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정체’ 문재인 딜레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1:02:06
  • 호수 10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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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고우면하다 영영 뒤집힐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혼란한 정국을 기화로 지지율 1위를 꿰찼다. 최근에는 퇴진운동을 선언하며 선명성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전면에 나서면 새누리당에 ‘대통령 된 줄 착각한다‘는 비판을 듣고, 뒤로 물러서면 야권에게 ‘책임감 없는 대선주자’라는 평을 듣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최근엔 현 정국의 호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아냥도 들려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5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를 통해 머리를 맞대고 퇴진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논의하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식?
광폭행보 나서

최근 문 전 대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퇴진’을 내세우며 광폭행보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 12일 100만 촛불집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다른 야권 잠룡들에 비해 다소 늦은 시점에 촛불집회 참석의사를 밝히는 등 이슈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달 말부터 문 전 대표는 퇴로를 두는 전략을 취하면서 이슈를 이끌기보다는 관망하면서 목소리를 높였고, 확정된 의견을 밝히기보다는 입장 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과도하게 뒤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최근 들어 단호한 입장으로 선회한 모습이다. 문 전 대표의 광폭행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퇴진운동’을 강조해 안 전 대표가 주장한 ‘정치혁명’과 같은 맥락의 강한 어조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때문에 안 전 대표에 대한 견제 차원서 박 대통령에 대해 강도 높은 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전 대표가 현 정국서 이슈를 선점하고 대통령 하야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 더 이상 눈치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문 전 대표의 하야 주장에 대해 “결국은 이번 하야를 통해 조기 대선을 점화시키겠단 것”이라며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통령 ‘퇴진운동’ 선언…다소 늦은감
거국중립내각 화두 던졌는데 청와대 수용?

뒤에 머물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보류한 그를 정면 비판하는 잠룡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왔다.

지난 1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좌고우면하는 문 전 대표의 행보를 비판했다. 박 시장은 “당내 최대 세력인 문 전 대표가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않고 그동안 계속 바뀌어 왔지 않느냐”며 “민주당이 왜 이렇게 갈지자 행보를 하느냐. 이것은 문재인 전 대표의 어정쩡한 자세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 위상에 흔들림이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권 일각서 어정쩡한 문 전 대표의 태도를 비판했다면 여권은 오락가락 행보에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문 전 대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난달 26일 ‘거국중립내각’ 화두를 정치권에 처음으로 던졌다. 새누리당은 당초 예상과 다르게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새누리당 추천 내각은 거국중립내각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선회해 여권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더민주 지도부서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해 국회에 총리 추천권을 넘기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총리 추천권은 야권3당의 공식적으로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단순 국회 추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총리에게 조각권과 국정 전반을 맡기라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셈이다. 거국중립내각 때와 마찬가지로 문 전 대표는 청와대의 야권 요구 수용을 거부했다. 이러한 문 전 대표의 행보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은 진실성과 일관성이다. 문 전 대표의 이런 말 바꾸기가 너무 안타깝다”고 불만을 표했다.

호재를 이렇게?
확장성이 문제

정치권에선 문 전 대표가 대형 호재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지율 정체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1월 3주차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20.0%로 18.4%를 기록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앞서며 3주째 1위를 이어가고 있다. 문 전 대표가 반 총장을 앞서면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더민주 지지율은 10% 이상 상승하고 반 총장 지지율이 7∼8% 떨어지는 등 큰 폭의 변동이 있었지만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상반기 지지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10%를 돌파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문 전 대표 고정 지지층(20%)은 견고하지만 이밖에 중도, 새누리당 이탈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것은 현 청와대의 실정으로 인한 착시효과인 셈이다.

