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발 서초동 ‘4대 천왕’ 추적

드디어 청와대 X파일 공개 임박?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조비리 핵심인 ‘서초동 4대 천왕’의 실체를 최초로 언급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사정기관·국회·기자·법조인들은 4대 천왕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었다. 하지만 하나 같이 “처음 들어봤다” “도무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입모아 말했다. 한마디로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정말 존재하기는 한 걸까.

“검찰이 실패한 로비라고 주장하지만 성공한 로비를 잡지 못한 실패한 수사다.” (이춘석 의원)

“이번 사건이 확대될 경우 (검찰에)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주광덕 의원)

“도대체 누구?”
알아내려 혈안

지난달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의원들은 이날 전관예우 논란을 빚은 홍만표·최유정 변호사의 불법 로비 의혹인 일명 ‘정운호 게이트’ 수사를 질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그러던 중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 입에서 ‘전문용어’가 나왔다.

“유명한 법조브로커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이들이 전관(변호사)들이 잘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어려운 사건을 줍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본다고 합니다. 하나는 사건이 어려운데 용하게 해결하는지, 또 하나는 알아서 ‘와리’(알선료의 일본식 표현)를 잘 갖다 주는지. 이번 기회에 서초동 4대천왕을 토벌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 의원 입에서 ‘서초동 4대 천왕이 있다’는 말이 나오자 여의도와 서초동 관계자들은 4대 천왕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정보라인을 ‘풀’가동했다. <일요시사> 역시 정보라인을 가동했다. 대형 로펌의 사무관과 변호사, 사정기관 관계자, 부장검사 출신 의원, 법조기자 등에게 서초동 4대 천왕이 누군지 물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우리도 알아보고 있는데…잘 모르는 것 같다” “도저히 알 수 없다” 등의 답변만 돌아왔다. 심지어 조 의원 의원실 관계자들도 모른다는 전언이 있었다. 조 의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라고 했지만 아무도 서초동 4대 천왕이 누군지 몰랐다. 이 때문에 복수의 취재원들은 “조 의원이 만들어낸 조어가 아니냐” “(조 의원이) 청와대에 있을 때 파악한 내용 같다”는 등의 추측을 내놓았다.

그래서 <일요시사>는 지난 30일 조 의원에게 “4대 천왕이 도대체 누구냐”라고 직접 물었다. 조 의원은 “서초동 변호사들이 (서초동 4대 천왕이 있다고) 다들 이야기 한다”며 “대부분 전직 검찰·법원 출신으로 메이저급들이다. 수많은 사건이 그들(서초동 4대 천왕)에게 묶여 있어 어떤 변호사들은 사건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법조브로커로 구속된 “이민희씨도 이 4대 천왕에 들어가냐”는 질문에 조 의원은 “그 사람이 4대 천왕에 들어가는지는 모른다”며 “다만 서초동 변호사들에게 (4대 천왕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각심을 고취하는 취지에서 김 장관에게 물었다”며 “4대 천왕이 누군지는 서초동 변호사들에게 물어봐라”라고 말했다. 결국 조 의원에게서도 서초동 4대 천왕이 누군지 들을 수 없었다.

서초동 4대 천왕 중 한 명으로 법조인 출신은 아니지만 이씨가 유력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여야 법무장관에 전관예우 수사 질타
법조브로커 핵심 4인방 실체 첫 언급

그래서 <일요시사>는 지난 30일 조 의원에게 “4대 천왕이 도대체 누구냐”라고 직접 물었다. 조 의원은 “서초동 변호사들이 (서초동 4대 천왕이 있다고) 다들 이야기 한다”며 “대부분 전직 검찰·법원 출신으로 메이저급들이다. 수많은 사건이 그들(서초동 4대 천왕)에게 묶여 있어 어떤 변호사들은 사건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건설업자, 호텔 부회장직, 코스닥 상장사 대표 등 여러 개의 명함을 파고 다니며 대외적으로 회장이나 고문 직함을 달고 활동했다.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주로 정부 관공서를 상대하는 대관 로비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이씨는 대관 로비로 인맥을 다져온 거물 법조 브로커 중 한 명이다.
 

