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정체’ 문재인 딜레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1:02:06
  • 호수 10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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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고우면하다 영영 뒤집힐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혼란한 정국을 기화로 지지율 1위를 꿰찼다. 최근에는 퇴진운동을 선언하며 선명성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전면에 나서면 새누리당에 ‘대통령 된 줄 착각한다‘는 비판을 듣고, 뒤로 물러서면 야권에게 ‘책임감 없는 대선주자’라는 평을 듣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최근엔 현 정국의 호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아냥도 들려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5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를 통해 머리를 맞대고 퇴진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논의하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식?
광폭행보 나서

최근 문 전 대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퇴진’을 내세우며 광폭행보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 12일 100만 촛불집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다른 야권 잠룡들에 비해 다소 늦은 시점에 촛불집회 참석의사를 밝히는 등 이슈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달 말부터 문 전 대표는 퇴로를 두는 전략을 취하면서 이슈를 이끌기보다는 관망하면서 목소리를 높였고, 확정된 의견을 밝히기보다는 입장 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과도하게 뒤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최근 들어 단호한 입장으로 선회한 모습이다. 문 전 대표의 광폭행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퇴진운동’을 강조해 안 전 대표가 주장한 ‘정치혁명’과 같은 맥락의 강한 어조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때문에 안 전 대표에 대한 견제 차원서 박 대통령에 대해 강도 높은 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전 대표가 현 정국서 이슈를 선점하고 대통령 하야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 더 이상 눈치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문 전 대표의 하야 주장에 대해 “결국은 이번 하야를 통해 조기 대선을 점화시키겠단 것”이라며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통령 ‘퇴진운동’ 선언…다소 늦은감
거국중립내각 화두 던졌는데 청와대 수용?

뒤에 머물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보류한 그를 정면 비판하는 잠룡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왔다.

지난 1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좌고우면하는 문 전 대표의 행보를 비판했다. 박 시장은 “당내 최대 세력인 문 전 대표가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않고 그동안 계속 바뀌어 왔지 않느냐”며 “민주당이 왜 이렇게 갈지자 행보를 하느냐. 이것은 문재인 전 대표의 어정쩡한 자세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 위상에 흔들림이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권 일각서 어정쩡한 문 전 대표의 태도를 비판했다면 여권은 오락가락 행보에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문 전 대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난달 26일 ‘거국중립내각’ 화두를 정치권에 처음으로 던졌다. 새누리당은 당초 예상과 다르게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새누리당 추천 내각은 거국중립내각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선회해 여권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더민주 지도부서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해 국회에 총리 추천권을 넘기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총리 추천권은 야권3당의 공식적으로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단순 국회 추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총리에게 조각권과 국정 전반을 맡기라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셈이다. 거국중립내각 때와 마찬가지로 문 전 대표는 청와대의 야권 요구 수용을 거부했다. 이러한 문 전 대표의 행보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은 진실성과 일관성이다. 문 전 대표의 이런 말 바꾸기가 너무 안타깝다”고 불만을 표했다.

호재를 이렇게?
확장성이 문제

정치권에선 문 전 대표가 대형 호재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지율 정체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1월 3주차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20.0%로 18.4%를 기록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앞서며 3주째 1위를 이어가고 있다. 문 전 대표가 반 총장을 앞서면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더민주 지지율은 10% 이상 상승하고 반 총장 지지율이 7∼8% 떨어지는 등 큰 폭의 변동이 있었지만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상반기 지지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10%를 돌파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문 전 대표 고정 지지층(20%)은 견고하지만 이밖에 중도, 새누리당 이탈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것은 현 청와대의 실정으로 인한 착시효과인 셈이다.

또 청와대가 마비되고 새누리당이 친박-비박 간 주도권 경쟁에 함몰된 상황서 문 전 대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민주 한 초선의원은 문 전 대표에 대해 “현재 정국의 과실을 빼먹지 못하고 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지율 확장의 숙제를 안고 있는 문 전 대표는 최근 총선 전 ‘호남발언’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지난 4월 “호남 패배 시 정계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서 더민주는 제1당에 오르며 여소야대 국회의 선봉장이 됐지만 호남에선 국민의당에게 깃발을 뺏겼다. 문 전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계 은퇴가 자연스러운 수순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국회가 열린지 5개월이 지난 현 시점까지 과거 ‘호남발언’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5일 국회 기자회견서 처음으로 구체적 해명에 나섰다. 그는 "당시 선거서 우리가 승리하고 또 새누리당 과반 의석을 막아 우리 당 정권 교체의 기반을 구축했다"며 "광주와 호남서 우리당이 지지받기 위한 전략적인 판단으로 했던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만약 광주·호남 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이 있다면 죄송하고, 그 발언의 맥락을 잘 살펴달라”며 “광주·호남 민심 지지가 없다면 대선을 포기할 것이란 부분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하야는 찬성 탄핵은 반대
지지율 1등인데 의문부호


