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신안에 무슨 일이?

툭하면 사건…천사의 섬 맞아?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전라남도 신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학부모들의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을 필두로 음지에 묻혀있던 사건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사의 섬’이라는 타이틀로 자신들을 홍보하는 신안 사람들.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난 3월 학부모들이 여교사를 집단 성폭행했다. 신안군 소재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여교사 A씨는 식사를 하기 위해 학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았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A씨에게 접근한 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의 아버지 B씨. B씨는 동네 주민 두 명을 더 불러 A씨에게 술을 권했다.

실종되면 죽어서…
얼굴 없는 시체들

평소 술을 잘 마시지 못했던 A씨는 거부했지만, 이들은 억지로 A씨에게 술을 강요했다. 결국 인사불성이 된 A씨가 정신을 차린 건 자신의 숙소였다. A씨는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곧바로 남자친구와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A씨는 몸도 씻지 않은 채 정액과 체모 등 DNA 증거수집을 완료했다. A씨의 침착한 대응은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됐다.

이 사건은 A씨의 남자친구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 범죄 전문가는 이 사건이 ‘의도된 범행’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에서 학부모들은 혐의를 부인했고 "범행 공모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결과 현장에서 수거한 DNA와 이들의 정액이 일치했다. 성폭행한 적이 없으며 관사에는 선생님을 지켜주러 갔다는 학부모. 경찰이 정액 검출 내용을 제시하자 한 말은 “내 정액이 왜 거기 있죠?”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9일 신안군에서 초등학교 교사 B씨가 실종된 것이 밝혀졌다. 해경과 경찰이 B씨 수색에 나섰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은 증폭되고 있다. B씨는 실종 당일 관사를 나간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경찰은 실종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사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일에도 헬기와 경비정 2대, 수색견 3마리가 섬 일대를 수색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살 가능성이 있다. 수색에 집중하고 있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성인 남성의 실종이 이렇게 큰 문제로 번지게 된 이유는 신안군이기 때문이다. 신안군은 이상하리만큼 실종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 지난해 10월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 해상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 변사체가 발견됐고 그보다 앞선 8월 신안군 치도 인근 김 양식장 부근 해상에서 작업하던 선장이 여성 변사체를 발견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실종된 목포해양대학교 학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해상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부패가 진행된 시신은 목포해양대 실습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에 해경은 실종된 목포해양대 학생 C(24)씨인 것으로 판단했다. C씨는 목포해양대 실습선 새유달호에 타고 있던 중 실종됐다. 가장 최근 사건으로는 지난 1월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 선착장 앞 해상에 추락한 승용차량에서 운전자 등 시신 3구가 발견된 사건이다.

목포해양경비안전서는 '송공리 앞 해상에서 변사체가 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경비함정 및 122구조대를 급파했다. 현장에 도착한 목포 해경은 해상에서 차량을 발견하고 119구조대와 합동으로 차량 내부에서 운전자 D모(33)씨와 아들 E(5)군을 인양했다. 또 차량에서 500m 떨어진 해상에서 실종된 딸 F(7)양 시신을 발견해 인양했다.

학부모들 여교사 윤간 큰 파장
살인 강간 등 강력사건 잇달아

그런가 하면 신안의 한 야산에서는 마약의 원료인 양귀비 1000여 그루가 발견돼 해경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목포해양경비안전서는 지난달 26일 전남 신안군 임자면 인근 야산에서 경작자를 알 수 없는 양귀비 재배 현장을 발견해 총 1020그루를 압수했다.

해경은 양귀비를 재배한 경작자를 알 수 없어 재배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물병, 호미 등을 수거해 지문 감식을 의뢰하는 한편 인근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통해 경작자를 추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작자를 검거하면 양귀비를 대량으로 재배한 경위와 불법 유통 및 상습 복용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안군의 양귀비 재배 적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비닐하우스를 지어놓고 대규모로 양귀비를 재배한 40대 김모씨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해경에 검거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목포해경은 비닐하우스 내에서 양귀비 550여주를 전문적으로 밀작하고 있는 최모(47)씨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거하고 양귀비를 압수했다.


