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수위 이른 ‘신종 괴담’ 7

흉흉한 민심 더 흉흉하게∼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나라가 뒤숭숭한 시기. 갖가지 괴담과 루머들이 판을 친다. 그럴싸한 소문부터 허무맹랑한 괴담까지 그 종류도 여러 가지. <일요시사>에서는 들려오는 괴소문들에 대해 정리해 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 소식이 중국 언론사 인터넷판 메인 화면서 모두 사라졌다. 지난 16일 관영매체인 런민망과 신화망을 비롯해 홍콩 봉황망 등 각종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선 김정남 피살 소식을 찾아볼 수 없다.

간혹 메인화면에 볼 수 있는 김정남 피살 관련 뉴스는 전날 있었던 중국 외교부 브리핑 내용이 전부이며 이마저도 외교부 공식 홈페이지의 브리핑 녹취본을 그대로 링크한 수준이다.

[탄핵 국면전환?]
박근혜 괴담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서 김정남 피살사건에 대해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조사하고 있다”며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기사 검색을 통해서도 전날 피살 용의자인 20대 여성이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됐다는 속보성 기사를 제외한 분석성 기사나 칼럼은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중국 CCTV 역시 이날 오전 뉴스에서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중국 외교부 발표 내용만 간략히 다뤘을 뿐이다.


김정남 기사 통제는 비단 언론사 사이트 뿐만 아니라 검색 사이트도 마찬가지여서 중국 최대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서 검색해봐도 김정남과 관련된 유의미한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언론을 틀어쥐면서 김정남 관련 뉴스는 사라졌지만 중국 SNS 상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음모론’이 확산되는 현상도 발견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SNS ‘웨이보’서도 김정남 피살 배후에 탄핵 국면을 전환하려한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측이 있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중국 네티즌은 “김정남 피살은 정치여론적 측면서 어느 정도 박근혜 대통령의 추문이 상쇄되는 효과를 가져왔다”며 박 대통령에게 동기가 있음을 암시했다.

다른 네티즌은 “박 대통령이 자신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오직 북한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며 “김(정남)을 건드리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라고 주장했다.

직접적으로 한국이 연관됐다고 주장하지는 않아도 박근혜정부가 김정남 피살에 상당한 이익을 봤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 대통령 탄핵 직후 발생한 수많은 국내 모순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이익이 있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자신의 친형을 죽였다는 죄명을 씌울 수 있으며 북한 지도부 내부를 흔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네티즌은 “김정남이 박근혜의 대북 비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김정남은 죽음 역시?”라며 음모론을 강하게 암시했다.

[군사적 충돌설]
4월 전쟁 괴담

박 대통령이 남북간 군사적 충돌을 계획하고 있다는 이른바 4월 전쟁설이 대두됨에 따라 그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4월 전쟁설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관 출신의 최경환 의원(국민의당·광주북구을)이 지난해 국회 국민의당 원내대책회의서 예비역 장성의 말을 인용해 처음 제기했다.

당시에만 해도 큰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연쇄적으로 폭로되면서 4월 전쟁설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위기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역사적으로 숱한 정치 지도자들이 내부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전쟁 등 외부적 요인을 끌어온 사례에 주목한다.
 

최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을 권유한 것에 대해 “참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대통령이 문제”라며 “위기상황 앞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자극을 반복하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 같다”며 외교 안보 분야에 종사했다는 한 예비역 장성의 정세분석 문자메시지를 소개했다.

이 메시지에 따르면 예비역 장성은 “나는 10·1 기념사를 통해 박 대통령이 대북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단정한다”며 “대통령의 다음 수순은 북한이 한미연합군에 의한 보복 빌미를 줄 수 있는 도발을 해오도록 계속 자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장성은 “박 대통령 계획대로라면 상반기까지 남북간 전쟁에 준하는 군사적 충돌이 있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북한의 국제사회 고립이 성공했고 제재 압박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판단을 통해 전쟁으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박 대통령은 당시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북한의 핵 도발 야욕을 끝내게 하려면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하나 되고 장병 여러분들이 단합된 각오를 보여줄 때, 북한 정권의 헛된 망상을 무너뜨릴 수 있고 국제사회도 우리에게 더욱 강력한 힘을 모아줄 것”이라며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것이다.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탄핵 관련 박 대통령 루머 급증
김정남 피살 개입설에 전쟁설도

헌법 재판관 2명이 탄핵심판 기각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탄핵 기각설’, 재판관 3명이 대통령 파면을 주도하고 있다는 ‘파면 주도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루머에는 재판관의 실명과 사진까지 실려 혼란을 가중시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합리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루머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재판관들은 최후변론 등 심리 절차를 모두 마친 뒤 평의가 열려야 비로소 각자 최종 판단을 밝힐 수 있다.
 


