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8명은 지금…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며 남긴 ‘성완종 리스트’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인물은 8명. 하지만 그들은 석연찮은 이유들로 한결같이 법의 철퇴를 피해갔다. 얼마 전 마지막 남아 있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마저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성완종 리스트’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게 됐다. 2년에 걸친 사건이 마무리돼 가는 지금 그들의 상황이 궁금하다.

2015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경남기업이 자원개발 사업에 참여하면서 받은 성공불융자에 특혜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경남기업 대주주인 성완종 회장의 정관계 청탁, 로비 여부를 알아볼 방침이었으나 전 회장인 성 전 회장이 영장실질심사 전 자살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종료됐다.

파장 컸지만
결과는…

이후 성 전 회장의 시신 수습과정서 상의 주머니에 있던 이름과 금액이 적힌 금품 메모지가 발견됐다. A4용지 8분의 1 크기로 특정인의 이름과 금액 등 모두 55자가 적혀 있었다. 메모에는 김기춘, 허태열 전 비서실장 외에 ‘유정복 3억, 홍문종 2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의 이름도 적혀 있었으며 언론은 이를 ‘성완종 리스트’로 부르며 보도했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돼있던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항소심서 무죄를 받았다.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이 높지만 홍 지사로서는 법적 부담을 덜었다는 점에서 대선 행보에 뛰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이상주)는 지난 16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홍 지사에게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홍 지사에게 직접 돈을 전달한 사람은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고 윤씨가 성 전 회장에게서 받은 돈을 홍 지사에게 준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윤씨 진술밖에 없다”며 “그러나 1억원을 전달하기 위해 홍 지사의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을 찾아간 과정이나 집무실 구조 등에 대한 윤씨의 진술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홍 지사가 성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을 동기도 뚜렷하지 않고, 윤씨가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며 상고할 뜻을 내비쳤다.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꼽히는 홍 지사는 선고 후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대한민국은 천하대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며 “절망과 무력감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당내에선 검찰 기소 직후 정지된 홍 지사의 당원권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8명 중 유죄 판결은 현재 ‘0’
모두 무혐의…부실수사 논란

홍 지사는 무죄를 선고받은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며칠 전 경남도 서울사무소 도지사실에 있는 행운목 꽃이 활짝 피었다”며 말문을 뗐다. 이어 “10년에 한 번 필까 말까 하는 꽃이라는데 이번에 활짝 피었다”며 “이 행운이 천하대란에 휩싸여있는 대한민국에 왔으면 참 좋겠다”고 덧붙였다.

무죄 선고 이후 보수층 대선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자신의 정치 행보에 대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가 쏠린다.


그간 홍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적 성향 등 자신의 견해를 자주 밝히는 이른바 ‘페이스북 정치’를 펼쳤던 바 있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되고 1심서 유죄를 선고받은 후부터는 페이스북 활동을 잠시 접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도 유죄를 인정한 1심과 달리 2심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핵심 쟁점이었던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생전 인터뷰 녹취록 가운데 이 전 총리에 관한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금품을 공여했다는 성완종의 사망 전 인터뷰 가운데 이 전 총리에 관한 진술 부분이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서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성 전 회장이 남긴 인터뷰 녹취록 전체의 증거능력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 전 총리에 대한 부분은 증거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취지다.

형사소송법상 증거는 오로지 법정서 이뤄진 진술만 인정되지만 예외로 당사자가 사망한 사유 등으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에는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진술 또는 작성된 것이 증명된 때에 한해 관련 서류를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규정돼있다.

