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치유소 ‘은혜의 뜰’ 찾는 사람들

“잠시 들러 무거운 짐 놓고 가세요”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 전쟁이 끝난 1950년대 초, 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 빈민촌을 형성한 곳이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정비구역으로 묶여 집을 짓거나 늘릴 수 없었다. 지난해 30층짜리 오피스텔 6동이 들어서면서 남산 조망을 막아섰다.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변 풍경은 수십년째 그대로다. 이곳에 마당과 넓은 테라스를 가진 아담한 2층집이 들어섰다.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서울분원에서 운영하는 ‘은혜의 뜰’이다.

서울역 맞은편 후암시장을 따라 100m가량 올라오면 왼쪽으로 노란색 담이 보인다. 그 골목으로 들어오면 우대성 오퍼스 대표가 “빌딩 속의 사랑채”라고 명명한 은혜의 뜰이 보인다. 이름 그대로 이곳을 처음 찾은 이들은 “빌딩 숲 한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냐”며 놀란다.

아픈 사연 경청

우씨는 서울 가회동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다. 그는 수녀회의 의뢰를 받아 지은 지 60년이 넘었고 사람이 살지 않은 지 20년이 된 수녀원 숙소를 리모델링했다. 지난해 9월14일 문을 연 이래로 지난 5월까지 2413명이 다녀갔다. 동자동에선 유일하게 마당을 가진 집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찾은 은혜의 뜰엔  김 마리로사·김 로사리아 수녀와 이 가옥의 원래 주인이었던 암코양이 점순이가 취재기자를 맞이했다.

뜰지기 김 로사리아 수녀는 “잠깐 쉬면서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주자는 뜻에서 지었다”며 “누구라도 언제든지 와서 편안히 머무는 흔들의자처럼 이용해 줬으면 좋겠다. 방문자들이 처음엔 편안하다고 하고 갈 때는 행복하다고 한다”며 미소지었다.


성분도(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의 약칭) 은혜의 뜰 창밖으로 푸른 잔디와 인동초 넝쿨이 보였다. 로사리아 수녀는 “바람이 사방으로 통하는 집”이라고 했다. 리모델링 후 첫 여름을 나는 가옥은 사방에 큰 창과 출입구가 있어 냉방기를 가동하지 않아도 시원했다. 로사리아 수녀는 직접 만든 팥빙수와 핸드드립 커피, 방문자가 가져온 빵을 대접했다.
 

그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시대”라며 “아픔과 사연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 와서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것부터가 치유”라고 말했다. 천주교 수녀회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해서 종교를 가지라고 권하거나 기도를 하자고 하지도 않는다. 로사리아 수녀는 “교황님도 그런 것은 싫어하신다”며 “신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동자동 빌딩 속 사랑채 “누구나 환영”
억울하고 아프고 외로운 마음 위로

그저 대화하길 원하는 이는 대화를 하고, 책을 보고 싶은 이는 책을 보고, 혼자 조용히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한다. 동자동에서 10년 넘게 노숙자를 돌봐온 개신교 목사도 자주 들른다.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2층에 꾸며진 기도방으로 올라가 같이 기도도 한다.

손자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독서를 하러 오는 노인도 있고, 근처에 직장이 있는 이들이 잠깐 와서 졸다 가기도 한다. 로사리아 수녀는 굳이 기자에게 소파에 앉아 보라고 권유했다. 2층의 안락한 소파에서 수면을 취하다 가는 이들이 많단다. 방문자들은 그림도 그리고 커피도 마시고 대화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은혜의 뜰은 사람 사이를 ‘매개’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족이 아픈 사람, 가족 중 자살자가 있는 사람들이 왔다. 한번 다녀간 사람들이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데리고 온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기도하고 나면 또 다른 이를 데리고 오는 것이 반복됐다.

로사리아 수녀는 “서로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거 같다”며 “그런 공간을 여기서 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어느 날 찾아온 한 여성은 탈모를 앓고 있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여성의 중학생 딸이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병동에 입원하고 보니 또래 아이들이 의식 없이 몇 달을 누워 있었다. 엄마들끼리 만나서 친해지고 서로 의지하게 됐다.