평의가 열리기 전까지는 재판관들이 서로의 의견을 알 수 없는 구조다. 그러나 정치권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아전인수식 정치 공세로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각설, 파면설 ]
헌법재판소 괴담

새누리당 일부 의원은 ‘헌재가 심리 진행에 신중해야 한다’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 손범규 변호사는 새누리당은 탄핵 기각을 위한 TF를 만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 대표들도 헌재를 향해 3월13일 이전에 탄핵 결정을 내리라고 압박에 나섰다. 이들은 “탄핵이 상황을 알 수 없게 됐다”며 촛불 집회 참석을 촉구하기도 했다. 법조계도 갈라졌다. 원로 법조인들은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탄핵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며 광고까지 냈다.

헌재는 탄핵심판을 둘러싼 억측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이정미 헌법소장 권한대행은 최근 변론서 “양측은 심판정 안팎에서 재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언행을 삼가 달라”고 당부했다.

[흔들리기만 하면]
전국 지진 괴담


지난 13일 새벽, 대전서 비교적 크지 않은 규모(1.9)의 지진이 발생한 것을 두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가 온종일 달아올랐다. ‘대전 지진’이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서 한동안 상위권을 차지하며 규모에 비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기상청은 규모 2.0 이상 지진의 경우 발생 사실을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언론기관 등 유관기관과 시민에게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등으로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날 지진은 기준에 미치지 않아 별도로 통보하지는 않았다. 기상청 관계자는 “진앙 깊이가 8∼9㎞로 비교적 얕아 예민한 사람은 흔들림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진 직후 새벽 시간인데도 40여명의 지역 주민이 소방본부에 관련 문의 전화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날이 밝자 온라인에선 검색 행렬이 이어지면서 오후 한때까지 대전 지진과 관련한 단어가 포털사이트와 소셜미디어서 다시 회자됐다.
 

이런 현상은 통보문이 따로 없어 관련 정보를 파악하려는 의도에 더해 지진에 민감해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몇 개월 사이 경북 경주와 울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지진이 잇따르면서 피해가 작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안감을 반영하듯 일각에선 ‘지진이 아닌 다른 진동 같다’는 의혹 제기 글이나 ‘군부대서 탄내(타는 냄새)가 난다는 댓글이 자꾸 없어진다’는 등 괴담도 목격됐다. 여기에 더해 최근 불거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 안전 여부까지 연결 지으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누리꾼도 보였다.

대전시 관계자는 “특별한 이상 징후는 없는 데다 인명·재산피해도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규모 1.9 지진은 극소수를 제외하곤 전혀 느낄 수 없는 정도의 충격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 낭설이 정설로 ]
자궁경부암 괴담

자궁경부암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백신을 통해 예방할 수 있는 암종이지만 국내에선 접종률이 높지 않다. 부모들 사이서 떠도는 ‘백신 괴담’ 탓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제약사의 로비로 맞지 않아도 될 백신을 맞는 것’ ‘의사는 자신의 자녀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다’ 등 낭설을 적잖이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낭설이 ‘정설’로 굳어지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자궁경부암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자칫 딸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앗아가는 꼴이 될 수 있다.

백신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2013년 일본서 나타난 ‘백신 접종 후 후유증’ 사건 이후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와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과 이상반응은 상관관계가 없고, 심리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결과를 내렸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자궁경부암 발생의 주요 원인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이다. HPV 아형은 약 100여종 이상으로, 암과 연관성이 높은 고위험군과 암과 연관성은 낮지만 양성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저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자궁경부암서 발견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의 약 70%가 고위험형 아형인 인유두종 바이러스 16번과 18번이다. HPV에 감염됐다고 바로 암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초기엔 감염돼도 특별한 자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감염 후 약 80% 가량은 1∼2년 내에 자연 소멸된다. 반대로 소멸되지 않고 감염이 반복되면 자궁경부 세포변화가 유발될 우려가 높아진다. 이를 방치하면 일부가 결국 자궁경부암으로 악화된다.

