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초월’ 병역기피 수법들 천태만상

“예나 지금이나” 군대 안 가려고 별의별 짓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를 져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상상을 초월하는 병역 기피 수법들이 갈수록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만 19세가 되면 징병검사를 받아 1∼3급은 현역으로, 4급은 공익근무요원으로 각각 병역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이때 신체등위 5∼6급을 받게 되면 24개월간 군대 ‘짬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병역 의무에서 해방된 이들은 때론 ‘신의 아들’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때만 되면 터지는 병역비리 사건 때문에 주기적으로 의혹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병역비리 수사망을 운 좋게 피했더라도 이런 의혹은 본인이나 부모 앞길에 장애가 될 때도 있다. 면제자들은 평생 ‘의혹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기상천외
수법도 발전

‘꽃다운 20대를 희생해야 한다’는 병역 공포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를 악물고 24개월을 버티는 방법과 고의로 병역을 기피하는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특히 후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병역비리 사건을 꼼꼼히 더듬어 보면 여기에도 세월에 따른 유행과 트렌드가 존재하는데, 그 수법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1960~70년대에는 장기간 병역을 회피한 뒤 ‘고령’ 등을 사유로 한 병역면탈 수법이 유행했다. 입영 대상자들은 대학 재학 또는 대학원 입학 등으로 군에 가야 할 시점을 늦췄다.

이렇게 시간을 끌어 당시 31세(만 30세)였던 입대 제한연령을 넘긴 뒤 ‘장기 대기로 인한 소집면제’ 등으로 군 복무를 피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제대로 된 병무전산시스템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70년대 초부터 80년대 정부가 체계적인 병역시스템 수립에 나서면서 더 이상 ‘고령’을 이유로 군복무 회피가 힘들어지자 내과적 질병을 이용한 수법이 유행했다.

멀쩡한 어깨수술은 고전
점점 엽기적으로 진화중

폐결핵, 만성간염, 관절염, 중이염 등으로 당시 의료 기술로는 확인하기 힘들고 환자를 바꿔치기하기 쉬운 병들이었다. 이런 방법은 최근까지도 유행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산업기능요원과 영주권 취득을 통한 병역면제 수법이 단골 메뉴였다. 업체에 거액을 주고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법상 채용이 금지된 4촌 이내 혈족을 산업기능요원으로 뽑는 사례도 있다. 이렇게 선발된 이들은 대부분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으며 출근한다고 해도 일은 하지 않고 업무와 관련 없는 자기 일을 하면서 복무기간을 채운다. 재입대 곤욕을 치른 후 제대한 가수 ‘싸이’가 이에 해당된다.


또 국외이주와 영주권 취득 등 장기간 외국에 체류함으로써 입대 제한연령을 초과해 면제받는 수법도 통용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외과적 수법이 새롭게 부각된다. 최근 경기도 일산경찰서가 수사 중인 어깨탈구수술을 통한 병역 면제는 무릎·디스크 수술과 함께 전통적인 ‘신체 훼손’ 수법에 들어간다. 즉 자기 신체를 고의로 훼손해 병역을 감면받는 것이다.

‘미친 척’
정신질환 많아

지난 5일 병무청에 따르면 특별사법경찰관이 도입된 지난 2012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병역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다 적발된 건수가 203건에 달했다.

2012년 9명, 2013년 45명, 2014년 43명, 2015년 47명, 2016년 54명, 2017년 1월 5명 등으로 나타나 꾸준히 늘고 있는 셈이다. 종류별로는 정신질환 위장이 49건(24%)으로 가장 많았다. 고의 문신이 47건(23%), 고의 체중 증·감량 46건(23%), 안과 질환 위장 20건(10%), 기타 41건(20%) 순이었다.

체중을 갑작스럽게 늘리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게 병역의 의무를 피하는 수법으로 이용되지만 단속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달 인천지법 형사항소4부(김현미 부장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4)씨 등 대학생 보디빌더 2명에게 징역 8개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A씨는 2012년 8월 인천·경기지방병무청의 징병검사를 앞두고 90㎏인 몸무게를 123㎏까지 늘려 4급 판정으로 병역의무를 감면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B씨도 2013년 11월 징병검사를 받기 전 75㎏인 몸무게를 109㎏으로 늘려 4급 판정을 받아 현역 복무를 회피했다.

