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모르는…’ 충격의 조폭 동향

“총 없으면 형님 대접 못받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폭들의 싸움을 떠올려보자. 주먹 대 주먹으로 펼치는 화끈한 일대일 싸움과 회칼을 들고 뒤엉켜 싸우는 조폭 무리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먹과 칼의 시대는 한물간 지 오래. 이제는 총 든 조폭들의 시대가 찾아왔다.

지난 19일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인터폴 수배로 국내에 은신하던 재일교포 야쿠자 중간보스 김모(44)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중국산 필로폰 약 1㎏(시가 31억8000만원, 3만1800명 투약분)을 밀반입한 뒤 다시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다 수사대에게 꼬리를 잡혔다.

야쿠자 중간보스
소지한 채 체포

놀라운 점은 김씨가 검거 당시 실탄 8발이 장전된 러시아제 TT-33 권총 1정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여차하면 목숨을 끊을 요량으로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세관 통관에 구멍이 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또 공항과 항만 등을 통한 총기류 밀반입 시도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0일 관세청에 따르면 전국 공항과 항만, 국제우편물 등을 통해 밀반입하려다가 적발된 (모의)총기류는 2013년 103건 140정, 2014년 124건 170정, 2015년 128건 180정이다.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해 적발한 총기류를 반입경로별로 보면 여행자 휴대품이 99정으로 가장 많았고 수입화물이 24정으로 뒤를 이었다. 그 밖에 선원 휴대품 21정, 특송화물 19정, 국제우편물 17정 순이었다. 김씨의 러시아제 권총 TT-33은 지난해 9월 공범인 한국인 B(54)씨가 일본에서 김씨 지인에게 받아 부산항을 통해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선박은 세관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으며 B씨는 권총과 실탄 10여 발을 되찾아 김씨에게 전달했다.


1990년대에 대량으로 생산된 이 러시아제 권총은 유효 사거리가 35m로 사람을 즉시 살상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이 국내에서 총기를 사용하지는 않았다지만 인명 살상용 무기가 부산항을 거쳐 국내에 버젓이 반입됐다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여객화물선으로 수입하는 기계류 화물에 숨겨 총을 밀반입했다는 것이 김씨의 진술이다. 그러나 부산본부세관은 이 권총 등이 실제 부산항을 통해 들어왔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도 B씨가 일본으로 달아난 상황이라 정확한 반입경로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경찰이 처음으로 외국 조직폭력배에게서 권총을 압수한 것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지방 세력도…실탄 장전한 총기류 무장
부산 거점 러시아 마피아 밀거래 소문

1998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불법 총기 밀매조직을 적발한 일이 있었다. 당시 청주의 한 폭력조직의 행동대원이 이 밀매조직에 총기를 사들인 사실이 드러났다. 개조한 일제 소총 등을 폭력조직에 팔아넘긴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보다 가까운 2014년 10월 광주에서는 권총과 실탄을 소지한 국내 전국구 폭력단체의 실세가 검찰에 붙잡혔다. 당시 유명 폭력단체의 행동대원 C(52)씨는 싱크대에 미국산 권총 1정과 실탄 30발을 보관하다 검찰에 적발됐다.

C씨는 “지인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사하면서 이삿짐에 실수로 들어왔다”며 “나에게 갖고 있어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국내에서 족보가 있는 폭력조직 간부가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이 총기로 무장한 조폭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영화에서만 보던 총격전이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건 아닌지 무섭다’ ‘권총을 소지한 조폭을 상대할 경찰이 걱정이다’ 라며 총기 사고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다’ ‘재범률이 높은 조폭이나 흉악범들은 형량이 끝나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면서 확실하게 소탕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시됐다.

부산지역 항만을 경유한 총기 밀반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 4월 부산에서는 러시아 마피아 간 다툼으로 러시아인 한 명이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6년 7월에는 부산항에서는 러시아제 권총 4정과 100여발이 실탄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조직폭력배 사이에서는 ‘부산에 내려가면 쉽게 총을 구할 수 있다’는 괴담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한 자루 없으면…
명함도 못내밀어

더 우려되는 것은 이렇게 밀반입된 총기가 일반인의 손에도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25일 대전 유성구에서는 일반인 신모(58)씨가 차량 운전자에게 총격을 가하고 도망가는 사건이 있었다. 신씨는 총격사건 3일 뒤 경기도 광주에서 발견됐다. 그는 궁지에 몰리자 붙잡히기 직전 스페인제 권총으로 머리를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까지도 이 총의 유통경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밀반입된 권총과 실탄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거나 잠입한 국내외 조폭에게 전달되는 것은 물론 일반인의 손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추측을 뒷받침해주는 사건이었다. 부산을 거점으로 러시아 마피아가 무기 밀거래를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러시아 선원들이 권총을 들여오다 부산 세관에 적발된 사례만 최근까지 10여 차례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20년 전 러시아제 권총 1정과 실탄 100발의 암거래 가격은 10만 원이었다. 국내 조폭 중에도 러시아 등에서 들여온 권총으로 무장한 조직이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일련의 사건들로 봤을 때 조폭들의 총기 무장이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과거 조폭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서울과 부산의 폭력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조직원과 관련자들 중 상당수가 권총 등 살상용 총기로 무장했다고 한다.

