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8·27전대> 추미애-잠룡들 궁합 보니…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시작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친문(친 문재인)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추미애 의원이 당대표에 선출됐다. 정가에 떠돌던 ‘문재인 대세론’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더민주 잠룡들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하나둘씩 일어나고 있는 상황. ‘추다르크’가 이끄는 더민주호에 과연 누가 깃발을 꽂을지 정치권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새 수장으로 추미애 대표가 선출됐다. 추 대표는 54.03%를 득표해 이종걸, 김상곤 후보를 누르고 당대표에 올랐다. 정치권에선 전대 경선를 놓고 추 대표가 주류 측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봤다. 게다가 ‘문재인 키즈’로 불리는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김병관 의원이 최고위원에 나란히 오르면서 친문 일색으로 지도부가 꾸려질 것이라는 정치권의 우려가 일정 부분 현실로 나타났다.

친문 일색으로
지도부 꾸린다?

추 대표가 당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더민주 잠룡 중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문재인 전 대표의 속내는 어떨까. 정가에선 이번 결과로 문 전 대표가 당내 대선후보 경선은 무난히 통과하겠지만, 막상 대선에서는 험난한 여정을 걷게 될 것이란 예상이 주류를 이룬다.

추 대표가 친문계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대표에 당선됐다는 것은 선거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게다가 최고위원들도 ‘문재인 키즈’들이 자리를 채웠다. 이번 전대 결과를 놓고 한 의원은 “과연 신임 지도부 구성이 문 전 대표에게 좋은 결과일까라는 의문들이 있다”며 “우리가 경선서 이기는 게 목표는 아니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추 대표가 문 전 대표에 치우치지 않는 경선을 추진, 당을 이끄는 반전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추 대표가 당대표 경선 과정서 ‘1등 후보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줄기차게 펴왔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당시 이종걸 당 대표 후보는 “만약 특정후보 대리인이 당 대표가 된다면, 그래서 경선 결과가 뻔하다면 흥행은 실패하고 강한 후보는 탄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친문·주류가 싹쓸이하는 것은 단합이 아니라 획일화로, 진정한 단합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내 유력주자의 수호천사를 자처하는 후보는 공정한 대선후보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해 추 대표를 견제하는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에 추 대표는 “전당대회를 하면서 갑자기 나를 두고 ‘친문’이라고 한다”며 “오직 대의원과 당원 여러분만 믿고 더민주를 지켜온, 한 길을 걸어온 ‘친민’이며 국민에게 희망주는 호위무서, ‘호민’이 되겠다”고 말해 이 후보의 공세에 대해 반박했다.
 

추 대표는 당선 직후 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손학규 전 상임고문, 김부겸 의원 등 더민주 대권 잠룡들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모두 함께 공정하고 깨끗한 경선, 정당사에 길이 남을 역동적인 경선을 함께 만들자”고 말했다.

또 “이번 전대에서 주류, 비주류의 나뉨이 있었다”며 “이제부터 주류·비주류, 친문·비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균형 있는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잠룡들을 언급하면서 ‘공정’ ‘역동’을 강조한 것은 ‘문재인 대리인’이라는 평가를 불식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문 대세론 확인…추 “1위 후보 지키겠다”
김부겸·안희정도 나란히 대권 도전 시사

추 대표가 내년 대선을 총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대가 끝남과 동시에 더민주 잠룡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우선 비주류계 잠룡으로 평가 받는 김부겸 의원은 지난달 30일 “당권 불출마 선언 이후 대선 경선 출마를 준비해왔다”며 “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이 대선 출마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가에선 지난 전당대회 결과 ‘친문’ 지도부가 들어서고, ‘문재인 대세론’이 득세한 상황서 이를 대응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평가한다.


