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배짱' 폭스바겐의 배신

전 세계서 한국고객만 무시 '봉 취급'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폭스바겐이 전대미문의 스캔들에 휩싸이며 세계를 부글부글 끓게 했다. 그동안 폭스바겐은 휘발유보다 저렴한 연비에 친환경을 부각한 ‘깨끗한 디젤’을 내세워 자동차 업계를 선도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배출가스 조작으로 인한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추락했다. 후속 대처마저도 미흡하기에 기업 이미지는 계속해서 실추되고 있는 상황이다.

WSJ(윌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2일(현지시각)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 파문 이후 첫 주주총회를 열었다. 주주들은 경영진의 배출가스 조작에 대한 미흡한 조치를 꼬집고 향후 계획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흡한 대처
소비자 기만

▲성난 주주들 = 마티어스 뮐러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독일서 진행되는 리콜 상황을 전했다. 독일 교통으로부터 파사트, 티구안, 골프, 아우디 A3, A4, Q5 등 370만대가 넘는 차에 대한 리콜 계획을 승인받았다”며 리콜이 빠르게 진행돼 다음 몇 주 동안 수천명의 자동차 소유주에게 리콜 통지가 전달될 예정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한국의 리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지난해 9월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던 한스 디터 푀츄가 감사이사회 회장으로 선출된 건에 대해서는 주주들의 강한 분노가 표출됐다. 주주들은 푀츄 회장이 사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작 사태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이사를 맡았다는 점에서 경영진의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푀츄 회장의 선출 건에 대해서 한 주주는 “폭스바겐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감사이사회가 독립적인 결정라인에 있지 않은 것”이라며 의문을 제시했다. WSJ는 이러한 논란에 의결권을 지닌 포르쉐, 카타르 국부펀드 측이 푀츄 회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며 그의 경질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전대미문 스캔들 휩싸여 신뢰↓
자동차 명가 이름값 수직낙하

▲배출가스 조작은? = 디젤 엔진은 휘발유 엔진과 비교하면 연비가 좋지만 스모그를 만들 수 있는 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각 나라의 공기 오염규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국 같은 경우 유럽보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 디젤 엔진을 주력으로 하는 폭스바겐은 미국 시장 진출에 애를 먹었다.

이후 ‘깨끗한 디젤’을 내세우며 규제를 통과, 입지를 굳혀 나갔다. 결국 2015년 7월에는 도요타를 누르고 업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배출가스 조작을 통한 규제법 통과라는 부정이 있었다.

폭스바겐은 1100만대가량의 디젤차에 배출 검사를 속이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규제를 통과했다. 폭스바겐이 설치한 소프트웨어는 속도, 엔진 작동시간 등 다양한 변수를 분석해 검사주행으로 판단 시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폭스바겐의 부정은 ICCT(국제청정교통위원회)는 2013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노상 디젤 배출 성능 실험을 WVU(웨스트버지니아대학)에 의뢰하면서 밝혀졌다. WVU는 총 3대의 차량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중 2대가 폭스바겐의 차량이었다. 이 실험에서 폭스바겐 차량은 미국 매연 기준치의 40배를 웃도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결과는 EPA(미국환경보호청)에 제보되어 사회에 공개됐다.

부실한 계획
싸늘한 여론

▲정부까지 농락 =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 정부까지 농락하는 모양새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폭스바겐 15개 차종 12만5500대가 임의 조작을 통해 배기가스의 배출량을 속인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리콜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폭스바겐이 제출한 결함시정계획서는 단 한 줄. ‘배기가스 저감장치의 동작을 저해하는 소프트웨어 장치로 인해 일부 환경에서 도로 주행시 질소산화물(NOx)의 배출량이 증가될 가능성이 있다.’
 


부실한 리콜 계획서는 여론은 물론 정부의 심기도 건드렸다. 환경부는 보완을 요구했고, 폭스바겐은 다시 제출했지만 이 역시 “핵심사항이 없다”고 판단한 환경부에 의해 퇴짜를 맞았다. 환경부는 “다음번에도 무성의한 계획서를 내면 아예 리콜 자체를 불승인할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외국과 차별 = 배출가스 조작 파문을 빚은 폭스바겐은 유독 한국에만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9월 EPA가 폭스바겐 디젤차의 배출가스가 조작됐다고 발표한 이후 폭스바겐은 해당 차량 소유주에게 보상금을 약속했다. 폭스바겐은 배기가스 조작 파문이 전 세계로 확산되자 미국과 유럽 등에서 발 빠르게 수습에 나섰지만, 국내에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리콜도 뭉그적거리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폭스바겐은 미국, 독일, 중국, 브라질 등 다른 나라에선 대대적으로 리콜 조치했지만, 국내엔 “해당 차량이 없다”고 버티다 정부에 제출한 시정계획서로 거짓말이 들통 났다.

