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반풍’ 잠재울 비책

반기문 잡아야 대권 잡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조기 등판할 뜻을 내비치면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속내가 복잡해졌다. ‘반기문 대세론’과 ‘문재인 대세론’이 공존하는 가운데 대선을 1년여 남기고 문 전 대표의 ‘반풍’ 잠재우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15일, 유엔본부서 정세균 국회의장,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을 만나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는 대로 내년 1월 중순 이전에 귀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초 정치권에선 임기를 마치고 미국서 1~2개월 머문 뒤 내년 3월 쯤 귀국할 것으로 점쳤지만 반 총장이 조기 귀국을 천명함에 따라 대선레이스가 조기 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충청권을 대표하는 김종필 전 총리가 반 총장을 적극 돕겠다는 뜻을 밝혀 그의 차기 행보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반기문 견제
이해찬 카드

반 총장이 대권행보에 가속도를 붙임에 따라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도 더 이상 ‘문재인 대세론’에 기대기만은 어려운 모양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친문 진영의 전폭적 지지로 당대표에 오른 더민주 추미애 대표를 등에 업고 명실공히 더민주 유력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더민주 잠룡들이 ‘문재인 대세론’에 반기를 들고 있지만 아직까지 야권서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공고한 상황이다.

야권의 내부 분위기와는 달리 반 총장의 존재감은 문 전 대표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지난 5월 처음 여권의 대선주자로 언급된 반 총장은 단숨에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를 앞지르며 ‘문재인 대세론’에 제동을 걸었다.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반 총장과 문 전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지만 반 총장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 여당 내 반 총장을 견제할 인물이 없다는 것도 문 전 대표에게는 악재다. 친박 세력의 지지세를 업고 있는 반 총장에게는 4·13총선과 8·9전대를 거치면서 세가 잔뜩 위축된 비박계의 견제구도 통하지 않고 있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반 총장 추대론까지 언급돼 현 시점에는 ‘문제인 대세론’과 ‘반기문 대세론’이 쌍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다. 더민주 내에서 언급되는 대권 잠룡들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문 전 대표의 앞길을 어둡게 만든다.

야권 충청대망론 기수 안희정 충남도지사, 4선의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문재인 대세론’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면서 문 전 대표를 노리고 있다. 이처럼 문 전 대표의 불안한 대권행보가 이어지는 와중에 최근 이해찬 의원의 복당은 내년 대선 흐름을 바꿔놓을 상수로 꼽힌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의 더민주 복당이 반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문 전 대표의 히든카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의원과 반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장관과 총리로 2년 가까이 국정운영을 함께하며 밀월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장례식에 반 총장은 오지 않았고, 같은 해 7월 제주는 방문했지만 김해 봉하마을은 들르지 않아 친노계로부터 빈축을 샀다. 반 총장은 2011년 12월이 돼서야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지만 이미 친노계와 관계는 틀어져버린 상황.

문 '굳히기' vs 반 '뒤집기' 빅뱅 예고
친노좌장 이해찬 영입…저격수 등장?

불협화음이 계속되던 중 지난 6월 반 총장과 이 의원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서 만날 예정으로 알려져 국내 정치권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 의원 측이 “면담의 성격이 변질됐다”는 이유를 들어 일정을 급작스레 취소해버렸다.


당시 이 의원은 회동에 앞서 한 언론을 통해 “외교관은 국내 정치와 캐릭터상 안맞는다”며 “정치를 오래했지만, 외교관은 정치에 탤런트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는 돌다리가 없어도, 물에 빠지면서도 건너가야 하는데 외교관은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안 건너간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외교관 역량이 정치인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들어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의원과 만남이 무산된 데 대해 당시 반 총장은 “만남을 기대했는데, 만나지 못해 서운하다”며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만나뵙겠다”고 속내를 숨겼다.

