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절 터를 찾아서... ②충주시 미륵리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전설 품은 미륵대원지

폐사지는 초분(草墳)과 비슷하다. 살이 사라진 자리에 뼈만 남듯, 건물이 무너진 자리에는 주춧돌과 석탑만 남는다. 폐허에 덩그러니 남은 돌덩이가 눈부시게 빛난다. 삼국이 치열하게 싸운 중원 땅, 지금의 충주에는 걸출한 절터 두 곳이 있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 아래 자리 잡았다. 북쪽 월악산을 바라보는 석불은 마의태자와 얽힌 애잔한 이야기가 내려온다. 청룡사지에는 보각국사 혼수의 부도가 있는데, 돌에 새긴 섬세한 조각이 경이롭다.

왕래하던 길가에 위치한 계단식 미륵대원지
백두대간 하늘이 열리는 풍경 갖춘 하늘재

충주 미륵대원지는 도로 옆에 자리한다. 절이 산에 있지 않고 길가에 자리한 셈이다. 그 까닭은 길에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길은 어디일까? 문헌에 처음 기록된 길은 신라 아달라왕이 156년에 연 계립령(525m), 지금의 하늘재다. 하늘재는 미륵대원지에서 곧바로 연결된다. 미륵대원지 바로 위에는 고려시대 원(院) 터가 자리한다. 따라서 미륵대원은 당시 사람들이 왕래하던 길가에 세운 것이다.

미륵대원지는 계단식 구조인데,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완만해서 평지처럼 느껴진다. 한 칸 오르면 당간지주가 누워 있고, 또 한 칸 오르면 거대한 돌 거북(귀부)이 버티고 있다. 돌 거북의 생김새가 순박하다. 

두어 칸 위에 5층석탑이 우뚝하며, 일직선으로 석등과 석불이 자리한다.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출입을 통제(2017년 1월 완공 예정)한다. 석불입상 뒤로 후광처럼 돌을 쌓은 곳이 석굴이다. 거대한 돌을 쌓아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모셨다. 불상 위로 목조건물이 있던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공사는 석실을 해체한 뒤 복원하는 작업이다.

덕주공주 얽힌
석불의 전설


석불은 절터의 주존불로 높이가 무려 10.6m에 이른다. 커다란 돌덩이 네 개로 몸을 만들고, 갓과 좌대는 다른 돌을 썼다. 웅장한 규모와 걸맞지 않게 석불의 표정이 그야말로 착해 빠진 얼굴이다. 이 친근함 덕분에 미륵대원지에 얽힌 전설이 힘을 얻는다.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와 딸 덕주공주는 나라가 망하자 금강산으로 떠났다. 도중에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게 마애불을 만들었고, 태자는 이곳에 석굴을 지어 북쪽 덕주사를 바라보게 했다는 전설이다. 실제로 석불은 남쪽을 등지고 북쪽으로 덕주사를 품은 월악산을 바라본다.

미륵대원지를 구경했으면 마의태자의 발걸음을 따라 하늘재에 올라보자. 미륵대원지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드넓은 원 터가 있다. 원(院)은 관리나 상인이 숙식하던 공간이다. 원 터 뒤로 하늘재 입구가 보인다. 하늘재는 충주 미륵리와 문경 관음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고려 시대까지 남북 교통로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 새 길(문경새재)이 개통하면서 ‘옛길’이 되었지만, 최근까지 사람들이 이용했다.

여기에서 하늘재 정상까지 2km 거리로 40분쯤 걸린다. 길은 부드럽게 산의 품을 파고든다. 졸졸 흐르는 개울을 지나고, 소나무 숲길과 참나무 숲을 차례로 만난다. 연리지와 김연아 선수의 포즈를 닮은 ‘연아나무’를 지나 모퉁이를 휘휘 돌면 하늘재 정상이다. 여기까지 흙길이고, 고갯마루 반대편은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정상에서 오른쪽 나무 계단을 따라 조금 오르면 탄성이 터지면서 하늘이 열린다. 건너편으로 암반이 드러난 포함산(962m)이 우뚝하고, 백두대간 봉우리가 꼬리를 잡고 흘러간다. 이 감동적인 풍경을 바라보면 하늘재란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늘재에서 내려오면 청룡사지로 이동하자. 소태면 오량리 뒷산인 청계산 남쪽에 자리 잡은 청룡사지에는 다양한 부도가 있다. 주차장 앞에 부도 위치가 표시된 안내판이 있다. 호젓한 참나무 숲길을 터벅터벅 걸으면 큰 비석이 반긴다. 1692년에 세운 청룡사 위전비다. 절의 중창과 경영 등에 관련한 경비를 충당하는 데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이 담겼다. 다시 오솔길을 지나면 ‘적운당’이라 적힌 석종 모양 부도와 부도 조각이 모여 있다. 그 뒤쪽 시원한 솔숲 너머 청룡사지의 주인공인 석등과 보각국사의 부도, 부도비가 한 줄로 늘어섰다.