또 청와대가 마비되고 새누리당이 친박-비박 간 주도권 경쟁에 함몰된 상황서 문 전 대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민주 한 초선의원은 문 전 대표에 대해 “현재 정국의 과실을 빼먹지 못하고 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지율 확장의 숙제를 안고 있는 문 전 대표는 최근 총선 전 ‘호남발언’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지난 4월 “호남 패배 시 정계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서 더민주는 제1당에 오르며 여소야대 국회의 선봉장이 됐지만 호남에선 국민의당에게 깃발을 뺏겼다. 문 전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계 은퇴가 자연스러운 수순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국회가 열린지 5개월이 지난 현 시점까지 과거 ‘호남발언’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5일 국회 기자회견서 처음으로 구체적 해명에 나섰다. 그는 "당시 선거서 우리가 승리하고 또 새누리당 과반 의석을 막아 우리 당 정권 교체의 기반을 구축했다"며 "광주와 호남서 우리당이 지지받기 위한 전략적인 판단으로 했던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만약 광주·호남 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이 있다면 죄송하고, 그 발언의 맥락을 잘 살펴달라”며 “광주·호남 민심 지지가 없다면 대선을 포기할 것이란 부분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하야는 찬성 탄핵은 반대
지지율 1등인데 의문부호


해명 이후 정치권에선 ‘선거 전략으로 그냥 했던 말이란 이야기 아니냐’며 문 전 대표를 강하게 질타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문 전 대표의 해명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러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90% 이상 지지를 해준 호남 사람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과 말을 하는 분이 또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은 말로만 호남을 생각한다면서 완전히 호남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태까지 뚜렷한 의견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가 민심이, 또 정당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자 퇴진을 요구한다”며 비판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은 당 차원서도 강력하게 항의했다. 국민의당 김경록 대변인은 논평서 “문 전 대표는 전략적 거짓말을 해서 미안한 것인지, 아직도 정계를 은퇴하지 않아서 미안한 것인지 분명히 밝히라”며 “대통령 되는 것이 꿈이면 호남을 전략적으로 이용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문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 앞서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가 대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 대선에선 문 전 대표는 호남서 90% 이상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총선서 호남 민심이 문 전 대표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호남서 더민주가 단 1석도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호남에 전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명실공히 호남의 맹주라고 봐도 무방하다.

총선 이후 문 전 대표의 꾸준한 호남행은 그의 대선 플랜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지난 9월11일 광주를 방문해 ‘그린카 산업’ 홍보를 위해 전기차를 타고 민심을 살폈다. 지난 2일에는 광주 학생독립운동 진원지인 옛 나주역사,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한 뒤 광주대교구청서 김희중 대주교를 예방하며 민심다지기에 나섰다.


문 퇴진운동
새누리 반발

최근에는 새누리당서도 친박계를 중심으로 문 전 대표의 행보를 질타해 문 전 대표의 대선행보를 어둡게 하고 있다.

친박계 중진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지난 16일 “문 전 대표는 대통령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며 “국민 분열을 틈타 권력을 손에 쥐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 아닌가”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유력 후보가 전국을 다니면서 대통령 퇴진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본다. 당 차원에서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최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이 초헌법적, 초법률적으로 여론몰이를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인민재판’”이라며 문 전 대표의 대통령 퇴진운동을 인민재판으로 규정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문 전 대표 비난행렬에 동참했다. 그는 “국회를 무시하고 ‘원맨쇼’하겠다는 것이냐”며 “지금 대통령이 다 된 줄 착각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처럼 야권의 대표적인 대권주자인 문 전 대표를 견제하는 발언들이 여야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문 전 대표 입장에선 현 정국서 전면에 나서면 새누리당의 집중포화를 받게 되고 뒤로 물러서면 국민의당 및 정의당 등 야권의 공세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는 박 대통령 자진퇴진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탄핵과는 시종일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5일,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 탄핵 제기와 관련해 “나는 지금은 탄핵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하야까지도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탄핵 절차까지 밟는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나쁜 대통령”이라고 힐난했다. 문 전 대표가 탄핵이 아닌 퇴진에 중점을 둔 이유로는 하야를 통하면 60일 이내에 조기대선이 치러진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지지율만 놓고 봤을 때 조기 대선은 문 전 대표에게 불리할 것이 없는 싸움이다. 또한 탄핵은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의 동의와 더불어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탄핵은 결론이 나기까지 최장 6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 국정동력을 상실한 박근혜정부에 정국을 수습할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 된다. 문 전 대표는 퇴진을 주장함으로써 ‘조기대선’과 ‘청와대 압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반기문-잠룡연대
뜨면 문재인은?

