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떠도는 박근혜 망명설 실체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2.05 10:50:53
  • 호수 10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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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트라우마’ 성난 민심 피해 도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마지막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가운데 박 대통령 망명설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검찰에서 기소중지 방침을 세움에 따라 박 대통령이 법망을 피할 길이요원하기 때문. 몰릴 대로 몰린 박 대통령이 과연 망명을 선택할까.

정치권서 처음으로 박 대통령의 망명설을 언급한 사람은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이다. 남 전 장관은 지난달 복수 언론과의 인터뷰서 “대통령 입장에서 가장 현명하게 물러나는 것은 하야 후 망명을 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에 회부돼 피고석에 앉히고 판결하고 그런 절차를 거치면 우리가 부끄러워진다. 해외 도피 재산도 있을 테니 망명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나라 뜨는 게
제일 좋은 방법”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도 박 대통령의 망명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천 대표는 지난달 24일, 국회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탄핵, 어떻게 할 것인가?’ 간담회에서 “어제 어떤 분이 제게 전화를 해서 ‘다음 달 한중일 정상회담에 박 대통령이 절대 가선 안 된다’”고 했다“며 ”저도 같은 생각이다. 지금 외국에 나가면 나라 망신시킬 일만 있다“고 응대했다”고 밝혔다.

천 전 대표는 “그러자 그분은 ‘아마 박 대통령이 출국하면 안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며 “우리 당이 며칠 전(박 대통령의) 출국금지 당론을 정했지만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다”며 박 대통령의 망명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틀 전인 지난달 22일 광주서 열린 기자간담회서도 “박 대통령은 사퇴 순간 구속될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자진 사퇴는 없을 것 같다. 박 대통령 본인으로서는 망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 전 장관과 천 전 대표 모두 같은 망명설을 언급했지만 정반대 입장이다. 남 전 장관은 ‘더이상 국민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박 대통령이 망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천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망명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이 사법처리를 피해 망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윤호중 정책위의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 사법처리 수위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달 29일 윤 의장은 “기밀누설, 뇌물죄, 직권남용, 강요죄, 기밀누설 총량은 무기징역이고 유기징역을 선택해도 45년”이라며 “법률가에게 자문을 구해 하한으로 감안해도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고 설명했다.

하야하고? 일부 의원 가능성 언급
가면 어디로…이승만처럼 하와이로?

현재 검찰은 공소장 주요 범죄 사실에 대통령을 공모혐의의 피의자로 규정했다. 헌법상 불기소 특권을 가진 박 대통령이 당장 대통령 신분을 유지한 상태로 기소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야’ 혹은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순간 박 대통령은 구속 및 기소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검찰은 박 대통령의 일부 혐의에 대해 ‘시한부 기소중지’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시한부 기소중지는 특정 시기까지 기소를 중지하는 것으로, 헌법상 보호를 받고 있는 대통령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소를 미룬다는 의미다. 검찰이 기소를 중지함으로써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우여곡절 끝에 채운다고 해도 법망을 피해가기는 어렵게 됐다.
 

이렇듯 궁지에 몰린 박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망명’이라는 것이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다. 앞서 천 전 대표의 망명 주장 이후 김용태 의원(무소속)은 친박 내부서 망명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정치권을 술렁이게 했다.


지난달 29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김 의원은 친박에 대해 “국민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이제라도 물러나면 이승만식 해법이니 헌법조항인 사면을 나라와 국민 위하는 길이라고 목에 힘주고 얘기들 한다”며 말해 여당 내부서 사면을 전제로 한 박 대통령 망명 타협안을 제시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그는 “괜히 국민들 이름 들먹이며 명예로운 퇴진 운운하는 것, 결코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요동치는 정국
일본으로 간다?