그는 정 대표의 도박사건 2심 첫 재판장이던 임모 부장판사와 2년여 전부터 알고 지내며 식사대접을 해왔다. 이씨는 여동생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정식집에 법조인과 사업가들을 초대하고 연예인 등을 동석시키기도 했다.

홍 변호사와 이씨는 2012년 상반기 국내 유수의 경영컨설팅 전문기관이 개설한 ‘최고경영자(CEO) 과정’에 등록해 함께 공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는 홍 변호사가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으로 끝으로 검찰을 떠난 직후였다. 이미 이때부터 홍 변호사와 이씨의 관계는 상당히 돈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상림, 김흥수…
그들과 동급?

이씨는 정 대표와 홍 변호사를 연결해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씨의 대화내용이 담긴 녹취록에는 정·관계 인사의 실명이 거론됐다. 또 이씨는 한 경찰 간부의 집무실에서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공개돼 구설에 오르는 등 화려한 인맥을 과시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이씨를 변호사법 위반 및 사기 혐의 등으로 지난달 9일 구속했다. 이씨는 네이처리퍼블릭의 지하철 1, 4호선 매장 사업권 입찰과 관련해 서울시 감사 무마 등을 명목으로 정 대표 측 김모씨로부터 지난 2009년 11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모두 9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1년 12월 형사 사건을 검사장 출신 홍 변호사에게 소개해주는 대가로 의뢰인으로부터 1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2012년 10월 자신이 운영하는 코스닥 상장 준비금 명목으로 유명 가수의 동생 조모씨로부터 3억원을 빌리고 갚지 않은 혐의도 있다.

검찰은 대형 사건을 주로 맡아온 홍 변호사가 작은 사건의 수임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의뢰인들이 이씨를 통해 사건을 맡긴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이씨 외에는 현재까지 서초동에서 유명한 브로커들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4대 천왕이 누군지조차 추정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조 의원에 따르면 이들 브로커는 전직 검찰·법원 출신으로 현직 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법조계는 그동안 거물급 ‘큰손’ 법조 브로커들로 몸살을 앓았다. 정재계 고위층 인사들이 연루된 초대형 사건에만 개입하기로 유명한 브로커. 고위급 판검사 인맥을 등에 업은 ‘큰손’들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십억 원의 커미션이 오가는 일은 예사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일부 대형 로펌에서는 브로커를 모시기 위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기도 하고, 심지어 일부 잘나가는 브로커들이 직접 로펌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초동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밤의 대통령
법조계 군림


지금까지 주목할 만한 굵직한 법조 브로커 사건들을 살펴보면 2005년 ‘윤상림 게이트’, 2006년 ‘법조 브로커 김흥수 폭로사건’ 등이 있다. ‘윤상림 게이트’는 브로커가 개입한 법조비리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당시 윤상림씨는 검찰과 법원 고위 간부, 군 장성, 건설업계까지 두터운 인맥을 가진 법조 브로커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초동에서 활동하는 법조 브로커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브로커는 변호사 수임료의 30%에서 많게는 70%까지 가져가는 게 업계의 ‘공식’으로 알려졌다. 일명 ‘와리’혹은 ‘뽀찌’로 불리는 커미션이 그것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이들 브로커가 굵직한 초대형 사건에도 깊숙이 개입하면서 뽀찌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2008년부터 7년간 적발된 민·형사 사건 브로커들은 1700여명에 이르고, 작년 상반기에만 300여명이 적발됐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종종 대학교 친구 혹은 연수원 동기가 ‘야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한다. 나중에 식사 자리에 가면 거기에 한 사람이 더 오는데 그 사람들이 대부분 브로커다”고 입을 모았다. 브로커들 중 일부는 거미줄 인맥으로, 검사나 판사와 직접 연줄을 대는 ‘거물 브로커’로 성장한다. 거물 브로커는 수임료 액수를 스스로 정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브로커 중에는 주로 검찰 수사관 출신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 주목할 만한 굵직한 법조 브로커 사건들을 살펴보면 2005년 ‘윤상림 게이트’, 2006년 ‘법조 브로커 김흥수 폭로사건’ 등이 있다. ‘윤상림 게이트’는 브로커가 개입한 법조비리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당시 윤상림씨는 검찰과 법원 고위 간부, 군 장성, 건설업계까지 두터운 인맥을 가진 법조 브로커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윤씨는 2003년 5월 경찰에게 H 건설업체의 비리 의혹을 제보해 수사에 착수하도록 한 뒤 다시 H 건설업체를 찾아가 사건을 무마해주겠다며 9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검거 당시 윤씨의 수첩에는 경찰 간부를 비롯해 여러 명의 법조계 인사가 적혀 있었다.

