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5.01 07:11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도 5개월이 지났다. 위헌이자 위법이었기에 내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전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과 간첩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유형의 계엄을 선포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전두환보다 위험했고 무모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의 내란 수사 기록에는 그가 영구 집권을 꿈꾼 정황이 확인됐다. “규모로만 봤을 때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군 전문가들과 법조인들이 바라본 12·3 내란 사태에 대한 평가다. 재판에 넘겨진 군 장성들의 진술조서에도 이들의 규모와 체계가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영구 집권을 계획했던 걸까? 경고성이자 평화적 계엄이었다는 주장은 무색하게만 들린다. 경고성 계엄? 대규모 준비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사태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전두환씨는 당시 반란을 통해 1980년 5·17 비상계엄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회의원들을 협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으나 장교 3명, 병사 95명에 불과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등에 투입한 경찰과 군인 수는 각각 3144명, 1605명이다. 군 1605명을 부대별로 나눠보면 육군 특수전사령부 1109명, 수도방위사령부 282명, 국군방첩사령부 164명, 국군정보사령부 약 40명, 국방부 조사본부 10명이다. 전씨의 반란과 비교하면 약 16배가 더 투입됐다. 군사력에 의존해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무너뜨린 행위는 같으나 규모로 보면 국회의원들을 겁박하는 수준을 넘어 국회를 점령하거나 통제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목적이 뚜렷한 친위 쿠데타였다는 평가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내란 수사 기록을 보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계엄 열흘 전 (윤 전 대통령이) ‘10명이 넘는 관료들을 탄핵하는데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냐’고 말씀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외에도 김 전 장관에게 ▲명태균씨 공천 개입 의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재판·수사 관련 판·검사 탄핵 가능성 등을 언급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도 “윤 전 대통령이 항상 헌법상 비상조치를 해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했고 평소에도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른바 ‘충암파’로 불리던 최측근들에게 자신의 의견에 대해 반대하거나 정책에 태클을 거는 이들을 ‘반국가 세력’이자 ‘간첩’이라고 규정했다. 여 전 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해주, 조국, 양정철, 이학영, 김민석,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박찬대, 권순일 등이 체포 명단에 있다. 윤 전 대통령이 평소에도 부정적으로 말했던 사람들이다.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정치 활동 금지 포고령 위반자들에 대해 전시 합동수사본부서 체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1년 전부터 “특단의 대책” 사실상 계엄 언급 군 장성 대부분 우려 “성공 가능성 낮다” 판단 국회에 투입된 군이 위에 언급된 이들을 체포했다면 비상계엄 해제는 불가능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 장악에 성공했다면 건설적 논의 없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며 자신의 불법적 행위를 합리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실 출신 한 여권 인사는 “임기 초부터 여소야대 형국이다 보니 온갖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려 윤 전 대통령이 ‘격노’를 자주 했다. 술도 자주 마셨고 날이 갈수록 자신에게 직언하는 참모를 멀리했다. 항상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합법적 수단을 통해 권력을 소유하던 국가 지도자가 입법부를 해체하거나 헌법을 무효화하려 했다면 쿠데타다. 체제 전복 행위로 이어지고 대부분 전체주의적 독재자가 된다. 윤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여 전 사령관은 계엄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여 전 사령관은 검찰에 “계엄 당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연락해서 ‘오늘 뭔 일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국무위원, 안보실장 등의 안전장치가 있는데 설마 하겠냐”고 했다. 또 여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정치적 문제를 왜 군사적인 계엄령으로 하느냐. 장병들이 초기에는 따를 수 있지만, 오래 갈 수 있겠느냐. 지금 대한민국 군대는 예전과 같지 않다. 