일각에선 이 의원의 더민주 합류가 친노계의 분화로 이어져 문 전 대표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하지만 반 총장과 같은 충청 출신인 이 의원이 ‘반풍’을 차단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치권의 여러 가지 해석에 대해 함구한 이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당무위 의결 후 공식입장을 밝히겠다"면서도 "야권승리를 위해 저를 도왔다는 이유로 징계당한 (지역구내)핵심당원들에 대한 복권, 복당도 함께 돼야 진정한 통합이 될 수 있다"고 밝혀 복당 후 역할론과는 거리를 뒀다.

문 전 대표는 이 의원의 복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이를 두고 문 전 대표가 친노계파 프레임을 극복하고 이반된 호남민심을 되찾게 하기 위해 일부러 거리두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야권통합 올인
‘반풍’ 힘 빼기

문 전 대표 측에선 반풍을 잠재우기 위해 야권대통합을 통해 세 불리기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 11일 문 전 대표는 광주를 방문한 자리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단일화를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의 생각이야 다를 수 있지만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제는 정권이 바뀌어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희망을 주는 정부를 만들어야겠다는 국민들의 간절함을 우리가 받아들이면서 노력하다 보면 통합이든 단일화든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해 야권통합을 강조했다.

최근 더민주와 민주당의 합당은 야권통합 신호탄 성격이 짙다. 지난 18일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원외 민주당 김민석 대표와 양당 통합을 선언했다. 추 대표는 야권이 분열된 점을 들어 “우리는 2003년 큰 분열을 겪었고 올해도 분열을 겪었다”면서 “민주 개혁세력이 더 큰 통합을 위해 함께 품어야 한다. 분열로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수 없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통합 결정에 대해 “저 혼자 추진한 게 아니라 문 전 대표와 여러 분들의 고견을 듣고 추진한 것이라 걱정 안해도 된다”고 말해 이번 통합이 추 대표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님을 강조함과 동시에 문 전 대표의 의중이 담겨 있음을 시사했다. 문 전 대표의 야권통합 의지에는 호남민심 회복에 대한 바람이 담겨있다.

지난 총선서 더민주는 전남지역에서 단 1석도 내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더민주의 전신 새정치민주연합을 박차고 나간 안철수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창당해 문 전 대표에게 등을 돌린 호남민심을 본인에게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호남의 지지 없이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는 상황서 문 전 대표는 호남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야권통합 카드를 꺼냈다. 최근 호남 민심은 요동치면서 반대급부로 반 총장에게 향하는 모습이다.
 

지난 21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호남(광주·전라) 지지율은 반 총장 20.7%, 안 전 대표 14.1%, 문 전 대표 13.2%를 기록했다. 새누리당 정운천 의원은 YTN라디오에 출연해 “(호남에서도) 반기문 총장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더민주가 호남에서 3석밖에 없는 이유가 문재인 대표에 대한 심판이라고 볼 수 있다”며 “호남에선 아직도 문재인을 끌어안을 만큼 마음이 가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호남 민심이 이반된 상황에서 문 전 대표가 줄기차게 강조하는 야권대통합은 호남 민심 회복, 세 불리기, 반기문 견제라는 세 가지 포석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 전 대표가 야권대통합이라는 대전제에 불참할 의사를 밝힘에 따라 문 전 대표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만약 새누리당이 반 총장을 단일 후보로 내세운 상황에서 야권이 분열돼 있다면 이는 문 전 대표에게는 분명히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안 전 대표와 동일 지지층에서 표 분산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민주당 합당, 이해찬 의원 복당은 문 전 대표의 야권 대통합 명분 쌓기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싱크탱크 대결
승부수 띄운다

반 총장의 내년 1월 귀국에 맞춰 외교부 고위직 인사들이 주축이 된 ‘반기문 재단’이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복귀를 하면서 설립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진다. 설립 목적은 평화 정착과 한국 재도약을 위한 발판 마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선 캠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앞서 반 총장의 팬클럽인 ‘반딧불이’도 오는 11월10일 전국조직 창립을 예고했다. 김성회 반딧불이 회장은 “반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전국 조직인 ‘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 반딧불이’를 11월10일 창립할 계획”이라며 “그 이전에 지부·준비위원회 결성식을 열겠다”고 말했다.


