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도우미 한충렬 목사 피살 미스터리

북한에 교회 만들다 당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또 다시 북중접경지역에서 개신교 목사가 피살되는 일이 벌어져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근 장백현에서 살해 당한 한충렬 목사는 지난 20여년간 탈북민과 북한인을 대상으로 구호 및 선교활동을 해오면서 북한 당국의 미움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한 목사가 북한 내 지하교회 설립을 지원했고, 중국 공안에게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았다는 말도 들린다. 해외 지원 창구를 두고 교회 내부에 알력도 있었다.

한충렬(49) 장백교회 담임목사는 지난달 30일 오후 2시께 지인의 전화를 받고 외출했다가 연락이 끊어졌다. 이 날은 토요예배가 있던 날로, 예배가 예정된 오후 6시가 돼도 설교자인 한 목사가 나타나지 않자, 가족과 교회 관계자가 중국 공안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가 실종된 18도구(중국의 행정구역) 지역은 밀무역이 성행하는 북중접경지역으로 검문소마다 통행 차량에 대해 전산으로 등록이 되도록 돼 있다. 공안이 한 목사의 차량을 수배하자, 검문소마다 지난 시간이 확인되면서 그의 위치가 빠르게 파악됐다.  

중국 공안 주시
여러 차례 조사

같은 날 오후 8시, 한 목사는 창바이(長白)현 근처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근처에 그의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고 평소 지니고 다녔던 휴대전화 2대는 사라지고 없었다. 시신의 목엔 뚜렷한 자상 흔적이 발견됐고 뒷머리가 함몰돼 있었다. 

시신의 목에 난 치명상을 두고 살인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특수부대원의 소행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현지 주민은 중국 공안에 사건 당일 한 목사가 “남성 2명과 다투는 모습을 봤다”면서 “이후 해당 남성들이 북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했다고 알려졌다.

북한과 중국의 현지사정에 정통한 한 대북 소식통은 “그날 한 목사는 북한 양강도 혜산에 있는 지하교회 관계자를 만나러 18도구에 갔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탈북자를 도와준 것 때문에 피살된 것은 아니다. 그런 활동은 20년 전부터 해오던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최근 북한지하교회를 공격적으로 선교하고 확장하면서 장백교회의 집사 몇 사람이 북한을 드나들었다”며 “이 과정에서 집사 한 사람이 북에 들어갔다가 안 돌아왔다. 아마도 혜산시 보위부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감금됐을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이 대북소식통에 의하면, 무사히 돌아온 집사 3명이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교회 관계자들은 돌아오지 못한 집사도 보위부에 구금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당 집사는 재중동포 장문석(50)씨로 지난 2014년 11월1일 납치 당했다. 현재 그의 아내와 딸이 가장의 무사귀환을 기다리고 있으며, 90세 노모는 아들을 기다리다가 지난 2월 사망했다.

교회 교인과 한국의 지인들이 한 목사에게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며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한 목사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다녔으나 그날만큼은 혼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소식통은 “북한지하교회 관계자가 보위부에 체포된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이 관계자가 보위부에 포섭돼 한 목사를 만나러 암살조와 함께 18도구로 넘어왔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북한지하교회 교인들이 많이 체포될 거다. 피바람이 불 것”이라며 “북한정권이 지하교회를 확장하고 활성화시키는 것을 좌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작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20년간 탈북·북한인 대상 구호·선교
창바이 야산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이와 관련해 선민네트워크와 탈북동포회 측은 지난 4일 성명서를 내고 북한 내에서 성경 공부를 하던 청년들이 체포돼 그 중 3명이 올해 1월 총살됐다고 주장했다. 이 청년들은 한 목사를 통해 기독교를 접하고 기독교인이 됐다. 현재 중국동포사회에선 사라진 한 목사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정보와 연락처를 통한 추가 테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휴대전화 내에 장백교회를 지원해온 미국 및 한국의 단체와 선교사, 목사들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한국 내 고인을 아는 개신교 관계자가 비교적 많이 있고, 한 목사와 장백교회 측이 단순히 탈북민과 북한주민을 돕는 활동뿐만 아니라 북한 내에 지하교회를 설립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온 것이 교계와 북한인권운동계 내에 대체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이 파악됐다. 고인은 그동안 탈북자 구호활동을 편 탓에 북한독재정권의 미움을 샀고, 북한 내부에 지하교회 설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피살된 것으로 보인다.


해외 지원 두고
교회 내부알력도

실제로 중국 내 소식통들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한 목사가 북한 보위부로부터 지속적으로 살해 위협을 받았고 납치 시도도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특히 북한 보위부는 탈북자나 중국을 오가는 상인으로 위장해 선교사 및 목사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함께 예배를 보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수년간 신뢰를 쌓은 후 유인 납치하는 것이 보위부의 수법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 고인이 혼자서 18도구로 간 것도 평소 잘 알고 지낸 이가 불러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을 자주 방문하는 한 북한학 연구자에 따르면, 고인이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장백교회는 장백현에선 큰 규모의 교회라고 한다. 이 연구자는 “교인이 많은 큰 교회다. 교회에서 큰 길로 나가면 바로 폭이 좁은 개울 너머가 북한”이라며 “한국사람이 가긴 위험한 지역이다. 촬영도 못하게 한다. 한 목사의 창고에 구호품이 상당히 많았다”고 전했다.  

해당 지역은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북한 혜산과 마주보는 곳으로, 양국 사이에 밀무역이 성행하고 있다. 집집마다 소형 고무보트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이 모두 밀수에 쓰이는 배다. 또 압록강의 폭이 좁고 수심이 얕아서 대표적인 탈북 루트 중 하나로 꼽힌다.

