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 나온’ 안철수 대권플랜

더 이상 철수 없다…무조건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야권잠룡 및 여권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뚫고 과연 정권을 잡을 수 있을까. 정치권에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간철수’에서 ‘강철수’로 변모한 그가 보여줄 대권 플랜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의 한 식당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를 바꾸고 국민의 삶을 바꾸고 시대를 바꾸라는 명령을,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반드시 정권 교체하라는 명령을 가슴 깊이 새기고 제 모든 것을 바칠 것”이라며 사실상 대권 도전을 시사했다.

특히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서 대권도전을 선언한 것을 두고 야권 지지층을 향한 ‘상징적 메시지’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지난 20대 총선서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을 제치고 전남서 전석(13석)을 가져오면서 호남의 당으로 거듭났다. 안 전 대표는 이러한 지지세를 기반으로 대선가도를 달려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가장 먼저 선언
싱크탱크 재정비

같은 날 무등산에 오른 그는 “무등산 기슭에 도착하면서 시대정신을 생각했다”며 “소명의식과 사명감으로 시대정신을 이루기 위해 저와 국민의당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정치권 일각서 주장하는 ‘새누리당과 안철수의 결합’ 가능성을 완전히 불식하는 행보임과 동시에 더민주와의 정면대결을 통해야권 소속의 대권후보로 발돋움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안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등 보폭이 빨라진 데는 야권의 대표적인 경쟁자인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사실상 대권 행보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7월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귀국해 독도·백령도를 찾으며 ‘안보 행보’에 나서는 등 의미 있는 발걸음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당 박선숙·김수민 의원이 지난달 10일 불구속 기소로 파문이 일단락되면서 안 전 대표의 정치적 활동 반경이 넓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말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각을 세우고 탈당하면서 국민의당을 세우고 정치권의 염려에도 국회에 제3정당을 안착시켰다. 창당과 동시에 ‘안철수당’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4·13총선을 통해 정치력을 일정 부분 증명했다. 다만 지난 6월29일 국민의당 리베이트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후 줄곧 현실 정치권과 거리두기 행보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직을 내려놓은 지 8일 만인 지난 7월7일에는 첫 외부 행보로 한국경제 해법 찾기 조찬강연을 실시하면서 조심스럽게 민심다지기에 나섰다. 그는 강연서 ‘복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바둑에서 중요한 게 복기”라며 “고수일수록 복기를 통해 내가 어떤 수를 뒀을 때 예상한 대로 됐는지, 안 됐는지 살펴봐야 차츰차츰 실력이 발달하는 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부침을 겪은 안 전 대표는 지나온 길에 대한 ‘복기’를 내년 승리의 화두로 제시한 셈이다. 정치권에선 안 전 대표가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풀어야할 선결조건으로 인재풀 재정비와 청년 지지세 회복을 꼽는다.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는 300여명이 집결해 있었지만 지난 7월까지 측근 그룹이 줄줄이 이탈하며 3분의1 규모로 축소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달 16일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내일)의 사원총회에 참석해 2기 임원진을 구성하면서 인재풀 재정비에 나섰다.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대선 공약 등을 마련할 기지를 구축한 셈이다.

안 전 대표는 사원총회서 “지난 3년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며 “처음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만들었을 때 초심으로 돌아가서 변함없이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하자는 각오를 저 스스로도 다시 다지게 된다”고 말했다.

호남 심장부 광주서 출마 공식 선언
인재풀 재정비·지지율 회복에 집중


‘내일’의 이사장은 안 전 대표의 후원회장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최 교수는 주일대사를 지낸 정치·외교 전문가로 통한다. 실무는 안 전 대표와 대선 캠프 때부터 함께 한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과가 맡았다. 이사에는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학과 교수와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선임됐다. 안 전 대표는 이사에서 물러나 고문을 맡는다.

이번 이사진 개편은 본격적인 대선 국면을 앞두고 대선 정책을 준비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최 이사장은 “‘내일’이 안 전 대표의 대선 싱크탱크 역할을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연구의 목적은 우리가 개발하고 생산한 정책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안 전 대표가 그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고 본인도 그것을 수용할 것이다”라고 밝혀 안 전 대표에 힘을 실어 줄 것을 직접적으로 내비쳤다. ‘내일’이 안 전 대표의 사조직 겸 싱크탱크의 역할임을 부정하지 않은 셈이다.

