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 왕국’ 북한 마약유통 실태

최상급 아편 전세계로 배달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최근 북한에서 생산된 필로폰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고 투약한 탈북자와 중국동포 수십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북한을 탈출한 북한이탈주민까지 북한산 마약을 중국에서 구해 국내에 가져와 투약할 정도로 북한에서 마약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지 이미 오래다.

한반도 내 마약 제조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됐다. 당시엔 조선총독부 내 전매국에서 ‘식물분석국’이라는 부서를 설치하고 실제론 모르핀과 아편을 취급했다. 전매국은 공식적으론 인삼과 담배를 독점 취급하는 부서였으나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전국의 양귀비 농장을 관리하고 양귀비를 수확·분석해 군납용 모르핀 생산에 관여했다.

집집마다 재배
상비약처럼 구비

이렇게 생산된 모르핀은 만주의 야전병원으로 보내져 부상병 마취와 고통 경감에 쓰였다. 당시 일제가 함경도 지역에 광범위하게 양귀비 농장을 조성하고 운영한 것은 함경도의 토양이 양귀비 재배에 적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양귀비 재배가 성행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3월 발간한 <2015 국제마약통제전략(INCRS) 보고서>는 북중국경지대를 중심으로 북한에서 마약이 성행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북한 당국이 만든 마약은 아편을 뜻하는 ‘백도라지’ 와 필로폰, 헤로인뿐만 아니라 진통진정제 역할을 하며 일명 ‘총탄’으로 불리는 화학합성제 ‘덴다’, 각성제 ‘얼음’, 강심지혈제 ‘파인디아’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내가 북한에 있었을 땐 아편 엑기스가 비상 상비약처럼 집집마다 있었다”며 “진통제, 몸살 감기 등에도 쓰고 만병통치약처럼 썼다. 대흥, 장진, 요덕, 맹산, 양덕군 일대에 아편재배지가 많다”고 북한의 마약실태를 전했다.


강 대표는 지난 1992년 함남 요덕군에서 거주하다가 탈북했다. 그의 진술로 볼 때 당시에도 마약류가 일반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강 대표와 센터 측은 현재 미국 국무부에서 의뢰한 북한 내 마약 실태를 조사 중으로 오는 6월 말까지 조사를 완료해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북한당국은 1970년대 초 해외공관의 운영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마약 제조를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90년대 초부터 정권 차원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아편 재배와 마약 생산을 대대적으로 증대시켜왔다.

탈북자들 중국 통해 국내로 들여와
국경지대 광범위 양귀비 농장 조성

특히 1989년 8월, 김정일이 양귀비를 심어서 외화를 획득하라는 지시를 내림에 따라 재배면적이 대폭 확대됐다. 이후 김정일 직속의 노동당 39호실과 대성무역총국의 주관 아래 은밀하게 마약사업이 전개돼왔다.

이미 김일성 시절부터 마약은 정권이 장려하는 주요 시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양귀비를 많이 심어 이것을 정제해 외국에 팔고 인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교시했다.

김일성은 “백도라지 농사를 잘 지어 백도라지만 수출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식량난을 해결하고 우리 인민들은 가까운 연간에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의 마약 거래는 북한주민이 두만강을 직접 건너가거나 압록강에 소형 배를 띄워 마약 원료가 들어가고 완성품이 중국으로 나간다고 전해진다. 이밖에 기차 화물칸과 선박의 컨테이너 박스 안에도 마약을 숨겨 밀거래한다고 알려졌으며, 회당 0.5∼1㎏ 단위로 거래된다고 한다.


지난 2002년부터 마약은 대대적으로 중국으로 밀수되기 시작했다. 당시 필로폰 1㎏은 미화 5600달러에 거래됐다.