김 의원도 조기 도전장을 낸 취지에 대해 “다른 의원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지만 너무 ‘문재인 대세론’ 하니까 이건 아니다 해서 나라도 나선 것”이라고 밝혀 친문중심으로 대선정국이 꾸려질 상황을 염려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친문당이라 불리는 현 상황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페이스북에 그는 “‘친문당’이 되었으니 대선 경선도 끝난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며 “대선 경선 결과까지 이미 정해진 듯이 말하는 것은 지나친 예단”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번 8·27 전당대회서 김상곤 후보를 후방지원하면서 대선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다. 당장 친문 중심의 추 대표가 당을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김 의원은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롭게 구성된 당지도부에 대해서는 “이번 전대 역시 대선 승리를 위한 당원들의 의지가 드러난 결과”라며 “우리 모두는 이에 승복하고 단결과 화합을 향해 새 출발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까지만 하더라도 김 의원은 더민주의 유력한 당권주자로 꼽혔다. 김 의원이 추 대표와 당권을 두고 겨룰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김 의원이 대권 도전을 시사하면서 당권의 중심추는 추 대표 쪽으로 기울었다.

당장 김 의원이 대선 출마를 밝힌 상황에서 추 대표가 직접적으로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방안을 꾸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 안팎에선 친문의 지지세를 등에 업고 당대표에 오른 추 대표를 지켜보는 시선이 매섭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최근 자신의 외곽 단체인 새희망포럼(대표 설훈 의원)을 주축으로 전국의 지역 조직을 닦는 데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핵심 측근은 “새희망포럼은 사실상 김부겸 대선 캠프의 맹아(萌芽)”라며 “수백 명의 자문 교수 그룹도 꾸준히 만나오고 있다”고 했다. 경제·통상전문 교수가 자문단 좌장을 맡아 내년 대선 캠프의 정책단을 이끌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겸·안희정
빠른 행보 왜?

최근에는 김 의원과 비슷한 시기에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선출마 의지를 내비쳤다. 안 지사는 지난 1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뛰어넘을 것입니다”라는 글로 시작해 “동교동도, 친노도, 친문도, 비문도, 고향도, 지역도 뛰어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역사를 완성하고자 노력할 뜻을 밝혔다. 이어 “그들은 시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도전했다”며 “나는 그 역사를 이어받고 한 걸음 더 진전시켜 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안 지사는 올 12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것으로 알려진다. 안 지사 측 핵심 인사는 지난 1일 “안 지사가 올 12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내년 1월로 예정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국내 복귀에 앞서 ‘반기문 대망론’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안 지사는 1989년 1월 김덕룡 전 국회의원실서 일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4대 총선서 낙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돕는 일을 시작해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정무팀장을 지내 노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지난 2010년 충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박상돈 후보를 누르고 충남도지사에 당선된 그는 지난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현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를 누르고 승리해 야권의 잠룡으로 거듭났다.

추 대표와 안 지사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잇겠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안 지사는 '노무현의 왼팔'로 불리며 친노의 핵심멤버로 분류된다. 친문이 친노서 분화했기 때문에 더민주 내에는 안 지사를 지지하는 고정세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안 지사는 최근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치면서 “계파를 뛰어넘겠다”고 밝혔다. 이는 친문 중심으로 대선 정국이 흐르는 것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부겸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도 ‘친문 힘빼기’에 일환으로 해석된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대선 출마를 고려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고심도 깊어진 상황이다. 박 시장은 지난 5월 광주 전남대 특강에서 “뒤로 숨지 않겠다.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서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겠다”고 밝혀 대권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박원순·손학규
어디에서 등판?