안 전 대표는 사조직 재정비를 통해 내년 대선을 내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내년 대선을 바라보는 안 전 대표는 여야의 유력 대선 후보로 손꼽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문 전 대표에 비해 지지율이 낮다. 정당지지율도 리베이트 파문 이후 곤두박질 친 상황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달 28일, 전남 나주서 열린 ‘안철수와 함께 찾는 대한민국 희망’ 대화마당에서 한 지역주민이 “대선 승리를 위해 정당지지율이 계속 올라가야 하는데 매스컴을 보면 호남뿐아니라 수도권서 한 자릿수도 안된다”고 말하자 “사실 여론조사보다 정말로 정확한 것이 총선 민심, 표로 나타난 결과”라고 일축했다.
 

이어 “우리들은 정당지지율로 두 번째 정당”이라며 “그것은(총선민심) 정치인들이 엄중히 받아들여야 될 의무가 있다. 거기에 따라서 정말 최선을 다해 정치를 이끌어나가겠다”고 부연했다.

다만 본인의 격앙된 어조를 의식한 듯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지 않지만 엄중하게 생각한다”며 “총선 민심은 아직까지 살아있다. 우리가 그 기대만큼 부응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걱정 끼쳐드리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저도 열심히 다니며 해결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총선민심이 국민의당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낌과 동시에 현재 떨어진 지지율 회복을 위한 방법 찾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외연확장 집중
충청표 잡아라

그는 내년 대선 준비의 일환으로 인재풀 정비와 지지율 회복이라는 기초체력 키우기와 함께 외연확장에도 본격적으로 힘을 쏟고 있다. 외연확장 방법으로 손학규 전 고문과 정운찬 전 총리 등 굵직한 인사들의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손 전 고문 영입에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는 안 전 대표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앞장선 모양새다.

지난달 27일, 박 비대위원장은 전남 강진의 한 식당서 손 전 고문을 만났다. 박 비대위원장은 손 전 고문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안철수 전 대표도 손 전 고문을 영입한 뒤 강한 경선을 통해 꼭 정권을 교체하자는 애기를 했기 때문에 손 전 고문에게 (국민의당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새누리당은 ‘친박’당, 더민주는 ‘친문’당이기 때문에 열린 정당인 국민의당에 들어와 강한 경선을 통해 정권교체의 기틀을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막걸리 회동’으로 불리는 이번 만남은 지난 6월3일 목포서 열린 ‘이난영 가요제’가 끝나고 비공개로 독대한 이후 두 달 보름여 만이다.

앞서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16일, 정 전 총리와 손 전 고문에게 “본인들이 스스로 대선 (후보) 경선 룰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수 있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다만 정 전 총리가 같은 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더민주·국민의당 모두와 전혀 접촉이 없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박 비대위원장은 “간접적으로 이야기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그분들(손학규·정운찬)이 원하신다면 비대위원장이든 당 대표건(줄 수 있다)...”이라며 이들에 대한 영입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박 비대위원장의 말처럼 손 전 고문과 정 전 총리가 국민의당에 합류한다면 경선 흥행에 청신호가 들어올 전망이다.

수도권 및 전국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손 전 고문과 교수 출신의 국무총리를 지내며 동반성장에 화두를 던진 바 있는 정 전 총리가 국민의당에 합류하게 된다면 안 전 대표와 삼각편대를 구성하게 된다. 이는 자신이 구축한 세력권 안에 대권 잠룡들이 들어와 겨루는 모양새로 안 전 대표에게는 불리할 것이 없는 싸움이다.

연대는 없다?
단일화 없다?

박 비대위원장이 손 전 고문과 정 전 총리에게 당 대표를 줄 수도 있다는 큰 제안을 하고 있지만 이는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포석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치권에선 안 전 대표의 또 다른 외연 확대 방법으로 오는 9일 예정된 김종필 전 총리와의 만남도 거론된다.

지난달 31일 국민의당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총리와 안 전 대표, 박 비대위원장은 오는 9일 서울 시내 한 호텔의 식당서 ‘냉면 오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 알려진다. 회동은 김 전 총리가 지난달 19일 인사차 자택으로 찾아온 박 위원장에게 제안한 것이다.
 