서울 강남에서 유흥업을 하는 40대 중반의 전직 조폭 D씨는 “요즘 젊은 애들은 체력 단련할 생각은 않고 총만 가지려고 한다”며 조폭들의 동향을 설명했다. 또 부산에 40대 초반의 유흥업소 사장 E씨도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한 폭력조직 조직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총기를 갖고 있다”고 증언했다.
 

도심 한복판 총격전 머지않아
권총? 엽총? 군용장비도 적발

이들이 밝힌 조폭들이 소지한 총기는 흔히 생각하는 엽총 정도의 무기가 아니다. 러시아와 미국에서 밀수된 군용장비들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은 더해진다. 현재 검경이 관리하고 있는 조직폭력배는 404개파 1만1539명이다. 이 중 어느 정도가 무장을 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수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부산과 인천 등지에서 움직이는 무기 밀매조직의 주거래 물품은 권총과 소총, 기관단총까지 돈만 주면 종류에 구분이 없다. 물론 모두 군용무기들이다.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이들은 쉽게 꼬리가 잡히지 않는다.

외제불법 총기류의 보급은 현재를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한국은 이제 더이상 국제 범죄 활동에서 안전지대가 아니다. 러시아 마피아, 중국 삼합회, 일본 야쿠자 이외에도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의 신흥 조직까지 뿌리를 내리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세력 확장을 위해 국내 범죄조직과 손을 잡기도 한다. 과거에는 해외조직폭력배들의 접근이 어려웠지만 요즘 들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출입국자의 수로 인해 불법체류자만도 수십만명에 달한다. 해외조폭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무기 밀매 관련국과의 공조체제 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급변하는 국제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또 그는 “이제는 정부와 국민들이 총기에 대한 낙관과 방임을 거두어야 할 때”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밀반입 비일비재
세관 통관에 구멍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부산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밀반입된 권총이 시중에 나도는 상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통관 강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세관의 한 관계자는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화물에 대해서는 X-레이 검사 등 철저한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문제의 총기가 어떤 경로로 밀반입됐는지를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본 야쿠자 ‘구도카이’는?


일본 야쿠자의 3대 조직은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스미요시카이(住吉會), 이나가와카이(稻川會)로 알려져 있다. 이중 최대 조직은 야마구치구미다. ‘야쿠자, 음지의 권력자들’이라는 책을 쓴 일본 작가 미야자키 마나부는 야마구치구미에 대해 “전성기였던 1963년에는 18만4000명의 조직원을 거느렸다”며 “이는 일본 자위대보다 많은 숫자”라고 했다.

이 3대 조직에 ‘구도카이(工藤會)’와 ‘고도카이(弘道會)’를 합치면 5대 폭력조직이 된다. 이 5대 조직 중 가장 살벌한 조직이 구도카이다. 일본 경시청은 2011년 구도카이에 대해 “극도로 악질적인 조직”이라며, 이 단체를 ‘무장투쟁파’라고 규정했다. 2014년 미국 재무성은 야쿠자 자금 동결을 선언하면서 “구도카이가 야쿠자 중에서도 가장 흉폭한 조직”이라고 했다.

구도카이는 중무장 화기로도 유명하다. 2011년 조직의 무기창고로 보이는 한 맨션에서는 미국제 회전식권총과 소음기가 장착된 반자동권총, 이스라엘제 기관총 등 다수의 중화기가 경찰에 압수됐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조직원이 관리하던 창고에서 러시아제 대전차로켓포가 발견되기도 했다. 후쿠오카현 경찰에 의하면 현재 조직원의 약 40%가 구속 등 복역 중인 상태다.

이 조직이 최대 위기를 맞은 건 2014년 9월이다. 두목 노무라가 기타큐슈 어업조합장을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 일본 경찰은 16년 전에 발생한 이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마침내 그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산케이신문은 당시 “검거를 위해 후쿠오카현 전체 경찰 1만2000명의 30%인 3800명이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공포로 몰아넣은 ‘잔혹 조직’ 구도카이가 한국에 상륙했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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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