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의혹’ 정윤회 과거 미스터리

“아는 사람이 없다” 의문의 독일 체류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씨가 전 부인인 최서원씨를 상대로 재산분할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확인되면서 다시 정씨가 주목을 받고 있다. 가사재판 역시 기본적으론 공개가 원칙이다. 법조계 일반에선 재판과정에서 최씨의 재산이 추가로 드러날 수 있고, 현재까지 제기된 다양한 의혹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995년 결혼해 2014년 5월 이혼했다. 정씨는 청구 마감시한 3개월을 앞두고 지난 2월, 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대중에게 늘 주목을 받는 사람이다 보니 대중과 언론에 잊혀지길 기다려서 소송을 한 것 같다”고 피력했다.

1995년 결혼 
2014년 이혼

최씨의 재산은 강남의 빌딩과 부동산 등 최소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5월, 정씨의 청구금액이 1억원이 넘어 재판을 합의부에 배정했다. 이에 대해 앞서 변호사는 “입증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며 “최씨를 상대로 재산명시신청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산명시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최씨는 자신의 총 재산명세와 최근 재산변동 상황 등을 법원에 제출하고, 법정에 직접 출석해 판사의 심문에 답변해야 한다.

그동안 최씨의 재산은 강남 압구정동의 시가 200억원대의 빌딩과 강원도 평창의 부동산 정도가 세간에 알려졌다.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인접한 해당 빌딩은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다. 건물 꼭대기층이 한 때 두 사람의 거주지였고, 법인등기부등본상 현재도 정씨가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는 ㈜얀슨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다. 주변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이 건물의 시가는 200억원 정도이며, 1층(346.51㎡) 매장의 임대료만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 900만원이다.

강원도 평창에도 5만4000평 부동산을 보유 중이다. 지난 2004년 매입해 최대 6배가 올랐다는 전언이다. 현재 시가 30억원대로 최씨와 딸 정모씨가 지분을 절반씩 소유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재판과정에서 최씨 소유 재산이 더 드러날 여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혼 당시 정씨 소유의 재산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두 사람의 혼인기간이 20년으로 긴 편이고, 통상적으로 법원이 재산 형성 뿐 아니라 유지에 기여한 것도 높게 평가하고 있어 정씨가 자기 몫을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반적으로 혼인 후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집안에서 가사와 자녀양육에만 전념한 가정주부의 경우에도 45∼50% 정도의 재산 분할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에 응한 법조계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정씨가 최씨의 재산 중 약 ‘3분의 1’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씨는 결혼 1년 전인 1994년 39세 때 ㈜얀슨의 대표이사가 됐고 같은 시기인 1994∼1996년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얀슨’이라는 제과점을, 다음해인 1995∼99년 기간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풍운’이라는 일식당을 운영했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씨가 운영했던 풍운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그전엔 친구들하고 술을 마셔도 술값 한 번 못 내던 친구였는데, 당시 가게를 굉장히 화려하게 꾸며놨더라”며 “아마 최모라는 여자의 돈으로 했겠거니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로 볼 때 최서원씨와의 결혼 당시 자기 재산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얀슨은 1994년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승마장업,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등의 업종을 신고했지만 2001년에 삭제했고, 곧이어 교육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판매·컨설팅, 도서출판 및 판매 등을 신고했다가 2003년 삭제했다. 같은 해 의류 및 가구의 수입·판매도 신고했으나 삭제했다. 2003년 말엔 국외 이주자 모집·알선, 이주신고 대행, 이주 상담 및 안내 등의 업종을 신고해 오늘에 이른다. 업종을 자주 바꾼 것이 눈에 띄는데, 주로 해외 거래 관련 사업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부인 상대 재산분할 청구소송
협의해 놓고…이혼 2년 만에 왜?

또 1993년부터 얀슨의 감사로 등기돼 있는 문모씨의 2012년 인터뷰 당시 발언처럼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다 잘 안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 부인 최씨는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얀슨의 사내이사로 등기돼왔다.

또 정씨는 2014년 1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계와 관련해 “아내가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2013년 7월 <한겨레신문> 기자와 경마장에서 만나서도 “지금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도 “놀아요. 나 취업 좀 시켜줘”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로 볼 때 정씨는 최씨를 만나 최씨의 자금으로 식당과 무역업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왔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사업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이러한 부분으로 볼 때 정씨가 법정에서 부부의 재산 형성 및 유지에 기여했다고 주장할 만한 여지가 있을지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정씨와 최씨를 둘러싼 오랜 뒷말 중 하나가 ‘위장이혼’ 설이다. 또 다른 변호사는 “이혼을 한 후 상대에게 송금을 받으면 정말 위장으로 해석될 것”이라며 “통상 위장이혼이 아닌 것으로 행세하려면 재산분할청구소송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갈 만한 사실관계가 드러나면 위장이혼이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위장이혼을 했지만 금전이 필요해서 소송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을 두고 위장이혼 여부를 따지는 말들이 많지만, 재산분할청구소송을 통해 위장이혼 여부를 가릴 수는 없다는 해석이다.