문재인 전 대표를 둘러싼 정치 지형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전 대표에 힘이 실릴수록 다른 대선주자들은 다른 지점에서 대선을 도모할 수 있다”며 “만일 반기문 총장과 연대한다면 문 전 대표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 싱크탱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달 6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가칭)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 싱크탱크에는 교수와 각 분야 전문가 등 약 500명이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싱크탱크는 ‘성장’에 방점을 찍고 외연확장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로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다면 이번에는 중도층 표심잡기에 닻을 올린 셈이다.

싱크탱크는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연구소장을 맡았다. 조 교수는 국제기구 출신 경제학자로 참여정부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역임했다. 추진단장은 김현철 서울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한 양봉민 서울대학교 보건학과 교수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진심캠프’에서 활동한 정영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등이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산하에 각 분야별 7개 분과로 조직됐다. 또한 경제·민생 대안을 내놓기 위한 10개 핵심추진단도 운영된다.

<기사 속 기사> ‘개헌’ 문재인 생각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고 말해 개헌론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국회서 박근혜 대통령의 조건 없는 퇴진을 주장하는 긴급기자회견서 문 전 대표는 “우리 헌법은 손볼 대목이 많다”며 “당연히 저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대선서 개헌을 공약한 바도 있다”며 “그러나 지금 개헌을 논의하면 국면 전환을 초래해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지난달 박 대통령이 꺼내는 개헌카드에 대해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참 느닷없다. 생각이 갑자기 왜 바뀌었는지 의심스럽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개헌은 절대 있어선 안된다. 정권연장을 위한 제2의 유신헌법을 만들자는 거냐”고 꼬집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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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앞길에 주황불과 녹색불이 번갈아 들어서고 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공직선거법 판결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 여전히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남은 재판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권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를 나노 단위로 뜯어 살피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당선돼도 찝찝하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021년 20대 대선후보이던 당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과 국정감사에서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 같은 발언은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부는 이 후보의 “김 전 처장과 골프 친 사진은 조작됐다”는 발언을 유죄로 봤지만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고, 아무리 확장 해석해도 같이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며 1심을 뒤엎었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의견 표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허위 사실 공표로 해석할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무죄 판결이 난 바로 다음 날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다. 항소심이 끝난 지 하루 만에 상고장을 접수한 만큼 대법원 판단을 빠르게 받아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대법원서 다루는 상고심은 항소심 재판에 대한 불복 신청을 토대로 하는 만큼 사실관계를 판단하지 않는 법률심이다. 판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신속하게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며 내심 유죄를 희망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대법원서 판결이 뒤집혀야 한다고 보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서 바로잡혀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1심과 2심의 판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대법원서 결정을 내려줘야 법적인 논란이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 된 밥에 또…파기환송 ‘주황불’ “노골적 대선 개입” 대법원장 탄핵? 반면 민주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의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상고도 포기하길 바란다”며 맞불을 놨다. 민주당의 바람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해 무죄였던 2심 판결을 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는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은 공직선거법 250조 제1항에 따른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2심 판단에는 공직선거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합 선고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등 총 12명이 참여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의 발언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선고는 대법관 10명 다수 의견으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 결정됐고 2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골프 발언은 6~7년 전에 있었던 기억을 주제로 한 발언에 불과하고, 백현동 관련 발언은 국토부의 의무 조항을 지적한 부분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닥쳐온 위기에 민주당은 “노골적인 대선 개입”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겠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통상 파기환송심은 상고심 판결에 기속되는 만큼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의 탄핵에 속도를 냈지만 이 후보는 “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며 다소 거리를 뒀다. 문제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에 관한 해석은 밝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까지 해석이 갈린 것이다. 어떻게 읽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추는 ‘형사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추의 범위가 ‘검찰의 공소 제기’만을 의미하는지,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하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현직 대통령을 내란, 또는 외환죄가 아니면 새로 기소할 수 없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외환죄가 아닌 죄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던 중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자로 풀어서 본다면 소는 기소, 추는 좇다, 즉 소추는 ‘공소와 공소 유지’를 뜻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해석이다. 