휴대폰, SNS 등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군 간부들은 윤 전 대통령의 국회 무력화에 대해 여러 차례 증언했다. 국회 무력화 시도 수차례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 수사보고서에는 특전사령부 소속 김형기 1특전대대장이 이상현 여단장으로부터 “‘담을 넘어가 국회 본관으로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 걔들이(국회의원들이) 문 잠그고, 의결(계엄 해제 의결)을 하려고 한다’ 대통령님이 ‘(본회의장) 문짝 부숴서라도 다 끄집어내라고 한다’고 했다”고 적시됐다. 군인들이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한 정황도 확인된다. 곽종근 전 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이동한 김현태 특전사령부 대령은 “케이블타이는 어떤 목적으로 갖고 간 것이냐”는 특수본 검사의 질문에 “특전사의 경우 테러 진압 시 적을 포박하기 위한 용도로 케이블타이를 쓴다. 곽 전 사령관이 ‘들어가서 끌어낼 수 있겠느냐. 진입이 안 되냐. 150명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김창학 수방사 군사경찰단장도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이 ‘국회 담을 넘어 들어가 게이트를 차단한 후 불응하는 사람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우리 부대 수사관 5명, 군사경찰 5명, 경찰 5명 등 타 인원과 25명으로 팀을 꾸려라. 이송 및 구금 명단은 14명이고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해주, 조국, 양경수, 양정철, 이학영, 김민석,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박찬대, 정청래 등에 대해서는 인수받아 호송 후 구금시설로 이동한다”고 지시받았다. 김 전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이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에게 집중하고 위치추적과 구금까지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국회가 내란 사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 계엄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으나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사령관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아직도 못 갔냐, 뭐 하고 있냐,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발포 명령’까지 내린 것이다. 이후 “국회의원이 190명 들어왔다는데 실제로 190명이 들어왔다는 건 확인도 안 되는 거고” “그러니까 내가 계엄 선포되기 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다그쳤다. 음모론 배포 국민적 의혹 이 전 사령관의 얘기를 전해 들은 군 간부는 “‘대통령이 진짜 갈 데까지 갔구나. 돌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심취했다는 건 검찰 수사 기록서도 확인된다. 자신의 참모들에게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의 얘기를 가장 귀 기울여 들은 건 김 전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매해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고, 증거자료들이 제출되거나 부정선거에 대한 명확한 스모킹건이 될 수 있는 자료도 나왔음에도 조사도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적 의혹이 있던 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특수본 검사가 “부정선거에 대한 증거자료가 무엇이고 의혹의 출처는 어디냐”고 묻자 그는 “선거인보다 투표인이 더 많은 선거구도 있었고 직인이 안 된 투표용지, 투표함 바꿔치기, 해킹, 전산 조작 등의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부방대(부정선거방지대책본부)에 많이 나와 있다. 대통령께서 가장 우려하셨던 건 국정원의 보고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진짜 서버도 아닌 모형 서버임에도 보안시스템이 취약해 아무나 해킹해 선거 조작을 할 수 있다는 수준이라고 보고했고 실제 해커들을 투입해 서버에 들어가 투·개표 용지 바꿔치기, 개표 과정 개입 등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다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국회 입법권 무력화 노린 후 개헌 계획? ‘노상원 수첩’ 검찰 수사 진척 오리무중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2021년 3월부터 2년간 선관위에 대한 북한의 해킹 시도가 8회 있었고 국정원 3차장 산하서 보완 조치를 해달라고 선관위에 통보한 바 있다. 2023년 6월에는 선관위 요청으로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 선관위 등이 합동 점검을 실시했는데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장관과 윤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운 인물이 있다. 내란 기획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다. 노 전 사령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수첩에는 극단적 표현이 담겨있다. ‘1차 수집’이라는 제목으로 국회가 있는 여의도서 30~50명, 언론 쪽은 100~200 민노총, 전교조, 민변, 어용 판사와 함께 ‘500여명 수집’이라고 적시됐다. 