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나락으로 떨어진 강만수

정권 실세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회장이 현직 시절 저지른 비리가 포착돼 이슈다. 화려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강 전 회장은 MB정권의 각종 경제정책을 이끌던 선장으로 이 전 대통령 임기 내내 신뢰를 받아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사의를 표하며 재야로 떠났지만 최근 다시 문제의 주인공이 됐다.

강 전 회장은 경남 합천 출생으로 경남고를 수석 졸업한 뒤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1969년 서울대를 졸업한 강 회장은 이듬해인 19708회 행정고시 재정직에 수석 합격하면서 엘리트 코스에 합류한다.

행정고시 수석
반짝한 MB노믹스

그는 첫 공직생활을 세무서에서 시작했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재무부로 배치받았다. 이후 세제국 사무관으로 근무하며 지난 1977년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실무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늘 많은 프로젝트가 그에게 몰릴 정도로 재무 분야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1985년 강 전 회장은 미국 한국대사관 재무관으로 추천돼 한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재무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도 그의 엘리트 본능은 식지 않았다. 친분이 있던 IMF 테이트 재정국 부국자의 추천서를 받아 전공인 법학 대신 경제학을 선택, 뉴욕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다섯 학기 만인 1987년 뉴욕대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강 전 회장 앞에는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재무부 보험국장·국제금융국장 등을 거치고 1994년부터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의 세제실장으로 근무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는데…비리 망신
지인 업체에 투자·대출 압력 혐의

강 전 회장은 IMF 사태를 직접 실무로 경험한 경제통이다. IMF 이후 금융시스템의 초석을 다진 것도 그다. IMF 당시 강 전 회장은 지원 자금 협상은 물론 금융감독·중앙은행제도 개편 등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한편으론 지난 1998년 당시 무리한 원화 방어정책을 펼치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 관료 중 1인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시기부터 강 전 회장을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지난 1981년 소망교회서 처음 만났다. 이후 그들은 강 전 회장이 한나라당 미래경쟁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지난 2000년부터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미래경쟁력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서로 뜻이 맞은 둘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활동하던 지난 2005년 공적인 자리서 재회했다. 이 전 대통령이 강 전 회장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으로 부른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부임하며 이룬 굵직한 업적은 강 전 회장의 손을 거쳤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주도한 청계천 복원 사업과 대중교통 제체 개편 등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강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의 기반을 닦았다.

그리고 3년 뒤 이 전 대통령은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 전 대통령은 강 전 회장을 주요 요직으로 불렀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한 기획재정부의 초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추후 서민경제를 파탄 낸 주범으로 꼽히는 ‘MB노믹스도 이때 계획된다.


MB노믹스는 이 전 대통령의 이니셜 MBEconomics의 합성어로 이명박 경제학을 말한다. MB노믹스의 주축은 경쟁 촉진형경제 운용으로,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세금을 줄여 경제 주체들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저성장과 양극화 같은 한국경제의 문제가 풀리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MB노믹스는 오히려 양극화를 극대화하는 정책이 됐다. IMF 외환위기 사태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이 기획재정부장관이 됐다는 사실은 이명박정권의 도덕불감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재무부 시절부터 금융시장 자율화와 개방 등을 추진하며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드러냈던 강 전 회장은 이명박정권 초기부터 고환율 정책을 고집해 수입 물가를 상승시켰다. 그는 장관으로 임명 전 재야서 고환율정책을 썼다면 IMF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고환율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고환율 정책은 서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 이 전 대통령과 강 전 회장은 리만브라더스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는 지난 2008년 전국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인물로 부상했다. 그의 고환율정책은 외국에 나가있는 유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는 계기가 됐으며 대기업을 더 부자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중 법인세 관련 브리핑은 가장 유명한 일화다.

국민정서 외면
정책 밀어붙여

그는 기획재정부 취임 첫 공식브리핑에서 법인세 인하와 관련해 대기업만 이득을 본다는 지적에 대기업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세금 경감 시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건 당연하다고 반박해 서민들을 배려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모습은 경제 활성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던 이명박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외면으로 돌아왔다.

종합부동산세 완화역시 마찬가지의 절차를 밟았다. 비난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정책을 펼치던 그는 종합부동산세는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조세라는 주장을 펼치며 부자들만 혜택을 본다는 각계의 지적을 무시하고 그대로 진행했다. 상속세와 관련해서도 앞으로 상속세를 두는 나라는 자본도피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IMF의 권고를 소개하며 상속세 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때부터 강 전 회장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지난날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고환율 정책은 결국 대기업 배불리기에 불과했다는 평을 샀다. 고환율정책으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지난 2014년 기준 477조원에 달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환율 정책을 시행해 외환을 낭비해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는 주위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이명박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인 ‘747 경제공약에 대해서도 여론의 비난에 캐치프라이즈로 내건 것이지 구체적으로 달성하라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답했다.

지난 2009년 강 전 회장은 기획재정부장관서 퇴임했다. 이후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지난 2011년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 행장에 취임했다. 경제 관료 출신이 산업은행 책임자로 선임된 전례가 없다는 비난 속에서 강 전 회장은 금융 산업 개혁의 기조를 걸고 회장직을 맡았다. 이를 두고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이 계속됐다.

강 전 회장은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되자 기획재정부장관 시절부터 주장한 우리금융과 산은금융, 기업은행의 합병을 추진했다. 이 작업은 자본유출 위험성이 높아 우려를 낳았지만 그는 산은금융지주 민영화와 메가뱅크론을 역설하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메가뱅크론는 국내 은행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업무영역을 다변화하기 위해선 초대형은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산은은행지주가 우리금융의 인수에 실패한 것이다. 우리금융의 입찰 무산은 여러모로 파급이 컸다. 인수 당사자인 우리금융과 학계로부터 관치금융의 극치라는 뭇매도 맞았다. 이와 동시에 산은금융지주의 민영화 계획도 무산됐다.