한 목사는 직접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밀무역을 하는 북한인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쳐 북한 내부에 파송하는 역할을 조용히 해 왔다고 알려졌다. 북한과 밀무역을 하는 교회 신도들이 국경지역 북한청년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오면 한 목사가 해당 신도의 집으로 가서 성경을 가르쳤다. 이렇게 기독교를 접한 북한주민들이 북한으로 들어가 ‘점조직화’해 지하교회를 세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이유로 장백교회와 북한 양강도 보위부는 지난 수년간 ‘기싸움’을 벌여왔다. 북한 보위부가 북한을 드나드는 교인 4명을 죽이겠다는 말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앞서의 대북소식통은 “한 목사가 공안 조사를 받았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며 “중국 국가안전부(정보기관)가 계속 주시해왔다. (선교활동과 지하교회 설립을) 적극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문제 제기를 많이 당했다. 조사를 많이 받은 걸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고인은 지난 1993년 지린성 백산시 조선족자치현에 장백교회를 세운 후 북한에 대량 아사 사태가 발생했던 1990년대 중반 이후로 20여년간 탈북자와 북한주민을 상대로 구호 및 선교활동을 해왔다. 미국, 호주, 캐나다, 한국 내 선교단체의 지원도 받았다.

이러한 해외 지원을 두고 교회 관계자들과 알력도 있었다. 한 목사가 모든 지원을 자신을 통해 일원화하길 원하자, 교인이나 집사가 반발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두고 한 목사가 사적으로 원한을 산 것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뒷머리 함몰 목에 자상 흔적
살인교육 받은 보위부 소행?

중국 공안은 현재 한 목사의 피살에 대해 수사 의지가 거의 없다는 전언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이틀 만인 지난 2일, 서둘러 유가족에게 시신을 인계했다. 장백교회는 3일 오전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 목사의 장례 예배를 가졌다. 중국정부가 보도 통제를 한 탓인지 이번 사건이 중국 언론에서 보도된 바도 없다. 한 목사가 중국 국적자이므로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어야 하나 북한과 관련된 사안으로 보고 민감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한국의 정보당국이 정보원을 목사나 선교사로 키우는 경우가 자주 있으나, 한 목사는 동북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5년 백산시 기독교 양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정통신학 계열의 목회자다. 서울에서 신학 공부를 한 경력도 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한쪽 다리를 절었으나 국내 교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안팎으로 신임이 높았다.
 


앞서의 북한학 연구자는 고인에 대해 “순수한 목회자였다”면서 “복음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설교도 잘하고 지역에서 신뢰가 높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사리분별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북한 바로 코앞에서 노골적으로 선교하지 않는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무대포로 북한 사역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분야에 노하우가 있어서 전략적으로 잘해왔다”고 덧붙였다. 

북한 상대 활동가
300명 납치·살해

북한은 지난 20년간 탈북자를 도운 선교사와 목사, 북한인권운동가를 지속적으로 압박해왔고 현재까지 약 300명을 납치·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1995년 안승운 목사를 납치했고 2000년 김동식 목사를 납치했다. 두 사람 모두 납북된 후 자살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정확한 최후는 밝혀진 바가 없다. 2011년엔 김창환 선교사를 독침으로 독살했다.

현재도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와 캐나다 국적의 임현수 목사가 북한에 억류돼 있다. 이러한 납치, 살해 및 억류에 대해 한국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고 중국정부도 자국민 보호에 앞장서는 한편 자국 내 북한공작원의 활동을 더 이상 묵인, 방조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북 관료에 당한 캄보디아 카지노 스토리


해외 파견 북한 관료의 기강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한 불법도박장에서 북한 관리들이 도박을 한 후 도박 빚을 북한화폐로 갚고 도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불법도박 사이트를 운영 중인 북한의 해외 파견 관료들이었다. 이들이 개설한 도박 사이트는 여러 가지 눈속임과 조작을 통해 돈을 잃게 만드는 불법 사이트로, 한국, 일본,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접속하는 사이트였다.   

이들은 프놈펜의 한 카지노 내 불법도박장에서 판돈에 상한액을 두지 않는 도박을 즐겼다.  이 과정에서 카지노 측에 20만 달러를 빌려 썼다가 모두 잃고 빚을 독촉 받는 처지가 됐다. 카지노 측은 달러로 빚을 갚을 것을 요구했으나 이들은 달러가 없다며 북한화폐로 빚을 갚겠다고 제안했다.

캄보디아와 북한은 1964년 수교를 맺은 후로 1970년대 시하누크 국왕이 북한에 망명해 김일성과 친분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각별히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난해 12월엔 북한이 캄보디아 씨엠립에 박물관을 열 정도로 양국 사이에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카지노 측은 북한화폐를 받기로 결정했고, 북한 관리들은 북한화폐 5000원권이 가득 든 마대 2개를 건네고 프놈펜을 빠져나왔다. 카지노 측은 중앙은행에서 제시한 공식환율을 적용해 1달러 당 ‘20원’으로 계산해서 북한화폐를 받았다.

북한화폐를 처분하고자 그 즉시 구매자를 수소문 했다. 교민사회에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의 국군정보사령부가 개입했다. 

카지노 측은 정보사령부 관계자로부터 “1달러 당 북한 돈 2500∼3000원은 받아야 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카지노 관계자들은 북한화폐의 공식환율과 블랙마켓의 실제 환율이 100배가량 차이가 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정보사 측도 제보를 접수하고 카지노 측과 접촉하기 전까지 2009년에 있었던 북한의 화폐개혁 이전의 구권이나 위조지폐일 것이라고 여겼다. 북한인들이 실제론 20만달러가 아닌 2000달러 정도만 갚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카지노의 건달들이 북한인들을 “죽이겠다”며 뒤를 쫓았지만 이들은 이미 방콕으로 도주한 후였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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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