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의 비밀

68년 만에 보물창고 열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엔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몽골,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유물까지 약 38만여점의 소장품이 보관돼 있다. 지난 1945년 박물관이 문을 열었으나 수장고 속 유물의 전모가 완전히 파악된 것은 아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일제 수집 유물’을 광복 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조사하면서 역사적 중요성이 큰 유물이 여러 차례 발견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제 수집 유물은 유적보고서와 도면 등의 공문서, 유리 건판을 제외하고도 발굴품만 ‘16만점’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워낙에 양이 많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해방 후 68년이 지나도록 학계에선 해당 발굴품이 어떤 성격의 유물들이고 어디서 어떻게 출토됐는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16만점 발굴
지금도 연구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1월, 해방 후 처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은 일제 수집 유물을 조사해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국박은 2022년까지 향후 10년에 걸쳐 연 5억원씩 총 50억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일제 수집 유물 조사 프로젝트가 올해로 4년째에 접어들면서 금관총 ‘이사지왕’ 명문 환두대도(손잡이 끝부분에 둥근 고리가 있는 칼)를 비롯해 학계 안팎을 들썩이게 했던 ‘역사적 발견’이 몇 차례 있었다. 학계에선 국박 수장고에서 앞으로도 이러한 큰 발견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고고학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물들이 국박 수장고에 그대로 잠자고 있다”면서 “해방 후에 일본인들이 가져가지 못하고 거의 그대로 남았다. 국박에서 지난 몇 년간 수장고를 발굴한다는 개념으로 일제 수집 유물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박은 1945년 개관하면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소장품을 고스란히 인수받았다. 이후 6·25전쟁 때 부산 피란 등 7차례나 이사를 다니다 지난 2005년 처음으로 박물관 만을 위한 공간을 건립해 서울 용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을 최우선으로 하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전 사회를 지배했고, 발굴조사는 개발공사를 앞두고 시행하는 ‘구제발굴’에만 머물렀다. 건축·토목공사를 위해 급하게 매장문화재를 발굴·수습하는 조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전국 각급 박물관이 땅 속에서 나온 발굴품을 보관할 수장고마저 부족한 실정이다.

일제 수집 유물 자체가 36년에 걸쳐 축적된 방대한 자료인데다 발굴조사와 수집과정에서 한국인이 철저히 배제된 점,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제대로 된 보고서를 거의 남기지 않은 점, 지하수장고에 맥락 없이 마구잡이로 방치돼 있었던 점 등이 일사정연하게 정리해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정부의 인식 부족으로 인한 예산 및 인력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다. 지난 수십년간 발굴·보존 예산 등이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전국의 국·공립박물관에서 긴급한 보존처리를 기다리는 유물들만 수십만점에 이른다.

이 같은 이유들로 일제 수집 유물은 조사 및 복원처리에서 우선 순위에 밀렸으나 10여년 전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학회와 각종 소모임을 열고 논문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연구가 진행되다 일제 수집 유물의 중요성이 공유된 끝에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조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국내뿐 아니라 여러나라 유물까지 소장
일제 수집품 프로젝트 4년째 큰 발견도

16만점에 이르는 해당 유물(주로 고분 부장품) 중 최초의 중요한 발견은 칼자루에 이사지왕(爾斯智王)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둥근 고리 검이다. 해당 유물은 1921년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금관총 발굴 중 나온 부장품 중 하나로, 지난 70년간 국박 수장고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잠자고 있었다.

2013년 7월, 이 환두대도가 발견된 후 학계에선 금관총의 주인이 이사지왕일 것이라는 의견이 유력하게 제시됐다. 현재까지 무덤 주인이 특정된 고대고분은 ‘무령왕릉’이 유일하다. 환두대도의 발견은 금관총의 재발굴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재발굴을 실시하면서 이사지왕 명문이 새겨진 칼집이 또다시 출토되면서 화제가 됐다.        


백제 무왕부부(서동과 선화공주)가 묻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익산 쌍릉도 새롭게 주목받았다. 국박 측은 먼저 유리 건판 사진 속에서 쌍릉의 나무널(木棺)을 꾸미는 밑동쇠(座金具)와 꾸미개를 발견하고 해당 유물이 실제로 국박 수장고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무덤 주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아 4점을 국립전주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하고 DNA 분석을 의뢰한 결과, 성인 여성의 것으로 확인되면서 무덤 주인공이 선화공주일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조사를 진행한 경주 서봉총 출토 유물도 국박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하지만 최근 조사과정에서 ‘X자형 무늬 금반지’ 2점과 ‘가는 고리 귀고리’ 5점 등 9점이 분실된 것이 밝혀졌다. 1931년에 촬영한 출토 유물 사진에서 확인된 유물을 현 수장고에선 찾을 수 없었다. 박물관 측은 여러 정황상 일제강점기 때 도난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박은 서봉총 발굴보고서를 발간하고 마찬가지로 오는 10월까지 재발굴하기로 했다. 

