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어화>로 본 대한민국 기생 이야기

기녀는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영화 <해어화>가 개봉하면서 기생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기생은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다. 음주가무뿐아니라 시·문예에 능통한 기생은 조선시대 문화를 관통하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생의 삶이 현재에도 재조명되는 이유는 단순히 유희의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미술, 문학, 무용 등 다양한 가치를 후세에 남겼기 때문이다. 

영화 <해어화>는 지난 13일 개봉했다. 한효주, 유연석 천우희 주연의 <해어화>는 일제강점기였던 1943년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해어화는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란 뜻으로 기생을 의미한다. 이 말은 당나라 현종이 비빈과 궁녀들을 거느리고 연꽃을 구경하다가 양귀비를 가리켜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이 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해어지화(解語之花)’에서 비롯됐다.

시·문예 능통
작부와는 달라

기생은 ‘잔치나 술자리에 나가 노래·춤 등으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여자’로 규정할 수 있다. 기생의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으나 고대 부족사회의 무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사제였던 무녀가 제정이 분리되면서 기생과 비슷한 신분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정태섭 동국대 교수의 <성 역사와 문화>에 따르면 기생이라는 직종은 신라 24대 진흥왕 때 여자 무당이 유녀(遊女)가 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반면에 다산 정약용 선생과 성호 이익 선생은 기생이고려시대 생겼다고 본다. 고려 초에 팔관회와 연등회 등의 행사에 필요한 여성을 공급하기 위해 고려여약이 제정됐는데 이 고려여악이 기생의 원조라고 기생 연구가들은 주장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기생을 일종의 제도로 정착시켜 국가가 직접 기생들을 관리, 감독했다. 특히 ‘기생’의 한자어는 조선시대에 와서야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 따르면 기생은 관기로써, 관가에 등록된 기생만이 기생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기생은 교양 있는 지식인들로 노래, 춤, 악기, 서화에 능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장악원에 들어가 몇 년에 걸쳐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이러한 교육은 일정 나이가 지나거나 출산 등의 이유로 은퇴한 퇴기들이 주로 맡았다. 기생은 대개 소녀 시절부터 교육을 받고, 15세가 되면 성년식을 치러 본격적인 기생의 업무에 종사하게 됐다.

기생은 보통 정년이 50세로, 20세가 넘어도 활동하는 기생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20대 중반만 되면 ‘노기’로 취급받았다. 이들은 조선시대에 법적 신분으로는 양민이었지만, 직업의 특성상 생활은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을 향유했고 사회적으로는 천민으로 대우받았다.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기생으로는 황진이를 들 수 있다. 황진이는 중종 6년(1511)에 태어나 30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것으로 추정된다. 황진이는 19세기 풍속화를 그린 화가 신윤복에 의해 ‘풍속화 기생 이미지’를 갖추게 된다.

신라 진흥왕 때 무녀서 비롯됐다?
고려 행사에 공급된 여성이 원조?

기생은 조선시대에서 남성과 공식적으로 관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성이었는데 기생 출신인 황진이는 규방출신의 감동이나 어우동과 달리 음란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있었다. 시와 음악에 능했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황진이는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이름을 떨쳤다.조선 말기에 기생은 일패, 이패, 삼패, 세 부류로 나뉘는데 그 중 일패 기생은 관에 소속된 관기로 양반기생으로 불렸다.

이들은 임금 앞에서 노래, 춤을 하는 기생으로 예의범절 수준이 높고 남편이 있었기에 몸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 등이 일패 기생을 대표한다. 이패 기생은 관아나 재상집에 출입했고 암암리에 몸을 파는 밀매음을 하기도 했다. 삼패 기생은 몸을 파는 유녀를 뜻했다.

조선시대부터 천한 백성으로 분류돼 독특한 신분구조를 형성했던 기생들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사노비제가 폐지돼 외형적으로는 신분해체에 따른 천민을 면하지만 여전히 신분상의 차별을 극복하지는 못했것으로 알려진다.


1900년대 초 신문이나 잡지기사, 총독부의 공식문건 등에 나타난 기생에 대한 명명과 분류를 살펴보면 기존 여악의 일원인 관기가 중심축이었던 기생 집단이 창기 또는 매춘부로 불리게 된다. 조선시대까지 예악을 담당하고 사대부의 여흥을 주도한 기생은 신분해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전통 가무악을 전승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식민지 공창정책 하의 창기와 비슷하게 통제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또한 기생들은 근대 자본주의에 접어들면서 상품화 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팔도에서 꼽힌 향기(鄕妓)들 중 평양기생이 가장 많았는데 평양기생들 중 일부는 서울에서 기업(妓業)을 차리기도 했다. 이런 향기와 관기 출신들이 모여 1909년 처음으로 만든 기생조합이 한성기생조합소다.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설립된 조선장악전습소의 학감 하규일이 만든 기생조합은 다동조합이다. 다동 조합은 훗날 조선권번으로 개칭된다.