이렇듯 북한에서 마약 제조 및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일반 주민들 입장에선 굉장한 수입원이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8세 어린이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교가 아닌 산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바다에서 조개를 잡아오다 ‘마약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고, 이들이 ‘장마당세대’로 불리면서 마약 제조와 운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외국에 팔고
식량문제 해결

개인의 급여가 월 5000원 정도라면 실제 생활비는 일주일에 평균 5만원 정도 든다. 마약을 취급하면 하루에 10만원도 벌 수 있다. 정권에서 사형을 시킨다고 선전해도 마약 판매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북한산 마약은 순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순도 99%를 자랑하는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중국 마약은 불순물이 많이 첨가돼 복용 후 환각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두통이나 어지럼증, 구토를 유발한다. 북한 마약은 “뒤끝이 깔끔하고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특이한 것은 남한처럼 주사기 투여 방식보다 서양처럼 코로 흡입하거나 은박지 위에 놓고 가열해서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70년대 해외공관 운영비 조달 위해 시작
90년대 들어 정권 차원의 외화벌이 수단

김석향 이화여대 교수는 탈북자 진술을 인용해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마약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탈북자에게 물어보니 회령 출신자는 다 한다. 중학생 이상은 다 한다고 언급했다”면서 적어도 국경지대 주민의 70∼80%는 복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탈북연도를 기준으로 2005년 이후 탈북자는 50% 이상 복용 경험이 있다고 말했고 2008년 이후 탈북자는 70∼80%대로 높아졌다. 최근엔 100% 다 한다. 애들도 다 한다고 하더라. 드문 현상이 아니고 꽤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해 충격을 안겼다.

2009년 실시됐던 화폐개혁 이후 보유하고 있던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 새로운 시장경제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자녀들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 장마당(시장)에서 장사로 먹고 살 만한 능력이 없는 이들 사이에서 마약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북한의 고급 식당은 ‘사우나’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진수성찬을 먹은 후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하며 마약을 함께 한다고 알려졌다. 상류층 사이에서도 마약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탈북자들은 “마약에 빠지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물건” “마약을 (복용)하면 겁이 없어진다” “폭행, 살인, (성적) 문란이 온다” “포고문도 내고 사형도 시키지만 근절이 안 된다”고 했다. 
 


북한사회서 마약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단속을 하고 적절한 처벌을 내려야 하는 인민보안원, 보위원, 법관 등이 마약을 복용하고 압수된 마약을 은밀히 빼돌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마약을 선물로 주고받기를 즐기고 단속된 마약을 착복해 가족을 시켜 장마당에 내다팔도록 하며 지인이나 친척에게도 나눠준다.

이처럼 지도자의 어리석은 판단과 부패, 탐욕, 빈곤으로 인해 북한사회 전반이 ‘마약공화국’으로 변질됐다. 마약을 위해서라면 권력자가 주민을 생산자로 부리고, 생산자는 권력자를 속여 빼돌린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 마약은 살인과 강도 등 ‘강력범죄’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국경지대 주민
70∼80% 복용

지난 1997년 탈북한 이애란 박사는 <북한의 백도라지 농장의 실체와 마약 남용>에서 “북한주민들의 이러한 일탈과 도덕적 해이는 앞으로 통일조국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한 민족임을 감안할 때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북한 마약’ 어떻게 풀렸나  

 


원래 북한 불량정권은 마약 제조 및 유통을 외화벌이 목적으로 시작했다. 실제로 전 세계를 상대로 마약밀매와 위조지폐 유통 등 국제범죄를 자행하고 있다. (박스 기사 참조) 그러나 현재와 같이 북한 내부에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 것엔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김정일이 직접 마약 생산을 지시하면서 생산량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과잉생산이 초래됐고 중국 당국이 지난 2003∼2004년께부터 마약밀매를 엄격히 단속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수로 풀린 것이 한 원인으로 보인다. 또 1990년대 중반 대량 아사 사태(고난의 행군 시기)가 발생했을 당시 북한당국이 집중 육성했던 마약제조기술자들이 내수용 마약을 대량 제조했던 것이 결정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함남 함흥시 흥남구역 내엔 유명한 ‘흥남비료공장’이 있다. 해당 공장은 1927년 일본질소비료(주)에 의해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세워져 1930년대에 화학비료와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했다. 함흥 앞바다에서 일제가 패망 직전까지 ‘핵실험’을 했다는 미국의 정보자료도 존재한다. 그러한 이유로 6.25 당시 혹시 잔존할지도 모를 핵실험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미군이 흥남을 폭격한 후 흥남철수작전을 감행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부터 화학실험과 관련 제조에 능한 곳이었던 것이다.

