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5)입원

일본정부와 엮어 외교분쟁 노리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범행에 사용될 권총에 대해서입니다.”

“권총 구하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지요. 북조선에 부탁해도 되는 일이고.”

“물론 북조선이나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총을 반드시 일본 정부와 연계시켜야 합니다. 아울러 두 자루를 부탁합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일본을 확실하게 엮어 넣으려 합니다.”

주선이 의미를 새기며 잔을 비워냈다.

“그런데 권총을 구하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한국으로 반입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두 자루라니요.”

“한국으로의 반입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한 자루는 이곳에서 문석원이 사격연습 하는데 그리고 한 자루는 실제 사건에 사용하려 합니다.”

“그런데 정 팀장께서 가지고 입국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결국 제가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정 팀장께서….”

“차 사장께서 제게 역할을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주선이 잠시 의미를 새기고는 미소를 보냈다.

“정 팀장의 말씀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주선이 말하다 말고 동일을 주시하며 뜸을 들였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들은 바로는 이 모두 정 팀장 개인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참으로 기발한 발상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허허, 그건 그렇다 하고. 정 팀장께서는 어떻게 문석원이 고도 난시인 점을 알아채셨습니까?” 

“고도 난시라고요?”

차주선이 이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까?”

차주선의 말소리가 은근히 올라갔다.

“외람되지만 금시초문입니다.”

“아마도 하늘이 정 팀장을 아니 우리 대한민국을 도와주는 모양입니다. 그 친구 안경 벗으면 바로 앞 사람도 식별 못할 정도라 합니다.”

정동일이 가볍게 혀를 차자 차주선이 미소를 보냈다. 2월 초 차주선이 이호룡을 도쿄 조총련 본부로 호출했다. 물론 문석원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관련해서였다. 호룡이 도착하자 의장실에서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차주선이 호룡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박정희 암살과 관련하여 자네 오기 전에 의장단과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했네.”

“무슨 말씀들을 나누셨는지요.”

“결론은 항상 똑같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지.”

차주선이 힘주어 이야기하자 이호룡이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다.

“무슨 문제 있는가?”

“열의가 식은 듯 보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전처럼 강한 의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하겠다고 물러선다는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여하튼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거사일…사격연습 돌입
권총 두 자루 밀매…거대한 음모


이번에는 차주선이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다.

“송구합니다, 위원님.”


“자네가 송구할 일이 아니지. 여하튼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삼일절 행사에는 투입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로고.”

“삼일절 행사요?”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외부에 확실하게 노출되는 날이 남조선 국경일 외에 더 있겠는가.”

“그야 지당한 말씀입니다만, 아무래도 삼일절에는….”

“그렇다면.”

차주선이 말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잠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면 결국 광복절을 디데이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로고.”

“그러면 가능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부장.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이번 건에 우리 조총련은 물론 김일성 수령의 관심도 지대하다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전 의장단과 대화를 나누었다네. 이 일이 성사되기까지 내 소관 하에 일처리 하기로 말일세.”

“하면, 저는.”

“지금처럼 지속해주면 될 듯하네. 그리고 거사에 앞서 먼저 문석원에게 확고한 사상과 자긍심을 심어주어야겠네. 지금처럼 그저 젊은이의 객기만으로 접근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네.”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정신교육을 강화토록 하세.”

호룡이 이외의 방안인지 그저 차주선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종의 세뇌교육일세.”

“북조선으로 보냅니까 아니면 만경봉호입니까?”

“그 방법은 안 되네. 그런 경우 일본 내에 있는 남조선 기관 애들에게 포착될 우려가 있네. 그러니 병을 위장하여 병원에 입원시키도록 하게.”

“병원이오?”

“이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아카후토 병원에 입원시키도록 하고 수시로 이곳에 불러들여 정신교육을 강화토록 하세.”

“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총련에서 개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안의 중요성에 대해 방금 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호룡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자네는 지금 바로 오사카로 돌아가서 이러한 사실을 문 군에게 전하게.”

차주선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봉투를 꺼내들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생계 보조비로 쓰라 하게. 그리고 병원장에게는 내가 별도로 이야기할 터이니 문 군으로 하여금 입원하면서 원장을 찾으라 이르게. 물론 입원할 때 본명을 써서는 안 되네.”

“무슨 사유라도 있습니까?”

“만사 조심해서 처리하자는 의미일세.”

이호룡이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주선에게 인사하고 조총련 본부를 벗어난 이호룡이 곧바로 오사카 이코노구 문석원의 집을 향했다. 중간에 슬쩍 봉투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무려 30만 엔이 들어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던 호룡이 그 중에서 10만 엔을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20만 엔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호룡이 석원의 집에 이르자 마침 홀로 집안을 지키고 있었다.

“집 사람은 어디 갔는가?”

호룡이 집안에 들어서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저 혼자 있습니다.”

호룡의 방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다는 듯 석원이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본부에서 지령이 하달되었네.”

호룡이 앉자마자 봉투를 꺼내 석원에게 건넸다. 그 자리에서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20만 엔이란 적지 않은 금액을 살피며 다시 넣었다.

“지령이란 무엇입니까?”

“이제 구체적으로 거사에 임하자는 이야기로 먼저 자네에 대한 사상 교육이 실시될 것이네.”

석원의 표정이 마뜩치 않게 변해갔다. 호룡이 건넨 봉투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작용했을지도 몰랐다.

“사상교육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말 그대로 자네의 영웅적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자네의 마음을 확고하게 재무장하는 일을 의미하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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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