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밀착’ 전경련 사업 대해부

대통령 입맛대로 ‘밀고 당기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전경련은 최근 보수단체 자금 우회 지원, 재단 지원으로 불거진 정권 연루 의혹으로 정경유착의 창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상태다. 경제 발전의 주역으로 시작해 재계 대변인으로 정권과 궤를 함께 해온 전경련 내부와 진행 사업을 살펴봤다.

지난 12일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국감에 출석한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의혹에 대한 질문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과정서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태생부터 ‘친’
정부 함께 성장 

전경련은 1961년 경제재건촉진회라는 이름으로 출범, 55년간 14명의 재계 대표가 회장을 맡은 이후 1968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제조업을 육성하고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뒷받침하는 등 경제 발전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현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끌었던 1977년부터 1987년은 전경련의 전성기라고 불린다. 전경련은 세계 여러 나라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저변을 넓히며 88서울올림픽 유치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이 과정서 대기업에 사업이 편중되는 등 정경유착의 꼬리표는 늘 따라다녔다. 경제 발전의 주역이라는 우호적인 시선이 있긴 했지만 재계 대변인정권에 자금을 지원하는 정권의 수금 창구등의 부정적인 시선이 끊이지 않았다.


전경련과 정부의 상부상조는 단체가 태생됐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경련의 전신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고 이병철 회장은 기업인을 풀어주는 대신 경제 재건을 위한 국가 산업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박정희 대통령에 약속했다. 전경련 태생 배경인 정부를 뒷받침한다는 그 후 단체의 존재 이유가 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경유착의 검은 그림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경련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모으기 위해 기업들에 참여를 권유한 사실이 5공청문회 당시 밝혀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을 제공한 총수들이 줄줄이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는 일도 있었다.

15대 대선 당시 국세청 차장 등이 대기업서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도 전경련과 정권의 정경유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표방했던 이명박정권 들어서는 규제 완화 정책, 공정거래법 개정과 노동자 임금 인상 자제 등을 관철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박근혜정부에선 전경련과 정권의 관계가 더욱 발전했다. 2013년 전경련 사업보고서에는 당시 회장을 맡고 있던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2의 한강의 기적을 향한 국민적 염원을 되새기며 정진해 나가겠다는 머리말이 장식돼 있다.

한강의 기적은 박 대통령이 신년사, 8·15 경축사, 전국체전 기념연설, 심지어는 노인의 날을 맞아 청와대로 초청한 노인들에게 건넨 인사말에서도 언급했던 단어다.

정부 주력 창조경제·새마을운동 앞장
경제성장·올림픽 등 각종행사에 기여

전경련은 2013년 진행한 사업 중 창조경제 기반 조성을 첫머리에 실었다. 2013225일 공식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최우선 국정운영 전략으로 내세웠다. 전경련은 이에 발맞춰 창조경제특별위원회를 열어 미래형 선박, 가상현실, 창의인재 양성 등을 제안했고, 창조경제 박람회에 참여했다.


2014년에도 전경련은 창조경제를 전면에 세웠다. 전경련은 민관협동 창조경제 추진단을 발족하고 전국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실현을 위해 창업 벤처와 중소기업 육성, 지역 특화 사업 기반의 창업과 신사업 창출 등을 지원하는 센터다. 박 대통령은 17개 시도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모두 참석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기업이 한 군데씩 맡아 각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하는 체계로 운영된다. 문제는 할당 기준이 불분명하고 지역 특성과 전혀 관계없는 기업이 센터를 맡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전경련은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강제 할당이 아니냐는 것. 전경련은 이 같은 의혹에 강제는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한 상황이다.

여기에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구축하려는 창조경제 자체가 보여주기식 용어에 가깝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안정상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대통령과 청와대를 중심으로 미래부는 전국 17개 지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 마치 창조경제의 핵심 틀을 완성한 것인 양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안 위원은 대기업을 압박해 전시용으로 만들어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대통령의 치적으로 포장한 실체는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자마자 확인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전경련의 2013년과 2014년 사업이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됐다면 2015년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 대한 향수를 고취하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사업보고서에서 허 회장은 지금 한국 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한번 경쟁서 밀리기 시작하면 다시 기회를 잡기 어렵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메르스로 내수가 급속히 침체됐고,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수출도 감소했다목표로 했던 3%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현 정부 들어
보조사업 늘어

하지만 허 회장의 머리말과는 달리 보고서에서 소개하는 첫 사업은 현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탄신 100주년 사진전에 대한 얘기다. 전경련은 정 회장을 조국 번영을 위해 헌신한 우리 경제의 국부라고 치하하면서 사진전을 통해 고인의 노력을 널리 알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화 시대 당시 파독 근로자, 중동 근로자, 월남 참전 용사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개최한 음악회 소개도 덧붙였다. 2015년 전경련이 진행했다고 내세운 이 사업들은 박 대통령의 향수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 때마다 새마을운동을 자주 언급하고 전파하며 해외 확산에 공들여왔다. 새마을운동 전파는 지난 530일부터 61일까지 경상북도 경주서 열린 제66차 유엔 NGO컨퍼런스 때 정점에 달했다. 유엔 NGO컨퍼런스는 유엔서 주최하고 전 세계 NGO가 한자리에 모여 국제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NGO 컨퍼런스다.