속속 드러난
국보급 보물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알려졌던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 사자상도 국박 수장고에 지난 60년간 보존돼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문화재 관리 주무당국인 문화재청과 국박 사이에 협업체계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일제히 일었으나 그만큼 국박 수장고에 알려지지 않은 발굴과 발견이 많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대동여지도 목판 원판(진품) 11장이 지난 1995년 국박 수장고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해당 목판은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시절부터 수장고 내에 있었다. 이외에도 명나라 비단지본 마패인 부험(符驗), 원주 출토 고려 철조 아미타불상 등이 최근 발견됐다. 말 그대로 박물관 수장고는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문화유산의 보물창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일제 수집 유물에 대해 “시기 별로 다양하게 수백 건의 발굴조사와 유물이 있다. 경주국립박물관에도 일제가 수집한 유물이 많이 소장돼 있다. 최신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어떤 것을 발견해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때는 세기의 발견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박은 현재까지 일제강점기 발굴보고서와 도면 등 공문서와 유리 건판 사진을 절반 이상 공개했다. 내년까지 30만점 전체를 온라인에 공개할 방침이다. 깨진 유물은 보존처리하고, X선 성분분석과 실측 작업을 거쳐 종합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경주·부여·공주·대구·김해 등의 국립지역박물관도 함께 작업한다. 우선 순위에 따라 2022년까지 전체 46만점을 순차적으로 공개해 일제 수집 유물을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시도다.

일제 수집 유물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수집된 것일까.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이래 한반도 내 유적과 유물, 역사자료, 인종, 언어, 풍속 등 다방면에 걸쳐 광범위한 학술조사를 기획했다.

총독부가 자금을 제공하고 일본인 학자들이 주축이 된 학술조사사업은 식민통치를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식민통치논리’를 창출하는 작업이었다. 우리 문화의 타율성을 부각시켜 제국주의 사관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목적에 봉사했던 것이다. 동시에 이들이 남긴 저작과 사진 등은 부족하나마 오늘날 한반도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총독부는 만주 소재 발해 도성 유적, 고구려·신라·백제·가야 고분, 소수의 석기시대 유적 등을 발굴했다. 민간에선 아마추어 고고학자 혹은 도굴꾼에 의해 일제강점기 내내 가치가 높은 문화재들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기도 했지만, 총독부에선 발굴을 통해 전국에서 모은 매장문화재를 조선총독부박물관과 경성제대박물관, 각 지역 부립박물관 등에 수장했다. 부립박물관은 오늘날 국립 지역 박물관의 모태가 됐고 해방 후 이들 수장품을 고스란히 인수받았다.

1945년 처음 문 열고 조사 
유물의 전모 지금도 파악중

앞서 정인성 교수는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반출을 금지했다. 유명 수집가들이 부산까지 가져갔다가 못 가져가게 하니까 평소 알고 지낸 조선인에게 맡기거나 팔거나 몰래 어선에 실어 빼돌리려 했다”면서 “조선인에게 믿고 맡겼는데 며칠 만에 도깨비시장에 나오는 등 사사로이 처분해버린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에 의하면 해방 후 대구국립박물관에서 일본인 소유 유물을 주도적으로 수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내부자가 목록을 없애고 사적으로 착복했다. 유물들은 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흩어져버렸다. 전국적으로 이러한 예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 고고학자는 일제 수집 유물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얻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었다. 일본을 위한 ‘일본역사 새로 쓰기’였고, 그들만을 위한 문화재 정책, 박물관 정책이었다. 일제강점기 전 기간 동안 한국인을 배제하고 일제 권력자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이 학자는 “처음엔 식민사학과 관련된 것을 집중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보이지만 고적조사 발굴이 체계적으로 궤도에 오른 후엔 (자기들 목적에 맞는 것만) 선별해서 박물관에 갖다놓은 것은 아닌 것 같다”며 “가능하면 모든 자료를 원칙에 맞춰서 박물관에 보관하고 순서에 따라 보고서를 쓴 것 같다”고 지적했다.  

행방 묘연했던
작품 나오기도

결국 일본인 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활동이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뒷받침하는 행위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것이다. 앞서 학자는 “고적조사와 같은 실증적인 활동들과 조선역사 새로 쓰기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난 다음에야 이 같은 다양한 주장들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비밀통로

현재 왕실 유물을 관리하는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의 지하 수장고는 지난 2005년 서울 용산으로 자리를 옮긴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를 물려받은 것이다. 이 지하 수장고는 서쪽과 동쪽 공간으로 분리되는데, 각각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시대에 건설된 것들이다. 경복궁 근정전∼광화문 사이 지하에 위치해 있으면서 바로 옆 서쪽에 위치한 고궁박물관까지 약 300m 길이의 통로가 조성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서쪽 공간은 원래 방공호와 취조실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서쪽 건물 1층에 일제가 파놓은 지하로 통하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그 끝에 두꺼운 철문이 보인다. 철문 뒤에 100㎡(30여평) 남짓한 규모의 방이 있다. 모래를 채워 방음을 시도한 흔적으로 볼 때 조선인 사상범을 심문한 취조실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하 11m 깊이에 위치한 동쪽 지하공간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만든 비밀 벙커였다. 국가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해 원자탄 공격을 견디도록 철근 콘크리트로 2m 두께의 천장을 만들고 3중 철문 출입구와 제반시설을 잘 갖췄다. 정부요인의 비상대책회의와 기밀문서 보관 등 전시대비 업무를 준비한 곳이다.

벙커는 방수처리가 잘 돼 있고 널찍해서 수장고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중앙홀이 위치한 좌우로 16개의 방으로 구성됐고 바닥은 너도밤나무로 마감하고 내부 진열장과 천정은 오동나무로 제작했다. 전체면적은 3734m²에 달한다. 총 소장유물은 4만4760점인데 지하 수장고에만 3만1000여점이 보관돼 있다.

고궁박물관은 지난 3월30일 수장고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비록 10명만 수장고를 둘러본 제한적 공개였지만, 유물의 보존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박물관 특성상 파격적인 일이었다. 오는 8월, 9월, 12월에도 신청을 받아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을 70분간 공개한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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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