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개헌카드> 박근혜 4가지 노림수

그렇게 안 된다더니…"궁하긴 궁했나 보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들었다. 국회서 열린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공약사항이기도 한 개헌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헌법 개정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최순실 사태를 덮기 위한 이슈몰이가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중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헌카드를 꺼내든 지 하루가 지나자 한 종편 채널을 통해 박 대통령의 연설문이 최씨에게 건네졌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대통령 중심의 개헌안 발의를 기획했던 박근혜정부는 동력을 잃어버릴 위기해 봉착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정치권에 충격을 던졌다. 당초 정치권 인사 중 어느 누구도 대통령이 먼저 개헌을 선언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개헌을 하자는 목소리는 높은데 대통령이 반대하고 있다”며 “이번 정권서도 결국 개헌은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국면전환용]
최순실 지키려

여러 정치권 관계자들이 이렇게 예상한 이유는 앞서 박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이러한 박 대통령의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할 지금, 개헌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랬던 그가 개헌카드를 먼저 꺼내들면서 정치권에는 여러 의혹들이 쏟아졌다. 일종의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중론은 박 대통령이 잇따라 불거진 의혹들을 묻고 국면전환을 시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연설 직후 수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대통령의 개헌 선언에 대해 환영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국면 전환은 성공하는 듯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의 개헌 발언 직후 “대한민국 발전과 미래를 위한 애국의 결단”이라며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분권형 개헌을 대통령이 주도하고 나선 데 대해 크게 환영한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야권의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한 명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김종인 전 대표는 “시기적으로 적정한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며 화답했다.

특히 김 전 대표는 일각에서 일고 있는 ‘국면전환용’ 개헌 카드라는 의혹에 대해 “국회 내에서 개헌이라는 게 방향이 뻔한 것 아니냐”며 “이렇게 저렇게 시비할 게 없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다른 야권 대선주자들의 해석은 달랐다. 대표적으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해당 연설을 명백한 국면전환용으로 내다봤다.

그는 “최순실 사태를 덮으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난 2007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개헌과 4년 중임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박 대통령께서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10여년의 세월 동안 개헌에 반대해왔던 박 대통령이 생각을 바꾼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란 견해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또한 대통령이 국면을 모면하려고 개헌카드를 꺼내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순실 등 논란을 블랙홀로 만들려는 정략적인 면이 숨어있는 것 아니냐”며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훌륭하신 분이다. 이러한 시기에 개헌론을 제안하는 것을 보면 따라갈 수 없다”고 비꼬았다.

더민주 측도 논평을 통해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를 덮으려고 개헌을 꺼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력 대선주자인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은 그동안 개헌은 블랙홀이 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해왔고) 임기 말,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할 지금 시기에 개헌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말씀해왔다”며 “이젠 거꾸로 블랙홀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현재 박 대통령은 개헌카드를 꺼낸 지 하루 만에 역풍을 맞은 상태다. JTBC를 통해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최씨가 사전에 열람했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개헌동력이 한순간에 꺼지는 순간이다.

더민주 측은 즉시 박 대통령의 직접 소명이 없다면 ‘최순실 게이트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간담회서 “만약 박 대통령이 일개 비서관의 일탈이라는 식으로 해명하면 이는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다른 방식으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특검 추진 방침을 밝혔다. 여야 가리지 않고 대선주자군에 있는 사람들조차 박 대통령의 소명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박 대통령은 백기를 들었다. ‘탈당’ ‘탄핵’ ‘하야’ 등의 단어가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에 오르자 그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국민사과를 했다.

[치적쌓기용]
“정부가 주도”

박 대통령이 하루 만에 대국민사과를 한 일을 두고 정치권에선 개헌을 꺼내든 의도가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이에 치적쌓기용으로 개헌을 이용하려 했던 것 아니었나하는 추가 의혹도 제기됐다.

이는 청와대의 발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이 개헌카드를 꺼내든 직후 청와대는 정부에 개헌기구를 창설해 세부안을 곧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박근혜정부가 주도해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단순히 국면전환용이었다면 정치권서 개헌을 주도하며 서로 담론을 주고받는 게 효과가 더욱 클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정부 주도의 개헌을 발표함으로써 치적쌓기용이란 다른 해석을 낳게 했다.

실제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서 개헌이 공약사항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앞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은 정치쇄신공약 발표 기자회견서 “집권 후 4년 중임제와 국민의 생존권,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한 여러 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갑자기 꺼내든 개헌, 무슨 꿍꿍이?
야권 “최순실 덮으려” 한 목소리

당초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주력 공약으로 밀어붙이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르·K스포츠재단이 창조경제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야권서 제기되면서 동력이 약해졌다. 무엇보다 최씨가 비선 실세로 지목되면서 공약의 명분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급히 핵심공약을 개헌으로 바꾼 게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만 일련의 추가 의혹이 터져 나온 현 시점에선 정부 주도가 아닌 정치권 주도의 개헌으로 흘러갈 공산이 커졌다. 개헌에 대한 주도권을 쥐면서 끝까지 레임덕 현상을 막아보겠다는 청와대의 복안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 내에서도 여권과 야권에서 구상하는 개헌이 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정부 주도의 개헌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남아 있다. 대선 주자별로 방법론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 하나의 개헌안으로 묶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정치권 내에서 우세하다. 만약 개헌 논의가 진척이 없을 경우 바통이 박 대통령에게 넘어갈 여지가 있는 것이다.