▲해외에선? = 지난 23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에 대한 피해보상을 위해 총 102억달러(약 11조8000억원)를 지불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잠정안으로 최종적인 보상액은 법원에 의해 변경 될 수 있다.

최종 합의안은 28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서 공개된다. 로이터통신은 피해보상액 대부분이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디젤자동차 소유주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인당 평균 5000달러(약 570만원)의 보상을 받을 것으로 추측했다. 디젤자동차 소유주는 보상이 아닌 수리를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지난 22일(현지시각) 폭스바겐은 독일 교통으로부터 370만대가 넘는 차에 대한 리콜 계획을 승인받았다. 폭스바겐은 리콜 대상자들에게 통지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미국의 피해보상안, 독일의 리콜 처리를 통해 유럽과 한국 등 보상안이 마련되지 않은 국가에서 폭스바겐에 대한 반발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살 때만 굽신…나중엔 나몰라라
배출가스 조작 계속 뒷짐만

▲인색한 기부 = 벤츠코리아의 지난해 주주 배당액은 585억6000만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배출가스 스캔들의 주인공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160억1000만원, 포르쉐코리아 60억4000만원, 볼보자동차코리아 30억원 등이다.

반면 8개 수입차 업체의 기부금은 쥐꼬리에 불과했다. 벤츠코리아 20억5000만원, 한불모터스 2억1000만원, 포르쉐코리아 1억5000만원 등이다. 문제의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와 FCA코리아, 볼보자동차코리아, GM코리아는 기부금이 '0원'이었다.

국내 돈벌어
해외로 빼가

수입차 업체들은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적이지 않다. BMW코리아(175명), 벤츠코리아(168명),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167명) 등 지난해 8개 업체가 고용한 임직원 수는 749명이 전부였다.

▲소비자도 책임 = 배출가스 조작 파문 이후 세계적으로 폭스바겐의 판매율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전년대비 25% 감소하는 등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였다. 이에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2015년 11월 국내에 판매되는 모든 차종을 대상으로 차종에 따라 60개월 무이자 할부, 최대 1772만원의 할인을 실시했다.


업계에서는 20% 이상 할인해주고 보증 기간도 5년까지 늘려줬다. 금융 프로모션을 이용한 고객에겐 1년 이내 본인 과실 50% 이하 사고에 한해 수리비가 권장소비자가의 30%를 넘을 경우 새 차로 교환해주는 혜택도 제공했다. 그러자 11월 판매실적이 4517대까지 단숨에 뛰어 올랐다.

한 폭스바겐 전시장의 딜러는 배출가스 조작 파문 이후 “차량구매 문의 1∼2건에서 프로모션 시행 직후 하루 기본 15통 이상으로 문의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기업 윤리, 환경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폭스바겐이지만 할인이라는 무기로 국내 소비자들의 외제차 구매욕을 자극해 위기를 극복한 셈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내 리콜에 폭스바겐측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할인 행사에 호응한 소비자들 때문”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검찰 수사는? =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인증담당 이사 윤모(52)씨가 지난 24일 구속됐다. 임원에게 영장이 청구된 것은 검찰이 폭스바겐 측의 연비 조작 수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윤씨는 독일 본사로부터 차량을 들어와 정부의 판매 인증에 필요한 소음 성적서 40여건, 연비시험 성적서 90여건 등을 조작해 국립환경과학원에 제출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윤씨가 2010년부터 최근까지 같은 방식으로 환경부의 관련 인증을 통과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14년 7월 배출가스 부적합판정을 받은 골프1.4 TSI 461대의 소프트웨어를 두 차례 임의로 조작해 유통시킨 혐의도 받았다. 독일 본사에서 지난 날 미국의 규제를 통과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과 동일하다.

“한국만 차별…
본때 보여줘야”


윤씨는 2013년부터 배출가스 관련 부품을 환경부의 인증을 받지 않고 장착한 아우디 A7등 29개 차종 5만9000여대를 수입해 판매한 혐의도 있다. 이번 조사로 검찰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배출가스 소프트웨어 조작과 차량 판매 등이 본사의 지시를 통해 실시된 것이라는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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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