낙하산 인사란 꼬리표 때문에 내부 지지도 얻지 못했다.

산은금융지주 노조는 강 전 회장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간부급은 힘있는 회장의 취임으로 속도감 있는 변화를 예상했는데 실망스럽다며 등을 돌렸다. 결국 강 전 회장은 상황의 반전을 위해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서울지점 인수를 추진했지만 협상은 결렬로 끝났다. 산은금융지주는 HSBC가 제안한 직원 고용승계 등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협상 3개월 만에 산음금융지주는 HSBC의 인수계획에서 손을 뗐다.

지인 회사 특혜
뇌물수수도 논란

그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다이렉트 뱅킹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강 전 회장은 취약한 자금 조달 구조 개선을 목표로 이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와 관련해 산은금융지주의 2012년 총 자산이 전년 대비 20조원이 증가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강 전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서 다이렉트 뱅킹을 홍보하는 등 자신감을 보였다. 지점 유지비용을 고객에게 수익으로 돌려준다는 발상은 국민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감사원은 다이렉트 뱅킹이 역마진으로 손실이 나는 구조라는 것을 밝혀냈다. 예금자 보험료와 지급준비금 등 관리비용을 잘못 산정해 2012460억원의 손해를 봤고, 2013년 말까지 예금 손실액이 1094억원, 고금리 예금상품 전체 손실은 1440억원에 달할 것이라 전망하며 구체적인 액수도 집었다. 이어 영업이익을 부풀려 임직원의 성과급을 최대 41억원이나 더 지급한 점과 개인금융부문 확대를 위해 영업점을 늘리면서 59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점도 문제 삼았다.

금융권 최초의 사내대학으로 알려진 KDB금융대학교 역시 사실상 일자리 기념관이라는 비아냥을 얻으며 감사 대상에 올랐다. 부임시 민영화 추진과 함께 글로벌 성장기반을 확대하고 강한 KDB그룹문화 형성에 힘쓰겠다며 보인 의욕과 상반된 결과를 보인 셈이다.

큰 사업들에서 연이어 실패한 강 전 회장은 이후 해외 출장을 반복하며 활로를 모색했다. 그러나 소득은 없었다. 강 전 회장이 국내외를 오가는 동안 이명박정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강 전 회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이에 발맞춰 감사원은 강 회장의 목줄을 죄었다.

공직 엘리트 코스 ‘승승장구’
MB 소망교회 인연…요직 맡아

당시 민영화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던 박근혜정권은 산업은행 민영화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와 함께 이명박정부의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분류 된 강 전 회장의 자리도 위태로워졌다. 결국 강 전 회장은 임기를 1년 남긴 지난 2013년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자리서 물러났다.

일선에 물러나 재야에 머물던 강 전 회장은 최근 과거 저지른 비리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의 중심이 됐다.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강 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별수사단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산업은행 재임 시절 대우조선해양에 영향력을 행사에 지인이 운영하는 바이오업체 A사와 종친의 회사인 중소 건설업체 B사에 100억원대 투자를 하도록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강 전 회장에게 혜택을 받은 A사 대표는 지난 13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해조류를 이용한 바이오에탄올 생산 상용플랜트 기술 개발과 관련해 프로젝트의 완성 의사와 능력이 없는데도 투자금 명목으로 총 44억원을 수수한 혐의다.

강 전 회장은 대우조선해양과 비슷한 시기에 약 5억원을 A사에 투자한 한성기업과 관련된 혐의도 받았다. 임우근 한성기업 회장은 강 전 회장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한성기업은 대출 허용 기준에 맞지 않은 특혜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 전 회장은 기획재정부장관이던 지난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한성기업이 특혜성 대출을 받도록 은행장들을 임 회장에게 소개해주는 등 대출을 청탁했다. 한성기업은 산업은행서 다른 은행보다 낮은 이자율로 총 240여억원을 대출받았고, 이 중 수십억원은 신용등급 조작과 부실한 대출심사 과정을 거쳤다.

이뿐 아니다. 지난 2008년부터 올해 초까지 한성기업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여행·사무실 경비를 비롯해 고문료를 포함한 억대의 뇌물을 챙긴 혐의도 있다. 그가 소장직을 맡고 있는 디지털 경제연구소의 사무실 운영비도 한성기업서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수사단은 한성기업 관계자로부터 강 전 회장이 고문을 맡은 것은 돈을 지불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사실과 다르다”
혐의 모두 부인 

다른 의혹들도 꼬리를 물었다. 강 전 회장이 주류 수입 판매업체로부터 청탁을 받고 관세청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다. 지인들을 대우조선해양 고문으로 취업시켰다는 의혹도 이어졌다.

앞서 지난달 7일 강 전 행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과 다른 보도가 이어져 평생을 공직에 봉사했던 사람으로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조세심판원장에게 주류업체 추징금과 관련한 청탁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사실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있다한국과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와 관련돼 있는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검찰에 가서 말하겠다고도 했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이 고문 자격으로 지원받은 경비와 명절 떡값을 모두 더해 한성기업으로부터 1억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보고 지난 23일 심문에 들어갔다. 임 회장은 명절 때마다 강 전 회장에게 현금 500만원씩 건넸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은 현금 수수 사실 자체를 전면 부인하며 진실공방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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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