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모르는…’ 충격의 조폭 동향

“총 없으면 형님 대접 못받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폭들의 싸움을 떠올려보자. 주먹 대 주먹으로 펼치는 화끈한 일대일 싸움과 회칼을 들고 뒤엉켜 싸우는 조폭 무리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먹과 칼의 시대는 한물간 지 오래. 이제는 총 든 조폭들의 시대가 찾아왔다.

지난 19일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인터폴 수배로 국내에 은신하던 재일교포 야쿠자 중간보스 김모(44)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중국산 필로폰 약 1㎏(시가 31억8000만원, 3만1800명 투약분)을 밀반입한 뒤 다시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다 수사대에게 꼬리를 잡혔다.

야쿠자 중간보스
소지한 채 체포

놀라운 점은 김씨가 검거 당시 실탄 8발이 장전된 러시아제 TT-33 권총 1정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여차하면 목숨을 끊을 요량으로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세관 통관에 구멍이 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또 공항과 항만 등을 통한 총기류 밀반입 시도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0일 관세청에 따르면 전국 공항과 항만, 국제우편물 등을 통해 밀반입하려다가 적발된 (모의)총기류는 2013년 103건 140정, 2014년 124건 170정, 2015년 128건 180정이다.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해 적발한 총기류를 반입경로별로 보면 여행자 휴대품이 99정으로 가장 많았고 수입화물이 24정으로 뒤를 이었다. 그 밖에 선원 휴대품 21정, 특송화물 19정, 국제우편물 17정 순이었다. 김씨의 러시아제 권총 TT-33은 지난해 9월 공범인 한국인 B(54)씨가 일본에서 김씨 지인에게 받아 부산항을 통해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선박은 세관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으며 B씨는 권총과 실탄 10여 발을 되찾아 김씨에게 전달했다.


1990년대에 대량으로 생산된 이 러시아제 권총은 유효 사거리가 35m로 사람을 즉시 살상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이 국내에서 총기를 사용하지는 않았다지만 인명 살상용 무기가 부산항을 거쳐 국내에 버젓이 반입됐다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여객화물선으로 수입하는 기계류 화물에 숨겨 총을 밀반입했다는 것이 김씨의 진술이다. 그러나 부산본부세관은 이 권총 등이 실제 부산항을 통해 들어왔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도 B씨가 일본으로 달아난 상황이라 정확한 반입경로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경찰이 처음으로 외국 조직폭력배에게서 권총을 압수한 것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지방 세력도…실탄 장전한 총기류 무장
부산 거점 러시아 마피아 밀거래 소문

1998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불법 총기 밀매조직을 적발한 일이 있었다. 당시 청주의 한 폭력조직의 행동대원이 이 밀매조직에 총기를 사들인 사실이 드러났다. 개조한 일제 소총 등을 폭력조직에 팔아넘긴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보다 가까운 2014년 10월 광주에서는 권총과 실탄을 소지한 국내 전국구 폭력단체의 실세가 검찰에 붙잡혔다. 당시 유명 폭력단체의 행동대원 C(52)씨는 싱크대에 미국산 권총 1정과 실탄 30발을 보관하다 검찰에 적발됐다.

C씨는 “지인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사하면서 이삿짐에 실수로 들어왔다”며 “나에게 갖고 있어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국내에서 족보가 있는 폭력조직 간부가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이 총기로 무장한 조폭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영화에서만 보던 총격전이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건 아닌지 무섭다’ ‘권총을 소지한 조폭을 상대할 경찰이 걱정이다’ 라며 총기 사고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다’ ‘재범률이 높은 조폭이나 흉악범들은 형량이 끝나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면서 확실하게 소탕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시됐다.

부산지역 항만을 경유한 총기 밀반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 4월 부산에서는 러시아 마피아 간 다툼으로 러시아인 한 명이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6년 7월에는 부산항에서는 러시아제 권총 4정과 100여발이 실탄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조직폭력배 사이에서는 ‘부산에 내려가면 쉽게 총을 구할 수 있다’는 괴담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한 자루 없으면…
명함도 못내밀어

더 우려되는 것은 이렇게 밀반입된 총기가 일반인의 손에도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25일 대전 유성구에서는 일반인 신모(58)씨가 차량 운전자에게 총격을 가하고 도망가는 사건이 있었다. 신씨는 총격사건 3일 뒤 경기도 광주에서 발견됐다. 그는 궁지에 몰리자 붙잡히기 직전 스페인제 권총으로 머리를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까지도 이 총의 유통경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밀반입된 권총과 실탄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거나 잠입한 국내외 조폭에게 전달되는 것은 물론 일반인의 손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추측을 뒷받침해주는 사건이었다. 부산을 거점으로 러시아 마피아가 무기 밀거래를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러시아 선원들이 권총을 들여오다 부산 세관에 적발된 사례만 최근까지 10여 차례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20년 전 러시아제 권총 1정과 실탄 100발의 암거래 가격은 10만 원이었다. 국내 조폭 중에도 러시아 등에서 들여온 권총으로 무장한 조직이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일련의 사건들로 봤을 때 조폭들의 총기 무장이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과거 조폭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서울과 부산의 폭력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조직원과 관련자들 중 상당수가 권총 등 살상용 총기로 무장했다고 한다.