기소가 중단될 수는 있지만 진행 중인 재판까지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된다면 이 후보는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더라도 재임 중 5개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현재 이 후보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선거법 위반·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유죄가 확정된다면 대통령직서 물러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소추가 기소까지만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면 이 후보의 모든 재판은 당선 즉시 중단된다. 이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해석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사의 수사와 소추권을 다룬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각하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다시 주목된다. 당시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은 “형사상 소추는 심판 기관과 분리된 소추권자가 유죄 판결 및 적정한 처벌을 구하는 활동으로 소추 기능은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의 결정 및 공개된 법정서 피고인의 상대방 당사자로서 수행하는 변론 및 입증 활동, 이에 관한 법원의 재판에 대한 불복 등을 포함한다”고 밝힌 것이다. 만일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재판 진행 여부는 이 후보의 재판을 맡은 각각의 재판부의 몫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법원이 헌법 제84조와 관련해 개별 재판부에 재판을 어떻게 운영하라고 지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각 재판관이 알아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구조상으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법률심으로 만약에 그런 쟁점을 다루게 된다면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등 재판부가 헌법 제84조를 해석해야 하지만 최종 결론은 대법원의 몫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까지 다방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헌재가 대통령과 법원 사이서 어떤 해석을 내리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한차례 끓어 올랐던 헌법 제84조 논란은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연기되면서 일단락하는 분위기다. 지난 7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오는 15일 예정됐던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함”이라며 재판 기일을 대통령선거일 이후로 변경했다. 이로써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마찬가지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등의 공판기일도 다음 달인 24일로 변경되면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날선 반응도 다소 누그러졌다. 상고심 일정이 연기되면서 한숨 돌리나 싶더니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서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을 정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삼권분립이 붕괴된 좋지 않은 선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불소추특권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확실히 못을 박는 분위기다. 이 후보의 파기환송이 결정된 다음 날인 지난 2일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민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대법원의 비이성적 폭거를 막겠다. 헌법 제84조 정신에 맞게 곧 법 개정안(재판중지)을 법사위서 통과시키겠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예고대로 지난 7일 민주당은 형사소송법 제306조에 ‘피고인이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면 당선된 날부터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 절차를 정지한다’는 내용 신설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서 단독 처리했다. 대통령이 재판을? ‘소추’ 범위 물음표 최종심 연기됐지만…개정안 밀어 붙인다 민주당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헌정 수행 기능 보장을 위한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현행 법령 체계에서는 기소 후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 이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판 계속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형사·사법기관이 대통령을 대상으로 재판을 계속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법안 상정 당시부터 반발하며 퇴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이런 무도한 집단이 깡패집단이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유죄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왜 애꿎은 허위 사실 공표죄만 개정하느냐. 이참에 위증교사죄도 폐지하라. 대장동·백현동 관련 죄도 폐지해서 이 후보를 무죄로 만들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법무부는 “대통령 취임 전에 범한 범죄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무관함에도 재판을 정지하는 것은 공직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률 규정을 무력화하고 자격이 없는 피고인에게 부당하게 그 임기를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로써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헌법 수호 의무를 지는 대통령의 지위와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국민 신뢰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신인도 및 국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후보의 재판 날짜를 잡으면 권력을 총동원해서 팔을 비틀고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가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되지 않을 것 같으니 재판을 못하도록 법을 위헌적으로 뜯어고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유죄 판결을 한 대법원장이 보복 특검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눈앞에 와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헌법 제84조에 대해 “만사 때가 되면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법과 상식, 국민적 합리성을 가지고 상식대로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부질없다 헌법 제84조와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저마다 해석에 나섰지만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대선 이후로 연기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강신업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소추에 대한 정의는)대법원이 결정하면 그만인데, 만약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권한쟁의심판을 할 것이고 해당 문제는 헌재로 가게 된다”며 “(대통령이 된 이 대표가)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 헌재를 장악하는 수순이다. 결국 헌재는 대통령 편을 들 테니 사실상 그때 가서 헌법 제84조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그래도 달리는 이재명 대권 열차 대선 기간 동안은 사법 리스크 부담을 지우게 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본격적으로 민생·경제에 집중할 전망이다. 우선 이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나 경제위기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이 후보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각 단체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내수 침체, 민생 경제 등을 논의했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12일부터는 ‘빛의 혁명’의 상징인 서울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 유세에 나선다. 한편 이 후보와 별개로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등 사법부를 겨냥한 전방위 공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