NGO, 즉 비정부기구로 공공 가치를 추구하는 민간단체들이 모이는 자리에 새마을운동 홍보부스가 세워졌다. 행사 참가자들의 결의문에 해당하는 결과 문서도 논란이 됐다. 논란은 유엔NGO컨퍼런스에 참가했던 국제 인권 단체가 결과 문서 초안에 새마을운동을 미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 시민 단체의 입장을 묻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이래서 해체론
대놓고 정경유착


초안에는 새마을운동은 농어촌과 도시 지역 간의 경제적 및 사회 기반 격차를 줄이는 데 중대한 영향을 끼친 모범적 시민운동이라며 세계 시민성의 맥락에서 2030의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새마을운동을 빈곤퇴치와 개발의 모델로 제안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새마을운동은 긍정과 부정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시민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관의 동원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이에 국내 70개 시민단체들은 해당 문단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컨퍼런스 기간동안 경북도 공무원과 새마을운동 관계자들은 문단을 다시 살리기 위해 애썼지만 결론적으로 문구는 빠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경련의 정권의 나팔수’ ‘정권의 심부름꾼역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때부터 전경련과 정권의 관계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박근혜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을 당시, 전경련 산하단체인 자유경제원은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경제단체 산하의 재단이 교과서 문제에 발 벗고 나선 것에 의아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독립적 비영리 재단법인이라고 주장하던 자유경제원이 사실은 전경련으로부터 매년 20억원가량의 돈을 지원받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문제의 성격이 바뀌었다. 정치중립성을 지켜야 할 경제 단체가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재단에 돈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4월에는 전경련이 보수단체 어버이연합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는 논란까지 불거졌다. 어버이연합은 친정부 시위, 집회 등 이른바 관제시위 의혹을 받았다.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억대의 자금을 지원하고, 이 자금을 단체 사무실 임대료와 시위 동원 인원 인건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튀어나왔다. 의혹은 청와대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어버이연합은 행동대장, 전경련은 스폰서, 지시는 청와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교과서·어버이·재단… 3단 콤보
‘정권의 수금창구’ 부정적인 시선

이에 시민단체들은 집회·시위 지시 의혹을 받은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을 고발했다. 허 행정관은 언론을 상대로 민·형사상 고소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지난 8월 말 허 행정관은 고소인 및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조사에서 청와대와 보수 단체의 유착 의혹에 대해서 뚜렷한 혐의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불거진 문제가 행정관 개인의 일탈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청와대는 관제데모 지시 의혹에 대해 분명히 지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청와대서 의혹이 나올 때마다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고 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대응은 미르·K- 스포츠재단과 관련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한류 문화와 스포츠를 통해 창조경제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걸고 출범했다. 본격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건 재단 인사에 대통령 측근인 최순실씨가 관여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면서부터다.

아울러 800억 원에 가까운 출연금이 한순간에 모이고, 재단 설립 신청 하루 만에 문화체육관광부가 허가를 내준 것은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공세가 이어졌다.

전경련이 언급되는 부분은 800억원에 가까운 출연금. 미르재단에는 삼성, 현대차, SK 30여개 그룹이 486억원을 냈다. K-스포츠에도 288억원의 기업 자금이 흘러들어가 있다. 돈을 낸 기업은 모두 전경련에 소속돼 있고, 출연금 규모가 재계 순위와 비슷한 점을 미뤄 청와대 지시로 전경련이 할당액을 기업별로 정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은 검찰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국감 내내 이어갔다. 국감장의 의원들은 이 부회장의 소극적인 태도와 답변 회피를 크게 질타했다. 심지어는 여당인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국회가 전경련 부회장을 여기에 출석시켜 가지고 저렇게 오만한 답변을 듣고 있어야 합니까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답변은 국감 출석 전과 상이한 면이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2일 두 재단 설립에 대해 자신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언론에 발언한 바 있다. 그리고 같은 달 26일부터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재단 설립 과정, 재단의 최초 제안자 등 질문에 수사 중이라는 말만 거듭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2일 국감에서 20여차례나 수사 중이라고 답했다.

산업화 미화
정권의 나팔수

하지만 전경련에 대한 지적에는 적극적으로 비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재단에 기업들이 돈을 모금한 사실을 두고도 이 부회장은 기업의 판단”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또한 전경련이 청와대를 위한 기관이라는 지적에는 정부에 문제가 있으면 쓴소리도 하고 옳으면 적극 동참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의 비호에도 청와대를 향한 의혹의 칼날은 여전할 것으로 보여 향후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해체론’ 전경련 이번에도?

각종 의혹의 중심에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부각되면서 해체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논란은 해체론에 불을 붙였고, 이승철 부회장의 국감 답변 태도는 기름을 부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서 야권은 청와대가 개입하고 전경련이 뒷받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두 재단과 관련해 집중 포화했다. 이 부회장은 야권 공세에도 수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야권은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일부 새누리당 의원도 가세하면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과거 전경련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과, 윤리 선언 등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노태우 전 대통령 대선 비자금 모금 당시에는 전경련 회장단이 음성적 정치자금은 내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은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선 전경련은 형식적인 사과와 윤리 선언으로 순간적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할 뿐 근본적인 자정 노력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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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