서울 강남에서 유흥업을 하는 40대 중반의 전직 조폭 D씨는 “요즘 젊은 애들은 체력 단련할 생각은 않고 총만 가지려고 한다”며 조폭들의 동향을 설명했다. 또 부산에 40대 초반의 유흥업소 사장 E씨도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한 폭력조직 조직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총기를 갖고 있다”고 증언했다.
 

도심 한복판 총격전 머지않아
권총? 엽총? 군용장비도 적발

이들이 밝힌 조폭들이 소지한 총기는 흔히 생각하는 엽총 정도의 무기가 아니다. 러시아와 미국에서 밀수된 군용장비들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은 더해진다. 현재 검경이 관리하고 있는 조직폭력배는 404개파 1만1539명이다. 이 중 어느 정도가 무장을 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수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부산과 인천 등지에서 움직이는 무기 밀매조직의 주거래 물품은 권총과 소총, 기관단총까지 돈만 주면 종류에 구분이 없다. 물론 모두 군용무기들이다.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이들은 쉽게 꼬리가 잡히지 않는다.

외제불법 총기류의 보급은 현재를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한국은 이제 더이상 국제 범죄 활동에서 안전지대가 아니다. 러시아 마피아, 중국 삼합회, 일본 야쿠자 이외에도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의 신흥 조직까지 뿌리를 내리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세력 확장을 위해 국내 범죄조직과 손을 잡기도 한다. 과거에는 해외조직폭력배들의 접근이 어려웠지만 요즘 들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출입국자의 수로 인해 불법체류자만도 수십만명에 달한다. 해외조폭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무기 밀매 관련국과의 공조체제 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급변하는 국제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또 그는 “이제는 정부와 국민들이 총기에 대한 낙관과 방임을 거두어야 할 때”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밀반입 비일비재
세관 통관에 구멍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부산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밀반입된 권총이 시중에 나도는 상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통관 강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세관의 한 관계자는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화물에 대해서는 X-레이 검사 등 철저한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문제의 총기가 어떤 경로로 밀반입됐는지를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본 야쿠자 ‘구도카이’는?


일본 야쿠자의 3대 조직은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스미요시카이(住吉會), 이나가와카이(稻川會)로 알려져 있다. 이중 최대 조직은 야마구치구미다. ‘야쿠자, 음지의 권력자들’이라는 책을 쓴 일본 작가 미야자키 마나부는 야마구치구미에 대해 “전성기였던 1963년에는 18만4000명의 조직원을 거느렸다”며 “이는 일본 자위대보다 많은 숫자”라고 했다.

이 3대 조직에 ‘구도카이(工藤會)’와 ‘고도카이(弘道會)’를 합치면 5대 폭력조직이 된다. 이 5대 조직 중 가장 살벌한 조직이 구도카이다. 일본 경시청은 2011년 구도카이에 대해 “극도로 악질적인 조직”이라며, 이 단체를 ‘무장투쟁파’라고 규정했다. 2014년 미국 재무성은 야쿠자 자금 동결을 선언하면서 “구도카이가 야쿠자 중에서도 가장 흉폭한 조직”이라고 했다.

구도카이는 중무장 화기로도 유명하다. 2011년 조직의 무기창고로 보이는 한 맨션에서는 미국제 회전식권총과 소음기가 장착된 반자동권총, 이스라엘제 기관총 등 다수의 중화기가 경찰에 압수됐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조직원이 관리하던 창고에서 러시아제 대전차로켓포가 발견되기도 했다. 후쿠오카현 경찰에 의하면 현재 조직원의 약 40%가 구속 등 복역 중인 상태다.

이 조직이 최대 위기를 맞은 건 2014년 9월이다. 두목 노무라가 기타큐슈 어업조합장을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 일본 경찰은 16년 전에 발생한 이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마침내 그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산케이신문은 당시 “검거를 위해 후쿠오카현 전체 경찰 1만2000명의 30%인 3800명이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공포로 몰아넣은 ‘잔혹 조직’ 구도카이가 한국에 상륙했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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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