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주의보> ‘휴가 명소’ 자릿세의 비밀

계곡에 평상 깔고 “5만원” 모래 파라솔 꽂고 “5천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매년 골칫거리로 떠오르는 ‘자릿세 바가지’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부터 불법적으로 ‘명당’을 차지한 사람들과 ‘평상 장사’로 유명한 음식점들은 벌써부터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피서객들의 쉴 자리를 뺏는 일부 업주들과 그곳을 찾은 피서객들의 실랑이는 해결되지 않은 채 매년 이어지고 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피서객들은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계곡과 바다, 산으로 피서를 떠난다. 하지만 휴가지에서 되레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일부 휴가지에서는 이때다 싶어 음식값을 한껏 올리거나 멀쩡한 땅에 파라솔을 꽂고 자릿세를 받는 얌체족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휴가철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반복되자 일부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은 정가제 시행, 자체 단속 활동 등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

남의 땅에서
버젓이 장사

요즘 피서지에서는 내 가족, 친구들이 쉴 자리 하나 마련하기 힘들다. 계곡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음식점들은 소위 ‘명당’에 불법으로 돗자리나 평상을 깔아놓고 ‘자리 장사’를 한다. 돈을 내지 않고서는 계곡 물에 발한 번 담그기 어려운 실정.

대부분 '세'를 받는 '자리'라는 것이 목 좋은 인근 식당서 자기네 음식을 팔기 위해 확보한 것일 뿐, 자기 소유인 곳은 극히 드물다. 설령, 소유주가 맞다 치더라도 어떻게 대한민국 온 국민이 함께 누리고 즐겨야 할 ‘자리’에 ‘세금’을 붙일 수 있을까.

강원도 화천, 춘천, 홍천, 인제 등 산간 음식점 주인들은 계곡 주변에 파라솔을 꽂거나 돗자리를 펴놓고 불법으로 2만원가량 자릿세를 받는다. 또 음식을 주문해야만 자리를 내주는 불법영업도 일삼고 있다. 이 때문에 관광객은 자릿세를 놓고 상인들과 언쟁을 벌이는 일이 잦다.


휴가지로 계곡을 찾았다는 주모(33)씨는 인근 식당의 바가지요금에 휴가를 망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차료 징수는 물론 한 사람이 누울 크기의 평상은 4만∼6만원, 냉동 닭백숙 1마리는 5만원, 민박은 호텔객실료보다 높은 바가지요금에 깜짝 놀랐다.

주부 이모(41)씨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씨는 “지난해만 해도 몇 개에 불과하던 평상이 올해는 유원지 주변은 물론 고속도로 다리 밑까지 점령해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았다”며 “오물과 악취가 넘쳐나는 간이화장실과 파손된 진입로 등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었다”며 악덕 상술과 함께 미숙한 시설 유지관리에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주 강원도에 있는 계곡을 찾은 정모(53)씨도 “일부 상인들이 석골사 계곡을 자기 소유인 것처럼 주변을 모두 차지하고 돈을 요구해 너무 불쾌했다”며 “계곡 어디서도 편안하게 피서를 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자릿세뿐 아니라 음식 가격도 관광지를 찾는 피서객의 기분을 망치는 주된 원인이다. 강원지역 한 워터파크 내 음식 가격은 일반 음식점보다 약 3배가 비싸다. 워터파크를 찾은 이용객들은 물놀이 시설을 이용하다 허기를 달래려고 찾은 음식점 앞에서 당황한다. 일행과 다 같이 옷을 갈아입고 외부 음식점을 이용하는 ‘귀찮은 수고’를 하지 않으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야 한다.

지난달 이른 여름 분위기를 내려고 워터파크를 찾은 A씨는 “비싸도 외부로 나가기 불편하니까 웬만하면 장내에서 식사를 해결했다”며 “어렵게 시간 내서 놀러 온 여행지에서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면 그 수밖엔 없다”고 말했다.

휴가철 숙박업소들의 가격 올리기도 만만치 않다. 해운대 인근 숙박업소의 숙박비가 비성수기 대비 최대 5배가량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값 2배
배짱영업 중


부산시 해운대구 송정동에 있는 한 민박업소는 비성수기 숙박비와 8월1일의 숙박비가 최대 5.3배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6평 규모의 객실은 2만7000원에서 13만8000원, 9평 규모의 객실은 3만8000원에서 18만8000원, 14평 규모의 객실은 5만8000원에서 29만8000원으로 가격을 인상해 예약받고 있었다. 객실 요금 공지란에는 ‘아래 요금 그대로 예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요금문의는 확인하실 필요가 없습니다’는 문구도 공지돼 있었다.
 

다른 한 민박업소는 8평 규모의 객실 숙박비를 비성수기에 4만원 받았으나 성수기인 8월1일 1박 숙박비를 문의하자 15만원을 제시했다. 해당 숙박업소 업주는 “이미 다른 숙박업소는 예약이 완료된 상태라 15만원이면 싸게 예약하는 셈”이라며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방을 내어줄 수 있으니 금일 중으로 계좌에 숙박비를 입금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약이 완료된 후에도 고객 문의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가격을 더 얹어 주겠다는 사람도 있다. 인상가를 높여도 예약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운대 인근 숙박업소의 숙박비를 조사해본 결과, 70개 업소 중 숙박비를 고지한 업소는 단 8개 업소에 불과했다. 62개 업소는 가격 공지 대신 해당 업주의 연락처와 함께 ‘전화 문의’라는 문구만 게재돼 있었다. 가격이 공지된 8개 업소 중 가족 단위가 숙박할 수 있는 20평 규모 객실의 극성수기(7월30일∼8월9일) 주말 기준 숙박비는 평균 28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 흐르는 명당 ‘부르는 게 값’
알고보면 식당 자리소유 극소수

숙박비가 가장 저렴한 펜션은 평일 17만원, 주말 19만원이었으며, 가장 비싼 펜션은 평일·주말 구분 없이 35만원을 받고 있었다. 비성수기의 평균 객실 숙박비는 16만6000원으로 성수기에 11만4000원을 더 받는 셈이었다. 숙박업소가 극성수기에 숙박비를 대폭 인상한 문제점은 해운대에 국한되지 않고 여름 피서지 곳곳에서 빚어진다.