사실상 백수
뭐해 먹고사나

가정법원에서 이뤄지는 가사재판의 경우에도 통상적으로 공개가 원칙이다. 재판기일을 확인하면 언론이 취재를 할 수도 있다. 앞서 변호사는 “재판을 해서 사회적으로 드러내놓는 것이 사회에 환원하는 기회도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해당 발언엔 최씨가 최태민 목사의 딸이고 현 재산을 부친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포함돼 있다. 또 최 목사가 재산을 형성한 방법에 대한 의문도 담겨 있다. 그러나 최씨는 그동안 일관되게 유치원 사업(초이유치원)을 통해 형성한 재산이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또 다른 변호사는 재판 방청 여부와 관련해 “재판부에 비공개 요청을 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엔 받아주기도 한다”고 밝혀 두 사람의 재판이 비공개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취재과정에서 정씨가 여전히 얀슨의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정씨와 최씨는 2014년 5월 협의이혼했다. 얀슨의 법인 등기부등본에 의하면 정씨는 지난 2013년 3월 대표이사로 등기가 된 후로 현재까지 변동사항 없이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다. 아내 최씨 역시 개명을 했음에도 개명 전 이름이 ‘성명 정정’ 없이 그대로 사내이사로 등기돼 있다. 이혼 후에도 여전히 대표이사와 사내이사로 등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별다른 활동이 없는 회사이고 두 사람이 여전히 동업을 할 수도 있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상식적으론 납득하기 어렵다. 

정씨는 최씨를 만나 결혼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근무하기 이전의 이력이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언론 취재를 통해 밝혀진 부분도 미미하다. 정씨와 최씨가 어떻게 만났는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26살이던 1981년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한 뒤 1980년대 후반에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1994년 얀슨 대표이사 될 때까지 약 5년가량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정씨가 독일 유학파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독일서 박사과정을 밟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곧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도 독일 유학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13년 8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씨는 대선에 관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선 당시) 독일에 나가 있었다. 독일은 내가 자주 왔다갔다 한다. 옛날에 무역을 그쪽하고 했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여전히 얀슨
대표로 등기

<주간경향>에 따르면 최씨의 지인이 “남편(정윤회)은 독일을 오가며 무역업을 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으로 볼 때 대한항공을 퇴사한 후 독일을 드나들며 무역업을 하다가 전 부인인 최씨를 만난 것으로 추측된다.

커피 수입, 체육 관련 용품·의류·가구 수입판매업, 해외이주 관련 대행사업 등이 목적사업으로 명시된 얀슨의 업종으로 볼 때도 그가 자신의 발언처럼 무역업에 종사한 것으로 보인다. ‘얀슨’이라는 회사 이름도 독일인 남성의 이름이라고 한다. 덴마크나 네덜란드계 독일인의 이름으로, 남자 이름 외에 다른 뜻은 없다고 한다.

대한항공은 1984년 독일 도시 중 프랑크푸르트에 처음 취항했다. 이에 프랑크푸르트 지역을 중심으로 독일 각 도시에 정씨에 대해 수소문을 해봤지만 정씨를 아는 한국교민은 전혀 없었다. 1960∼70년대 독일에 광부로 건너갔다가 정착한 한인들도 정씨를 알지 못했다.

한 독일 거주 교민은 “나는 1975년부터 독일에서 살았다. 독일 전역에 40개의 한인회가 조직돼 있어서 각 지역에 자주 다니지만 정씨에 관한 이야기는 한번도 못 들어봤다”고 밝혔다. 

정씨는 2014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사람도 안 만나고 다니는 사람이어서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독일교민들은 정씨에 관한 질문에 몹시 민감했고,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독일 서부지역의 한 도시에 사는 교민은 기자 신분을 밝혔음에도 정씨의 이름을 듣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주변에 수소문을 해본 뒤 다시 통화를 약속한 교민도 며칠 후 집 번호를 바꿀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보좌관 전 이력 수수께끼
정씨-최씨 만남도 베일속

1982∼1994년까지 독일에서 공부한 한 학자 역시 정씨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에 광부로 간 사람들이 대부분 직업교육을 통해 광부를 그만두고 자격증을 취득해 취직하거나 목재소, 자동차 공장 등에 재취업했다”면서 “취직해서 월급을 받고 직장에 묶여 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고 교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정씨 본인의 말처럼) 독일과 무역한 것이 맞다면 독일인과 교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각 도시 한국식당 주인 정도라면 알 수도 있을 것”이라며 “독일 유학생들이 모여 조직한 독일총동문회가 있다. 최씨가 독일에서 공부했다면 도시마다 총동문회가 조직돼 있어서 금방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학자와 <일요시사>가 접촉한 교민들은 공통적으로 “가명으로 다닌 것이 아닌가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씨가 ‘정윤기’라는 이름으로 된 명함을 가지고 다녔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고 지난 몇년간 ‘개명설’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본명이 여배우와 이름이 같은 ‘정윤희’라는 설이 그것이다. 정씨의 경희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의 일부 서지가 ‘정윤희’라고 기재돼 있는 경우도 발견됐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오자로 보인다. 앞서 얀슨의 등기부등본에도 그의 이름이 정윤희로 잘못 기재된 후 ‘성명경정’(공공기관의 실수로 이름이 잘못 표기된 후 이것을 바로잡는 절차)을 통해 바로 잡은 예가 보였다.

정씨는 1993년 3월 <여행사 경영조직 발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경희대에서 관광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를 지도하고 석사학위를 준 교수를 어렵게 수소문해 연락했지만 해당 교수는 “당시에 내가 가르치고 논문을 봐준 학생만 수백 명이어서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대선 당시부터 만만회 의혹,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소재, 가토 다쓰야 외신기자 명예훼손 재판, <세계일보>의 십상시 관련 문건 보도를 거쳐 현재의 소송에 이르기까지 정씨가 무엇을 하든 언론의 주요 관심사가 됐다.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해서라도 확실히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국정운영 의혹
재산 드러날까

그렇지 않으면 정권 내내 발목을 잡고 부담으로 남을 것이라는 의견이 여당 내에서도 있어왔다. 정씨와 최씨의 가사소송은 개인사임에도 이번에도 일제히 보도가 될 만큼 관심이 높았고 그만큼 청와대에 부담을 안겼다. 재판은 일반에 공개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안이므로 해당 재판을 통해 비선 실세의 국정운영 의혹과 최씨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 등이 드러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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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