온몸에 문신하는 것도 대표적인 병역 회피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꼼수다. 2015년 11월 서울지방병무청에 신체검사를 받은 C(당시 19세)씨는 병역 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온몸에 문신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병역기피 목적을 전면 부인했다. 단순히 문신에 관심이 많아 어렸을 때부터 새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온몸에 문신을 새기면 현역병 입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추가로 문신해 미필적으로나마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1월 24일 의정부지법은 C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밖에도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수법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귀신이 보인다”며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행세한 김모씨. 정신질환을 이유로 공익요원 대상자가 됐지만 거짓이 드러나 지난해 8월 대법원서 징역 1년이 확정됐다.


이모(21)씨는 징병검사를 앞두고 보육원에 위장 등록해 시설 생활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병무청에 제출했다. 병역법에 따르면 부모가 없거나 아동양육시설에 5년 이상 보호된 사람은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모(23)씨는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는데도 불필요하게 척추 수술을 받았고 지난해 8월 척추 운동이 제한된다는 사유로 군 복무가 면제됐다. 사고로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은 또다른 이모(23)씨는 손가락을 다시 절단해 면제 판정을 받기도 했다.

손가락에
고환도 제거

붙이는 멀미약을 눈에 발라 동공운동장애를 위장해 병역을 기피한 사례가 처음으로 적발되기도 했다. D씨 등은 2009년과 2010년 키미테를 눈에 발라 동공을 크게 한 뒤 “축구공에 맞았다”며 동공운동장애가 발병한 것처럼 속여 의사에게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이들은 이렇게 발급받은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해 재신체검사를 신청하는 수법으로 병역을 감면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판정됐다.

D씨 등은 멀미약에 들어있는 성분이 눈에 닿으면 일시적으로 동공이 커지고 시력을 떨어뜨려 동공운동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들은 서울 송파에 있는 한 방문판매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키미테를 눈에 바르면 동공이 커진다’는 정보를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요즘 멀미약을 눈에 발라 안과질환을 위장하는 방법은 ‘애교’ 수준이다. 발기부전제를 주사하고 양쪽 고환과 전립선을 적출한 이도 있다.

병무청 5년간 203건 적발
적발시 5년 이하의 징역형

여러 명이 모여 정보를 나누면서 병역을 기피하는 편법도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편법이 널리 퍼져 병무청 단속이 들어오겠다 싶으면 금세 다른 수법이 등장한다. ‘환자 바꿔치기’ 병역 비리를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는 브로커도 병역연기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입대 예정자들을 모았다. 이런 사이트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취지인 만큼 단속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해 E씨는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발기부전제를 주사한 후 양쪽 고환과 전립선을 적출하다 병무청에 걸렸다. F씨는 고의로 아토피 환부를 자극하고 치료를 방치해 군 면제를 시도하기도 했다.
 

인터넷서 병역 면탈을 모의하거나 면제 사실을 자랑하다 걸린 사례도 있다. G씨와 H씨는 인터넷에서 4급 공익 판정을 받기 위해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고 실행에 옮겼다.

I씨는 인터넷에 “아픈 데 없고 정신 멀쩡한데 군 면제 받았다”고 자랑하는 글을 올렸다가 병역 면탈 행위를 들켰다. 인터넷 커뮤니티서 병역기피 글을 본 J씨는 미국 중학교 중퇴한 뒤 다른 중학교에 입학했으면서도 학력을 속여 군대에 가지 않으려다 적발됐다.

인터넷에는 입영을 연기하거나 병역 기간을 줄이는 방법을 묻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병역 비리글은 바로 지우겠다’는 경고문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회원 가입제 카페 뿐 아니라 포털사이트에도 ‘입영 연기’ 관련 게시물이 줄줄이 검색된다.

국방의 의무를 피하려고 국적까지 바꾸는 사례들도 많다 보니 뜻하지 않게 외국 언론의 조명을 받는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이란 국영 프레스TV가 입대를 피하려 국적을 바꾸는 세태를 알리는 기사까지 내보낼 정도다. 이 방송은 서울발 보도를 통해 “매년 수천명의 한국 젊은이가 징병을 피하려고 국적을 바꾼다”며 “지난 5년간 8000명이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으로, 3000명이 캐나다와 일본 국적으로 변경했다”고 전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몸에 문신을 과도하게 하거나 신체를 갑작스럽게 증·감량하는 것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중대 범죄”라고 강조했다.

국방의무 외면
“처벌 강화해야”

그러면서 “현행법상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신체를 손상하거나 속임수를 쓴 사람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외면, 국민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범법 행위에 대해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헌법상 의무인 병역의무 면탈 범죄를 뿌리 뽑을 때까지 지속적인 수사와 단속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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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