최씨는 개화 시기인 5월부터 6월에 관계기관 합동단속이 이뤄진다는 것을 틈타 재배 시기를 앞당겨 단속이 시작되는 5월 이전에 처분하려고 했다. 특히 검거된 최씨는 비닐하우스 1동을 이중의 비닐로 씌어놓고 밖에서 내부를 볼 수 없게 했을 뿐만 아니라 양귀비를 지푸라기로 덮어놓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무연고 사망자 수를 둘러싼 의혹도 제기됐다. 2014년 초 신안 섬 노예 사건이 불거진 뒤 바로 그해에만 신안군에서 발표한 무연고 사망자 수가 평소보다 3배 정도 늘었다는 것. 신안군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무연고 사망자 공고’ 현황을 보면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총 32건이 검색된다.

2008년에는 1건이었던 무연고 사망자 공고는 2009년에는 2건, 2010년 4건, 2011년 3건, 2012년 3건, 2013년 3건, 2015년 3건, 2016년 3건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2014년에는 무려 10건이나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염전노예 사건
솜방망이 처벌

2010년을 제외하고 매년 1~3건에 불과한 무연고 사망자 공고가 2014년에만 유독 10건으로 증가한 것. 네티즌들은 이 점을 의심하고 있다. 2014년은 바로 염전 섬 노예 사건 논란이 불거진 해이기 때문이다. 그해 1월28일 전남 신안군 한 염전에서 임금 체납과 감금으로 혹사당하던 장애인 2명이 경찰에 구출되면서 염전 섬 노예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2014년 2월 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도에 있는 염전에서 지적장애인을 약취 유괴해 감금하고 강제 노동에 종사시키며 종국에는 살해하기까지 한 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2008년 11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지적장애인 채모(48)씨는 일자리를 찾다가 무허가 직업소개업자 고모(63)씨를 만났다.

두 끼니를 사준 직업소개업자는 더 나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서 모 외딴 섬에 있는 홍모씨의 염전으로 가게 됐는데 고씨는 30만 원의 소개비를 받고 채모씨를 팔아넘겼다. 하루 5시간도 자지 못하는 와중에도 소금 생산은 물론 벼농사, 신축건물 공사, 각종 잡일, 집안일을 하면서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수년간 노예처럼 일했다. 채씨는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나무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선천적 시각장애 5급인 김모(40)씨는 2000년 과도한 카드빚을 지게 되자 가족들에게 짐을 안겨주기 싫어서 가출하고 10년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김씨는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서울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 생활을 하며 지내던 중 2012년 7월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무허가 직업소개업자 이모(63)씨를 만나 먹여주고 재워주는 염전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 이씨를 따라갔다.

김씨는 홍모(48)씨의 염전에서 월 80만원을 받고 3개월간 일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씨는 홍씨에게 몸값 100만원을 미리 받고 김씨를 팔아넘겼으며 섬에 억류되어 채씨와 같은 곳에서 강제 노동을 하는 처지가 됐다. 김씨는 채씨와 함께 섬에서 빠져나오려고 세 차례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매번 마을 주민들의 전화로 발각돼 도망치지 못했다.

홍씨는 “한 번만 더 도망을 친다면 칼침을 놓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렇게 김씨는 1년6개월, 채씨는 무려 5년2개월 동안 강제 노역 생활을 했다. 홍씨는 대체로 이 혐의를 모두 인정했으나 “쇠파이프나 각목은 아니고 손으로만 때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홍씨의 철저한 감시에 도저히 외부와 연락을 취할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고 몰래 홍씨의 집에서 종이와 펜을 훔친 다음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캐면 사건화
범죄소굴 오명

김씨는 편지에다가 자신이 섬에 갇히게 된 사연을 썼으며 찾아올 때는 소금장수로 위장해서 구출해달라고 당부했다. 어머니 배모씨는 경찰서에 신고했고 신고를 받은 서울 구로경찰서는 정확한 주소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소금 구매업자로 위장해서 다도해 지역에 잠입했다. 그리고 섬 곳곳을 탐문 수사하다가 염전에서 일하던 김씨와 채씨를 구출했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인부들을 학대한 혐의로 염전 주인 홍씨를 영리약취·유인 혐의로 무허가 직업소개업자 이씨, 고씨를 형사 입건했다. 당시 홍씨는 “왜 탈출하는 인부들을 다시 데려왔느냐?” 는 질문에 “집에서 키우던 개가 집을 나가면 찾겠어요 안 찾겠어요”라고 대답해서 여론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2014년 9월25일 광주고등법원 항소심에서는 성씨만 같은 다른 염전업주에 대한 선고가 있었는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다수 염전에서 관행적으로 위법행위가 이루어졌고 홍씨가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와 가족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참작 사유로 들었다.

