘신대학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수석연구위원으로 12년간 일했다.

한국개발연구원서 연구위원 시절 당시 연구원이었던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과의 인연은 익히 알려졌다. 현재도 두 사람은 정치적 행보를 같이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에 있던 유 의원을 정계로 끌어들인 사람은 2000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였다.

이에 유 의원은 “정치권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법조계 출신 정치인이었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통해서였다”며 “이를 계기로 마흔두 살이던 2000년 2월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캠프에서 정책개발, 메시지 담당, 연설 담당을 맡았다. 그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이번 대선서 유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이 전 총재의 낙선 이후 유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고, 17대 총선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2005년 1월 박근혜 당 대표 비서실장직을 맡았고 같은 해 10월 비례대표직을 던지고 대구 동구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지역구 의원으로 거듭났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서 박근혜 후보의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저격수로 활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 의원을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만든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근혜정부서 유 의원은 친박서 배제됐다. 지난 2015년 2월 원내대표에 선출된 유 의원은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이후 친박 공천 학살 과정서 유 의원은 탈당, 무소속으로 대구에 출마해 전국구 정치인이 됐다. 특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서 유 의원은 전면에 나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면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탄핵 이후 지지율 정체 국면은 유 의원이 대선 승리를 위해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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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