이번 만남으로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시동을 건 안 전 대표의 지지세력 확장에 방점을 찍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각에선 충청권 정치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 전 총리와의 만남을 두고 충청권 표심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가 줄곧 주장하는 야권 연대에는 선을 긋는 모습이다. 안 전 대표와 문 전 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서 단일화를 이룬 적이 있었다.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서 문 전 대표는 여론조사 문항으로 야권단일후보 지지도를 주장했고, 안 전 대표는 당시 박근혜 후보와의 일대일 가상대결을 선호하는 등의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지난 2012년 당시 안 전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문 전 대표 지지를 선언했지만 앙금은 남아있었다. 이후 지난 1월 문 전 대표와 갈등을 또다시 겪으면서 안 전 대표는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최근에는 문 전 대표가 지난 대선 과정과 같이 야권연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달 18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이 진행됐다. 문 전 대표는 추도식 뒤 기자들에게 “지난 총선 과정에서 야권이 서로 경쟁했지만 내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뜻을 함께하게 되리라고 믿는다”면서 “저희(본인과 안철수 의원)가 어떤 방식이든 함께 힘을 모아서 반드시 정권 교체를 해낼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충청 표심 겨냥 손학규·정운찬 영입 박차
야권 연대 선긋기 “제3의 길을 만들겠다”

그러나 안 의원은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고 “김 전 대통령의 혜안이 그립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말과 원칙을 명심해 위기와 난국을 꼭 극복하겠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지난달 28일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 전 대표는 지난 30일, 야권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정치인들은 민심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몇십년 전 생각만으로 여전히 ‘산수’만 한다”고 말해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다.

같은 날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선 “내년 대선은 수구보수와 낡은 진보의 양극단 대 합리적 개혁과의 대결이 될 것”이라며 “국민은 지난 총선서 제3의 길을 만들고, 정권 교체의 기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박 비대위원장도 야권 단일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안 전 대표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박 위원장은 지난 6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서 “내년 대선에서는 이전처럼 야권 단일후보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인위적인 단일화는 없겠지만 10·11월쯤 되면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후보를 정해주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는 “만일 다자구도로 대선이 전개된다 해도 정권교체는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대선서 야당이 승리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야당의 뿌리는 호남이다. 호남의 승리 없이는 대선승리도 없다”며 “지금 우리는 (수권 정당의) 조건을 갖춰가고 있다. 야권후보 단일화 없이 3당 또는 4당 체제로 대선이 펼쳐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안 전 대표는 국민이 만들어준 제3의 길을 대표하는 대선주자로서 완주하려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비박·비문·국민의당이 합류하는 ‘제3지대론’이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다. 제3지대론 참여 여부에 대해 안 전 대표는 “총선 민심이 저희를 세워주셨는데 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총선 민심에 반한다”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국민의당 중심의 새판짜기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그는 “총선 의미를 잘 짚어보면 거대 양당에 대한 심판으로,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도도한 민심의 흐름이 내년 대선서 폭발할 것”이라며 “투표율도 엄청나게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가 적임자”
정권교체 강조

최근의 안 전 대표의 빨라진 행보를 두고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더 넓고, 더 깊게 국민 속으로 들어가고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론을 다듬어낼 것"이라며 "지지자들에게도 안 전 대표가 정권교체를 이룰 적임자라는 메시지도 일관되게 낼 것"이라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드’ 안철수 생각은?

지난 7월10 성명, 12일 의원총에서 안 전 대표는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공론화 과정’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다. 안 전 대표는 “공론화 과정에서는 사드 체계 도입으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며, 잃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대안은 없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국익 관점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 비준동의안 제출도 제안했다. 그는 “국회에서 사회적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며 “국가안보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 소중함이 일방통행으로 지켜질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훈>

<기사 속 기사> 국민의당 최초 도입 ‘전당원투표제’란?

국민의당이 정당사상 처음으로 ‘전당원투표제’를 전면 도입했다. 당비를 내는 당원, 내지 않는 당원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당원에게 1인 1표를 보장하는 것이다. 지난 1일 국민의당 박주선 당헌당규개정위원회 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당사상 처음으로 국민의당 차기전당대회와 대선후보선출 과정에서 전당원투표제가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당은 ‘권리당원’ ‘일반당원’ 등의 명칭을 모두 삭제하고 대의원제도를 폐지키로 했다.
이밖에 국민의당은 당대표와 최고위원회는 총 11인으로 구성하고 당 대표와 최고위원은 통합선거로 선출, 여성과 청년의 부문 대표성을 존중해 여성위원회와 청년위원회에서 선출한 여성위원장과 청년위원장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토록 개정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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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