현재 함흥시엔 함흥약학대학과 흥남제약공장이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이곳에서 마약을 생산했고 최근엔 흥남비료공장 6직장에서도 마약을 생산한다는 보도가 일제히 나왔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공장 가동이 멈추자, 그때까지 국가에서 특별 배급을 받으며 아무 걱정 없이 살던 화학전문가들이 굶주리는 상황에 처했다. 그때부터 생존을 위해 중국에서 마약원료를 들여와 마약 제조가 시작됐고 현재 마약 제조의 ‘본산지’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처음 마약을 연구하고 시험생산을 한 평양시 상원군 마장리 연구소에서부터 대량생산을 시작한 흥남제약공장, 나남제약공장, 평양선교제약공장에 몸담았던 기술자와 전문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마약 제조와 유통이 시작됐다. 결국 2000년 이후 북한 전 지역은 마약의 늪에 빠지게 됐다. <신>

<기사 속 기사> 북한의 국제범죄는?

2006년 10월11일자 <타임> 영국판은 북한이 일본의 야쿠자, 러시아의 마약중개상, 아일랜드 해방군(IRA)의 테러리스트, 아프리카의 밀렵꾼, 이집트·이란·리비아·파키스탄·시리아·베트남·예멘의 군대 등을 상대로 위조·밀매·밀수 등의 불법거래를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국제범죄를 자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늘날 북한은 마약을 해외 공관의 ‘외교 행낭’을 이용해 밀반출하고 있다. 본국과 대사관을 오가는 외교 행낭이라고 불리는 큰 자루 안에 마약, 위조지폐, 가짜 담배 등을 넣어 이동시키는 것이다. 북한의 마약사업은 아편ㆍ필로폰ㆍ헤로인을 비롯해 최근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유행 중인 ‘샤부’ 등 각성제도 포함하고 있다.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의 쟁점: 북한의 국제범죄 유형과 특징>(2007)에 따르면 북한 외교관은 지난 1979년부터 2000년까지 라오스·인도·이집트·동독·파나마·스웨덴·러시아·중국·잠비아·일본·멕시코·시리아 등 전 세계 각지에서 마약을 소지, 밀반입, 판매해 온 혐의로 추방당했다.

북한은 일본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등 국제범죄조직과 연계하는 한편 중국 베이징의 신흥 폭력조직에게 자금을 지원하며 육성해 마약밀매 하부조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은 중국의 동북 3성 지역과 러시아의 극동지역을 주요 밀매 루트로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선 현지 파견된 벌목공과 임업대표부 직원들을 활용해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아편·헤로인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러시아 마피아와 손잡고 아편과 헤로인을 유럽으로 밀반출하고 있다.  지난 1999년 1월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는 북한이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마약 밀수로 벌어들인 외화로 전투기와 헬기 등 러시아제 군사장비를 구입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신>

[※참고문헌]

이애란, <북한의 백도라지 농장의 실체와 마약 남용>, 북한연구소, 2009
이석영, <북한은 어떻게 마약천국이 되었나>, 북한연구소, 2015
윤황, <동북아 평화질서구축의 쟁점: 북한의 국제범죄 유형과 특징>, 통일문제연구19, 2007
김철추, <덴다, 총탄, 돌이돌이, 위폐, 무기...북한의 추악한 지하경제>, 조선미디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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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