노 전 사령관은 ‘수거 대상 처리 방법 연구’와 ‘수거 후 호송 시 대책’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인물마다 등급을 매겨 ‘특별 수사와 재판소로 사형, 무기형을 받게 한다’고 적고, ‘수거 A급 처리 방안’으로 ‘연평도 이송’이라고 적었다. 특히 A급으로 분류한 인물들을 가스·폭파·침몰·격침 등을 통해 사살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단어를 강조했다. 그의 수첩에 적힌 ‘백령도 작전’ 내용과 국지전 유도 등 외환죄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은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이후의 계획을 적기도 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재선’을 넘어 ‘3선’이라고 적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선거제도를 연구해야 한다고도 썼다. 검찰은 백령도 작전이 수거 대상을 체포한 뒤 배에 태워 백령도로 보내는 과정서 사살한다는 취지의 내용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수첩은 김 전 장관과 논의했던 것들”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노상원과 김용현이 논의한 내용은 윤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보통 김용현이 질문하고 노상원이 답하는 식”이라며 “대화를 나눈 내용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수첩에 적는 습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선, 3선… 독재자 발상 군 출신의 한 야권 의원은 “수년 전부터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대화를 배제하고 협치를 실종시켰다”며 “민주당을 몰아낸 이후 개헌을 주도해 임기 연장을 구상했다면 영구적으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독재자와 같은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 특수본은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을 넘겨받았으나 여전히 외환죄와 관련된 수사에는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의 재판에도, 검찰의 공소장에도 그의 수첩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권의 ‘내란 특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hounder@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전부터 주목받았던 무속인 건진법사를 둘러싼 의혹이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지역 시장 공천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범죄 의혹은 의원직은 물론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을 가리지 않고 진행됐다.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에 대한 검찰 조사에 속도가 붙고 있다. 검찰이 전씨에게 금품을 줬다는 진술과 더불어 현금 뭉치, 대량의 명함을 확보하면서 이른바 ‘건진 게이트’가 슬슬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탁 명목 금품 수수? 전씨에 대한 수사는 지난 1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을 미끼로 거액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시작됐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지난 2018년 1월 자신의 법당서 사업가 이모씨가 데려온 영천시장 선거 출마 예정자 정모씨와 그의 조력자 A씨를 만났다. 현재 이씨는 가상자산 퀸비코인의 개발업체 운영자로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횡령)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17년에 다른 사람 소개로 전씨와 알게 된 사이라고 한다. 전씨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이하 가상자산범죄합수단)서 이씨 혐의를 수사하다가 전씨의 혐의를 포착해 수사 대상이 됐다. 당시 정씨 등이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자 전씨는 ‘국회의원 B씨를 통해 공천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그 자리서 전씨가 B에게 전화한다고 하면서 통화 상대방에게 ‘정씨 공천을 도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어 하루 뒤 A씨가 전씨의 법당서 1억원을 전씨에게 건넸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그 자리에도 이씨가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이틀을 앞둔 지난 1월10일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전씨 공소장에는 검찰이 아직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 법조계에서는 재판 과정과 추가 수사를 통해 전말이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소장에는 전씨가 정씨에게 ‘국회의원 B씨를 통해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 ‘B씨에게 전화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전씨가 실제로 통화한 사람에 대해 공소장에는 ‘상대방’이라고만 돼있다.