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삭막한 대한민국 막전막후

끊긴 사람과 사람 사이 “정이 사라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 벽이 세워질까 걱정하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식당가는 한산했고 시범케이스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약속을 잡는 것조차 꺼렸다. 심지어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사람을 ‘왕따’시키는 풍조까지 생겨나는 추세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김영란법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이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됐다. 김영란법은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정확한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공직자와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드디어 시작
앞서는 걱정

지난 2012년 제안된 이후 2013년 8월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2015년 1월8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2015년 3월 3일 국회본회의를 통과해 3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다.

2015년 3월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대한변협, 기자협회, 인터넷 언론사, 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이 헌재에 네 건의 헌법소원을 냈으나 2016년 7월27일 헌법재판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합헌으로 결정했다.

원래 제안된 법안에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있었으나 이에 대해 여야가 막판까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의결 대상서 제외됐다. 법안이 시행되면서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 처벌을 받게 됐다.


다만 상조회, 동호인회, 동창회, 향우회, 친목회의 구성원 등 지속적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이 질병이나 재난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공직자에게 제공하는 금품이나 공직자 직무와 관련된 행사에서 주최자가 통상적인 범위서 참석자에게 제공하는 교통·숙박·음식 등은 수수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한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현행 공무원 행동 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3만원의 상한액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제정안은 또 공무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을 5만원으로 정했다. 기존 공무원 행동 강령에는 선물 비용에 대한 상한액은 없었다. 선물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경조사 비용은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렸다.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엔 민간인이라는 점을 고려, 직급별 구분 없이 시간당 100만원까지 사례금을 받을 수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식사와 선물 등 접대와 청탁이 모두 제재 대상이 됨에 따라 기존 접대 관행에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농수축산업계와 요식업계는 소비 위축에 따른 장기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정청탁이나 직무 관련성 등에 대한 구체적 판례가 확립되기까지 2∼3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상당 기간 혼란이 예상된다.

인간관계 악화…살벌한 사회 우려
애매모호 조항 소송 잇따를 전망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자 직격탄을 맞은 고급 음식점들의 폐업과 업종 전환이 줄을 잇고 있다. 전국의 관공서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고급 음식점이 문을 닫거나 더 싼 메뉴 전문점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는 것.


한정식과 일식집 등 고급 음식점들은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해 2만9900원짜리 ‘김영란 세트’를 준비해 뒀지만 손님들의 움츠러든 마음을 잡지는 못했다.

시행 첫날 한우고깃집, 한정식, 일식집 등 주요 고급 식당들은 빈 테이블이 곳곳에 넘쳐났다.

여의도의 한 고급 한정식 직원은 “예약 없이는 자리를 못 내드릴 정도였는데 손님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라며 “런치에는 1인당 3만원을 넘지 않는 메뉴도 충분히 있지만 고급 이미지 때문에 점심 때조차 찾지 않는 손님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서울청사 인근 한정식집 ‘두마’가 폐업했고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일식집 ‘학’도 문을 닫았다. 두마 관계자는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공무원들 접대문화가 점차 사라져 가던 중 김영란법까지 시행돼 드나들던 공무원들도 발길을 끊었다”고 말했다.

서민경제 타격
교육현장 삭막

서울 종로구의 유명 한정식집 ‘유정’은 60년 만에 문을 닫고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유정 관계자는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고 단골손님들도 정년퇴직하면서 계속 적자를 봤다”며 “김영란법 시행으로 영향이 더 클 것으로 판단해 주메뉴와 상호를 변경했다”고 말했다.

한국음식업중앙회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법 시행으로 회원업소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이대로라면 일반음식점과 유흥음식점들의 휴·폐업과 업종 전환이 꼬리를 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 현장의 분위기도 삭막하다. 대부분 입법 취지에 동감하며 법 시행 대비에 나서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천편일률적인 적용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 것.

이와 관련 각 지방 교육청으로 최근 청탁금지법에 대한 문의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특히 운동회 등 학교행사 때 학부모들이 교원들에게 제공하는 식사, 음료수 등을 받아도 되는지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사례집 등을 통해 불허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밖의 사례들에 대해서는 모호한 부분이 많아 학부모, 교원들의 혼란을 야기하는 실정이다. 청탁금지법에 대해 제기돼 온 다양한 우려들을 불식하기 위한 보다 명확한 법적 해석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유·초·중·고교를 대상으로 관련 가정통신문 발송 협조 요청, 법 내용 안내, 질의·응답 사례 안내 등의 공문을 전달했으며 관련 연수도 몇 차례 실시했다”며 “열심히 준비는 하고 있지만 시행 전부터 예견되는 여러 문제에 걱정이 앞선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무엇보다 학교 내 관계가 전반적으로 삭막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A씨는 현장체험학습에서 학생이 준 음료수를 거부하자 학부모로부터 “고마움의 표현인데 이 정도는 받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왔다고 했다.