정치권에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사퇴 시점이 ‘반 총장 띄우기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오는 21일, 늦어도 26일에는 대표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 호위무사 역할을 마치면서 연말 유엔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반기문 총장의 국내 정치 활동에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친박계가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반 총장을 본격적으로 띄워 내년 정권재창출을 노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 총장 체제 하 정권재창출은 박 대통령의 안위와 직결된다. 현재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서 물러남과 동시에 사법처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친박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반 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반 총장이 박 대통령에 사면 등 ‘정치적 선물’을 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이 대표의 12월21일 사퇴 시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 ‘한중일 정상회담’ 일정에 사퇴시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지난달 12일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한중일 정상회담을 이달 19∼20일 이틀간 일본 도쿄에서 개최하는 일정을 한국과 중국 정부에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정상회의에는 박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한다.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 대통령의 참석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박 대통령의 참석 의지가 강해 추진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국내서 반발이 일었던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도 박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예견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고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일본 망명’을 계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감지한 박 대통령이 일본 망명을 위해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군사협정을 맺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을 바라보는 국내외 시선도 곱지 않다. 앞서 박 대통령은 페루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불참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우리나라 주변 강대국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 외교무대에 ‘최순실 국정 농단’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세계 강대국이 모인 자리에 불참해 놓고 ‘한중일 정상회담’에 유독 애착을 보이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 APEC정상회의 당시에는 박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기 때문에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외교부는 지난달 18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외교적으로 큰 손실”이라며 민심과 동떨어진 답변을 내놔 눈총을 받기도 했다.

반기문 밀고
사면 노린다

최근에는 박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가 탄핵을 의도적 늦추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야권은 오는 9일을 ‘탄핵 디데이’로 정한 상태다. 비박계도 동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심을 타고 탄핵안은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제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중도 자진사퇴에 방점을 찍고, 전적으로 국회에 공을 넘겼다. 이에 비박계는 동요했다.

비박계 좌장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 담화 이후 추미애 더민주 대표와 긴급회동을 가졌다. 김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내년 4월 퇴임이 결정될 경우 탄핵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앞서 오는 9일 탄핵에 동참키로 한 비박계가 대통령 담화 이후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이처럼 비박계가 탄핵과 거리두기가 이어지면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 일정이 계획대로 될 공산이 크다. 다만, 탄핵안이 9일 국회를 통화하면 박 대통령 일본 방문은 사실상 어렵게 된다. 탄핵안 통과와 동시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현재 흐름을 놓고 보면 박 대통령의 노림수가 통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퇴 일정은 밝히지 않은 채 국회에 공을 넘김으로써 탄핵바람에 분열을 조장했고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 가능성도 커졌다.

질질 시간 끄는 이유가?
혹시 사법처리 피하려고?

이처럼 궁지에 내몰린 박 대통령의 망명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정치권에선 과거 이승만 전 대통령 망명 당시 상황과 상당부분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3대를 역임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4대 대선인 1960년에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이는 4·19혁명을 촉발했다.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시위를 잠재우려 했지만 결국 일주일 뒤인 4월26일 이 전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났다. 하야 이후 1달여 뒤 하와이로 망명하면서 대통령 시절 저질렀던 불법 행위에 대한 사법 처리를 피했다.

박 대통령도 이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민심이 들고 일어선 상황이다. 게다가 제1야당 수장인 추 대표는 박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언급키도 했다. 이처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조기 퇴진에 방점을 찍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서는 망명만이 유일한 출구전략인 셈이다.
 

이밖에 외국 사례서도 부패 스캔들 이후 망명 절차를 밟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계 페루인인 후지모리 페루 전 대통령은 1990∼2000년까지 페루를 장기 통치해오다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는 사법처리를 두려워한 나머지 일본으로 도피해 사실상 망명생활을 해오다 지난 2007년 본국으로 강제 송환돼 25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박 대통령 망명설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일본 망명’ 외에 추가적으로 망명을 고려해볼 만한 몇몇 나라들이 거론된다. 우선 중국이다. 박근혜정부는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는 등 ‘친중 행보’를 선보였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망명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이삿짐 싸나
외국선 흔해

이승만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미국 망명도 거론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미국 망명을 선택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높아질 우려를 들어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이밖에 독일, 캐나다 등 선진국들의 경우도 부패에 대한 처벌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망명이 허가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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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