묻힌 사건들 하나씩 수면 위로
정부 차원 대대적인 수사 필요

또 ‘오지 지역 학교에 여교사를 가급적 신규발령하지 않겠다’는 대책도 내놓았다. 하지만 ‘근시안적 대책’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 교육청에서는 이번 주까지 학교관사에 거주하는 교사들의 현황과 관사 주변 CCTV 설치 현황, 방범창 설치 여부 등을 점검해 달라”며 “특히 여성 교사가 단독으로 거주하는 관사에 대해서는 대책 수립 이전에 CCTV를 우선 설치하는 등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2014년에 구출되었던 63명 중 40명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로 염전으로 돌아갔다는 실망스러운 소식이 하나 더 전해졌다. 지난 4월17일 광주지법은 염전업주 박모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의 원심을 깨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서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이 논란이 됐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늦게나마 뉘우치고 임금을 변제했으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한편 이번 여교사 성폭행 사건과 관련, 해당 섬마을 주민들이 쏟아낸 어이없는 발언도 누리꾼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7일 한 매체는 사건이 발생한 지역을 찾아 주민을 상대로 한 추가 인터뷰 내용을 방송했다. 한 주민은 “공직에 있는 교육자, 공무원 아니냐”면서 “어떻게 처녀가 술을 떡이 되도록 그렇게 먹느냐”며 오히려 피해 여교사를 비난했다.


이어 이 주민은 “방송을 보면 (학부형들이) 완전히 죽일 놈이 됐는데 내용 자체도 모르면서 남자 셋이 여자 하나를 죽인 것으로 생각하게 해놨다”며 성폭행 가해자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인터뷰 내용을 들은 한 변호사는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면서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언론 취재에 대한 반감 때문에 저렇게 말했을 것”이라며 “믿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신안군 섬마을의 다른 주민은 “서울에서는 ‘묻지마 살인’도 나는데 젊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경찰서 신설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신안은 전남 22개 기초지자체 중 유일하게 경찰서가 없다. 

이러다 보니 이번 여교사 사건도 현재 목포경찰서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일 전남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 본청 심사와 행정자치부 심의를 통과한 신안경찰서 신설안이 기획재정부 예산심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경찰서 신설이 함께 추진된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신안보다 수요가 10∼20배 높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전남청은 올해도 3급지 규모의 경찰서를 신안군에 신설해 70여명 가량의 경찰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안을 골자로 하는 신안경찰서 신설안을 본청 심사에 올렸다.

신안경찰서 신설안은 경찰본청 심사를 통과해 행정자치부 심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여교사 혼자 거주하는 관사에 폐쇄회로(CC)TV를 우선 설치하기로 했다. 또 ‘오지 지역 학교에 여교사를 가급적 신규발령하지 않겠다’는 대책도 내놨다.

하지만 ‘근시안적 대책’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 교육청에서는 이번 주까지 학교관사에 거주하는 교사들의 현황과 관사 주변 CCTV 설치 현황, 방범창 설치 여부 등을 점검해 달라”며 “특히 여성 교사가 단독으로 거주하는 관사에 대해서는 대책 수립 이전에 CCTV를 우선 설치하는 등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 여성단체연합 대표는 “교육부는 도서 벽지에 여교사를 가급적 신규 발령하지 않고 관사에 CCTV를 설치하는 등 눈에 보이는 대책만 내놨는데 이는 문제 해결의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양성평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다”며 “여성이 섬 지역에 가지 못하도록 기회의 장벽을 막을 게 아니라 여성이 가도 그곳이 안전하도록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근본적으로 낙도나 도시지역이나 모두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섬 주민들의 인권교육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왔다. 

경찰서가 없다
지역환경도 문제
 

한 전문가는 “안전한 학교도 너무 중요하고 역량 강화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의 가해자는 그 마을의 학부모들인데 그렇다면 학교가 지역사회 내 마을주민들, 선생님들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학부모들과 인권교육을 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사의 섬에서 악마의 섬 딱지가 붙은 신안. 떨어진 섬의 이미지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모든 이들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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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