장하균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자궁경부암은 초기 증상이 없다보니 바이러스를 미리 차단하는 게 최선”이라며 “더욱이 자궁경부암은 여성암 사망 주요 원인 9위를 차지할 정도로 치명적이어서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유일한 예방책이 ‘자궁경부암 백신’이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소름 돋는 루머 SNS 확산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부인암학회는 관련 임상연구 분석 결과 적정 연령에 백신을 접종하면 대상자의 90% 이상이 자궁경부암 예방효과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15년 우리나라 12세 여아 25만3000명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백신 2회 접종의 비용효과를 분석한 결과 서바릭스는 가다실과 비교해 추가적으로 CIN1(경증의 자궁경부상피이행증) 증례 2776건, CIN2·3(중등도 및 중증 자궁경부상피이행증) 증례 718건, 자궁경부암 증례 244건 및 사망 99건을 예방했을 것으로 평가됐다.

300만원을 주웠으니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내용의 글이 신종 인신매매 수법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3일, 페이스북 페이지 ‘안산 말해드립니다’와 ‘산본 말해드립니다’에는 “반월역 쪽에서 300만원을 주웠으니 주인을 찾아가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익명의 제보자는 “금액이 크다보니 주인에게 돌려주자고 결심이 서서 이렇게 메시지를 보낸다. 보상금을 20%까지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카카오톡 아이디까지 공개하며 “주인에게 돈이 돌아갈 수 있게 부탁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지역별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다고 해 주인이 혹시나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까운 지역의 페이지라 메시지를 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음날 이 글과 동일한 내용의 글과 사진이 페이스북 페이지 ‘경남대학교 대신 말해드립니다’에 올라오자 신종 인신매매 글이 아니냐는 괴담이 온라인상에서 확산됐다. ‘산본 말해드립니다’ 측 역시 “여기저기 (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오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돈에 혹해서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수법도 가지가지]
인신매매 괴담

돈의 주인을 찾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에 처음으로 제보하고 나섰던 익명의 제보자는 “처음 올린 곳 외에 다른 곳은 사칭 제보”라며 “주인을 찾았다”고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변경해놓은 상태다.

마른 해산물에 발라 놓은 마취제를 이용, 사람들을 납치한 뒤 장기매매를 한다는 이른바 ‘에틸에테르 괴담’이 최근 휴대전화 문자와 카톡 등을 통해 퍼지고 있다.

지난 18일 광주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는 지인으로부터 “최근 에틸에테르 마취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문자 메시지에는 “길거리서 상인이 마른 해산물을 권하는데, 절대로 냄새를 맡으면 안 된다. 해산물에는 일종의 마취제인 에틸에테르가 발라져 있어 냄새를 맡는 순간 정신을 잃게 되고, 결국엔 납치돼 장기매매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괴담은 ‘중국서 넘어온 신종 범죄’로 알려진 것으로, 이미 수년 전 많은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지금도 잊혀질만하면 다시 떠오르곤 하는 이야기다.

인터넷 포털 등에서도 ‘에틸에테르’라고 검색만 해도 과거 이 괴담이 유행했던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문자로 유포된 괴담처럼 마취제로 정신을 잃게 한 뒤 장기매매를 하는 사건은 전국 어디서도 발생한 적이 없다”며 “말 그대로 괴담 수준인 만큼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실게임 양상]
구제역 괴담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의 축산농가 모두 백신 접종을 했는데도 항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물백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는 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농가서 반발하고 나서는 등 진실게임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7일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정읍 농가 한우 20마리를 검사한 결과 한 마리만 항체가 형성돼있어 항체 형성률이 5%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전날에도 “구제역이 발병한 보은 농가 젖소 21마리를 혈액검사한 결과 항체 형성률이 19%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그동안 백신 접종을 한 소의 평균 항체 형성률이 97.8%라고 밝힌 것과는 차이가 크다.

정부는 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의심하고 있다.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다른 소 농가도 구제역 접종이 부실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백신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접종을 하지 않은 ‘모럴해저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농장주들은 백신 접종을 제대로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구제역 판정을 받은 정읍의 한우 농가 농장주는 “정부가 구제역 발생의 책임을 농가에 돌리는 것 같아 억울하다”며 “소의 생애주기를 잊지 않고 4∼5개월마다 접종했고 냉장 백신을 실온에 놔뒀다가 접종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도 제대로 지켰다”고 항변했다.

일각에선 구제역 백신이 효과가 거의 없는 ‘물백신’이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축산당국의 허술한 점검체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식품부는 돼지에 대해선 전 농가를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이상 혈청 검사를 했으나 소는 전체 사육 마릿수의 10% 정도만 표본검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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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