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에 실종된 정치권 ‘뜨거운 감자’

속으로 미소 짓는 사람들 “휴~쓰나미 아니었으면…”


일본 대지진이 정치권의 이슈마저 집어삼켰다. 지난 연말부터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던 정치권이다.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동남권 신공항 등 지역과 관련된 현안이 이어졌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에리카 김의 잇따른 입국 이후 불거진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설’과 ‘상하이 스캔들’은 정치권을 흔들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연임 문제와 강만수 산업은행지주회장 선임까지 굵직한 이슈들이 빼곡했지만, 모두 뒤로 밀려난 상황이다.

나라 뒤흔든 ‘상하이 스캔들’ 온데간데없어
구문 된 BBK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설

대지진이 연일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지진에 쓰나미까지 겹치면서 붕괴와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위태로운 원자력발전소로 세계의 시선이 고정된 상태다. 대지진의 여파는 바다 건너 여의도 정치권까지 미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왔던 사건·사고들이 자취를 감춘 것.

정치 이슈 행방불명
여의도에서 “꼭꼭 숨어라”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 대지진과 관련, “항간에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정말 천운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뉴스는 대부분 앵커 리포트로 끝나거나 중요하게 배치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최고위원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불가피하지만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뉴스가 많다”며 “이 대통령의 측근 오기 인사의 종결판인 강만수가 산업은행지주회장으로 오늘 선임된다. 끝없는 주군의 총애에 강만수가 보답하는 길은 스스로 용퇴하는 것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 대해서도 “청문회 역시 ‘한결 수월해지겠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국민은 방통위원장을 원하지 먹통위원장을 원하지 않는다. 노욕 부리지 말고 초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 최고위원은 또 ‘상하이 스캔들’을 거론하며 “이 사건이 일본 지진 이전엔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대형 사건이었나 싶을 정도로 잊혀져가고 있다”며 “국가적인 치욕 사건인 이 사건은 한 치의 의혹도 없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설에 대해서는 “2008년 대선을 뒤흔든 BBK와 도곡동 땅 진실을 국민은 알고 싶어하고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재해에 쏠린 관심을 틈타 대충 넘기려 하면 안된다”며 “민주당은 꼼꼼히 챙기고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도 지난 15일 박선영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을 통해 “상하이 스캔들, 장자연 사건, 한상률 사건, 에리카 김 사건 등 국내 주요 현안들이 일본의 대재앙이라는 쓰나미에 쓸려 나갔다”며 “어떤 환경에서도 국내 현안을 철저하게 챙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짐과는 달리 대부분의 정치 이슈들은 ‘조용히’ 넘어가는 모양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에리카 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달 중 마무리될 전망이다.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한 전 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으로 전·현직 국세청 직원과 골프 로비 의혹 당시 참석자, 전군표 전 국세청장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난리통 속에 ‘MB의 남자들’ 화려한 귀환  
강만수·최시중 ‘구렁이 담 넘듯’ 제자리로일본


또한 한 전 청장의 자택과 그림 로비에 사용된 ‘학동마을’을 구입한 서미갤러리 등 3곳을 압수 수색했다. 에리카 김의 횡령 혐의 등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달 26일과 27일, 지난 9일 김씨를 소환 조사해 김경준씨의 주가 조작 및 횡령 가담 여부와 2007년 대선 당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러나 한 전 청장과 관련된 그림 로비와 연임 로비,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 과정의 직권 남용,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땅 차명 소유 관련 의혹 등 여러 혐의 중 그림 로비 의혹에 대해서만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에리카 김에 대해서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무혐의 처분하고 횡령과 주가 조작 등의 혐의에 대해선 불기소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야권은 당장 검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하고 나섰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5일 검찰이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수사에서 계좌 추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으며 “일반적인 뇌물 사건에 있어 수사 개시 즉시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인까지 계좌 추적을 벌이는 것이 검찰의 통례”라면서 “한 전 청장에 대한 수사가 의혹을 파헤치는 시늉만 내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며, 결국 봐주기 수사로 한 전 청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 대변인은 또 “일본 대지진에 국민의 관심이 쏠린 틈에 어물쩍 진실을 은폐하려는 검찰의 작태”라며 격분했다. 
 
뒷전으로 밀린 사건들
쉬쉬하며 조용히 넘겨라?

박지원 원내대표도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일본 지진의 여파 속에서 국민과 당이 염려했던 한 전 청장, 에리카 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상했던 대로 꼬리 자르기 면죄부 수사로 마무리 될 전망”이라며 “지진을 핑계로 수사를 묻으려고 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이 진실을 묻으려고 한다면, 일본 지진의 여파로 (진실이) 땅 속으로 묻힐 것 같지만 언젠가는 또 폭발할 것”이라며 “구제역의 경우처럼 임시방편으로 땅에 파묻었다가 해동이 되면 터져 나오듯 밝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그야말로 깃털만 건드리는 형국”이라며 “한 전 청장이 판도라의 상자임을 우리 국민들은 뻔히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하이 스캔들’에 대한 정부 합동조사단의 조사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7일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일어난 문제와 관련 정부합동조사단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는 중에 있어 곧 그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결과가 나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깃털 건드린 수사
판도라의 상자 닫힐까

정치권은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4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계획이어서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상하이 스캔들’의 진실뿐 아니라 이 대통령의 ‘보은 인사’에 대한 지적이 강도 높게 제기될 수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번 스캔들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의 측근 인사 챙기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개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사퇴 의사를 밝힌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해 일부 장관들의 교체 얘기가 나오면 이 대통령의 인사 문제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강만수 전 대통령 경제특보의 산은금융지주 회장 내정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연임을 두고도 말이 많다. 민주당, 자유선진당, 미래희망연대, 창조한국당 등 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은 지난 18일 공동성명을 내고 강만수 경제특보의 산은금융지주 회장 임명 취소를 주장했다. 야 4당 정무위원들은 이날 “강 특보가 과거에 재무부에 재직했었고, 기획재정부 장관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 산업은행 민영화 추진 등을 위한 적임자라고 볼 수 없다”면서 “강 특보는 이 대통령의 측근이며 경제 과외교사였는지는 모르지만, IMF 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범 중 한 사람이며 지난 3년간 서민의 삶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실패한 MB노믹스’의 주역으로서 더 이상 공직에서 우리 경제나 금융에 대해 조언하거나 관여해서는 안 되는 인사”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또 “강 특보가 산은지주 회장이 된다는 것은 MB정부 ‘관치금융’의 완결편”이라며 “국내 주요 3대 금융지주사(KB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의 회장이 이 대통령의 친구와 대학 동문 등으로 선임되어 있는데, 여기에 산은지주까지 대통령의 측근이 되면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며, 한국 경제는 퇴행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연임 도전이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최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17일 강행됐지만 본인과 가족들의 땅 투기와 증여세·소득세 탈루 등 10여 가지의 의혹이 제기된 것.

강만수·최시중의 귀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라

민주당은 최 위원장의 낙마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어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도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현행법에 따라 이 대통령은 소정의 날짜가 지나면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23∼24일경에는 임명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럴 경우 앞으로 3년간 중요한 방송 정책과 통신 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후보자 본인과 국민이 판단하리라고 믿는다”고 경고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지진에 흔들리고, 쓰나미에 휩쓸렸던 정가 이슈들이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돌아올 수 있다”며 “4월 임시국회와 4·27 재보선에서는 이러한 이슈들이 다시 활개를 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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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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