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조희팔’ 3000억대 다단계 사기 전말

목발 장애인·폐지 노인도 “당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다단계 사기의 수법이 구태의연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 1년간 전국을 무대로 투자자를 끌어 모아 3000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이다 도주한 이모씨가 구속 재판 중이다. 그는 피해자들 사이에서 ‘리틀 조희팔’로 불렸다. 피해자들은 이씨가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서울 강남을 무대로 지난해 초부터 사기행각을 시작했다. 불과 1년 만에 피해자 수 4800여명에 피해액이 2886억원으로 급속하게 불어났다. 이씨는 직원 수 십여명을 고용해 서울 서초동에 ‘J모 그룹’이라는 다단계 회사를 차렸다. 그의 밑에서 팀장급만 20여명의 직원이 일했다. 그에겐 이미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로 1년을 복역한 전과가 있었다.

지금도 설명회

지난 11일 찾아간 서초동 모 빌딩에선 현재도 또 다른 업체의 다단계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로 중장년층이 참석한 가운데 높은 열기 속에서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해당 빌딩은 이씨가 사무실을 빌려 입주해 있었던 빌딩으로, 그는 이곳에서 매월 수 천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지하 1층 전체를 썼다. 이씨는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지난해 10월께 중요 서류를 챙겨 달아났다. 그러나 경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해외로 나가지 못하고 수서경찰서에 직접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은 후 구속됐다.  

J모 그룹은 회원 가입을 하고 매달 회비 5만원을 100번 납입해 500만원이 되면 더 이상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선전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적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현혹했다. 

멤버십에 가입하면 전국 2500여개 병/의원, 750여개의 호텔, 콘도, 펜션, 스키장, 스파, 여행, 웨딩, 상조서비스, 농축산물, 건강식품, 화장품 업체 등과 제휴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할인해 제공한다고도 했다.


자사 소유의 연예기획사에서 신인 연예인을 발굴 중이며 지난해 중반기에 방영된 SBS 모 드라마에 공동제작으로 참여했다고 선전했다.

시가 13억가량인 반포 모 아파트 150채를 9억에 분양한다며 회원들에게 7000만∼1억5000만원의 계약금을 받아 챙겼다.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이씨는 극소수의 회원에게 실제로 아파트를 1채씩 양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더 몰렸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 30여개소의 사업장, 상당수의 전업사원과 수 만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언론에도 광고했는데 이 과정에서 모 국회의원의 동생인 김모씨가 지역광역시의 지점장으로 소개됐다. 이들은 언론에 각종 홍보기사를 냈는데 관련자가 구속됐음에도 여전히 인터넷 상에서 J모 그룹과 관련한 현혹성 기사가 검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외에도 러시아 광물 수출사업과 심해수 원료 화장품에 투자하면 원금의 120%를 돌려준다고 현혹했으나 수익금은커녕 이자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이씨는 새 회원의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에 지급하는 ‘돌려막기’식으로 운영하며 시간을 벌었다. 1인당 피해액이 최소 1000만원∼최대 수 십억원까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숙박사업에 관심을 가졌는데, K 호텔과 I 호텔 등을 인수했다고 투자자들을 속였다. 이들 호텔의 경우 계약금만 지불한 상태였거나 구입했어도 단시간 내에 타인에게 되판 경우로 확인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 개의 사업자번호도 등록했다. 실제로 목격자에 의하면, 수십 개의 사업자등록증과 통장이 담긴 여러 개의 상자, 5개의 금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씨는 연예인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활용했다. 사무실 내부에 연예인 사진 약 50점을 걸어놓고 회원이라고 과시했다. 이들 중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연예인이 몇몇 포함돼 있을 뿐 아니라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낯익은 조연 및 단역 배우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J모 그룹 측은 대규모 설명회를 전국 각지에서 열고 모 유명가수를 초청해 공연하기도 했다.


“13억 아파트 9억에 분양” 계약금 챙겨
해외사업 투자 120% 돌려준다고 현혹

지난 11일 서초동의 J모 그룹 전 사무실 근처에서 만난 한 남성은 “나도 지인에게 200만원을 투자하면 몇 개월 안에 400만원을 돌려준다고 투자를 권유 받았었다”면서 “그땐 솔깃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씨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던 빌딩의 관계자는 “내 사촌동생도 4000만원을 투자했다가 피해를 당했다”면서 “줄을 서서 돈을 냈다. 한번 설명회가 열리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관광버스가 10대도 넘었다. 타 다단계의 경우 물건은 있다. 근데 이 사람들은 물건도 없었다. 이 건물이 자기네 거라고 했다더라”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씨와 직원들이 도주한 후 찾아온) 피해자들에게 그 사람들이 한달치 월세도 안내고 도망갔다고 하니 처음엔 내 말을 믿지도 않았다. 되려 그럴 리 없다며 화를 냈다”고 덧붙였다.

투자자 중엔 목발을 짚은 장애인, 폐지 줍는 노인 등 어렵게 돈을 모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가정주부 피해자가 많았는데 “이혼하자” “같이 죽자”며 싸우는 부부도 사무실 주변에서 심심찮게 목격됐다. 
 

회장 직함을 단 이씨는 3억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 그는 외모가 출중한 3명의 여비서를 고용했다. 그가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양쪽에서 비서 2명이 수건을 들고 대기하도록 교육을 시켰다.

앞서 관계자는 “대통령도 누리지 못한 호사를 누렸다”면서 “그는 점잖은 인상이었고 사기꾼 느낌은 아니었다. 달변에 인사도 잘했고 투자자들을 상대로 강의도 직접 했다”고 귀띔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2월16일 이씨 외 4명을 재판에 넘겼으나 현재 수서경찰서 지능팀에서 사건을 계속 수사 중이다. 피해 사실과 피해액이 추가적으로 속속 확인되면서 검찰이 일부 공소사실을 확정해 기소했음에도 사건을 종결하지 못하고 추가로 수사 중에 있는 것.

지능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계속해서 피해를 확인 중에 있다. 현재 언론을 통해 밝혀진 것보다 더 많은 숫자”라며 “이씨는 KBS 등 TV에도 이미 여러 차례 피해 사례가 방영이 됐었다. 미리 출국금지를 시켜 자진출석하도록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수서경찰서는 피해자 고소가 아닌 첩보에 의한 ‘인지수사’에 착수해 이씨 일당을 구속했다. 이씨에게 동종 전과가 있기에 가능한 일로 보였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입는 줄도 모르고 이씨에게 선뜻 투자금을 안겼다.            

이씨를 비롯한 정모씨와 팀장급 3명 등 총 5명이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유사수신 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남의 돈으로 호사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재판과정에서 피해 정도, 죄질 등이 면밀하게 검토돼야겠지만 중형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최근 우리 법원에선 블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무차별적인 불법영업행위에 대해 엄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큰 피해가 확인된다면 사회에 나와서 다시 이런 일을 할 수 없도록 중형이 선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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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