해명 이후 정치권에선 ‘선거 전략으로 그냥 했던 말이란 이야기 아니냐’며 문 전 대표를 강하게 질타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문 전 대표의 해명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러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90% 이상 지지를 해준 호남 사람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과 말을 하는 분이 또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은 말로만 호남을 생각한다면서 완전히 호남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태까지 뚜렷한 의견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가 민심이, 또 정당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자 퇴진을 요구한다”며 비판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은 당 차원서도 강력하게 항의했다. 국민의당 김경록 대변인은 논평서 “문 전 대표는 전략적 거짓말을 해서 미안한 것인지, 아직도 정계를 은퇴하지 않아서 미안한 것인지 분명히 밝히라”며 “대통령 되는 것이 꿈이면 호남을 전략적으로 이용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문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 앞서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가 대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 대선에선 문 전 대표는 호남서 90% 이상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총선서 호남 민심이 문 전 대표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호남서 더민주가 단 1석도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호남에 전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명실공히 호남의 맹주라고 봐도 무방하다.

총선 이후 문 전 대표의 꾸준한 호남행은 그의 대선 플랜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지난 9월11일 광주를 방문해 ‘그린카 산업’ 홍보를 위해 전기차를 타고 민심을 살폈다. 지난 2일에는 광주 학생독립운동 진원지인 옛 나주역사,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한 뒤 광주대교구청서 김희중 대주교를 예방하며 민심다지기에 나섰다.


문 퇴진운동
새누리 반발

최근에는 새누리당서도 친박계를 중심으로 문 전 대표의 행보를 질타해 문 전 대표의 대선행보를 어둡게 하고 있다.

친박계 중진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지난 16일 “문 전 대표는 대통령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며 “국민 분열을 틈타 권력을 손에 쥐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 아닌가”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유력 후보가 전국을 다니면서 대통령 퇴진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본다. 당 차원에서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최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이 초헌법적, 초법률적으로 여론몰이를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인민재판’”이라며 문 전 대표의 대통령 퇴진운동을 인민재판으로 규정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문 전 대표 비난행렬에 동참했다. 그는 “국회를 무시하고 ‘원맨쇼’하겠다는 것이냐”며 “지금 대통령이 다 된 줄 착각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처럼 야권의 대표적인 대권주자인 문 전 대표를 견제하는 발언들이 여야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문 전 대표 입장에선 현 정국서 전면에 나서면 새누리당의 집중포화를 받게 되고 뒤로 물러서면 국민의당 및 정의당 등 야권의 공세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는 박 대통령 자진퇴진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탄핵과는 시종일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5일,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 탄핵 제기와 관련해 “나는 지금은 탄핵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하야까지도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탄핵 절차까지 밟는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나쁜 대통령”이라고 힐난했다. 문 전 대표가 탄핵이 아닌 퇴진에 중점을 둔 이유로는 하야를 통하면 60일 이내에 조기대선이 치러진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지지율만 놓고 봤을 때 조기 대선은 문 전 대표에게 불리할 것이 없는 싸움이다. 또한 탄핵은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의 동의와 더불어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탄핵은 결론이 나기까지 최장 6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 국정동력을 상실한 박근혜정부에 정국을 수습할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 된다. 문 전 대표는 퇴진을 주장함으로써 ‘조기대선’과 ‘청와대 압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반기문-잠룡연대
뜨면 문재인은?

문재인 전 대표를 둘러싼 정치 지형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전 대표에 힘이 실릴수록 다른 대선주자들은 다른 지점에서 대선을 도모할 수 있다”며 “만일 반기문 총장과 연대한다면 문 전 대표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 싱크탱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달 6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가칭)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 싱크탱크에는 교수와 각 분야 전문가 등 약 500명이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싱크탱크는 ‘성장’에 방점을 찍고 외연확장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로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다면 이번에는 중도층 표심잡기에 닻을 올린 셈이다.

싱크탱크는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연구소장을 맡았다. 조 교수는 국제기구 출신 경제학자로 참여정부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역임했다. 추진단장은 김현철 서울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한 양봉민 서울대학교 보건학과 교수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진심캠프’에서 활동한 정영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등이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산하에 각 분야별 7개 분과로 조직됐다. 또한 경제·민생 대안을 내놓기 위한 10개 핵심추진단도 운영된다.

<기사 속 기사> ‘개헌’ 문재인 생각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고 말해 개헌론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국회서 박근혜 대통령의 조건 없는 퇴진을 주장하는 긴급기자회견서 문 전 대표는 “우리 헌법은 손볼 대목이 많다”며 “당연히 저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대선서 개헌을 공약한 바도 있다”며 “그러나 지금 개헌을 논의하면 국면 전환을 초래해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지난달 박 대통령이 꺼내는 개헌카드에 대해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참 느닷없다. 생각이 갑자기 왜 바뀌었는지 의심스럽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개헌은 절대 있어선 안된다. 정권연장을 위한 제2의 유신헌법을 만들자는 거냐”고 꼬집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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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