보각국사 유물
품은 청룡사지

보각국사 혼수는 고려 말에 활동한 승려로 공민왕에게 불법을 전했고, 계율을 굳게 지켰으며, 선종과 교종의 모든 경전에 통달했다고 전한다. 보각국사는 고려 왕실과 숨바꼭질한 일화가 유명하다. 공민왕이 내원에 머물게 하자 위봉산으로 도망쳤고, 회암사에 주석하길 청하자 오대산으로 숨었다. 우왕은 여러 번 국사로 모시려고 했으나 스님이 거절하자, 국사 책봉에 필요한 물건을 들고 스님이 계시던 청계산 연회암에 와서 국사로 봉했다고 한다.

국보 197호로 지정된 보각국사 부도(보각국사탑)는 불교 미학의 정수라 할 만하다. 부도의 몸돌은 팔각이지만 배흘림기둥처럼 둥그스름하게 배가 부르다. 각 면에 무기를 든 신장상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하고, 지붕돌 합각마루 끝마다 봉황과 용머리가 차례로 조각되었다. 부도 앞 석등은 받침돌이 사자상이라 사자 석등이라고 부른다. 우락부락한 사자의 얼굴이 장난꾸러기 같아 재미있다.


청룡사지에서 가흥삼거리로 나오면 우리한글박물관이 지척이다. 2009년에 문을 연 박물관은 국립한글박물관보다 먼저 생겼다. 박물관에는 김상석 관장이 30년 넘게 모은 귀한 한글 자료가 그득하다. 현재 〈해주도자기, 한글을 노래하다〉 특별전이 열린다. 해주 도자기는 구한말 황해도 해주 일대에서 만들어진 백자로, 소박하면서도 독특한 문양이 특징이다. 주로 한글이 적힌 도자기를 전시하는데, ‘이것시 참 조은 거시오’ ‘여러분 보십시오’ 등 투박하게 쓴 한글이 절묘하다.

우리한글박물관에서 남한강을 건너면 서유숙을 만난다. 달성 서씨 상주 문중의 종갓집 장녀 서성수 씨와 그 아들이 운영하는 한옥 펜션이다. 고택에 관심이 많던 서씨는 전국을 떠돌며 한옥을 연구하다가 이곳에 자리 잡았다. 서유숙은 전통 한옥을 바탕으로 모던한 감각을 살려 세련된 느낌을 준다. 밤나무 언덕과 넓은 잔디 마당, 남한강이 코앞이라 경치도 좋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충주 미륵대원지→하늘재→우리한글박물관→청룡사지

1박 2일 코스
첫째 날: 충주 미륵대원지→하늘재→서유숙(숙박)
둘째 날: 청룡사지→우리한글박물관

관련 웹사이트
·충주문화관광 www.cj100.net/tour
·우리한글박물관 www.hgnara.net
·서유숙 www.seo8831.com

문의 전화
·충주시청 관광과 043-850-6723
·우리한글박물관 043-851-4955
·서유숙 043-855-9909

대중교통(버스)
서울-충주: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38회 운행(06:00~21:40), 약 1시간 40분 소요.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38회(06:00~23:00) 운행, 약 1시간 5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이지티켓 www.hticket.co.kr, 충주공용버스터미널 043-856-7000

자가운전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IC→추점삼거리→수안보입구삼거리→지릅재 입구→미륵대원지→지릅재→수안보교차로→가흥교차로→청룡사지→가흥삼거리→우리한글박물관→서유숙

숙박
·서유숙: 소태면 덕은로, 043-855-9909, www.seo8831.com
·호텔 더베이스: 충주시 호암대로 8, 043-848-9900, www.hotelthebase.com
·계명산자연휴양림: 충주시 충주호수로 1170, 043-850-7313

식당
·삼거리기사식당: 청국장·김치찌개, 중앙탑면 가곡로, 043-855-4078
·투가리식당: 올갱이해장국, 수안보면 온천중앙길, 043-846-0575
·원조중앙탑막국수: 막국수·만두, 충주시 중원대로, 043-848-5508

주변 볼거리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목계나루, 월악산국립공원, 수안보온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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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