[후임물색용]
반, 낙장불입

후임물색용 개헌이라는 주장도 있다. 과연 누구를 대권에 앉힐지 고민한 결과가 개헌이라는 것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처럼 유력한 대권주자가 일찌감치 부상했던 지난 대선과는 달리 차기 대선은 무주공산에 가깝다.

집권당 실세인 친박계조차 대선주자가 없어 고민을 하고 있을 정도다. 이에 박 대통령이 한 명의 대선주자를 위한 정치판을 짜겠단 결론에 이르렀을 수 있다고 정치권은 예상하고 있다.

차기 대선은 박 대통령 입장서 어느 것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정권이 바뀌면 권력을 잡은 측에서 여지없이 사정 드라이브를 걸어 왔기 때문이다. 김영삼정권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바 있으며, 이명박정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한 바 있다. 박근혜정권 또한 최근 롯데기업 수사에 들어가는 등 이 전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했다.

정치권에 몸담으며 그러한 움직임을 줄곧 지켜봤던 박 대통령인 만큼 권력을 넘겨줄 적임자를 찾는 데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개헌을 통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정치판을 만들어 놓겠다는 의중이 이번 개헌 발표에 깔려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노림수가 담긴 대권 플랜이 마침내 시동을 걸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친박계 반기문과 같은 배
반 문재인 전선 구축될까

최씨와 연루된 잇단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청와대 내에서 위기감이 확대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개헌카드를 꺼내든 시기가 앞당겨졌을 것이란 관측이다. 연설문 유출은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형법상의 공무비밀누설죄의 혐의에 해당된다. 박 대통령이 직접 최씨에게 전달하지 않고 측근을 통해 이루어졌더라도 퇴임 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일찍이 처벌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연설문 사태가 벌어지기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서 “박근혜정부에선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 정유라, 2위 최순실, 우병우, 차은택, 미르·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이 곧 감옥에 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향후 자신의 안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후임 대통령 물색이 중요해졌다. 때문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라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국내 정치 조직과 세가 부족한 반 총장을 친박계가 전폭 지원함으로써 반 총장과 운명공동체를 형성할 것이란 시나리오다. 반 총장이 당선된 후에도 박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앞서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총리’를 골자로 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암시한 적 있다. 이에 실제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하게 될 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문 고립용]
타깃은 결국 문?

개헌카드로 가장 타격을 입은 쪽은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다. 그는 권력구조 개편에 있어서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 4년 중임제를 지지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서 “대통령 단임제로는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진다”고 말해 찬물을 끼얹은 상황이다. 즉 이번 개헌의 방점은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데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개헌카드가 '문재인 고립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대통령 후임 물색의 연장선에 있다. 즉 개헌으로 반 총장을 위한 선거 시스템을 짜는 동시에 문 전 대표에게 불리한 판을 만들겠단 것이다.

실제 새누리당 내에서는 문 전 대표의 4년 중임제보다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전향적인 권력구조 개편이 힘을 받고 있다.

비주류 수장인 김무성 전 대표는 대표적인 이원집정부제 찬성론자다. 앞서 홍문종 의원 또한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한 바 있다. 헌법학자이자 친박계인 정종섭 의원이 4년 중임 이원집정부제를 연구하고 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만약 문 전 대표를 제외한 여야 비주류들이 이원집정부제 개헌으로 접점을 찾을 경우 ‘반(反) 문재인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이 같은 분석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연설문 사태로 인해 개헌 동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야권은 ‘선 진상규명, 후 개헌’으로 입장을 정리한 상태다. 즉 박 대통령이 관련 의혹을 정면돌파해야만 개헌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인해 개헌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16개월 남은’ 박근혜 개헌 플랜
4월? 9월? 언제든 대선 영향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에 나선다면 그 시점은 언제가 될 것인가. 개헌안 발의 시점부터 60일 이내 국회 표결이 진행, 그로부터 30일 내 국민투표에 회부되는 절차를 감안하면 내년 4월 또는 12월에 국민투표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4월 개헌이 빠르다는 지적이 있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최근에 있었던 지난 1987년 개헌의 경우 그해 6월29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개헌 선언이 있었고, 4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29일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이다. 통상 3개월간의 의견수렴 기간을 거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내년 1월 개헌안 발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12월 투표의 경우 시간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다. 여야와 전문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내년 9월경에 개헌안을 발의할 것이란 전망이다. 시기적으로도 대선 분위기가 한창 고조될 때라는 점에서 12월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시점이든 내년 초부터 진행될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와 겹친다. 과연 개헌카드로 박 대통령의 레임덕도 늦춰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목>


<기사 속 기사> 가토의 폭로

“검찰이 최순실 물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가토 타츠야 일본 산케이 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이번엔 최순실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산케이 신문 기고를 통해 “(세월호 건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한국 검찰이 최태민, 최순실 부녀에 대한 것을 끈질기게 물었다”며 “(최태민, 최순실 부녀가) 박 대통령의 최대 약점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어 “‘최순실 의혹’으로 박 대통령 정치생명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태민, 최순실 부녀와의 관계야말로 숨겨야 하는 일이며 박 정권 최대의 금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이 질문한 내용과 이유에 대해서는 기고문에서 밝히지 않았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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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