박 시장은 대선 출마와 서울시장 3선 연임 등을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경제·통일·노동 등 각 분야 원로들과 비공개 만남을 이어가며 세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박 시장 측은 조만간 시민사회세력 기반의 싱크탱크인 ‘희망새물결(가칭)’을 만들고 조만간 출범할 예정으로 알려진다.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오성규 전 서울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서왕진 전 서울시 정책특보가 싱크탱크로 주도하고 있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다양한 정책 이슈에 대한 자문과 동시에 시민사회 세력을 결집하는 기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친문중심의 지도부가 구성됨에 따라 박 시장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 시장이 더민주 내 지지기반이 튼실하지 않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또한 앞으로 추 대표가 만드는 룰 안에서 박 시장이 살아남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박 시장 영입에 힘을 쏟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2일 “박 시장을 만나 우리 당에 와서 아름다운 경선을 해보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민주 전대 결과를 보면 결국 친노·친문이 다 먹는다”며 박 시장이 국민의당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박 비대위원장도 박 시장이 더민주 내에서 대권주자로 살아남기에는 어렵다는 현실적 고려에서 나온 발언으로 풀이된다. 박 시장을 대선주자로 거듭나도록 한 인물이 국민의당 안 전 대표임을 살펴보면 국민의당의 제안을 무리수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다만 새롭게 더민주를 이끌 추 대표와 박 시장 간 정치적 접점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다는 점이 박 시장의 대선 행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박 시장도 김부겸 의원과 안 지사처럼 발 빠른 대선 출마를 선언할 수도 있다. 추 대표가 빠른 시일 안에 대선후보를 결정지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추 대표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당헌·당규에는 경선 룰이 대선 투표일 1년 전에, 후보는 180일 전에 확정지어야 한다고 돼 있다”며 “경선 룰은 늦어도 오는 12월 중순에는 만들어져야 하고, 후보는 6월까지 정해져야 한다는 얘기다”라고 말해 내년 6월 이전에 대선 후보를 뽑을 계획임을 밝혔다.

더민주냐 국민의당이냐
박원순·손학규 고민중

더민주 잠룡이자 야권 정계개편의 핵으로 꼽히는 손 전 상임고문도 눈치싸움에 합류했다. 손 전 상임고문은 이번 8·27 전대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더민주 잠룡군이 일제히 전대에 모습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대신 그는 국민의당 박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손 전 상임고문과 박 비대위원장은 전남 강진의 한 식당서 국민의당 합류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박 비대위원장은 “손 전 상임고문에게 친박인 새누리당, 친문당인 더민주가 아닌 열린 정당인 우리당으로 와서 강한 경선을 통해 정권 교체의 기틀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외연 확장을 위해 손 전 상임고문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손 전 상임고문은 박 대위원장과 만남에 앞서 추미애 의원이 당대표에 선출된 것에 대해 “축하한다. 당을 잘 이끌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짧게 말했다.

지난달 12일 추 대표는 손 전 상임고문에 대해 “주요 대선주자고,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그분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정치 철학이 우리 당에 녹아 있는 우리 당과 가장 맞는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손 전 상임고문은) 우리당과 정치 철학이 일치해서 이미 수년 전에 우리 당에 건너왔다”며 “제가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추 대표는 다른 잠룡들과는 대조적으로 손 전 상임고문에게는 강력한 러브콜을 보냈다. 사실상 문 전 대표를 지키기에 앞장선 추 대표도 그의 이탈로 잃게 될 ‘표 확장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손 전 상임고문이 아직 확실한 정계복귀 선언을 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당에 몸을 풀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앞으로도 추 대표가 문 전 대표를 강력한 대선주자로 만들기 위해 줄기차게 그의 영입에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잠룡들
“목소리 낼 것”

당내 한 관계자는 “앞으로 대권주자 간 경선 규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친문계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른 대권주자들의 의사는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 아니냐”며 “경선 시기는 물론 결선투표제 도입 여부 등에 이들의 등판 여부가 달려 있는 만큼 잠룡급 주자들이 앞으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무현 탄핵’ 추미애 당선 비결
권리당원이 몰표 줬다?

경선초반부터 1강 2중의 구도에서 1강을 차지했던 추미애 후보가 더민주 당대표에 선출됐다. 추 대표는 권리 당원(61.66%), 대의원(51.53%)과 일반 당원(55.15%)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일반 국민(45.52%) 여론조사 역시 응답자 절반가량이 추 후보를 당대표로 뽑았다.

과반수 지지 당선
특정 세력 지지세↑

이번 선거는 온라인 권리 당원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중론이다. 비주류가 국민의당으로 대거 탈당하면서 더민주에는 친문 성향이 강한 온라인 권리 당원이 대거 입당했다. 이들이 이번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 최민희 전 의원은 지난달 28일 “이번 당대표 선거는 바뀐 당원 구조를 토대로 적법하게 진행된 결과로 추미애 후보는 대위원, 권리 당원, 일반 당원, 국민 모두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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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