이 시대에 권번을 빼고는 기생을 논하기 어렵다. <한겨레음악대사전>에 따르면 권번은 직업적인 기생을 길러내던 교육기관이자 기생들이 적을 두고 활동하던 기생조합이다. 당시 기생의 직업은 조선총독부 허가제였기 때문에 모든 기생은 권번에 적을 두어야만 기생활동을 할 수 있었다. 권번은 교육과정의 기생을 관장하고, 수료한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관리감독함은 물론이고 손님에게 받은 화대도 관리했다.

권번에 들어오는 여성들은 남들의 추천을 받아오는 이가 제일 많았고, 일부는 본인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권번에서 예의범절과 노래와 춤을 배우고 지체높은 양반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치려 했던 여성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권번 명기는 서도기생과 남도기생으로 나뉜다. 남도 출신은 멋을 잘내기로 소문났고, 서도기생은 애교가 많기로 유명했다. 기생의 학습과목은 시조, 가곡, 검무, 가야금, 거문고, 양금, 한문, 시문, 사군자, 일어 ,독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전국구 명월관
구한말부터 유명

조선 후기에 평양에서 이름을 떨친 기생중에 장연홍이라는 기생이 있다. 장연홍은 1911년 평양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5세 때 부친이 사망하자 가정형편으로 인해 14세 때 평양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됐다. 기생이 된 장연홍은 수려한 외모와 춤, 노래, 모델 활동 등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후 상해로 유학을 떠난 뒤의 행적은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1930년대에는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현매홍과 김옥엽이 서울로 상경해 각각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에 적을 두며 활동했다.

현매홍은 시조, 가곡, 가사에 능했고 김옥엽은 궁중무용과 서도잡가, 경기잡가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1923년 일제 강점기 강명화 자살 사건은 당대를 떠들썩하게했다. 강명화와 그녀의 연인 장병천이 집안의 결혼 반대에 부딪쳐 자살한 사건이다. 장병천과 함께 온양온천으로 여행을 떠난 강명화는 1923년 6월 쥐약을 먹고 자살한다.
 

강명화의 시신은 경성부로 옮겨져 명월관과 여타 기생들의 애도 속에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식장에서 울다 지쳐 실성한 장병천은 단식에 돌입했고, 강명화와 함께 살던 집인 경성부 중구 종로방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하다 같은 해 10월 자살했다.

이 사건은 전국 각처로 퍼져나갔고 일본, 중국에까지 소문이 확산됐다. 사후 1924년 하야가와 일본인 영화감독은 종로구 집, 경성부의 명월관, 강명화의 고향 마을 등을 직접 답사한 뒤 영화를 제작했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기생 문명옥을 캐스팅해 영화 <비련의 곡>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당시 조선과 일본, 중국에서 화제가 돼 많은 관객이 몰렸고 1925년에는 익명의 작가에 의해 <강명화의 죽음>이란 소설로 탄생하게 됐다.

신현구 중앙대 교수의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에 따르면 초창기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기생 출신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3년 ‘월화의 맹세’라는 영화에 출연한 이월화는 여장 배우가 아닌 여자로서 카메라 앞에 선 최초의 배우였다. 또한 기생 출신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은 여배우계를 주름잡았다.

신 교수는 언론을 통해 “당시 기생들은 당당한 엔터테이너로서 여성예술사와 문화사회사 등을 새롭게 구축한 선구자였다”면서 “그 무렵 기생은 한쪽에서 보면 봉건적인 유물로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실제로는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스타로 대우받았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역대 최고는 황진이
최고 미녀는 장연홍


명월관은 1900년대 기생들이 활약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명월관은 청풍명월에서 따온 이름으로 명사들을 초청해 대접한 요릿집이다. 안순환은 명월관을 개업해 궁중요리를 일반인에게 공개했고, 궁중 나인이 담근 술을 팔아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융희 3년(1909)에 관기제도가 폐지됨과 동시에 지방과 궁중의 각종 기생들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명월관은 많은 기생 중에서도 어전에 나가 춤과 노래를 불렀던 궁중기생이나 인물, 성품 및 재주가 뛰어난 명기들이 많이 모여들어 일류 사교장이 됐다.