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전씨의 통화 기록을 검찰이 확인했다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공소장에 상대방이라고만 했으니 실제로 B씨와 통화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 대기업 임원, 법조인, 검·경 인사… 돈 받고 ‘용산’ 연결고리 브로커 역할 의심 또 전씨가 정씨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의 행방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검찰 조사 내용대로 전씨가 국회의원 B씨에게 공천 청탁을 하고 돈을 받았다면 이후 돈 흐름도 밝혀져야 한다. 검찰 수사 과정에 전씨는 B씨에게 돈을 건넨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도 전씨에게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법조인은 “불법 자금 수사는 돈의 출발점부터 종착점까지 밝혀내는 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전씨에게 다른 혐의가 있는지의 여부도 밝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씨가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친분을 과시하며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 등이 있다. 검찰 출신인 한 변호사는 “혐의를 입증하기 힘든 큰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입증이 상대적으로 쉬운 사건을 먼저 수사해 피의자를 압박하는 경우가 있다”고 제언했다. 검찰은 이 같은 지적을 의식했는지 전씨의 지방선거 공천 헌금 의혹을 발판 삼아 전씨의 모든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검찰은 전씨가 받은 금품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통일교) 측 관계자의 휴대전화서 확보된 문자메시지가 시발점이 됐다. 전씨가 당시 통일교 본부장 윤모씨와 나눈 문자 내용에는 “큰 그림 함께 만들어보셔요. 그리고 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두고 산업은행 등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의견 교환하겠습니다” 등이 포함됐다. 윤씨가 ‘산업은행 PF’를 언급한 것은 산은의 부산 이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5월 윤석열정부 출범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은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국가균형 발전과 글로벌 금융 중심지 육성을 도모한다는 취지에 따라 대통령실과 국토교통부 등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왔다. 공소 의문 수사 확대 그러나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를 기점으로 제동이 걸렸고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현재는 사실상 좌초 상태다. 이 밖에 전씨는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과의 만남도 주선했다. 그는 먼저 2022년 12월22일 오후 5시쯤 향후 예정된 윤 의원, 대한체육회장과의 점심 자리에 윤씨를 초대했다. 윤씨는 이를 사양한 후 윤 의원을 따로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로 윤씨는 2022년 12월27일 점심 자리에 윤 의원도 초대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윤 의원에게 말해 보겠다”고 답한 전씨는 16분 만에 “윤 의원 참석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상황서 윤씨는 전씨에게 고문료 명목의 돈을 건넸다. 전씨는 이에 대해 “(내 인맥을 이용해)대통령 내외에게 접근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었다”며 “윤씨가 이쪽(윤정부) 정권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힘없는 나를 잘못 골랐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씨는 윤 전 대통령 부부 등을 윤씨에게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12월 윤씨의 사무실과 자택, 전씨의 법당과 거주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비슷한 시기 진행된 서울 강남구 소재 전씨의 은신처 압수수색에서는 현금 1억6500만원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중 5000만원어치 신권은 한국은행이 적힌 비닐로 밀봉돼있었으며, 비닐에는 기기 번호, 담당자, 책임자, 일련번호와 함께 윤 전 대통령 취임 3일 후인 2022년5월13일이란 날짜가 찍혀있었다. 전씨는 검찰 조사 당시 “(이를 포함해 기도 명목으로)돈을 사람들이 뭉텅이로 갖다준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통 한국은행 거래는 신권을 받을 때 한다”며 “이번처럼 ‘사용권’이라고 기재되고 비닐로 밀봉된 돈이 은행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 이례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명함만 수백장 한국은행 측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에 “발행일자, 책임자, 일련번호로는 출처를 파악할 수 없고, 어느 금융기관으로 나간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검찰은 해당 뭉칫돈의 출처를 추적 중이다. 또 전씨의 계좌 추적 과정서 수상한 자금흐름을 포착하기도 했다. 10년간 직업이 없던 전씨 아내 김모씨 계좌에 거액의 돈이 입금된 것이다. 지난 2017년 7월부터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8년까지 김 전 여사 명의 계좌로 입금된 수표와 현금은 모두 6억4000만원으로, 이 가운데 1000만원 이상의 현금이 입금된 경우는 모두 13차례였다. 