조 의원에게 직접 물어보니…
“검찰·법원 출신 메이저급
변호사들은 다 아는 사람들”


그 러나 윤씨를 검거한 이후 8개월 동안 진행된 검찰 수사의 결과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윤씨와 함께 윤씨로부터 돈을 주고받은 전직 검·경 고위 간부와 대기업 회장 1명 등 일부 관계자만 기소했을 뿐 로비 대상과 배후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윤씨가 광범위한 인맥을 토대로 자신에 대한 구명 로비를 벌였는지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다. 윤씨의 비리 첩보는 사실 청와대에서 시작됐다. 청와대는 2003년 윤씨가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찾아와 특정 인사의 징계 문제를 거론한 것을 보고 자체조사를 벌여 윤씨와 관련된 첩보 내용을 대검찰청에 넘겼다.

대검찰청은 2004년 1월 서울중앙지검에 청와대 첩보를 이첩했지만 검찰은 단서를 찾지 못해 수사는 답보 상태를 거듭했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것은 2005년 9월 윤씨가 경찰 인맥을 이용해 사건 청탁을 했다는 첩보가 대전지검으로부터 전달됐을 때부터다.
 

검찰은 윤씨가 강원랜드에 자주 드나들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강원랜드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해 윤씨가 사용한 수표 980여매를 찾아냈다. 또 윤씨가 H 건설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내면서 체결한 합의각서 등도 입수했다. 이 과정에서 윤씨의 차명계좌에 대한 계좌추적이 실시됐고 결국 법조계 인사 400여명 등이 연관된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됐다.

그러나 윤씨를 검거한 이후 8개월 동안 진행된 검찰 수사의 결과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윤씨와 함께 윤씨로부터 돈을 주고받은 전직 검·경 고위 간부와 대기업 회장 1명 등 일부 관계자만 기소했을 뿐 로비 대상과 배후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1심은 “윤씨가 공직자와의 친분을 범죄에 악용해 수사기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징역 7년에 추징금 12억3800여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빌미를 제공한 법조인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씨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1심보다 1년 늘어난 징역 8년을 선고했다. 2008년 2월 대법원이 윤씨에 대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윤상림 게이트는 결국 일단락됐다.

'김홍수 게이트'는 법조비리 사건으로 현직 부장판사와 검사 등이 한꺼번에 적발된 초유의 사건이다. 김홍수씨는 이란산 카페 및 가구 수입업자로 지난 2005년 7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전형적인 법조 브로커다.

김씨는 2006년 법조계의 치부를 폭로하면서 김홍수 게이트가 불거졌다. 김씨의 폭로에서 당시 조관행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영광 검사, 민오기 총경 등이 돈을 받고 재판이나 사건 처리과정에 도움을 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조 부장판사 등은 검찰 수사를 통해 재판에 넘겨졌다.

대형사건 연결
거액의 수수료

이후 대법원은 김씨로부터 수사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 총경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검사에 대해서도 1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고 사건 청탁 대가로 1억2000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조 부장판사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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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