한 30대 청년이 자주 찾아왔다. 그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가족 이야기도 했다. 마침 자리를 함께했던 어머니 또래의 여성이 청년의 마음을 다독여줬다. 이 여성은 “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여 3명이나 키웠다. 너 하나를 또 자식으로 삼지 못하겠냐”고 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모자의 인연을 맺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한 유태인이 “은혜의 뜰 공사과정을 다 지켜봤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수녀님들이 계속 드나드는 것을 봤다”며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그는 출국을 앞두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가져가라”며 물품을 기부하고 떠났다. 

은혜의 뜰에선 차를 무료로 제공하는 데도 빈손으로 떠나지 않으려는 방문자가 많다. 이들은 쟁반 밑이나 식탁보 밑에 1만∼2만원씩 숨겨두고 간다. 그래서 은혜의 뜰에선 작은 기부상자를 주방에 하나 뒀다. 굳이 찻값을 놓고 가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꼭 금전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커피나 빵, 과일, 음식을 가져와 서로 나눠먹기도 한다. 

은혜의 뜰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엔 피정(생활하는 곳을 옮겨서 하나님과 시간을 갖는 것)이 열리고, 생활성가 콘서트, 야외음악회 등도 여러 차례 개최했다. 마당에서 음악회를 열면 100명도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성화(이콘) 강좌, 이해인 수녀와 함께 하는 시교실, 성경공부 모임, 재능기부 형태로 열리는 각종 강좌 등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지난 14일 만난 한 20대 여성은 “여기에 오면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든다”며 “수녀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시고 마음이 편하고 뭔가를 찾아가는 곳이다. 월 2∼3회 찾아와 심층 면담을 한다”며 웃었다. 지난 3월에 수녀원에 들어온 친한 언니를 통해 은혜의 뜰을 알게 됐다. 그는 성소자 모임(수녀원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여성 모임) 과 성경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은혜의 뜰을 자주 찾고 있다고 했다.

대화하고 책보고 기도
“따뜻한 마음 담아간다”

은혜의 뜰은 지난해 가을께 문을 연 이후로 건축학도와 건축 관련 종사자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 됐다. 원래 가옥은 1958년에 지어진 일본식 다다미 형태였는데, 용산구청에서 문화재 지정을 염두에 둘 정도로 건축학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았다. 건축사학자가 부근 후암동의 한옥과 적산가옥을 답사하다가 우연히 들르기도 했다. 

로사리아 수녀는 “용도가 다양한 재밌는 집”이라며 “그때그때 어떤 쓰임에든 들어맞는 집이다. 신축했으면 이런 느낌이 안 났을 거다. 옛 것과 새 것이 어우러져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옥을 리모델링하면서 벽돌집, 박공지붕, 마당과 나무 등의 원래 요소를 그대로 살렸다. 오래된 공간에 담긴 체취와 역사를 자연스럽게 새 것과 어우러지게 했다.

가옥의 외양이 카페처럼 예쁘고 차도 마실 수 있어서 방문자가 점점 늘고 있다. 처음엔 인근 주민과 직장인이 왔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멀리서도 찾아오고 있다. 맞은편에 30층 규모 오피스텔이 생기면서 인근에 음식점과 카페가 점점 늘었다. 지역민들을 위해 지었지만 주변 영업장으로부터 볼멘 소리를 들을까 염려돼 직장인들이 몰려나오는 12∼1시 사이엔 문을 닫고 있다. 일요일엔 개방하지 않고, 평일엔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5시에 닫는다. 

오는 9월이면 은혜의 뜰이 문을 연지 1년이 된다. 뜰지기 로사리아 수녀는 “이 집이 제 구실을 제가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하나님이 와야 될 사람을 오게 해주시는 것 같다”고도 했다.


흔들의자 역할

그는 “이웃들이 이 뜰에 들어와 억울하고 아프고 외로운 마음을 내려놓고 후련하고 위로 받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간다”면서 “혼자 또는 여럿이 와서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속말을 꺼내놓고, 상담도 하고, 기도도 받고 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이뤄지고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이들의 흔들의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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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