1910년대 초반에는 조선 왕조의 왕족들, 대한제국의 고관, 친일파들이 이곳을 찾았다. 1910년 후반에는 망국대부의 자제들과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주로 명월관 찾았는데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하에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울분을 여기에서 푼 것으로 알려진다.

1920년대 초반에는 일본 유학생들과 상해의 애국지사들이 찾았다. 또한 1919년 3·1운동은 기생들이 사회를 보는 눈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을 계기로 여성운동과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기생인 사상기생이 생겨나게 됐다.

이들은 1919년 3월19일 진주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10일 뒤에는 수원 권번 기생 30여명이 수원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기도 했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김향화는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기도했다. 1920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언론인과 문인들이 명월관을 찾았다.

이때 기생들은 일본 유학을 가거나 근대식 학업으로 신여성으로 살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기생폐업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1930년대에는 사업가들이 주로 찾았는데 이때부터는 서화와 기예를 익히고 예의범절을 배워 조신하게 행동하던 명기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1940년대 후반은 미군들이 주로 찾아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는데 이를 마지막으로 기생과 명월관은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중·일 기생
3국의 다른 인식

송지성·김세이 한양대 교수의 <한·일 기녀의 문화 이미지 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게이샤는 일본에서 1688∼1704년경에 생긴 제도다. 게이샤는 유녀가 갖추지 못한 예능을 도와주는 게이샤와 춤을 추는 것을 구실로 손님에게 몸을 파는 게이샤 두 종류로 나뉜다.

이들은 질 높은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일본 전통예술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전에 게이샤는 남자였지만 18세기 들어 여자로 바뀌었고, 소녀들은 사춘기에 이르기 전에 예능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게이샤는 ‘아름다운 사람’ ‘예술로 사는 사람’ ‘예술을 행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음악, 서예, 다도, 시, 대화 그리고 샤미센이라 부르는 세 종류의 악기 연주를 익힌다.

전문적 게이샤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5년의 수련과정을 거치며 견습 게이샤는 마이코라고 부른다. 게이샤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떠올리는 흰 화장과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기모노 차림은 마이코의 모습이다. 완전한 게이샤는 단순한 색상의 기모노를 입고 화장도 특별한 때에만 하얗게 칠한다. 근대에 와서 계이샤는예능 기량과 관계없이 성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여성이 되었고 술자리에 나가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기생은 서비스 유형과 방식, 기생업의 경영관리 등에서 다원화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미모가 뛰어나고 가무만 제공하는 예기, 몸을 파는 것을 주로 업으로 하는 색기, 가무와 여색, 성적 서비스를 대상으로 하는 기녀로 나누어진다. 또한 중국의 많은 기생들이 문학적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 고대 대부분 시대의 시, 사의 정수는 모두 기녀가 차지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ㆍ일 기녀의 문화 이미지 분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국의 성별에 따른 기생에 대한 관점은 상이하다. 우리나라 남성은 기생을 유희의 대상, 창기로 본 반면 일본과 중국은 각각 예술가와 점유,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여성에게는 우리나라의 경우 시기, 질투,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일본은 예술가로 봤다는 분석이다.

현대판 기생집
강남 요정 영업

1970∼1980년대 정·재계 인사들의 비밀회합 장소로 인기를 끌었던 요정은 현대식 유흥주점이 늘면서 쇠퇴를 거듭했다. 현재는 강남 역삼동 등에 소수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요정은 한 사람 당 35만∼40만원 가량을 받고 식사와 함께 3∼4시간의 유흥을 제공한다.

20∼30여종의 코스 요리가 제공돼 한복을 입은 도우미들이 춤과 노래, 가야금 연주 등을 선보이는 이른바 현대판 기생이다. 이들의 성접대는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일부 업소는 한옥 등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외국인 바이어를 상대로 공격적인 영업을 벌이기도 한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영화 단골소재 기생 영화는?

2007년 개봉한 <황진이>는 송혜교, 유지태 주연의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양반가의 딸로 자란 진이(송혜교)가 출생이 밝혀지자 ‘기생’의 신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사대부조차 동경하는 최고의 연인이 된 ‘진이’ 곁에 있던 놈이(유지태)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2002년에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도 기생이 등장한다. 185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장승업이 몰락한 양반집안의 딸인 기생 매향에게 매료되는 내용를 다루고 있다. 2006년 미국에서 개봉한 <게이샤의 추억>또한 일본 기생 게이샤를 다룬 영화다. 1929년 일본의 작은 어촌을 배경으로 가난 때문에 게이샤가 되는 내용을 다룬다. 이어 안무, 음악, 미술, 화법 등 다방면에 걸친 혹독한 교육을 받고 최고의 게이샤로 사교계에 데뷔하게 된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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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