전국 시군구 중 절반 이상의 지역에 지부와 준비위를 조직할 것으로 알려진다. ‘반딧불이’ 회원은 전국적으로 3000명에 달해 반 총장의 최대 약점으로 평가받는 조직력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이미 친박계 인사들이 지원하고 있다는 말이 정가에 돌 정도로 세를 불리고 있다.

최근 문 전 대표도 추석 연휴를 지나 싱크탱크 구성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대권 행보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 대권행보에 돌입할 것으로 보이는 반 총장의 행보와 보폭 맞추기로 풀이된다.

지난 18일 문 전 대표 측 더민주 김경수 의원은 “문 전 대표는 각계 정책 전문가들과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놓고 토론을 이어 나갈 것”이라며 “특히 싱크탱크 구성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지난 7월부터 외교·안보, 경제, 정보기술 등 분야별 전문가들과 공부 모임을 가져왔다.

싱크탱크 대결 국면…제2의 담쟁이포럼 등장?
친박 지원 뒷말 무성…“혹독한 검증 거쳐야”

지난 2012년 대선에선 문 전 대표의 외곽 지원 조직인 ‘담쟁이포럼’이 실질적 싱크탱크 역할을 했었다. 이번에는 정책 연구를 담당하는 싱크탱크와 대선 외곽 조직을 별도로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리가 귀국하는 내년 1월 이후부터는 두 대선주자들은 싱크탱크를 통한 정책 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다만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손꼽히는 반 총장은 내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과 신상에 대한 검증이 미흡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반 총장은 2004년 1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외교부장관으로 2년간 활동했다. 당시에도 인사청문회 제도는 있었지만 장관은 청문회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정치권의 검증을 받지 못했다.

문 전 대표 측은 반 총장이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등장하면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전이 지역구인 더민주 박병석 의원은 지난 19일 TBS라디오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에 출연해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선 예비주자 중에서 반 총장은 유일하게 현실정치를 해본 경험이 없다”며 “앞으로 현실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혹독한 검증을 잘 돌파할 수 있으실지 하는 것은 과제”라고 지적키도 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제18대 대선서 정치권의 혹독한 검증을 거치고 야권 단일후보로 거듭난 경험이 있다. 아울러 문 전 대표가 직접적으로 반 총장을 겨냥한 발언은 없었지만 본격적으로 대선정국이 열리면 반 총장을 향한 거친 말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

혹독한 검증
“뒷심 약하다”

현재 야권에선 매섭게 불고 있는 ‘반풍’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곳곳서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친노계 전해철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선후보는 정당이 중심이 돼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역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선출한다면 대통령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뒷심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정당정치가 체화되지 않고 정당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후보는 성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에서 바람직하다 않다”고 덧붙였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다른 대선 시나리오
반기문-안철수 연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종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쏟아지는 가운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간 연대론이 부각되고 있다. 야권 전략통으로 불리는 더민주 민병두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3파전이 전개될 경우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매개로 ‘반기문-안철수 연합’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시나리오는 반 총장이 새누리당의 최종 대선후보로 결정돼 지지율상 대선 승리를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라는 전제에 있다. 안 전 대표는 이 연대론에 대해 지난 22일 국회에서 “국민의당이 집권하는 것이 제 목표”라고 말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다만 국민의당 내 일부는 이 연대론 가능성을 열어놨다.

3파전 전개시 연합 가능성
여권 “현실성 없다” 일축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은 지난 21일 한 라디오방송에서 안 전 대표의 ‘여권주자설’에 대해 “여권의 분화나 개헌을 통해 새 구도가 제시되면 그때 가서는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도 나홀로 주장은 하기 어렵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이 연대론에 비관적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며 “반 총장이 ‘자연인’이 됐을 때 여당 내 비박과 야당의 집중포화, 언론검증을 넘어 대선후보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자체에 회의적”이라고 언론을 통해 말했다. <훈>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