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계류 중인 이색 청원들

또 빛 못보고 사라질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헌법 제26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며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하고 있다. 청원은 국민들의 ‘신문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역대 국회에 제출된 청원은 회기 동안 계류 상태로 있다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동시에 폐기되는 등 빛도 못 보고 사라진 청원들이 상당수다. <일요시사>는 20대 국회를 맞아 국회에 제출된 계류 중인 이색 청원들을 꼽아봤다.

 

20대 국회는 지난 5월31일 ‘훈민정음 해례본의 국보 1호 지정에 관한 청원’이 접수된 이래로 4개월여 흐른 지난 18일까지 총 31건의 청원이 접수됐다. 31건의 청원 중에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청원, 기념일 제정, 광역시 설치 제정 등 각종 이해관계를 둘러싼 이색법안들이 눈에 띈다.

상정될까

첫 번째로 접수된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에 관한 청원은 혜문 문화재제자리 찾기 대표, 김상철 우리문화지킴이 대표, 이대로 국어문화실천협의회 회장 등이 대표자로 나섰다. 청원은 국회의원 1명이상이 소개자로 되어 있어야만 청원으로써의 효력을 얻는데 이 청원의 소개자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다.

노 의원은 지난 6월, 해당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면서 국보 1호가 갖는 상징성을 감안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변경해 한글의 우수성과 존재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원서에 따르면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것은 1934년 조선총독이 경성 남대문을 1호로 지정했기 때문”이라며 “1996년 당시 정부는 대한민국 국보 1호를 조선 총독이 지정한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 국보 1호에서 해지하려고 노력했으나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감사원 권고 이후 10년이 경과한 시점까지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겨레의 얼이 서린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지정하기 위해 국회청원을 제출한다”고 덧붙였다.

4개월여 동안 계류 중인 해당 법안에 대해 노회찬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청원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전달해 1차적 역할은 끝난 상황”이라며 “위원회서 안건 상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색 법안으로는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청원이 있다.

해당 청원자는 이갑상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 외 15명이고, 소개자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청원서에는 “존경하는 정세균 국회의장님!”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이 되어야 하는 취지와 당위성이 3페이지 분량으로 서술돼 있다.

청원서에는 “동학농민혁명은 지금으로부터 122년 전인 1894년, 왕조정치의 부정부패와 탐관오리의 탐욕과 수탈 및 착취,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따른 위기의식 등이 농촌사회의 파탄을 불러일으켰다”며 “농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으킨 민중혁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해방 이후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됐다”고 기재돼 있다.

입법 청원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이 지난 10여년간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은 ‘전주화약인(6월11일)’을 추천해 지역 간, 단체 간 불신을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18일 접수된 해당 법안은 다음날 교문위에 회부됐고, 교문위의 심사를 앞두고 계류 중에 있다.
 

20대 국회 청원 중에는 한 개인의 대한민국 입국 허가에 대한 청원도 접수돼 눈길을 끈다. ‘재일동포 정영환 입국 허가’를 명칭으로 하는 해당 청원은 현재 메이지가쿠인 대학 준교수로 재직 중인 정영환 교수의 입국 허가를 골자로 한다. 청원자는 정연순 민변 회장,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서승 리츠메이칸대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까지 총 4명이다.

‘훈민정음 국보1호 제정’ 필두
4개월여 동안 31건 접수 집계

이들은 청원서를 통해 “정연환 교수는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한국과 일본사회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박유하 교수의 저작 <제국의 위안부>를 정면 비판한 저서를 올해 3월 일본에서 출판, 큰 반향을 일으켰다”며 “정영환 교수 입국금지는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침해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6월14일 정영환 교수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출판기념강연회를 위해 한국영사관에 입국허가를 신청했다. 이와 함께 실행위원회는 정 교수의 입국이 허가될 수 있도록 같은 달 20일, 21일 각 외교부장관과 국회 외교통일분과위원회 심재권 위원장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결국 정 교수는 지난달 28일, 국가안보상의 위협이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입국 불허 통보를 받았다.

정 교수는 "입국 거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조선적 재일동포 모두를 포함하는 문제일 것"이라며 "그들을 대표할 순 없지만 정치·사상적 목적 때문에 재일동포 이동권이 침해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조선적 재일조선인 3세이자 소장파 역사학자로 일본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학계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2009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 주최의 학술심포지엄 발제자로 초청됐지만 이명박정부 시절 내려진 5·24조치로 인해 입국이 불허됐다. 입국금지 조치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013년 12월 ‘국가안보상의 위협이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기각했다. 해당 청원은 법사위와 외통위의 안건 상정 여부 심사를 앞두고 계류 중에 있다.

지난달 5일에는 창원시가 광역시 승격을 요청하는 청원이 국회에 제출됐다. 김성찬 새누리당 의원을 소개자로 하는 해당 청원의 청원인은 안상수 창원시장 외 74만8548명이다. 이들은 5가지 항목으로 나눠 창원시 승격의 당위성을 밝혔다.

우선 기초자치단체로서 광역행정수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밝히고, 통합 자치단체로서 재정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울러 창원광역시 승격은 국가 및 지역 균형발전의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행위에 회부된 해당 청원은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처럼 이색 청원들은 처음에는 반짝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국회 말에는 결국 폐기처분을 면치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9대 국회에 접수된 입법청원은 총 224건이지만 본회의에 상정된 청원은 2건에 불과했다. 가결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19대 뿐만 아니라 17, 18대 국회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속타는 민원인

청원이 처리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국회 사무처 청원담당 사무관은 “청원을 처리하는 상임위서 법안 심사에 몰두하는 경향이 높다”며 “법안뿐 아니라 결산과 예산 검토로 바쁘기 때문에 청원은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무처에서는 청원처리를 독려하기 위해 연말에 위원회에 안내문을 보내기도 한다”며 “청원을 제출한 일반인들은 본인이 낸 청원이 처리되길 학수고대하지만 실상 국회 사무처에서 처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무용지물 청원제도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른 역대 청원제도 살펴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폐기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6대 국회서 입법청원 폐기율은 55.7%를 기록했고, 17대 국회에선 73.1%를 기록해 20%가까이 상승했다. 18대 국회에선 74.6%를 기록했고, 19대 국회선 80%를 하회했다. 청원을 해도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시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로 인해 입법청원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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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