총 4억7000여만원에 달했고 한번에 1억6000만원짜리 수표가 입금되기도 했다. 또 검찰은 전씨가 통일교 간부로부터 김건희 전 여사의 선물 목적으로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금품을 받은 정황도 수사하고 있다. 가상자산범죄합수단은 지난 20일 전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전씨 휴대전화인 이른바 ‘법사폰’ 포렌식 과정서 윤씨로부터 ‘김 여사 선물’이라며 고가 목걸이를 받은 정황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조사에서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윤씨는 앞서 통일교 내부 행사에서 윤 전 대통령을 2022년 3월22일 만나 1시간 독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씨는 이에 대해 “윤씨가 도움을 주겠다고 해 500만원씩 두 차례 받았다. 구체적인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고문료일 뿐, (윤씨가) 대통령 내외에 접근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씨가 2022년 대통령선거 때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본부 조직인 ‘네트워크본부’ 고문 활동 전후로 공천과 인사를 청탁받은 정황도 조사하고 있다. 청탁 의혹을 받는 윤 의원은 지난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씨의 공천 요구나 인사 청탁을 들어줄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전씨가 윤 의원과의 친분을 이용해 돈을 받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씨는 ‘기도비’ 명목으로 돈을 받았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윤 의원도 “전씨가 공천 장사를 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해 왔다. 윤정부 막후 실세 의혹…국정에도 개입? 통일교 ‘김건희 선물’ 다이아 목걸이 포착 하지만 전씨와 윤 의원의 교류 정황이 나오고 있다. 의혹은 전씨의 인사 청탁에 그치지 않는다. 윤 의원이 2021년 12월15일 네트워크본부와 관련한 부정적 내용을 전씨에게 공유한 후 “권성동 의원과 제가 완전히 빠지는 게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요”라고 하는 등 전씨에게 조언을 구하는 문자 등이 다량 확인됐다. 두 사람의 인연을 추정케 할 만한 자료도 검찰 수사 과정서 확보됐다. 전씨 일가의 광산 사업과 관련한 자료다. 전씨는 2012년부터 광산 사업을 추진했다. 배우자 명의로 경기도 가평 소재 산에 대한 광산 채굴권을 따내는 게 골자였다. 다만 전씨 측은 2012~2017년 경기도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해 전씨의 ‘광산 채굴권’ 관련 서류서 윤 의원이 전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시지 인쇄물이 발견됐다. “12월 초 광업등록사무소의 공문을 받고 청문 절차에 따라 소명하면 1년 추가 유예하는 것으로 사무소와 맞춰놨다”는 내용이다. 이는 채굴권 첫 등록 후 6년이 지난 시점인 2017년 11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전씨 측의 광산 사업은 경기도가 2018년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실패했다. 그러나 광업등록사무소는 2017년 전씨 배우자 명의의 개인사업자에 대해 2019년까지 유예해줬다. 검찰이 확보한 내용대로 ‘1년 추가 유예’가 된 셈이다. 이에 대해 광업등록사무소 측은 “특정인이 산자부와 말을 맞출 수는 없는 구조”라고 전제하면서도 “그간 담당자가 바뀌어 당시 상황을 설명해 드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앞서 전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던 중 “윤 의원이 과거 전씨의 석산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는 게 보좌진의 설명”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광산 채굴과 관련한 문건(2017년)과 공천 헌금 사건(2018년) 당시 윤 의원은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주요 당직을 맡고 있었다. 윤 의원 측은 이 역시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윤 의원은 여러 의혹에 대해 수사 의뢰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를 둘러싼 의문은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도 그럴 것이 검찰이 전씨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서 명함 수백여장이 모여있는 ‘명함 묶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법당과 주거지서 각각 확보한 명함 묶음은 그간 전씨를 찾아왔던 전·현직 대기업 임원, 국회의원 등 정치권 관계자, 검사 등 법조인, 경찰 간부 등의 것으로 알려졌다. “모르는 사람 없어” 일부 대기업 임원들은 윤석열정부 들어 회장 연임을 청탁하기 위해 전씨를 직접 찾았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대기업 대표도 전씨 법당을 자주 찾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씨 법당에는 인사를 앞두고 검찰 간부와 지방경찰청 총경 등도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검찰 조사 과정서 “대기업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검찰은 전씨의 휴대폰인 이른바 ‘법사폰’과 압수한 명함을 대조해 관련자 수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