란파라치 극성
전문학원 호황

A씨는 “초등학교는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교육이 이뤄지는데 너무 삭막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나 관련업체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거절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지만 교사로서 자긍심에 상처를 안기는 것도 사실이다.

A씨는 “서울시교육청이 이미 10년 전부터 업무 관련 청탁이나 금품 수수를 강력히 금지해 현장에선 거의 사라졌는데도 잠재적인 범죄집단처럼 인식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신고로 인해 공익을 증진한 경우에는 포상금이, 직접적인 수입의 회복·증대나 비용의 절감을 가져온 경우에는 보상금이 신고자에게 지급된다.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공직자뿐만 아니라 공직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국민이 조심할 것은 바로 이 법이 아니라 이 법의 시행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이른바 ‘란파라치’라고 할 것이다.

김영란법을 위반한 경우는 형벌이나 과태료만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위반자에 대한 징계가 행해져야 하기 때문에 신고의 위력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이미 김영란법 시행 전부터 기존 파파라치 학원들은 앞다퉈 ‘김영란법 특강’을 개설하며 수강생을 끌어모았다.

“누구 만나기가 두렵다”
고급식당 줄줄이 폐업


김영란법이 금지하고 있는 3만원 이상 식사, 5만원 이상 선물이 오가는 현장을 적발해 한몫 챙기는 법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이 학원들은 지금도 전단과 현수막을 통해 ‘월 300만원 안정적인 수입 보장’ ‘한 건 하면 억대 포상금’ 등으로 선전하고 있다. 업계에선 전국에 파파라치 양성 학원이 20곳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파파라치 학원들은 이론 3시간, 실무 4시간 교육을 공짜로 진행한다고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료 특강을 미끼로 수강생들을 끌어모은 뒤 초소형 몰래카메라(몰카)를 비싸게 팔아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수강생들은 지적한다. 10만∼50만원 상당 몰카를 한두 차례 강의와 묶어 100만∼200만원에 파는 식이다.

그동안 ‘식’파라치, ‘세’파라치 등으로 활동하던 이들도 일확천금을 기대하며 ‘란파라치’로 전업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학원의 불법 운영을 신고하는 ‘학’파라치로 활동해온 한 주부는 “학파라치의 포상금은 최대 200만원에 불과하지만 란파라치는 한도가 2억원이라서 파파라치 업계에서 ‘로또’로 통한다”고 말했다.

이에 공무원과 교원들은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안 된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들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교육’을 하고 있다. 법원도 란파라치의 신고가 몰릴 것에 대비해 규정 위반에 대해 어느 정도 과태료가 적정한지를 연구하는 ‘과태료 연구반’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구체적인 김영란법 위반 사례가 아직 없기 때문에 세부 규정을 만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파라치 학원들은 “김영란법은 적용 대상이 공무원과 교원 등 총 400만명에 달하는 데다 법 위반자를 신고하면 최대 30억원 보상금과 2억원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상금(포상금 포함) 지급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에 신고자가 억대는 고사하고 100만원을 받을 가능성도 굉장히 낮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신고 포상금을 받으려면 법을 위반한 사람들 이름과 직함, 근무 부서, 접대 및 수수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알고 신고해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 권한이 없는 민간인이 구체적 범죄 정보를 파악해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이런 정보를 갖춰서 신고해도 부정한 자금이 국고로 환수되지 않으면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부작용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법 적용은 서민경제를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인간관계를 메마르게 하고 사회를 삭막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애매모호한 조항 때문에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작 비리를 저질렀던 사람들보다 일반 서민들의 피해가 더욱 클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으나 딱 부러지는 답변을 듣기도 쉽지 않다.

부작용 속출
국민은 혼란

전문가들은 김영란법이 국민들의 공감을 받고 우리 사회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조항은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문가는 “사회 투명성과 청렴도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영란법은 필요하다”면서 “시행착오로 인해 선의의 피해를 보는 국민이 나오지 않도록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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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