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모르는…’ 충격의 조폭 동향

“총 없으면 형님 대접 못받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폭들의 싸움을 떠올려보자. 주먹 대 주먹으로 펼치는 화끈한 일대일 싸움과 회칼을 들고 뒤엉켜 싸우는 조폭 무리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먹과 칼의 시대는 한물간 지 오래. 이제는 총 든 조폭들의 시대가 찾아왔다.

지난 19일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인터폴 수배로 국내에 은신하던 재일교포 야쿠자 중간보스 김모(44)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중국산 필로폰 약 1㎏(시가 31억8000만원, 3만1800명 투약분)을 밀반입한 뒤 다시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다 수사대에게 꼬리를 잡혔다.

야쿠자 중간보스
소지한 채 체포

놀라운 점은 김씨가 검거 당시 실탄 8발이 장전된 러시아제 TT-33 권총 1정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여차하면 목숨을 끊을 요량으로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세관 통관에 구멍이 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또 공항과 항만 등을 통한 총기류 밀반입 시도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0일 관세청에 따르면 전국 공항과 항만, 국제우편물 등을 통해 밀반입하려다가 적발된 (모의)총기류는 2013년 103건 140정, 2014년 124건 170정, 2015년 128건 180정이다.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해 적발한 총기류를 반입경로별로 보면 여행자 휴대품이 99정으로 가장 많았고 수입화물이 24정으로 뒤를 이었다. 그 밖에 선원 휴대품 21정, 특송화물 19정, 국제우편물 17정 순이었다. 김씨의 러시아제 권총 TT-33은 지난해 9월 공범인 한국인 B(54)씨가 일본에서 김씨 지인에게 받아 부산항을 통해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선박은 세관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으며 B씨는 권총과 실탄 10여 발을 되찾아 김씨에게 전달했다.


1990년대에 대량으로 생산된 이 러시아제 권총은 유효 사거리가 35m로 사람을 즉시 살상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이 국내에서 총기를 사용하지는 않았다지만 인명 살상용 무기가 부산항을 거쳐 국내에 버젓이 반입됐다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여객화물선으로 수입하는 기계류 화물에 숨겨 총을 밀반입했다는 것이 김씨의 진술이다. 그러나 부산본부세관은 이 권총 등이 실제 부산항을 통해 들어왔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도 B씨가 일본으로 달아난 상황이라 정확한 반입경로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경찰이 처음으로 외국 조직폭력배에게서 권총을 압수한 것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지방 세력도…실탄 장전한 총기류 무장
부산 거점 러시아 마피아 밀거래 소문

1998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불법 총기 밀매조직을 적발한 일이 있었다. 당시 청주의 한 폭력조직의 행동대원이 이 밀매조직에 총기를 사들인 사실이 드러났다. 개조한 일제 소총 등을 폭력조직에 팔아넘긴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보다 가까운 2014년 10월 광주에서는 권총과 실탄을 소지한 국내 전국구 폭력단체의 실세가 검찰에 붙잡혔다. 당시 유명 폭력단체의 행동대원 C(52)씨는 싱크대에 미국산 권총 1정과 실탄 30발을 보관하다 검찰에 적발됐다.

C씨는 “지인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사하면서 이삿짐에 실수로 들어왔다”며 “나에게 갖고 있어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국내에서 족보가 있는 폭력조직 간부가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이 총기로 무장한 조폭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영화에서만 보던 총격전이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건 아닌지 무섭다’ ‘권총을 소지한 조폭을 상대할 경찰이 걱정이다’ 라며 총기 사고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다’ ‘재범률이 높은 조폭이나 흉악범들은 형량이 끝나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면서 확실하게 소탕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시됐다.

부산지역 항만을 경유한 총기 밀반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 4월 부산에서는 러시아 마피아 간 다툼으로 러시아인 한 명이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6년 7월에는 부산항에서는 러시아제 권총 4정과 100여발이 실탄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조직폭력배 사이에서는 ‘부산에 내려가면 쉽게 총을 구할 수 있다’는 괴담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한 자루 없으면…
명함도 못내밀어

더 우려되는 것은 이렇게 밀반입된 총기가 일반인의 손에도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25일 대전 유성구에서는 일반인 신모(58)씨가 차량 운전자에게 총격을 가하고 도망가는 사건이 있었다. 신씨는 총격사건 3일 뒤 경기도 광주에서 발견됐다. 그는 궁지에 몰리자 붙잡히기 직전 스페인제 권총으로 머리를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까지도 이 총의 유통경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밀반입된 권총과 실탄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거나 잠입한 국내외 조폭에게 전달되는 것은 물론 일반인의 손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추측을 뒷받침해주는 사건이었다. 부산을 거점으로 러시아 마피아가 무기 밀거래를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러시아 선원들이 권총을 들여오다 부산 세관에 적발된 사례만 최근까지 10여 차례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20년 전 러시아제 권총 1정과 실탄 100발의 암거래 가격은 10만 원이었다. 국내 조폭 중에도 러시아 등에서 들여온 권총으로 무장한 조직이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일련의 사건들로 봤을 때 조폭들의 총기 무장이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과거 조폭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서울과 부산의 폭력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조직원과 관련자들 중 상당수가 권총 등 살상용 총기로 무장했다고 한다.