특히 경포대 인근의 숙박업소는 대부분 비성수기, 준성수기1(7월11일∼24일), 준성수기2(8월16일∼22일), 성수기(7월25일∼29일, 8월9일∼15일), 극성수기의 기간별로 5분할하거나 비성수기, 성수기(7월11일∼29일, 8월9일∼22일), 극성수기를 직접 선택하는 혜택비를 운영 중이었다.

기간별로 가장 큰 숙박비 차액을 보인 한 업소(20평 객실 기준)의 경우 비성수기에 평일 20만원, 주말 28만원, 준성수기에 평일 24만원, 주말 32만원, 성수기에 평일 31만원, 주말 36만원, 극성수기에 38만원의 숙박비를 받고 있었다.

다른 한 업소는 비성수기에 평일 12만5000원, 주말 15만5000원, 준성수기1에 평일 13만5000원, 주말 17만원, 준성수기2에 평일 14만5000원, 주말 18만5000원, 성수기에 평일 21만원, 주말 24만원, 극성수기에 28만원의 숙박비로 운영 중이었다.

펜션 운영업자 최모(32)씨는 “피서지 인근의 숙박업소는 짧은 여름휴가 기간 연간 이용객의 80% 이상이 찾기 때문에 숙박비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며 “5배까지 숙박비를 인상한다는 건 비양심적으로 보이긴 하나 평균 2배 정도는 얹어 받아야만 1년간 펜션 운영이 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대부분의 피서지 숙박업소들은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에 발생한 분쟁을 원활히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권고 기준인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숙박업소도
가격 올리기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성수기 주중에는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한 계약 해지 시 사용 예정일 7일 전까지는 90% 환불받는다. 사용예정일 3일 전까지 취소 시에는 50%를 환불받고, 사용예정일 1일 전까지나 당일 취소 시에도 적어도 20%는 환불받는다. 그러나 대부분 숙박업소에서는 이용 당일 취소 시에는 아예 환불을 해주지 않으며 3일 전 취소 시에도 권고 기준인 50% 환불이 아닌 약 30% 정도만 환불해 준다.


이에 상인들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성수기에 가격을 올려 받는 것은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며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한 이치 아니냐”고 반문했다. 

바가지나 자릿세, 얌체 피서객 등 휴가지 병폐가 매년 반복되자 일부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전남 여수시 만성리해수욕장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위원회를 꾸려 파라솔(그늘막)과 구명조끼를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탈의실과 옷·귀중품 보관소, 주차장, 야영장 이용료도 무료다. 운영위 관계자는 “10여년 전 파라솔을 도입해 5000원씩 받고 대여했으나 소득도 낮고 이미지만 안 좋아진다는 여론이 있어 지금은 선착순으로 무료로 대여하고 있다. 바가지요금이 없다는 인상을 얻어 이용객의 재방문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연간 100만명 이상의 피서객이 찾는 전남 완도 신지 명사십리해수욕장도 매년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완도군과 신지 명사십리 번영회, 상가협의회, 이장단이 모여 회의를 통해 협정요금표를 정해 ‘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여름휴가 절정… 극성수기 가격 요구
비수기 대비 5배 인상 “비싸도 없어”

관광지를 찾는 여행객에게 ‘착한 여행지’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재방문 의지를 높여주기 위해서다. 불꽃놀이 소음과 피해, 숙박업체·노점상 호객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다음 달 8일 해수욕장을 개장하는 속초시는 해수욕장에 행정지원센터, 여름파출소, 응급 의료지원센터를 설치하고 호객과 바가지요금 등 불법행위 단속과 시설사용료 가격표시제를 운용할 예정이다.


속초시 관광진흥협의회와 사회단체 회원 등 50여명도 해수욕장 질서와 청결 등을 위한 캠페인에 돌입한다.

포항시는 바가지요금 방지를 위해 휴가지 번영회와 해수욕장협의회를 열고 협정요금을 동일하게 받도록 했다. 파라솔 임대 4시간 5000원, 튜브 임대 4시간 5000원, 샤워장 이용 2000원, 바나나보트 1만5000원 등 포항 관내 해수욕장에 모두 같은 요금을 적용했다.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전북지회 관계자는 “지자체와 상인 연합회 등에서 시행하는 자정 노력이 우선 당장은 개별 상인들에게 손해를 끼칠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해당 휴가지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가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신뢰도가 높아지면 휴가지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고 재방문율도 높아져 소득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역이 앞장
무료 대여도

경찰과 산림특별사법경찰은 휴가철 절정기를 맞이해 계곡 주변을 무단으로 점유해 자릿세 및 노점 행위를 하는 상업시설 등 불법행위가 많은 지역에 대해서 합동으로 단속하고 불법행위가 적발된 경우에는 관련법에 따라 엄중히 조치할 방침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주인이 없는 산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바로잡고 산림 내 위법행위를 없애기 위해 국민 모두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드린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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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