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하극상 살인사건 전말

깔보는 사장, 전무가 죽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사장이 무시해서 죽였다.” 지난 19일 사장을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조모씨는 경찰에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고 계속 무시해 홧김에 죽였다”고 주장했다. 건설회사 전무로 5년째 일해왔던 조씨의 범행동기는 무엇일까.        

지난 8일 대구에서 40대 남성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실종된 남성은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김모(48)씨로 태어난 지 50일가량된 아기의 아빠였다. 김씨는 거래처 사장들과 골프를 치기 위해 외출했다가 연락이 끊어졌다.

건설사 임원들

이날 실종 직전까지 회사 전무인 조모(44)씨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씨는 경찰조사에서 사장인 김씨와 함께 골프 모임에 갔다가 술을 마시며 저녁식사를 한 후, 9시쯤 대구 시내 한 정류소에 김씨를 내려줬다고 진술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폭탄주 2잔을 마셨고, 헤어질 당시 김씨가 많이 취해있었다고도 했다.

김씨의 휴대전화는 회사 사무실에서 발견됐다. 그날 낮 사망자의 아내는 한 차례 남편과 통화한 참이었다. 조씨는 김씨의 실종신고를 하러 간다는 말에 가족과 함께 경찰서까지 동행했다. 가족들은 전단과 현수막을 만들어 김씨 찾기에 나섰다.

아내는 경찰에 “남편이 폭탄주 2잔에 그렇게 몸을 가누지 못하고 부축받아야 할 정도로 주량이 약하지 않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대구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조씨가)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피해자를 마지막으로 만촌동 모 아파트 앞 버스 승강장에 내려주었다고 주장했으나 주변 CCTV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거짓말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씨가 실종된 직후 조씨의 행적도 수상했다. 실종 다음날 이른 아침, 군위군 근처 주유소에 들러 삽을 빌렸다.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파기하고 새 것으로 교체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지난 19일 경찰은 조씨가 김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조씨를 긴급체포했다. 조씨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진술을 거부하다가 경찰이 증거를 제시하며 추궁하자, 지난 19일 밤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조씨는 수면제(아미노플루니트라제팜)를 넣은 숙취해소제를 차량에 보관해 두고 있다가 8일, 건설업체 사장 2명과 골프모임을 가진 뒤 식당에 들어가기 전 피해자에게 먹였다. 식사 중 잠이 든 피해자를 차량에 태우고 회사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같은날 오후 9시30분께 뒷좌석에 타고 있던 피해자를 목졸라 살해했다. 이후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시신을 싣고 다음날 새벽, 사체의 옷을 벗긴 후 경북 군위군 노귀재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조씨의 자백에 따라 4개 중대가 군위군의 한 야산을 수색한 결과 20일 김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다음날 조씨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됐다. 범행을 자백한 이후 조씨는 불안증세를 보이며 피로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사장인 김씨가 평소 자신을 무시하고, 처우 개선도 해주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고 진술했다. 조씨가 김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도 승진과 월급 인상을 요구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새벽부터 나와서 열심히 일을 했고 지난해에 비해 회사 사정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월급 인상이라든가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서 평상시에 불만이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3일 실시된 현장검증에서도 또다시 “사장이 내 인생을 갉아먹어 홧김에 그랬다"고 주장했다.

목졸라 살해하고 시신 야산 유기
무시해서? 돈 노린 계획범죄 가닥

사망한 김씨의 아내는 믿었던 조씨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김씨는 언론에 “의형제처럼 지내니까 당연히 의심하지 않았다”며 “조 전무가 싹싹하고 일이 있으면 많이 도왔다. (남편을 살해한 것을) 정말 인정하기 싫었고 그럴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러한 아내의 진술로 볼 때, 사장 부부가 조씨를 신뢰했고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피의자 조씨의 ‘무시해서 죽였다’는 진술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찰이 보다 정확한 범행동기를 밝히기 위해 조씨의 채무관계 등을 조사하는 등 수사력을 모은 결과, 피해자의 금전 및 재산을 노린 계획적인 범행이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났다. 주변 인물을 조사한 결과 피의자의 주장과 다른 점이 많았던 것이다.

처음엔 조씨가 ‘처우 개선과 경제적 지원 등에 불만을 품고 살해했다’고 주장한 것을 경찰이 그대로 브리핑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 보도했으나, 추가로 주변 인물을 조사하면서 경찰 측이 “사실과 달라 조씨의 변명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에게 거액의 채무가 확인돼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태에서 사장을 살해해 재산적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나 이 부분을 집중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 가족에 따르면 사망한 김씨가 주식투자금 명목으로 두 차례에 걸쳐 1억원과 4000만원을 건넸다고 한다. 이에 지인들이 “전무라고 잘해줄 필요 없다”고 충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 가족은 현재 범행동기는 다 돈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 결과 조씨는 사장을 매장한 며칠 뒤 다시 찾아가 나프탈렌과 락스를 뿌려 범행 은폐를 시도해 사건에 혼란을 주려 했다.

또 사장을 살해한 후 일부러 차를 운전해 김씨의 집 근처인 수성구 만촌동 A아파트 앞 버스승강장까지 이동한 뒤 사무실로 돌아간 다음 자신의 아내에게 “사장을 보내고 지금 간다”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는 등 알리바이를 만들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휴대전화와 노트북으로 ‘땅 속 시체 부패’ ‘CCTV 녹화 기간’ ‘검색어 지우기’ ‘실종자 골든타임’ 등 범행과 관련된 단어를 검색한 흔적도 발견됐다.

조사과정에서 김씨가 살해되기 사흘 전에 있었던 1차 범행시도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씨는 숨진 김씨와 함께 지난 5일 수성구 모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경찰이 주점 관계자를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한 결과, 이날 김씨가 단지 술에 취했다고 보기에 이상할 정도로 기력이 없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주점 관계자들은 김씨가 평소와 달리 귀가할 때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이날도 조씨가 사장에게 숙취해소제를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주점 관계자는 “김씨가 잠이 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두 사람의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도 했다. 김씨 아내도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아무 생각이 안 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조씨는 1차 범행 시도를 부인했다.

골프 갔다 행불

경찰은 지난 26일, 조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송치 후에도 계좌·통화내역·디지털 증거 등을 분석하고 주변 관련자 등을 조사해 공범 여부, 직접적 범행동기를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