서울 강남에서 유흥업을 하는 40대 중반의 전직 조폭 D씨는 “요즘 젊은 애들은 체력 단련할 생각은 않고 총만 가지려고 한다”며 조폭들의 동향을 설명했다. 또 부산에 40대 초반의 유흥업소 사장 E씨도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한 폭력조직 조직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총기를 갖고 있다”고 증언했다.
 

도심 한복판 총격전 머지않아
권총? 엽총? 군용장비도 적발

이들이 밝힌 조폭들이 소지한 총기는 흔히 생각하는 엽총 정도의 무기가 아니다. 러시아와 미국에서 밀수된 군용장비들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은 더해진다. 현재 검경이 관리하고 있는 조직폭력배는 404개파 1만1539명이다. 이 중 어느 정도가 무장을 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수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부산과 인천 등지에서 움직이는 무기 밀매조직의 주거래 물품은 권총과 소총, 기관단총까지 돈만 주면 종류에 구분이 없다. 물론 모두 군용무기들이다.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이들은 쉽게 꼬리가 잡히지 않는다.

외제불법 총기류의 보급은 현재를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한국은 이제 더이상 국제 범죄 활동에서 안전지대가 아니다. 러시아 마피아, 중국 삼합회, 일본 야쿠자 이외에도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의 신흥 조직까지 뿌리를 내리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세력 확장을 위해 국내 범죄조직과 손을 잡기도 한다. 과거에는 해외조직폭력배들의 접근이 어려웠지만 요즘 들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출입국자의 수로 인해 불법체류자만도 수십만명에 달한다. 해외조폭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무기 밀매 관련국과의 공조체제 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급변하는 국제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또 그는 “이제는 정부와 국민들이 총기에 대한 낙관과 방임을 거두어야 할 때”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밀반입 비일비재
세관 통관에 구멍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부산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밀반입된 권총이 시중에 나도는 상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통관 강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세관의 한 관계자는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화물에 대해서는 X-레이 검사 등 철저한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문제의 총기가 어떤 경로로 밀반입됐는지를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본 야쿠자 ‘구도카이’는?


일본 야쿠자의 3대 조직은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스미요시카이(住吉會), 이나가와카이(稻川會)로 알려져 있다. 이중 최대 조직은 야마구치구미다. ‘야쿠자, 음지의 권력자들’이라는 책을 쓴 일본 작가 미야자키 마나부는 야마구치구미에 대해 “전성기였던 1963년에는 18만4000명의 조직원을 거느렸다”며 “이는 일본 자위대보다 많은 숫자”라고 했다.

이 3대 조직에 ‘구도카이(工藤會)’와 ‘고도카이(弘道會)’를 합치면 5대 폭력조직이 된다. 이 5대 조직 중 가장 살벌한 조직이 구도카이다. 일본 경시청은 2011년 구도카이에 대해 “극도로 악질적인 조직”이라며, 이 단체를 ‘무장투쟁파’라고 규정했다. 2014년 미국 재무성은 야쿠자 자금 동결을 선언하면서 “구도카이가 야쿠자 중에서도 가장 흉폭한 조직”이라고 했다.

구도카이는 중무장 화기로도 유명하다. 2011년 조직의 무기창고로 보이는 한 맨션에서는 미국제 회전식권총과 소음기가 장착된 반자동권총, 이스라엘제 기관총 등 다수의 중화기가 경찰에 압수됐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조직원이 관리하던 창고에서 러시아제 대전차로켓포가 발견되기도 했다. 후쿠오카현 경찰에 의하면 현재 조직원의 약 40%가 구속 등 복역 중인 상태다.

이 조직이 최대 위기를 맞은 건 2014년 9월이다. 두목 노무라가 기타큐슈 어업조합장을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 일본 경찰은 16년 전에 발생한 이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마침내 그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산케이신문은 당시 “검거를 위해 후쿠오카현 전체 경찰 1만2000명의 30%인 3800명이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공포로 몰아넣은 ‘잔혹 조직’ 구도카이가 한국에 상륙했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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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