재판부는 당시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에 대해 허위의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성완종은 당시에 자신에 대한 수사 배후가 피고인이라 생각하고 피고인에 대한 강한 배신과 분노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선고 직후 이 전 총리는 “이런 문제로 심려를 드린 것에 국민께 대단히 죄송하다”면서도 “과도하고 무리한 검찰권 행사는 앞으로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혐의 없거나
줄줄이 무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휘말렸을 무렵 검찰 수사에 대비해 민감한 내용들이 담긴 서류들을 모조리 파기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최근 그의 자택을 압수수색을 했을 때에도 최근 자료들은 거의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에도 핵심 증거들을 사전에 없앴거나 다른 장소에 은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실장 주변 인사와 그의 서울 평창동 집 이웃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해 4∼5월 김 전 실장은 측근들을 시켜 자신의 과거 업무나 행적이 담겨 있는 서류들을 모두 찢은 뒤 내다 버리도록 했다. 버려진 박스가 4~5개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동 주민 A씨는 “김 전 실장 집에서 찢겨진 종이뭉치들이 박스에 가득 담겨서 나오는 모습을 지켜봤던 사람들이 ‘이거 사진 찍어둬야 하는데…’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버리기 힘든 고가 물품들의 경우 제3의 장소에 옮겨두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살하지 않고
살아 폭로했다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을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는 김 전 실장은 쪽지에 ‘김기춘 10만불 2006.9.26. 독일 벨기에 조선일보’라고 적혀 8명 중 유일하게 돈의 액수와 날짜, 장소까지 특정됐다.

성 전 회장은 숨지기 직전 인터뷰서 “2006년 9월 김기춘씨가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독일에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서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9월26일 해외에 있었다. <조선일보> 기사가 난 날짜라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돈 준 날짜를 기재해야지 신문기사 날짜를 쓴 것은 ‘작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당시 독일재단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모든 비용이 그쪽에서 나왔다”며 “출국하기 직전인 9월21일 5000유로를 환전한 환전 영수증이 있다. 10만불을 받았다면 무엇 때문에 환전을 하겠냐”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성 전 회장의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엔 “맹세코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검찰은 김 전 실장에 대한 서면조사를 한 뒤 공소시효 완성을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캠프 3인이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 ‘부산시장 2억 원’으로 지목된 서병수 부산시장도 의혹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홍 의원과 유 시장은 박 캠프서 직능과 조직 담당을 했으며 서 시장은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맡으며 선거대책총괄본부장을 지낸 바 있다.

홍 의원은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황당무계한 소설”이라며 “단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어 성 전 회장이 2012년 대선 자금으로 2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선 “2012년 대선 선거운동 당시 성 전 회장은 대통령선거캠프 조직총괄본부서 근무한 적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혐의 벗은 홍준표… 본격 대권행보 가동
김기춘 성완종 뇌물 관련 서류파기 들통

아울러 “(대선 당시) 성 전 회장은 선거캠프 조직총괄본부에 어떠한 직함을 갖고 있지 않았고, 조직총괄본부서 근무했던 20명의 국회의원, 200명의 상근 직원, 조직총괄본부에 소속된 60만명 명단에도 없다”며 “의혹을 제기한 기사들은 억지로 퍼즐을 끼워 맞추려 해도 끼워 맞춰지지 않는 미스터리 그 자체”라고 언급했다.

그는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신속하고 투명한 수사를 촉구한다”고도 했다.

유 시장 역시 “(나는 ‘성완종 리스트’에 적힌) 3억원이란 숫자와 관련이 없다. 무슨 이유로 그런 보도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말하지 않은 부분이 보도되고 그래서 필요하다면 전체적으로 직접 제가 나서서 얘기하는 것이 오해가 없다고 본다”며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뜻을 밝혔다.

유 시장에 따르면 성 전 회장과 19대 국회에 들어와 만난 동료 의원 관계로 2012년 대선 당시 자유선진당 원내대표였던 성 전 회장과 양당 합당을 놓고 간혹 의견을 주고받긴 했으나 대선 자금과 관련한 논의는 없었다.

서 시장 또한 “이번 일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성 전 회장이 어떤 의도로 팩트도 없는 메모를 남긴 건지 궁금할 뿐”이라고 답했다.

검찰은 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등 친박(친 박근혜) 핵심 인사들에 대해서 전부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이러한 수사 결과에 대해 일각에선 축소 수사, 부실 수사 논란이 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드러난 결과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공교롭게도 권력의 실세라 할 만한 인물들에 대해서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해프닝으로
영원히 묻히나

결국 여권서 기소된 사람이 성완종 자살의 최초 계기가 되었던 자원외교에 대한 수사를 지시한 이 전 총리, 그리고 리스트서 적힌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친이(친 이명박)계인 홍 전 지사라는 노골적인 수준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 전 총리에 이어 홍 전 지사까지 항소심서 무죄를 받으면서 ‘성완종 리스트’ 8명 중 유죄 판결은 현재 ‘0’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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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